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레선생, 남유럽 3개국 여행일기

- 2025년 10월 14일 화요일

by 차거운

오늘은 드디어 이탈리아로 출국하는 날이다. 1년이 넘도록 이야기가 오가고 준비를 한 끝에 그 여행의 시작이 되는 날이 밝은 것이다. 며칠 동안 아내는 아이들이 한 달간 먹을 음식들을 준비해서 냉동하고 정리해서 냉장고에 쟁여 놓았고 그동안 나는 최종적인 여행 점검과 짐을 꾸리면서 만반의 준비를 한다고 많은 시간을 보냈다.

아침에 일어나서 간단히 아침을 먹고 아이들과 작별 인사를 한 뒤에 택시를 불러 정릉 주민센터까지 여행 가방 2개와 조그만 가방을 하나씩 차고 긴장을 한 채로 이동했다. 실질적으로 우리가 계획해서 떠나는 여행은 이번이 처음인 셈이니 어찌 긴장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이 나이를 먹도록 해외여행을 제대로 다녀본 기억이 없다. 교사로서 학생들을 인솔해서 일본 자매학교 방문을 한 것과 네팔 트레킹 겸 봉사활동의 명분으로 학생들을 데리고 떠난 것이 있고 백두산과 연길 등의 여행이나 일본 도쿄-나고야 여행, 베트남 하롱베이와 하노이 여행 정도가 전부인데 모두가 직장과 관련해서 주어진 기회였기 때문이다. 베트남에 갈 때는 비용을 추가 부담하여 집사람과 함께 간 기억이 있다. 그러고 보면 요즘 젊은 친구들이 수시로 외국여행을 다녀오는 것과 비교하면 아직 우물 안 개구리의 신세를 면하지 못한 셈이고 세상은 넓고 할 일은 많다는 호연지기를 키울 수 있는 경험 또한 일천했던 셈이니 아이들에게 더 넓은 세계가 있다고 힘 있게 말할 수 있는 처지가 아니었다고 하겠다. 발로 몸으로 걷고 구르면서 체득한 경험이야말로 세상을 제대로 이해하는 기본적인 근거가 될 것이니 이렇게 삶에 코를 박고 살아온 세월이 실로 길고 길었던 아쉬움이 있다. 그러니 이제라도 길을 떠날 수밖에 없을 터이다. 그래서 우리는 지금 길을 떠나고 있는 것이라고 스스로 자위해 본다. 6102번 공항리무진을 타고 인천공항 1 터미널로 향하는 시간이 약간은 출근 시간대로 내부순환도로를 지나 방화대교를 타기까지 시간이 조금 걸렸지만 일찍 출발한 덕분에 조바심을 낼 필요는 없었다. 우리가 타야 할 비행기는 로마행 티웨이 항공사 직항 편으로 오후 12:35분에 출발하기로 예정되어 있다. 공항에 9시 조금 넘어서 도착해서 오랜만에 오는 공항에 대한 어지럼증을 느끼며 항공사를 창구를 찾아 헤매다가 셋째 처형 내외분을 만났다. 둘째 처형이 일요일인 12일에 먼저 로마로 출발하시면서 맡긴 라면 두 상자 덕분에 다른 휴대짐을 갖고 오지 않았고 메는 가방도 없이 왔다. 짐을 부치는데 무게가 아슬아슬 23kg 근처에 맴돌아 마음을 졸였다. 초보 여행자라 짐을 꾸리는 데 요령이 없어서 그러한지도 모르겠다. 욕심을 내느라 DSLR 카메라도 가방 채 캐리어에 넣었고 신발과 도난 방지용 자전거 체인 등 무게를 늘리는 데 기여하는 품목들이 상당히 많았다. 나중에 이 모든 것들 때문에 고생을 하게 되었지만 이러한 시행착오야 어쩔 수 없는 일이겠다. 라면은 기내짐으로 갖고 가려고 했는데 문제가 생긴 지점이 박스를 뜯어서 내용물만 가방이나 종이가방에 담아야 한다고 한다. 박스 포장 그대로 실을 수가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고민을 하면서 가방을 구하려고 하는데 처형이 다이소에서 산 장바구니 큼직한 것을 제공하셔서 라면을 모두 옮겨 담을 수가 있었다. 그리고 우리은행 외환 주머니에 입금해 둔 1,000유로의 현금을 찾아서 여행 경비로 챙긴 후 바로 검색대를 통과하고 탑승 구역으로 들어가기로 했다. 출입국 수속을 빨리 할 수 있는 어플을 깔고 지문 등록을 하여 간편하게 출입국 등록을 할 수 있게 등록을 집사람과 같이 하려고 했는데 집사람의 손가락에 지문이 잘 나타나지 않아서 나만 등록을 마치고 통과했다. 아내는 일반적인 방식으로 통과했고. 그런 와중에 지문이 닳거나 잘 드러나지 않아 문제가 발생하는 사람들이 아내만이 아닐 수 있다는 생각을 문득 하게 되었다. 노동과 가사 등의 과정에서 지문이 닳을 정도로 열심히 살아가는 이 땅의 많은 사람들이 자신을 증명할 지문을 확인할 수 없어서 겪을 불편함이 새삼 가슴에 먹먹하게 와닿아 ‘지문 없는 사람들을 위한 송가’라는 제목의 글을 남기게 되었다.

탑승구역 안에서 대구에서 올라온 넷째 처형과 처조카 00이를 만났다. 그렇게 여섯 사람의 가족이 일행이 되어 같은 비행기에 탑승하게 되었는데 공교롭게도 좌석이 서로 가까운 위치에 있어서 더욱 좋았다. 먼저 출발하신 둘째 처형 내외와 합하면 이탈리아 여행에 나선 일행이 도합 8명이 되고 로마의 처형 수녀님까지 9명이 되는 셈이다. 이 9명이 10월 28일까지 이탈리아 여행을 함께 하게 될 것이다. 그러고 나서 집사람과 나는 28일에 스페인의 바로셀로나로 이동해서 다시 2주간의 추가적인 스페인-포르투갈 여행을 이어가게 될 것이고 다른 식구들은 귀국해서 일상으로 먼저 돌아가 있을 것이다. 수녀님 처형도 휴가로 30일쯤 귀국해서 가족들을 만나고 건강검진과 다른 할 일을 하면서 다음 소임 기간을 준비하는 과정에 들어갈 것이라고 한다. 수녀님은 11월 25일에 로마의 소임처로 다시 새로운 한국 총장 수녀님과 함께 돌아갈 것이고 우리는 11월 12일 귀국해서 처형을 한국에서 다시 만나게 될 것이다. 지금 이 글을 쓰는 관점에서는 이 모든 일들이 완료형이지만 글의 흐름에서는 미래형으로 기록하는 것이 옳을 것이기에 그렇게 하도록 한다.

비행기는 예정 시간을 벗어나지 않고 이륙해서 오후 7시 15분까지 13시간 가까운 시간을 비행하게 되는데 로마와 한국이 7시간의 시차가 있기 때문에 그렇게 되는 셈이다. 아내는 그 지루한 비행시간을 내려받은 밀리의 서재 음성 텍스트를 들으며 가고 나는 묵주 기도를 100단을 하고 눈을 감은 채 잠은 들지 못하고 그렇게 불편함을 느끼면서 갈 수밖에 없었다. 티웨이는 원가 절감의 차원인지 영화나 다른 기내 서비스를 전혀 하지 않았다. 두 번의 기내식은 들은 바와 달리 나름대로 먹을 만했다. 내 입맛이 까다롭지 않아서인지도 모르지만 자신이 낸 비용만큼 돌려받는 것이라고 생각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그게 맞는 일이겠지. 비행하는 동안 동쪽에서 서쪽으로 가기 때문에 시차를 이용해서 7시간을 버는 셈이지만 귀국할 때 그만큼 시간적 손실을 봐야 하기 때문에 세상 모든 일에는 공평한 이치가 작용하는 셈이다. 길고 긴 여정이 끝나고 드디어 로마 피우미치노 공항 다른 이름으로는 레오나르도 다빈치 공항이라고도 한다는 곳에 착륙했다. 날은 어두워졌고 낯선 곳에 여섯 사람의 가족이 서로 뭉쳐서 나와 짐을 찾고 검색을 통과해서 나오니 낯익은 처형의 모습이 반갑기만 하다. 입국하는 가족의 사진을 한 장씩 찍어주면서 우리를 안내해서 성 바로로 딸 수녀회의 팔순이 넘은 파울라 수녀님이 운전하고 다니는 승합차로 이끌어 인사를 하고 짐을 싣고 처형이 소속된 수도회의 로마 총본부 숙소를 향해 이동하는데 낯선 거리와 밤 풍경이 눈에 확 치고 들어온다. 아, 이곳이 그 세계사적 사건들과 인물들이 살았고 살고 있으며 또 살아갈 그 유명한 로마란 말이지. 그런 감회가 뭉글뭉글 피어오른다. 언어적 울렁증과 소통에 대한 두려움이 마음을 바짝 졸아들게 하지만 처형이 있어서 참 다행이라는 안도감이 든다. 하느님, 당신은 우리에게 늘 도움의 손길을 베푸시나이다. 운전 소임을 공동체에서 맡으신 파울라 수녀님은 연세가 팔십이 넘으셨다는데 운전하는 품새나 감각이 민활한 것이 참 복되게 늙으신 분으로 보인다. 그분의 입에서 나오는 이탈리아어는 잘 알아듣지 못하겠지만 시시시 하고 응대하며 대화하는 처형의 능숙한 이탈리아어에 다시 숨통이 트인다. 적어도 여기서 굶어 죽거나 미아가 되지는 않겠구나 하는 그런 안도감이 든다. 처형이 저렇게 현지화되어 있으니 가이드 뺨치게 훌륭한 안내자가 되어 주시겠지. 아멘.

어두운 시각에 숙소에 도착하니 어디가 어딘지 지리 감각이 먹통이 되어 자동으로 열리는 문을 열고 차를 탄 채 들어가서 내리니 거대한 숙소가 있다. 이곳은 총회나 업무상으로 국제수도회인 수녀회의 수도자들이 오고 가면서 묵어가는 숙소로 사용되는 곳이어서 아무나 들어올 수 없는 구역인데 수도자 가족이라는 자격으로 특별히 우리에게 허락된 것이다. 참으로 감사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숙소는 수도자의 그것답게 1인 1실이라 부부가 모두 생이별(?)을 하게 되었고 그걸 별로 아쉬워하지 않는 표정들이라 그 심사가 조금은 궁금해진다. 아무리 가까운 부부도 가끔은 거리를 두고 지내는 것이 좋을 것이라는 점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나도 별 불만은 없다. 숙소는 웬만한 호텔의 2인 투숙용 방만큼의 공간인데 화장실이 있고 옷장과 책상, 침대 탁자 등이 있어 훌륭하다. 적어도 4성급 호텔만큼 아늑하다. 다만 화장실 변기에 뚜껑 즉 덮개가 없이 열린 구조다. 이런 부분은 문화적 차이를 느끼게 할 수 있겠다. 8명이 모두 방을 배정받고 짐을 풀고 나니 이미 저녁이 꽤 늦었다. 우리가 묵는 층이 2층인데 여기서는 1층에 해당한다. 지상은 0층으로 계산한다는 것이다. 이 또한 문화적 차이에 해당하는 것인 바 나중에 스페인이나 다른 지역도 같음을 알 수 있었다. 아래 0층에는 식당이 있는데 어마어마하게 크다. 이 넓은 공간을 우리 가족이 거의 독점하다시피 사용하니 참 이는 돈으로 살 수 있는 호의가 아니다. 사랑만이 그 답이 아닐까. 냉장고에는 물과 과일 등이 들어 있는데 우리에게 아낌없이 제공된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밥과 국 등을 바올렛따 수녀님이 한국 수녀님으로 주방 담당이신데 저녁마다 끓여서 갖다 놓으셔서 정말 낯선 이국에서 우리 음식을 실컷 먹을 수 있었다는 것은 2주간 정말 큰 은총이 아닐 수 없었다. 이는 이탈리아를 떠나 스페인으로 떠난 우리 두 내외가 뼈저리게 느낄 수밖에 없었던 결핍의 이유가 되었고 그래서인지 더더욱 그 감사로움을 곱씹게 되는 부분이었다. 시기적으로도 9월에서 10월 초까지 총회를 하면서 모였던 수도자들이 모두 떠나고 비어 있는 시기에 우리가 도착했기 때문에 이런 혜택을 받을 수 있기도 했다고 들었다. 참 모든 일이 은혜롭고 감사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저녁을 먹고 내일 아침에는 현지투어 상품으로 예약한 이탈리아 남부투어 1박 2일 일정에 참여해야 해서 일찍들 잠자리에 들도록 이야기를 나누고 처형 수녀님을 제외하고 8명이 출발할 준비로 1박 2일의 짐을 다시 간단히 준비하고 잠자리에 들었다. 무사히 이탈리아의 수도인 역사적인 도시 로마에 발을 디딘 첫날이 그렇게 지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