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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amomile Jan 05. 2016

나의 라임 오렌지 나무 I - 공부 기계와 사랑

아빠는 딸을 태어나게 했고, 그때부터 계속 같이 지냈다. 서로 모습만 봐도 좋은 시기도 있었다. 하지만 입시 공부 때문에 '부모의 제압' 이 시작되었다. 아이는 반항해서 멀어지던지, 공부 기계가 되어 적응하든지 아니면 환상의 세계로 도피하기도 한다. 공통적인 부분은 본심을 감추고 부담되는 이방인처럼 상대를 대하는 것이었다. 



사건 1. 고승덕 후보 서울시 교육감 낙선 사건


고승덕 변호사는 전직 국회의원이었고 서울대학교 법과대학 재학 중 3대 고시에 합격한 것으로 유명하다. 사법고시는 최연소 합격, 행정고시는 수석, 외무고시는 차석 합격이었다. 초인적인 지성과 의지를 보여주었다고 할 수 있다. 그가 미디어를 통해했던 말들은 입시 공부로 신음하는 학생과 학부모들에게 극기의 교훈을 전해주었다.


공부를 좋아서 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누가 더 참고 견디냐가 승패를 가릅니다.
이것이 공부의 첫 번째 원칙.

밥 먹는 시간 중 젓가락질할 시간도 아까워 항상 비빔밥을 만들어 먹었다.
소화가 잘되어 식곤증이 없었다.
식곤증으로 버리는 시간조차 아까웠다.


고승덕 변호사는 2014년 6.4 지방선거의 서울시 교육감 후보로 출마했다. 인지도가 높은 후보였기 때문에 불과 선거 열흘 전만 해도 여론조사 지지도는 25.6% 나 되었다. 2위 문용린 전 교육감이 16.4%, 조희연 후보가 6.6% 였으니 이변이 없는 한 당선이 확실시되었다. 하지만 이변이 일어나고 말았다.


이혼한 전처 사이에서 난 딸 캔디 고 양은 페이스 북에 장문의 글을 올렸다. 그녀 글의 요점을 보면 - 1. 고승덕 후보는 친 딸과 아들의 교육을 완벽히 방치(아버지로부터 연락받거나 생일 선물 받는 것을 꿈도 못 꿀 정도)  2. 고승덕 후보의 법조인, 정치인으로서 성공을 보았고 그가 아이들을 어떻게 교육해야 성공할 수 있는지 강연을 다닌다는 것을 알고 화가 났지만 침묵  3. 하지만 서울시 교육감으로 출마한 건 그의 자녀 교육 실례를 보았을 때 선을 넘은 행위이기 때문에 이를 유권자 대중에게 전할 수밖에 없음 - 이었다.


고승덕 변호사는 성공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딸에게 전화하고 생일 선물을 주는 것 같은 작은 일을 챙기기 못한 것 같다. 아빠 옆에서 아장아장 걸어 다니던 딸은 어느새 아빠는 일에만 바쁘고 자기에게 신경 안 쓰는 존재란 걸 알고 벽돌을 하나하나 쌓아가지 않았을까. 이혼과 양육권 문제가 얽혀 있고 딸이 미국에서 줄곧 생활했기 때문에 아버지도 억울한 점이 있을 것 같다. 하지만 딸의 마음에 서운함이 한처럼 맺혀 버린 것도 사실이다.



사건 2. 한인 천재 소녀 사건 


우리나라 언론에 천재 고교생 소식은 좋은 뉴스 기사가 되는 것 같다. 매년 수능시험에 응시하는 인원은 60만 명을 넘는다. 그리고 이 전체 인원을 한 명도 빠짐없이 점수로 줄 세울 수 있다. 이 거대한 인간 등급 매기기 놀이는 연간 13조 원의 비용을 치르는 하나의 산업 - 사교육 시장 - 으로 발전했다. 욕망과 선망이 모이는 곳이니 기사 클릭 수는 천정부지로 솟을 수밖에 없고, 클릭 수에 따라 언론기관은 광고비를 받는다. 그래서 아래와 같은 믿기 힘든 기사가 탄생할 수 있었다.


하버드와 스탠포드가 입학해 달라고 구애하고
페이스북 창업자 마크 저커버그가 도와달라고 요청한다면?

유학생 출신의 한인 천재 소녀를 놓고
미국 최고의 대학들이 유례없는 스카우트전을 펼쳐 큰 화제가 되고 있다.

마크 저커버그 CEO는 이메일과 전화를 걸어
이 소녀의 수학적 능력이 세계를 하나로 묶는데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만나줄 것을 요청했다.

믿기 힘든 실화의 주인공은
올해 버지니아의 토머스 제퍼슨 과학고를 졸업하는
김OO양.


마크 저커버그가 고교생 소녀에게 전화해서 수학 논문으로 세상을 바꾸자고 하는 부분이 외계 소설을 읽는 것 같았다. 아무튼 우리나라 언론은 간단한 사실 확인도 하지 않았고, 이 뉴스는 저녁 9시 공중파 뉴스에까지 등장한다.


사건의 시작은 한 명의 아이가 성적에 압박감을 느꼈다는 데에서 시작했다. 우리나라에서 태어난 사람은 죽을 때까지 경쟁하고  비교당해야 하는 환경에 있다. 김 OO 양이 미국에서 영재들이 모이는 고교에 다니고 있었다는 사실은 그녀가 이미 대단한 학생이라는 걸 말해준다. 하지만 사회가 강요하는 경쟁은 잘하는 학생을 더욱 옮아 매는 것 같다. 그래서 결국 고독과 비현실로 도피할 수밖에 없었던 게 아닐까.


사건 1에서는 아빠가 공부기계가 되었고, 사건 2에서는 딸이 공부 기계가 될 것을 강요받았다. 그리고 각각 그만큼 가족 관계에 그늘을 만들었다. 



사랑은 어디에?


J.M. 데 바스콘셀루스(José Mauro de Vasconcelos)의 자전적 소설 <나의 라임 오렌지 나무>. 소설의 주인공 '제제'는 브라질 리우의 빈민가에서 태어나 부모 형제의 사랑을 받지 못하고  맞으며 자랐다. 하지만 어린 시절 자신을 유일하게 사랑해주었던 뽀르뚜가(마누엘 발라다리스)를 만나면서 인생이 변한다. 이제 48세의 어른이 된 제제가 기차 사고로 죽은 뽀르뚜가를 회상하는 것으로 소설은 끝맺는다. 작품의 주제는 사랑하는 것을 아껴 얻은 시간은 의미가 없다는 것을 말해준다. 공부나 성공도 사랑이 목적이 아니라면 사람을 기계로 만든다.


사랑하는 마누엘 발라다리스 씨, 오랜 세월이 흘렀습니다.
오늘로서 저는 마흔여덟 살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추억을 회상하다 보면
때론 어린 시절이 계속되는 듯한 착각을 일으킵니다.

제게 딱지와 구슬을 주신 분은 당신이셨습니다.
사랑하는 뽀르뚜가,
제게 사랑을 가르쳐 주신 분도 바로 당신이셨습니다.

요즘도 전 가끔 아이들에게 딱지와 구슬을 나누어 주곤 합니다.
왜냐하면 사랑이 없는 인생이란 의미가 없는 것이란 걸 알기 때문입니다.
때때로 저는 제 자신의 사랑에 만족합니다.

그 시절, 우리들의 그 시절엔 저는 몰랐습니다.
먼 옛날 깨끗한 마음의 어린 왕자가 눈에 눈물이 가득 고인 채
제단 앞에 엎드려 이렇게 물었다는 것을 말입니다.

"왜 아이들은 철이 들어야만 하나요?”
사랑하는 뽀르뚜가,
저도 너무 일찍 철이 들었던 것 같습니다.

안녕히!
우바뚜바에서 196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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