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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들국진 Nov 11. 2017

스페인행 티켓을 끊었어

아자매의 계획한 대로 스페인 여행 : prologue

'스페인행 티켓'.

올해 1월에 스페인행 티켓을 끊었다. 다시 생각해도 이 문장은 정말 간질간질한 설렘을 준다. 나 스페인 여행 간다는 말보다 더 짜릿하고 들뜬 기분을 내게 한달까.

김해국제공항에서 출발
우리의 첫 경유지, 도쿄 나리타공항 착륙 직전 :)

어쨌든 나는 스페인행 티켓을 끊었다. 동행은 친언니다. 이번 여행기에서 언니의 얘기는 빼놓을 수 없겠다. 내가 알고 있던 언니는 나와 정반대의 인물로, 회사원이자 그림을 그리고 디자인을 하는 사람이며 꼼꼼한 성격에 츤데레 기질을 타고났으며 대부분 평온하지만 화가 나면 정말 무서운 사람이었다. 그리고 낯을 많이 가리고 말이 없지만 말문이 터지면 정말 재밌는 사람이었다. 여기까지가 내가 알고 있던 언니.


언니는 작년 동유럽을 혼자서 여행했다. 여행지마다 낯선 사람과 밥을 먹거나 여행했다는 말을 듣고, 사실 믿어지지 않았다. 그리고 이번 여행에서 그 사실을 믿게 되었다. 일본에서 만난 뜻밖의 동행분에게 선뜻 같이 가자고 말하고, 처음 본 사람과도 편하게 얘기하고 가리는 것 없이 잘 먹었다.

츤츤하게 네임택을 건네던 언니. 빨간머리앤 네임택. 여행을 준비하는 순간들이 벌써 그립다.
아자매의 여행을 함께 한 올림푸스(광각렌즈 담당)와 파나소닉(여친렌즈 담당)

생각해보면 내가 아플 때마다 '오다 주웠으니 너 가져'라는 식으로 따뜻한 찜질팩을 가져다준 건 언니였다. 특별히 말로 위하지 않고, 행동으로 보여주는 사람. 그런 언니와의 여행 사실 좀 특별했다. 언니도 그랬을 거라 생각한다. 언니는 내가 조금만 걸어도 징징거리는 그 찡찡이로 알고 있었겠지만, 바르셀로나 그라시아 거리에서 내가 체력이 우세한 걸 보고 놀랐을 거다. 낄낄.



이런 언니와 스페인 여행을 떠났다.

올해 추석은 엄청난 성수기였고, 유럽은 특히 10월 성수기라 했다. 이미 1월 티켓값이 150만 원을 넘을 때였다. 사실 내가 늑장을 부리는 바람에 예매가 늦어졌고, 언니가 화가 났다는 걸 알아챈 순간 마음이 초조했다. 발등에 불이 떨어진 나는, 어쩌다가 케세이퍼시픽 특가, 에어부산 특가 등의 찬스로 99만 원에 스페인행 티켓을 끊었다.

언니의 연구끝에 우리는 프라도미술관을 포기하고 티센보르네미사 미술관을 선택. 마음껏 사진찍으면서 관람.
드디어 고흐와 만난 언니. 아이처럼 신나하던 사람.

그리고 언니는 9개월간 스페인에 대해서 공부했다. 심지어 스페인어도 공부했다. 우리가 갈 미술관의 작품을 스크랩해가며 공부했다. 가우디 관련 다큐만 해도 수편을 봤을 거다. 어쩌다 내가 TV에서 유튜브 영상을 보는 법을 알려줬더니, 매일 밤 여행자들의 콘텐츠를 보기 시작했다. 책도 엄청 읽었다. 그리고 스페인에서 우리가 방문할 곳들의 외관을 그리기 시작했다.

물론 나도 틈날 때마다 열심히 했지만 언니만큼은 아니었다. 언니는 거의 스페인 여행을 끝낸 사람처럼 찌르면 지식이 쏟아져 나올 정도였다.

몬주익 미라마르전망대에서 쉬면서 스케치하는 언니. 대단해.

그렇게 9개월이 지나고, 드디어 추석을 맞았다. 올해는 다른 종류지만, 2번 이별을 겪었고 생애 처음 일을 그만 두면 어떨까 생각했던 힘든 시간들이 있었다. 다른 해보다 유난히 마음이 아프고 헤쳐나가야 할 일이 산재했던 그런 해였다. 그래서 이번 여행이 더 특별했다.

열심히 여행팟케스트 '여행본색'을 들었고, 남부투어 중 가이드언니가 낸 퀴즈를 맞춰서 선물 득템 :)

우리 여행 일정은 이랬다. 부산-도쿄(1박)-홍콩 경유-바르셀 도착-마드리드-남부 투어(톨레도, 바에사, 그라나다, 네르하, 론다, 세비야)-바르셀로나. 사실 부산에 살면 국제선이 한정되어 있어서 인천으로 가서 타나 도쿄로 가서 타나 똑같다.

일본 나리타의 장어덮밥. 신쇼지 가는 길은 장어덮밥 골목이 유명하다.

언니의 철저함과 나의 기술력(?)이 더해져 우리는 거의 완벽에 가까운 계획을 세웠다. 그리고 그것이 실제로 계획대로 모두, 하나도 빠짐없이 이뤄졌고, 계획하지 못한 것 까지 즐기고 왔다. 소름 돋을 정도다. 그냥 여행사를 차려도 될 듯! ^_^

네르하. 유럽인들이 사랑하는 휴양지.

어쨌든 다시 돌아와서. 가장 좋았던 여행지를 물으면 스페인의 전부를 사랑한다고 하고 싶지만, 그라나다가 가장 좋았다. 젊은 도시였고 이슬람 문화가 남아있는 묘한 분위기의 도시였다.


다시 가보고 싶은 곳은 네르하다. 네르하는 유럽 사람들이 은퇴 후 노후를 보내거나 휴가지로 인기 있는 곳이다. 바르셀로나는 '가우디'없으면 안 될 것 같은 느낌이었다. 오로지 가우디로 설명할 수 밖에 없는 도시였다.

마드리드를 걷다가 영화<라라랜드>가 떠오른 순간. 아마 30시간째 한번도 눕지 않았던 때.

마드리드는 스페인의 수도이자 대도시였지만 내가 가 본 대도시 중에선 제일 여유로워 보였다. 진짜 스페인 사람들의 유쾌하고 열정적인 모습은 대부분 남부 도시에서 느낄 수 있었다.

사랑해요 하몽&메론

음식은 내 입맛엔 정말 잘 맞았다. 맛있는 짠맛에 질 좋은 고기. 질 좋은 와인. 하몽 성애자가 된 썰은 후에 풀겠어.

다녀온 지 1달이 다 돼서야 후기를 쓰는데 갈길이 멀다. 이제 프롤로그. 이번엔 계획한 대로 여행기를 정리해야지. 나의 31살, 첫 유럽여행, 첫 자매 여행을 영원히 기억하고 싶어서. 그리고 다시 가기 위해서. 두구두구, 기대하고 기다려줘요!


스페인행 티켓을 끊고 나는 수많은 힘든 시간을 견뎠다. 스페인에 다다를 수 있다는 희망때문에 올해를 살았다.
그러고보면 여행이란, 나의 시간을 인생의 명장면으로 만들어주는 최고의 방법이다.


인스타그램 @prokja

동행(언니)의 인스타그램 @ecokj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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