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5년 10월 15일 수요일(남부투어 1일 차)
오늘 6시 50분까지 테르미니 역 근처 갈레스 호텔에서 출발하는 현지투어에 수녀님 처형을 제외한 8명의 가족이 참여하게 되어 있어 일찍들 준비를 하고 역시 파올라 수녀님이 차를 갖고 호텔 앞 집합 장소까지 태워다 주셨다. 만약 우리가 각자 찾아가야 했다면 얼마나 더 많은 주의와 노력이 필요했을까를 생각해 보면 수녀님 공동체가 우리 가족에게 베풀어 주신 그 배려와 사랑이 얼마나 큰 것인지 알게 된다. ‘본 조르노!’를 합창하고 차에 오르고 또 ‘그라치에’를 소리 높여 외치고 차에서 내린다. 어찌 감사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우리가 여행하고 다녀오는 내내 수녀님이 매번 역까지 태워다 주시고 태우러 오시고. 아, 그 마음을 어떻게 표현하리오. 목석같이 무딘 나 역시 그런 모습에 가슴이 먹먹하게 감동할 수밖에 없었다.
현지 가이드와 확인을 마치고 버스를 타고 로마에서 폼페이로 향하는 도로에서 낯선 이탈리아의 산하를 우리의 그것과 비교하면서 설레는 마음을 누르며 중간에 휴게소의 역할을 하는 호텔 바에서 화장실도 다녀오고 커피도 한잔하면서 잠시 쉬었다가 도합 서너 시간쯤 가니 꼭 한번 눈으로 보고 싶었던 역사적인 유적인 폼페이에 도착했다. 버스에 탑승하기 전에 가이드에게 1인당 213유로를 현금으로 주어서 입장료와 각종 이동 수단 및 식사 등의 경비로 지불하도록 했다. 폼페이 유적지는 패키지여행을 다녀온 사람들도 빠지지 않고 보고 가는 장소라서 사람들이 참 많았다. 이탈리아는 어느 곳을 가더라도 사람의 밀도가 매우 높다. 특히 유명세를 치르는 관광지마다 사람으로 인산인해를 이루니 왜 관광세를 인상하겠다고 하는지 그리고 오버투어리즘에 대한 비판적 입장이 강하게 대두되는지 알 것만 같다.
폼페이는 서기 79년 무렵에 베수비오 화산 폭발로 인한 화산재에 묻혀버린 고대의 소도시다. 로마가 예루살렘을 함락시키고 성전을 헐어버린 시기가 70년 무렵이니 불과 몇 년 차이로 역사적 사건들이 일어난 셈이다. 그렇게 묻혀 있던 도시가 다시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고 빈 공간에 부어 넣은 석고에 의해 생생한 표정으로 살아난 사람의 형상들과 도시의 모습은 바로 어제인 듯싶게 의연히 서 있다. 시장이 있고 신전이 있고 공회당이 있고 사창가도 있고 빵집도 있고 그렇게 사람살이의 모든 모습들을 간직한 채 땅속에 묻혀 있던 도시는 수많은 세월의 흐름 속에 불현듯 솟구쳐 올라 과거의 삶을 현재의 시간적 차원 위에 공간적으로 포개 놓는다. 로마사의 한 장이 부인할 수 없는 질감을 갖고 눈앞에 현존하는 것이다. 그래, 우리의 삶은 결코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삶의 연속적 고리 위에서 현재 우리의 삶이 있는 것이고 동과 서, 과거와 현재가 하나의 모자이크처럼 무언가의 형상을 만들고 있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한다. 오래된 것들에 대한 경외심이 마음에서 안개처럼 피어오른다.
폼페이를 쭉 돌아보고 나와서 점심을 먹는다. 나름대로 세 가지 순서로 나오는 일종의 정식인데 나폴리 식 피자와 스파게티 그리고 오징어 튀김인가 뭐 그렇게 나와서 조금씩 남길 정도로 양이 많은 편이었다. 그렇다고 아주 맛있게 먹은 것 같지는 않지만 이것도 다 경험이라 생각한다. 폼페이를 떠나 소렌토를 멀리 바라보면서 전망대에 들렀다가 아말피 해안선을 차로 지나면서 바라보고 포지타노에서 미니버스에 올라 골목의 비좁은 도로를 이동해서 하차 후 포지타노 거리와 해안에서 2시간 정도 이리저리 구경도 하고 사진도 찍고 차도 한잔하면서 시간을 보내다가 해안에서 페리선을 타고 아말피해안을 구경하면서 살레르노까지 이동했다. 살레르노에서 하선 후 다시 버스를 타고 산 세베리노라는 곳에 있는 파크 호텔에 투숙했다. 숙소는 4성급으로 깨끗하고 저녁 식사도 깔끔하게 잘 나왔다. 이 숙소에서 준 슬리퍼를 갖고 왔어야 했다는 아쉬움이 있다. 호텔마다 슬리퍼가 없는 곳이 많았기 때문인데 해외에 갈 때 다이소 슬리퍼라도 꼭 챙겨갈 필요가 있다는 생활의 지혜를 깨닫게 된 여행이기도 하다.
포지타노 해변에서 아이스크림과 차를 시키려고 짧은 영어로 이야기를 하는데 현지인이 그래서 뭐? 하는 표정으로 소통이 되지 않아 좌절감을 느끼면서 나름 석사 학위를 가진 인간인데 이렇게 영어 회화에서 좌절과 무시를 당하는 느낌이 나를 나락으로 내리꽂으면서 겸허하게 한다. 진작에 선생님 말씀 잘 듣고 영어 공부 열심히 해 둘걸. 그러나 이미 버스는 지났으니 손짓 발짓으로 체면 무시하고 살아남아야겠다는 일념을 다지고 또 다진다. 특히 우리 둘만의 여정에 돌입했을 때를 생각하면 점점 오금이 저려온다. 아, 어쩌나! 무사히 우리 아이들 곁으로 돌아가야 하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