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프리의 저주 #2

조프리 호수 주립공원 캠핑장 (2021년 7월 21일)

by 그래도 캠핑

그리고, 또 몇 해가 지나서, 2021년에는 아내의 예언대로 조프리에 백패킹을 가게 되었다.


코로나로 인해서 거의 일 년간 등산로가 닫혀 있었는데, 마침 2021년 7월에 예약제로 다시 연다고 하는 소식을 아내가 발견하자마자 곧바로 예약에 성공했다. 마침 나는 그즈음에 2차 백신도 맞았고.. 또 뜨문뜨문 편두통으로 고생하고 있어서 (항상 그래 왔듯이) 별로 의욕이 없었지만, 그리고 최근 리뷰를 읽어보니 딱 질색인 더위와 모기가 미친 듯이 달려든다고 해서 매우 매우 가기 싫었지만, 아내가 혼자서라도 가겠다고 하는 바람에 결국 왕복 운전과 치맥을 얻어먹는 조건으로 동반하였다.


그 이전 다른 백패킹에서 어지간히 고생했던 기억이 있어서, 햇반 대신 생쌀을, 3분 카레 대신 라면을 챙기는 등 최대한 가볍게 가볍게 준비를 했음에도, 배낭은 2킬로의 음용수를 포함해서 15킬로 가까이 나가게 되었다. 뭐.. 그래도 짐은 어떻게든 질 수 있다고 하지만, 저놈의 모기들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 이런저런 잡생각에 빠지다가 전날 잠을 설쳤는데, 그래서인지 출발 당일에는 정말 머리가 깨지는 듯이 아파왔다. 근데 하필 그때, 예전 J 님의 말이 떠오르는 건 또 뭔지..? “약속을 했으면 지켜야지…”


이번에는 어차피 캠핑을 할 거라서 오후쯤 주차장에 도착해도 괜찮았다. 거기에 등산로 진입을 예약제로 바꾸는 덕분에, 주차장을 매우 쾌적한 상태였다. 출발하기 전에 화장실을 먼저 해결하고, 배낭을 단단히 조여 메고, 휴대용 모기향을 켜고, 물을 한 모금 들이키고 나서 출발했다.


아내에게는 적잖이 싫은 표시를 냈지만, 사실 나로서도 지난번 산행의 기억이 전혀 없어서 한번 제대로 가보고 싶기는 했다. 하지만.. 쏟아지는 햇볕과 달려드는 모기… 그리고 모기향의 냄새 때문인지 몰라도 올라가는 내내 머리가 터지듯이 아파서 어쩔 수 없이 계속 인상을 쓰고 이동을 했다. 도대체 이게 무슨 일인 건지.. 고산병인가? 등등.. 그 와중에도 경치 구경보다는 두통의 원인에 대해 생각하느라, 백 퍼센트 즐기지 못했던 건 아쉬운 일이었다.


꽤 무거운 짐을 지고 했던 산행이었지만, 그리고 두통이 계속 괴롭혔지만, 그래도 지난번보다는 훨씬 수월하게 올라가서, 약 3시간 만에 캠핑장에 도착했다. 백컨트리 (Backcountry) 캠프 사이트는, 일반 프런트컨트리 (Frontcountry) 캠프 사이트와는 달리 손바닥만 한 공간을 주변 지형지물을 이용해서 다른 공간과 구별해 둔 것에 불과했는데, 따로 번호가 정해진 것이 아닌 데다가, 당연스럽게 사이트마다 크기도 다르고, 바닥 상태도 달라서 여기저기 돌아다니면서 좀 비교를 한 다음 골라야 했다.


깨질 것 같은 두통 때문에, 자리를 잡고 텐트를 칠 즈음에는 정말 쓰러질 것 같았는데, 하지만 쓰러지더라도 텐트 안에서 쓰러져야 모기떼를 피할 수 있을 것 같아서, 정말이지 마지막 힘을 짜내서 텐트를 쳤다.



조프리 호수 등산로는 그늘보다 뙤약볕 길이 많다 (좌). 캠프 사이트는 이렇게 대충 바위들로 둘러싸서 경계를 만들어놨다 (우).



좀 드러누워 쉬고 난 후에도 두통은 계속되었다. 하지만, 어차피 저녁을 지어먹을 거라면, 그나마 밝을 때 하는 게 나을 것 같아서, 또 주섬주섬 일어나 계곡 근처로 가서 물을 필터로 정수해 담아 오고, 냄비 밥을 하고 라면을 끓였다.


그러고 나서 화장실에 갔는데… 우와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한 단어밖에 생각이 안 났다. “역대급!! (두둥!)”. 지난 일 년간 등산로를 폐쇄했으면서 화장실을 정비를 안 했나 보구나. 게다가 이제 화장지를 비치 안 해두니 더 더러울 수밖에 없네. 그리고 보통 이렇게 더러운 재래식 화장실의 경우, 사람들이 앉을 엄두를 내지 못해서 시트를 발로 밟은 채 쪼그려 앉아서 볼일을 보는 경우도 있다는데, 그럼 또 더러움의 악순환이 벌어지게 된다.


하지만, 이곳 화장실의 최악의 문제점은 청결도에 있지 않았다. 어쩐 일인지, 화장실을 캠프 사이트가 모여 있는 곳에서 멀찌감치 만들어 두었는데 (아니.. 이유는 알 것 같았다. 당연히 캠프 사이트는 호숫가에 만들고 싶었고 화장실은 호숫가에서 멀리 떨어뜨려 놓고 싶었겠지), 텐트에서 화장실을 가기 위해서 수많은 바위 장애물들과 작은 계곡을 지나서야만 갈 수가 있었다. 이렇게 되면 캠프 사이트 근처나 호수 근처 어느 바위 뒤에서 몰래 볼일을 보는 사람들이 당연히 많아지지 않겠나? 그 상황을 보고 아내는 단호하게 말했다. “난 이제부터 물 안 마시고 참을 거야.” 나 역시 단호하게 말했다. “나도.”


하지만.. 그 다짐은 이루어지지 않았는데, 두통으로 머리를 감싸 안은 채 자고 있던 새벽 2시 반쯤, 갑자기 밖이 소란스러워졌다. 야간 산행을 온 일군의 청년들이 텐트를 치느라 떠드는 모양이다. 잠이 깨고 나니 급격하게 요의가 몰려왔다.


결국, 겸사겸사 화장실에 가기로 마음을 먹고 나섰는데, 정말이지 어디가 어딘지 알 수가 없었다. 그야말로 칠흑같이 어두운 밤이다. 그래도 플래시를 휘두르다 보니까 음식물 보관하는 곳도 눈에 띄어서, 대충 바위를 엉금엉금 기어오르면서 화장실에 도착했다. 단언컨대, 이 밤중에 우정 화장실을 찾아 산 넘고 물 건너와서 볼 일을 보는 사람들은 우리밖에 없었을 거야. 하지만, 오는 길에 봤던 호수에 비친 별들은 너무 근사했다.


힘든 밤 화장실 나들이였지만, 그래도 멋진 호수의 야경 (좌), 야생동물 때문에 음식 냄새나는 짐들은 높이 매달아 둬애 한다 (우).




다음 날 아침에도 두통은 사라지지 않았다. 결국 아내를 설득해서 아침을 안 먹은 채 일찍 철수하기로 했다. 밤새 매달아 둔 음식들을 챙긴 후 배낭을 쌌는데, 딸랑 한 끼 먹은 것밖에 없지만, 왠지 짐도 가벼워진 느낌이고 내리막길이기도 해서, 내려올 때는 한 시간 반 좀 넘게 걸린 것 같다.


오는 길에 팸버튼 입구에 있는 맥도널드에 들러서 간단히 커피도 마시고, 그 옆 편의점에서 두통약도 사 먹고, 화장실도 사용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두통으로 내내 고생했지만, 지난 몇 차례 백패킹을 할 때마다, 오는 길에 아내가 넘어져 다쳤던 걸 생각하면, 이번에는 아무도 안 다치고 잘 갔다 와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생각하니 집에 돌아와 먹는 치맥도 근사한 훈장처럼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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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튿날부터 일주일 내내, 나는 원인 모를 고열에 시달려야 했다. 결국 응급실 신세를 지게 되었는데 40 이하를 정상으로 보는 ALT 간수치가 2000이 찍혀 나왔다. 오른쪽 갈비뼈 아래를 살짝 건드리기만 해도 악소리 나는 통증이 밀려왔다. 급성 간염이나, 혹은 백신 부작용으로 추정만 될 뿐… 결국 백패킹 한번 갔다 온 덕택에 일주일간 집에서 쉬어야 했다. 이쯤 되면 나에게 있어서 조프리 호수는 무슨 저주가 걸려있다고 생각할 수밖에..











조프리 호수 주립공원 (Joffre Lakes Provincial Park https://bcparks.ca/parks/joffre-lakes/) : 광역 밴쿠버 사람들이 가장 사랑하는 등산로이자, 인스타에서 가장 셀카 배경으로 많이 찍는 호수. 일명, 밴쿠버의 록키. 팸버튼 시내로부터 마운트 커리 (Mt. Currie)를 지나 릴루엣 (Lillooet) 방향으로 30분 정도 가면 인기만발의 핫플레이스임을 증명하듯이 길 양쪽으로 주차장이 보인다 (2017년 이후 주차장을 확장했다). 협소한 등산로 탓에 실질적으로 거리 두기가 불가능해서, 코로나가 터진 2020년에는 잠시 입장을 금지했다가 2021년 7월에 예약제로 전환해서 재개장하였다.


보통 주차장에서 첫 번째 호수 (Lower Lake)까지는 5분 정도, 인생샷 후보지로 가장 각광을 받는 두 번째 호수 (Middle Lake)까지는 2시간, 그리고 가장 널찍한 세 번째 호수 (Upper Lake)까지 2시간 30분 정도 걸리는데, 캠핑장까지 가려면 여기서 약 한 시간 안 되는 산행을 또 해야 한다. 하지만, 캠핑장에서는 조프리 정상에서부터 이어지는 ‘마티어 빙하 (Matier Glacier)’를 바로 근처에서 볼 수가 있어서 그것도 나름 근사한 경험이 될 수 있다 (전문 장비 없이 빙하에 오르거나 하는 짓은 하지 맙시다). 특히 마티어 빙하는 해나다 점점 작아진다고 하니, 없어지기 전에 한번 보러 가는 것도 괜찮을 듯하다.


만일 캠핑을 계획 중이라면 강한 햇볕, 미친 모기떼들, 삐끗 미끄러지면 최소 무릎이나 팔꿈치를 부러뜨릴 바윗길, 그리고 영하에 가까운 밤 추위들을 다 대비해야 한다. 2020년부터 BC의 모든 백컨트리 캠핑장에는 화장지를 비치 안 하고 있기 때문에, 자기가 쓸 화장지 역시 준비해야 한다. 그리고 (화장실 상태가 너무 열악해서, 화장실이 아닌 장소에 볼일을 보는 사람들이 있을 확률이 매우 높으니) 식수 역시, 정수기와 함께 클로린 정수 태블릿도 준비하자.




가까운 시내 : 팸버튼

광역 밴쿠버로부터 접근성 : 2/5

이동통신 / 데이터 : 안됨

프라이버시 : 1/5

수세식 화장실 / 샤워실 : 없음

시설 관리 / 순찰 : 1/5

RV 정화조 : 없음

RV 급수 시설 : 없음

캠핑 사이트 크기 : 1/5

나무 우거짐 : 1/5

호숫가 / 강변 / 해변 : 있음

햇볕 : 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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