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의 이유
여전히 비행은 싫다
괜히 주눅 들게 만드는 출국장 보안 검색 단계부터 싫다. 범죄자 취급받는 것도 싫지만 이래라저래라 속사포처럼 빠른 말투로 강요받는 것도 싫다. 하루에도 수백 번 반복하는 본인들에게나 무척이나 당연한 절차들이겠지, 일 년에 한 번이나 해외에 나가는 사람에겐 여간해서 익숙해지지 않는다. 그런 것에 일일이 신경을 쓰는 것도, 잔소리 듣는 것도, 익숙하지 않은 사람을 향해 어이없어하는 표정을 하는 것도 싫다. 워낙에도 여행을 좋아하는 성격은 아니지만, 그중에서도 비행기를 타고 해외여행을 가는 게 이 때문에 가장 싫은 것이다. 좁아터진 여객기 안에서 몸을 웅크리고 가는 것도, 앞사람 뒷사람 신경 쓰면서, 예의를 갖춰가며 의자를 접을지 펼지, 이 팔걸이가 내 팔걸이인지 옆 사람 건지 고민하는 것도 싫다.
그렇다고 운전을 좋아하는가.. 하면, 그것도 사실 좋아하진 않는다. 운전 역시 지켜야 할 규칙이 많고, 규칙을 넘어서 그냥 서로를 배려해야 하는 경우도 많으니까. 주변을 보면 사람들의 운전에 대한 반응은 몇 가지로 나뉘는데, 일단 다른 운전자나, 보행자, 자전거 등에 대한 규칙이나 배려 같은 건 신경을 쓰지 않고 그냥 운전만을 즐기는 사람과, 규칙이나 배려에 스트레스를 받으면서도 운전에 대한 즐거움이 더 큰 사람, 그리고 그런 규칙과 배려 때문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지만 어쩔 수 없이 필요에 의해서 억지로 운전을 하는 사람이 있다. 나는 전형적인 세 번째고, 비행기를 타고 가는 여행에 대한 입장도 동일하다.
반면에 아내의 경우는 다르다.
아내는 공항에 오면 생기가 도는 사람이다. 가끔 저녁 하늘을 가로질러 기다란 구름 자국을 남기는 비행기를 보면 가슴이 뛰는 사람이다. 2회 차 삶을 살게 된다면 <브러시업 라이프>에서처럼 파일럿이 되어 세계를 날아다니고 싶어 한다. 만일 누군가가 나에게 이런 사람이 세상에 존재한다고 언질을 줬다면 나는 대번에 뻥까지 말라고 일침을 놨을 테지만, 바로 지금 내 옆에, 내 팔걸이를 차지한 채 책을 읽고 있다. 이런 사람에게는 공항에서 지켜야 할 에티켓도, 출국장에서 몸수색을 당하는 일도, 검역에 필요한 절차도, 유원지 놀이기구를 타기 위해 줄을 서는 정도의 수고일 뿐이다. 하긴.. 나 역시 예전에는 좋아하는 영화를 보기 위해 혼자 시외버스를 타고 서울로 향하기도 했었다. 자율학습을 빼먹으면서.
휴대용 배터리로 인한 화재사건이 종종 발생하자 지켜야 할 규칙이 더 늘어났다. 좌석 공간이 커지거나 하는 일은 없지만, 승객이 알아서 관리해야 할 일은 계속 많아진다. 이렇듯 승선을 마친 후에도 몸과 마음이 불편한 건 그치질 않는다. 이코노미 좌석 증후군이라고 했던가? 오랜 시간 좁은 좌석에 앉아서 가다 보면 다리가 붓는다. 물론 허리도 아프고 소음 때문에 두통도 그치질 않는다. 아무리 좋은 베개를 쓰더라도 목이 아픈 건 어쩔 수가 없다. 엔진소리가 시끄러워서 밥을 먹어도 코로 넘어가는지 입으로 넘어가는지 알 수가 없다. 먹고 나서도 움직이는 일이 없으니 계속 더부룩하고 배에 가스만 차곤 하니 기내식이 맛있던 적도 없다. 아. 딱 한 번 있었다. 전일본항공 (ANA)을 타고 일본을 거쳐 한국으로 가던 때, ANA의 기내식은 먹을만했었던 것 같다. 차가운 감자 사라다와 새콤한 오이절임이 입맛을 돌려둔 적이 있었다. 그래서였나. 이번 여행에 ANA를 타고 간다는 아내의 말에 그나마 다행이라고 뇌까렸다.
일본에 가는 건 이번이 세 번째.
도쿄에서 유학을 했던 누이를 만나러 간 게 처음이었는데 마침 2001년 9월 11일이었다. 나리타에 도착했을 때, 중무장한 군인들과 장갑차들이 배치되어 있는 걸 보고 깜짝 놀랐었다. 그러고 보니 한국 공항에서도 뉴욕행 승객들에게 지속적으로 안내방송을 했었던 게 기억이 났다. 그때, 삼엄했던 공항분위기에 더불어 도쿄는 태풍의 영향권에 있었고, 몇몇 열차 운행이 중단되어서 나리타에서부터 누이의 자취방까지 택시를 탔었는데, 거의 한국에서 일본까지의 항공요금만큼 나왔다고 들었다.
황금기가 지난 일본의 첫인상은 무척 평화롭다는 것이었다. 바로 60년 전 적국으로 맞서 싸우다가 일본에 패배를 안겨준 미국은 60년이 지나도 여전히 적국으로부터 습격을 당하고 있었지만, 그 후 국방을 완전히 포기한 채 미국의 보호 아래에서 경제만을 키웠던 일본은 미친듯한 평화와 번영을 이루어 왔다. 비록 플라자 합의 이후 거품경제가 무너졌다고 하더라도 일본 사회는 몇 십 년간 경제 번영의 수혜로 여전히 유유자적하게 살고 있었다. 시부야, 신주쿠, 도쿄 디즈니 씨 등 관광도 하곤 했지만 여전히 가장 큰 인상으로 남았던 건, 한 낮 전철에서 자기 가방만큼 큰 거울을 꺼내 눈화장을 고치던 여학생, 전철역 플랫폼 쓰레기 통에 쌓여 있던 소년점프 잡지, 그리고 중고책 전문 서점 Book Off에서 만난 거의 새것과 다름없었던 중고책들이었다. 이렇게 많은 책들을 읽고, 혹은 적어도 출판을 하는 나라라니.
두 번째로 갔을 때는 한국 가족 방문 중 경유지로 잠깐 했던 여행이었다. ANA를 타고 갔었고 도쿄 시내에서 반나절 조금 넘게 경유했다. 아마도 2015년이었나? 예전부터 가보고 싶었던 키치조지 동네와 스튜디오 지브리 박물관에 갔었다. 그전에 갔었던 도쿄 디즈니 씨나 호주에서 봤던 20세기 폭스 스튜디오와는 다른, 엔터테인먼트의 얼굴기름을 쫙 뺀 채, 그야말로 지브리 애니메이션 팬덤을 위한 전시시설로 가득해 있었다.
그리고, 그 짧은 시간 동안에도, 처음 갔을 때보다 영어로 의사소통하기 훨씬 쉬워졌다는 사실에 놀랐다. 어쩌면, 그 당시 편의점이나 식당에서 일하는 젊은이들은 이미 일본이 최고 선진국이었던 때를 한 번도 경험하지 못했던 사람들이어서 그랬을지도 모르겠다. 한 때 전 세계에서 일본어를 배우던 시절이 급작스럽게 붕괴되면서, 2001년만 해도 그런 변화에 적응을 하지 못하던 사람들이 업무현장에 있었다면 그로부터 10년 후에는 누구나 당연히 영어를 공부해야 하는 상황이 되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 이후로도, 캠핑에 지친 아내가 종종 해외여행을 제안했을 때에도, 내가 상상할 수 있는 해외여행은 여전히 한국 아니면 일본이었다. 미국은 뭐, 캐나다와 이란성 쌍둥이니까, 남부까지 가서 사막을 보지 않는 한 굳이 갈 마음이 생기질 않았었고 (뉴욕에는 한번 가봐야겠다는 마음이 있었는데, 결국 2024년 2월에 가게 되었다. 이 이야기는 좀 나중에), 가끔 한 번씩 마음을 먹는 일이 있더라도 그때마다 미국 사회 분위기가 바뀌어 있었다 - 아들 부시 아니면, 트럼프 아니면 또 트럼프였다. 멕시코는… 음… 리조트가 아니면 가 볼 엄두가 나질 않았고, 한 번 갔었던 멕시코 리조트는 몸도 마음도 편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유럽엘 가자니, 항공요금도 요금이거니와 밴쿠버에서 날아가는 비행시간이 아시아 국가로 가는 것과는 차원이 달랐다. 한국이나 일본은 휴가 중 하루만 날리면 된다면, 유럽은 가고 오고 각각 이틀은 날려야 하는 상황이 많았다.
결국 한국 아니면, 일본, 그것도 아니면 아직 가보지 못한 대만이 남는데, 아니 좀 더 무리해서 작정하고 미식여행을 한다면 태국이나 베트남도 들어가겠지만,
내가 더위를 참을 수가 없었다.
나는 어디든 상관없어. 여행도 비행도 안 좋아하는 거 잘 알잖아. 어딜 가든 마찬가지야. 당신 가고 싶은 데로 정해. 난 딱히 의견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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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운 데 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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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리하여, 결혼 25주년 여행지는 홋카이도로 결정되었다는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