나의 소중한 친구

by 서령

방 안 구석, 햇살이 비스듬히 들어오는 창가 옆에 앉아 있던 곰돌이를 나는 아직도 기억한다.

조금은 낡고, 털이 군데군데 헝클어져 있었지만, 내 눈에는 그 어떤 장난감보다 소중한 존재였다. 그 곰돌이는 늘 같은 자리에 있었고, 늘 같은 표정을 하고 있었지만, 나에게는 하루하루 다른 이야기를 들려주는 친구였다.

밤이 찾아오면 이야기는 달라졌다.


어린 나는 어둠을 무서워했고, 사소한 소리에도 쉽게 놀라곤 했다. 하지만 곰돌이를 품에 안는 순간, 그 두려움은 눈 녹듯 사라졌다. 낡은 솜의 촉감, 오래 안아주어 조금 납작해진 귀, 아무 말도 하지 않지만 다 들어주는 눈동자. 그 작은 몸집에서 어쩐지 거대한 평온이 흘러나왔다. 곰돌이는 말 대신 온기로 나를 감싸주었고, 그 온기는 어린 마음에 안전이라는 이름으로 새겨졌다.


세월이 흘러 곰돌이는 더 이상 내 곁에 있지 않다. 이사를 하면서 어딘가에 묻혀버렸거나, 시간이 지나며 사라져 버렸을 것이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나는 곰돌이가 사라졌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어릴 적 그 존재가 남겨놓은 ‘느낌’이 내 안에서 여전히 살아 있기 때문이다. 힘든 날이면, 마음 한쪽에서 곰돌이의 포근한 감촉이 불쑥 떠오른다. 그러면 나는 잠시 숨을 고르고, 어린 시절의 나처럼 스스로를 안심시킨다. “괜찮아, 네 곁에는 언제나 곰돌이가 있어.”


곰돌이는 단순히 장난감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가 필요로 하는 ‘정서적 안식처’의 상징이다. 누군가는 그것을 인형에서 찾고, 누군가는 사람에게서, 또 누군가는 기억 속의 장면에서 찾는다. 곰돌이는 그저 모양을 빌려준 것일 뿐, 본질은 ‘돌봄’과 ‘보호받음’이다. 그렇기에 많은 이들이 나이를 먹고서도 곰돌이 인형을 쉽게 버리지 못한다. 그것은 과거의 흔적이자, 여전히 유효한 따뜻함이기 때문이다.


곰돌이를 떠올리며 나는 문득 질문을 던져본다. 나는 누군가에게 곰돌이가 되어줄 수 있을까? 말없이 곁에 있어 주는 존재, 불안할 때 잡을 수 있는 손 같은 사람. 위로의 말을 화려하게 늘어놓지 않아도, 그저 묵묵히 곁을 지켜주며 “괜찮아”라는 마음을 전해줄 수 있는 사람. 그것이 곰돌이가 내게 해 주었던 일이었고, 지금의 내가 가장 닮고 싶은 모습이다.


인생을 살다 보면 누구나 어두운 밤을 지나야 한다. 때로는 그 밤이 너무 길고 깊어서 혼자 감당하기 힘들다. 그럴 때 필요한 건 거창한 해결책이 아니라, 곁에서 함께 있어주는 따뜻한 무언가다. 그 무언가는 사람일 수도 있고, 오래된 인형일 수도 있다. 중요한 건 그것이 마음을 달래주는 곰돌이 같은 존재라는 사실이다.


곰돌이는 결국 우리 모두의 기억 속에서 변치 않는 상징으로 남는다. 둥근 귀와 무표정한 얼굴, 하지만 그 안에서 느껴지는 묘한 온기. 곰돌이는 늘 같은 자세로 앉아 있지만, 우리 마음속에서는 언제나 살아 움직인다. 그것은 단순한 물건이 아니라, 우리가 서로에게 전해야 할 ‘온기의 모양’이기 때문이다.


나도 언젠가, 누군가의 곰돌이가 되고 싶다. 삶에 지친 이가 내 곁에 왔을 때, 말없이 기대어 쉴 수 있는 작은 기둥이 되어주고 싶다. 곰돌이가 내게 그랬던 것처럼.


곰돌이는 사라지지 않는다. 그것은 우리 안에서 여전히 살아 있고, 우리가 서로에게 건네야 할 따뜻함으로 이어진다.


어쩌면 인생이란, 곰돌이 같은 순간들을 찾아가고 또 만들어가는 여정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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