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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들국진 Aug 29. 2016

제주도, 군산오름에 올랐다

두려움을 뚫고 올라간 길

#1
제주도 군산오름에 올랐었다. 올라가는 길은 외나무 다리 같았다. 차 한대가 겨우 지나갈 수 있는 정도. 누군가 양보하지 않으면 안되는 길이었다. 오르는 중간중간 차를 돌릴 수 있는 곳이 더러 있었는데, 그때마다 선택해야했다. 더 오를 것인지, 여기서 멈출 것 인지. 더 오르면 정상에서 기쁨을 만끽하겠지만 내려오는 차와 마주친다면 곤란하니까 내려가고 싶기도 했고, 여기서 멈추면 이 아름다운 풍경을 볼 수 없고 포기했다는 자괴감이 들테니까 고민해야했다.


아침 10시 정상이 보인다 해가 너무 강해


#2
결국 나는 계속 오르기로 결심했고 주차한 뒤엔 땀을 뻘뻘 흘리며 정상까지 올랐다. 360도로 탁 트인 정상, 절경이 펼쳐졌다. 행복한 마음 한 켠엔 내려갈 걱정이 자리잡고 있었다. 쫓기듯이 내려가려는 나를 발견하고, 그냥 주저 앉아 바람을 마음껏 쐬었다. 마음이 울렁였다. 마음에 바람이 든 것 같기도, 가만히 바람을 쐬는게 어색하기도 했다. 나는 계속 무언가 해야만 하는 사람처럼 굴고 있었다. 아무도 재촉하는 사람이 없는 순간에도 누군가에게 쫓기는 듯 했다. 눈만 돌려도 이런 절경이 펼쳐지는 곳에서 조차 마음이 편하질 않았다. 아무도, 내 마음을, 불편하게 하지 않았는데 말이다.  


제주도 군산오름에서 내려다 본 서귀포
바위에 철퍼덕 주저 앉아 마음껏 바람을 쐬며 봤던 풍경, 군산오름의 얼굴은 여러 가지다.

#3
내려오니 내 차 옆에 한대가 더 있었다. 가족여행을 온 모양이다. 안 마주쳐서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내리막길을 초조하게 달렸다. 길이 꼬불꼬불한 코너구간이 제일 위험했다.


#4
뜻밖에 내리막길에서 만난 건 차가 아니라 사람이었다. 한눈에 봐도 지친 기색이 역력한, 짧은 바지에 굽 높은 웨지힐을 신은 여성이 올라가고 있었다. 이제 겨우 5분의 1정도 오른 지점에서 땀으로 샤워한 여성을 보자 차마 지나칠 수 없어서, 차를 멈추고 창문을 내렸다.

"오름까지 가시는거에요?"
"네 많이 남았나요?"
"걸어서는 못 가실 것 같은데요. 엄청 가야해요. 오름이 아니라 등산이라고 보셔야...."
"아 그래요?"
"용눈이 오름 가보셨어요? 거기 보다 더 가파르고 높아요."
"아 진짜요? 아..."
"내려가실거면 태워드릴게요"
"아 진짜 감사합니다"

내가 앉아 있었던 바위, 저기 보이는 저 바위!


#5
서울에서 온 이 여성은 지인의 추천으로 오름에 오르기 시작했단다. 차가 없으면 힘들거라는 지인의 충고가 있었지만 그냥 보통 오름 정도이니 생각했단다. 내려갈까 고민하던 찰나에 나를 만났다고. 나는 차가 있어도 힘든 곳이라고 답했다. 정상은 어땠냐는 질문에 그녀가 실망하지 않도록, 풍경은 좋았으나 말벌때문에 얼른 내려왔다고, 좀 축소해서 내 소감을 전했다. 내심 안도하는 눈치였다. 남은 여행 잘하길 서로 빌어주며 인사를 나눴다.


#6
다시 혼자가 되어 생각했다. 그 순간 순간, 멈추지 않고 두려움을 극복하고 정상에 오른 건 참 잘한 일이었다. 아무도 없는 오름 정상에서 혼자 있던 시간이 자꾸 생각난다. 나는 어떤 사람인지 고민했던 그 시간이 자꾸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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