홋카이도여야만 하지는 않았지만

남편과 함께 쓰는 홋카이도 여행 이야기 1

이민 후 가족들에게 소식을 전하려는 목적으로 시작해 15년 정도 열심히 기록하던 블로그를 그만둔 지 10년 정도 지났다. 블로그의 주요 주인공이었던 우리집 강아지와 주요 독자였던 엄마가 같은 해에 세상을 떠난 것이 큰 이유가 되었을까, 잘 모르겠다.

그러다가 남편이 브런치를 시작했다. 중년의 위기를 벗어나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며 내게도 좋아하는 작가들을 소개하기도 하고 글을 써볼 것을 권했다. 하지만 짧은 블로그 글도 몇 번씩 다시 고치는 나에게는 뭔가 다시 쓴다는 것 자체가 부담이었다. 많이 읽는 사람이 쓰기도 잘 쓰는데 예전처럼 책을 많이 읽는 것도 아니고 나이가 들면서 뭔가를 소리내어 말하는 것이 조금 더 조심스러워졌기도 했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꼰대력이 느는 것 같은데 굳이 그걸 글로 남겨 더 소문내고 싶지 않았다. (근데 술 마시면 왜 ㅠㅠ)

아무튼, 그러던 중에, 남편은 글도 안 쓰는 나에게 본인이 산 키보드를 권하기도 하고 (남편은 장비 사는 것을 좋아한다) 최근 여행을 마치고 여행기를 쓰면서 나에게도 함께 글을 써보면 어떨지 권했다. 이런 제안을 받는 건 기분 좋은 일이다. 내 글이 읽기 나쁘지는 않다는 의미일 테니. (기분 좋아지는 기준이 낮은 편...)

그래서 일단 (남편 피셜) 꽤 좋다는 그 키보드로 글을 시작해보고 있다.




가족들이 있는 한국에 몇 년에 한번씩 왕래하고, 사는 곳 주변에서 캠핑을 하며 놀러다니기 바쁘다 보니 그 외의 여행은 별로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오래전 직장생활 중 출장은 다녔지만, 완전 말단이었던 터라 일요일 밤 도착-근무-금요일 밤 출발 정도의 ‘갔지만 가지 않았습니다’ 같은 경험이었고 남편과 결혼 직후 다닌 두어달 여의 해외 여행은 서로에 대해 적응중인데다 매사에 서툴러서 불안했던 기억이 많았다.


그렇지만 하늘에 다니는 비행기를 보면 언제나 살짝 가슴이 뛰었다.




변화가 시작된 것은 지난 해 초 뉴욕에 다녀오면서였다. 살면서 뉴욕이라는 도시에 한번은 가봐야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지만, 물가도 비싸고 특별히 랜드마크에 꼭 가봐야 한다는 생각이 없어서 그뿐이었다. 그런데 남편이 정해진 기한까지 남은 휴가를 소진해야 한다는 걸 알게 되었고, 여행지를 둘러보다 뉴욕행 비행기가 아주 저렴하게 나온 것을 발견했다.

그러다보니 어느새 뉴욕 숙소를 검색하고 있었고, 기대 없이 갔던 뉴욕 여행은 정말 좋았다. 도서관과 서점들을 다니고, 미술관에서 시간을 보내고, 줄리어드 음대에 (이미 천재들인) 연주가들의 수업 일부인 무료 공연을 보러가기도 했다. 물론 보통의 2월 날씨치고는 이례적으로 맑고 청명했던 날씨가 한몫했겠지만, 낯선 도시, 낯선 거리를 약간은 불안한 마음으로 걷던 그 시간들이 주는 따끔따끔한 자극이 좋았다.




직장인 생활 30년차, 언젠가부터 언뜻 행복하다 느끼는 순간에 ‘내가 매일 눈 비비고 일어나 일 하는 이유가 이 순간 때문이었구나’ 하는 (심하게 건전한?) 생각이 든다.


뉴욕 여행에서 느꼈던 그 따끔따끔함은 중독성이 있었다. 동생과 의기투합하여 아빠, 동생, 조카와 함께하는 일본 여행을 계획했고, 그 자극을 다시 느낄 수 있었다. 오랜만에 가진 가족들과의 좋았던 시간은 덤. (물론 가족 여행은 적절한 거리두기를 포함하여 계획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여행의 일부는 혼자였는데, 그 시간도 오롯이 즐거웠다.

이전에 잠깐씩 일본을 방문한 적은 있었지만, 내가 직접 계획해서 간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자신감이 생겨 남편에게도 장거리 (= 남편이 싫어하는 비행이 포함된) 여행을 제안했고, 동의를 받아냈다. 계획이 취미인 나는 플랜 A에서 D까지 마련해서 브리핑을 한 후 남편에게 선택권을 주었다.


이것도 저것도 다 좋다던 남편이 마지막에 던진 한 마디는 “더운데 빼고”. 아 놔, 그럼 애초에 그 말을 먼저 했어야지… 진짜로 이것도 저것도 좋았던 나는 홋카이도 여행 계획을 시작했다. 그리고 그 준비기간은 일 년간의 직장생활을 버티게 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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