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5년 11월 11일-12일(마드리드, 홍콩, 인천공항 귀국)
아침에 일어나서 조식을 서둘러 먹으니 8시 15분 정도가 되었다. 마드리드 바라하스 공항 4S 터미널에서 홍콩 경유 인천행 캐세이 항공을 이용해야 하기 때문에 마음이 조급해진다. 호텔 앞에 택시가 있어서 타고 비용을 물으니 33유로 고정요금이란다. 동전 남은 것 9.2유로를 제하고 카드로 24유로를 내기로 했다. 집사람은 겨우 0.2유로를 팁으로 주면서 생색을 낸다고 뭐라고 했지만 고정 요금이 싸지 않다는 것을 알기에 굳이 팁을 주지 않아도 될 것이고 0.2유로는 남는 동전을 소모하는 측면에서임을 설명했다. 이번 여행에서 택시비 지출한 것만 해도 적지 않은 규모가 될 것이다. 내가 만약 젊은 나이에 여행을 나온 입장이라면 택시 말고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등 최대한 경비를 아끼려고 했겠지만 마나님을 모시고 31년 만에 구혼여행의 명목으로 나온 것이기도 해서 최대한 편안하게 모시려고 하는 그 마음을 아내는 알까 모를까. 언젠가 내가 먼저 세상을 떠나면 알아줄 날도 오겠지. 아내를 무사히 아이들 곁으로 돌아가게 하기 위해서 이 마당쇠가 얼마나 여행 기간 내내 노심초사했는지 아마 잘 모르겠지만 그래서 지청구도 들었지만 아마 주님은 아실 것이다.
공항에 도착해서 수하물을 부치고 검색을 통과해서 탑승구역에 무사히 들어가서 의자에 앉으니 지난 한 달간의 긴장과 피로가 한꺼번에 몰려오는 것만 같은 기분이다. 아마 집에 돌아가서도 11월 말까지는 후유증을 앓아야 할 것만 같다. 아내는 13시간이 넘는 홍콩까지의 여정과 3시간 정도의 인천까지의 여정을 어떻게 견딜지 벌써 걱정인 모양인데 막상 탑승해서 보니 캐세이는 비행기도 깨끗하고 기내 서비스가 훨씬 좋다. 영화도 제공되고 비행기의 진행 상황도 모니터를 통해서 확인할 수 있다. 영화 세 편을 내리 보고 중간에 묵주기도를 하고 하다보니 지루하지 않게 홍콩 공항에 날이 바뀐 12일 아침 6시 조금 넘겨 도착했다. 우리는 다른 비행기로 일단 내려서 환승을 해야 하기 때문에 여유 시간이 1시간 조금 된다. 비행기에서 내리니 항공사 직원 한 분이 우리 두 사람의 환승객을 안내하기 위해 대기하고 있었다. 고맙고 반가운 마음이 앞선다. 그 직원을 따라 터미널을 이리저리 헤집고 이어지는 항공편 탑승장으로 가서 보니 혼자였다면 처음 온 홍콩 공항에서 제대로 1시간 안에 갈아타기가 쉽지 않았을 거라는 판단이 나온다. 짐은 항공사에서 연결해 주는 것으로 되어 있어서 신경 쓸 필요가 없었다. 캐세이 항공은 홍콩을 기반으로 한 국적 항공사라고 알고 있는데 이번 비행을 통해서 좋은 인상을 받았다. 오면서 두 번에 걸쳐 먹었던 기내식도 딤섬을 포함해서 아주 입맛에 맞았다.
바로 인천행 비행기를 타고 이륙해서 세 시간 정도 비행을 하는데 식사를 한 번 제공한다. 만족스럽다. 인천에 도착한 시각이 12시 50분 정도가 되었고 짐을 찾으려고 보니 우리를 방송으로 항공사 화물팀에서 호출한다. 가서 들어보니 짐을 같이 싣지 못했고 다음에 도착하는 항공기 편으로 온다는 것이다. 도착 시간을 보니 한 시간 조금 뒤에 도착하는 것으로 나와서 기다렸다가 찾아서 깔끔하게 마무리를 하는 편이 좋을 것 같아서 그렇게 하기로 했다. 짐을 찾고 나오니 항공사에서 짐을 찾아갔는지 확인하는 전화가 와서 잘 찾았다고 했다. 공항 리무진을 타고 집 근처 정류장에 내려서 다시 택시를 타고 집에 도착하니 얼추 4시가 넘었다. 이렇게 한 달여 만에 우리는 아이들이 있는 집으로 돌아왔다. 무사히 이 여정을 이끌어주시고 무탈하게 돌아올 수 있도록 보살펴 주신 주님께 그저 감사할 따름이다.
집에 돌아오니 책상 위에 올려진 것은 한 달 치의 신문과 평화신문 등이다. 한 달의 공백을 메우고 일상으로 다시 돌아가려면 적어도 열흘은 걸리리라는 예감이 든다. 그리고 처형 수녀님도 지난 10월 30일에 귀국해서 건강검진도 받고 사람들도 만나고 수녀원에서의 일정도 진행하면서 지내고 있다는 소식을 받았다. 11월 25일쯤에 다시 로마 임지로 떠난다고 하니 그전에 얼굴을 보고 감사의 마음을 전하리라 마음먹는다. 이번 주말에는 어머니와 형제들을 만나서 인사를 드려야 한다. 이제 다시 일상이다. 여행이란 돌아오기 위해서 떠나는 것이다. 돌아와서 더 단단하게 대지에 발 딛고 살기 위해서 말이다. 새는 날아오르고 다시 내려앉는다. 집으로 돌아오지 못하는 여행자는 여행자가 아니라 난민이며 방랑자일 뿐이다. 돌아올 곳이 있어서 감사하다. 돌아와서 함께 살아갈 가족과 이웃과 동료와 동포들이 있어서 나는 기쁘다. 비록 갈등하고 화해하고 티격태격하더라도 우리가 같은 공동체에 속해 있다는 것이 나를 기쁘게 한다. 열심히 살아가야 하리라. 지상에서 주어진 날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