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일이 생기면 기쁨보다 먼저 마음이 움츠러들 때가 있다. 카페 창가에 앉아 평소보다 조금 비싼 메뉴를 주문하고 햇살을 즐기는 순간에도, 몸은 편안하지만 머릿속은 괜히 분주하다. 이 자리, 이 시간이 내 것이 맞을까. 잠시 빌려 쓰는 호사에 불과한 건 아닐까. 컵을 잡는 손끝이 쓸데없이 조심스러워지고, 마치 곧 누군가에게 자리를 내어주어야 하는 듯한 기분이 스며든다.
돌아보면 그런 순간들이 많았다. 하루를 마치고 돌아와 침대에 몸을 누였을 때, 오늘만큼은 괜찮았다고 스스로를 다독이면서도 어김없이 따라붙는 불안. 행복이 클수록 그만큼의 반동이 돌아올 것 같은 예감. 내일은 오늘처럼 웃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불확실함. 그래서 오히려 행복을 오래 누리지 못한다. 다 누리기도 전에 스스로 줄이고 덜 어내며, 아직 오지도 않은 상실을 미리 대비하는 습관이 몸에 밴다.
사람들은 소소한 행복이 삶의 비밀이라고 말하지만, 내겐 그 소소함조차 결심이 필요한 일이었다. 가벼운 여행을 앞두고서도, 우연히 맞이한 평온한 하루 앞에서도, 가장 먼저 스친 건 설렘이 아니라 망설임이었다. 웃음에도 허락이 필요한 사람처럼, 늘 ‘이래도 되나’라는 의문이 먼저 따라왔다.
주변의 세상은 늘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누구는 더 큰 무게를 감당하며 살아가고, 누구는 더 치열하게 달려간다. 그런 모습들 앞에서 내가 쥔 작은 행복은 종종 너무 가벼워 보였다. 남들보다 덜 힘들어 보이는 것만 같아, 나도 모르게 죄를 짓는 기분이 들었다. 그래서 더 움츠러들었고, 내 기쁨을 내보이는 데 서툴렀다.
그런데 시간이 흘러 뒤돌아보면 늘 같은 아쉬움이 남는다. 왜 그때는 웃지 못했을까. 왜 두려움이 먼저였을까. 사라질 걸 걱정하기보다, 있었던 순간에 더 충실했다면 어땠을까. 잃고 나서야 깨닫는다. 그 불안과 미안함에 묶여 허둥대던 시간이, 사실은 가장 소중한 행복의 한복판이었다는 것을.
이제는 조금씩 배워가려 한다. 행복은 성과에 대한 상장도 아니고, 누구에게 허락받아야 하는 자격증도 아니다. 그저 스며드는 공기처럼, 잠시 머물다 가는 계절처럼 누구에게나 찾아올 수 있는 삶의 일부라는 것. 오래 머물지 못한다고 해서 내 것이 아니라고 단정할 이유는 없다. 봄꽃이 며칠 만에 져버린다고 해서 그 순간의 향기와 빛이 내 것이 아니었던 건 아니듯이.
그래서 오늘은 굳이 변명하지 않기로 했다. 작은 호사 앞에서 자격을 따질 필요도, 가벼운 웃음 앞에서 괜히 진지한 얼굴을 할 필요도 없다. 여전히 완벽하게 자유롭진 않다. 어떤 순간에는 여전히 망설이고, ‘내 몫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불안이 고개를 든다. 그러나 그럴 때마다 스스로 다짐한다. 지금 이 순간은 분명 내 시간이라고.
언젠가는 이 습관이 조금 더 몸에 배어, 미안해하지 않고 웃을 수 있는 날이 오리라 믿는다. 그렇게 하나씩 배워가면서 늦게나마 내 행복을 받아들이는 법을 익혀가는 중이다. 아직은 서툴지만, 그조차도 나의 삶이라는 것을 이제는 조금 알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