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옹은 과학이다
교사의 가장 큰 덕목은 무엇인가 질문한다면, '인내심'과 '애정'이라고 대답한다. 참을성이라고는 1도 없는 내가 참고 참고 또 참아야 하는 직업을 업으로 삼아 많은 시간이 흘렀다. 아무리 나를 지치게 해도 그들을 사랑으로 보듬어야 하는 것이 때로는 마음에서 절로 나와 쉽고, 때로는 힘들었다.
"지금 당신은 교사로서 자긍심을 지니고 있는가?"라고 질문한다면, 대답하기 모호하다. 한때, 교사로서 자긍심을 지닌 때도 있었다. 잘한 일만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열정이라는 이름으로 나의 급한 성미를 참지 못해 화를 냈고, 권위를 내세워 예의 없는 아이들을 혼냈다. 상황에 따라 내가 먼저 다가가는 경우도 있었고 학생이 와서 대화를 하게 되는 경우도 있었다. 뒤늦은 반성과 후회 끝에 대화를 해서 풀어지면, 학생과 나의 관계는 곤고해지고 애틋함이 생겨났다. 학생의 진보하는 모습을 보면서 성취감을 느꼈고, 수업 중 초롱초롱한 눈망울들은 나의 삶을 지탱시겨주었으며, 가슴속에서는 뭉클하게 따뜻함이 넘쳤다.
지난해, 고 3 담임을 맡아 자소서와 면접을 함께 준비했다. 반 30명의 학생 중 27명 수시 합격, 1명 정시 합격 후 현재 26명이 대학에 진학했다. A는 담임 면담과는 별도로 가족의 의지대로 수시와 정시에서 모두 자신의 성적보다 상향으로 썼기에 불합격하여 공부 중이다. B는 처음부터 비진학이었고, C는 합격을 했지만 다른 꿈을 위해 대학 진학을 하지 않기로 했다. D는 정시에 합격은 했지만 자신의 꿈과 관련된 학과에 재 도전하기 위해 오늘도 공부 중이다. 이제 곧 수능이 다가오고 있어, 재수하고 있는 학생이 찾아왔다. 웃는 모습을 보니 안심이 되었다. 대한민국의 수능생들이여, 자신의 기량대로 시험 잘 치르기를......
학생들의 수험생 시절, 피폐해진 그들의 마음을 추스르기 위해 교실에는 구피를, 화단에는 방울토마토, 고추 키우기 등을 했다. 진학을 위해 학생들의 다양한 경험을 뒷받침하던 동료 선생님으로부터 구피를 얻어 어항에 키우기 시작했다. 학급의 문을 열면 고물고물 학생들이 붙어서 그 아이들을 관찰하고 열 마리도 넘는 구피들에게 각각 이름을 지어주며 먹이를 주고 돌보는 모습을 지켜봤다.
고 3이 그런 것을 할 시간이 있을까 여길 것이다. 사실 많은 부분에서 교사의 도움 없이는 불가능하다. 화단의 경우 특히 교사가 거의 작업을 해야 했다. 그러다가 다른 반 아이들도 자기 교실 앞 화단에 수박 씨앗도 심고, 오이 모종도 심었다. 남향이라 햇볕이 따사롭게 제때 내리쬐었다. 조그만 모종의 키가 커져서 2미터가 넘을 지경이 되었다. 어느 월요일에 출근을 하니, 오이 지주대를 나무로 완벽하게 해 놓은 것이 보였다. 어떤 학생의 아버님께서 일요일에 오셔서 해 주셨다. 거름을 잘 주어 높게 자라 주렁주렁 열리는 아기 토마토들과 오이를 아침마다 따 먹고, 수박이 커다래지는 것을 보면서 스트레스로 쌓인 긴장이 풀리고, 나와 학생들의 얼굴이 맑아지곤 했다.
나의 평소 생각은 '인생이 힘든 시기에 내 정신을 붙들어 매 놓을 쓸데없는 무엇인가'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소위 '작은 힐링의 시간'을 갖는 것이다. 게임을 하는 것이 힐링이라고 말하는 아이들도 있다. 힐링의 시간은 하루의 시간을 쪼개어 지나치게 소요되면 힐링의 차원을 너머 집착의 시간이 된다. 해야 할 일이 있는 경우, 자신이 하고 싶은 일만을 지나치게 한다면 스트레스의 시간이 된다. 해야 할 다른 일들이 나를 압박해 올 것이기 때문이다.
생활의 균형이 필요하다. 공부가 전부인 것 같지만 제일 힘들고 바쁜 시기에도 '작은 힐링'의 시간이 있어서 버틴 것 같다. 그래서 '멍 때리기' 역시 아주 좋은 힐링이라고 여긴다. 어떤 것이든 다른 사람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 범위에서 나만의 '작은 힐링'법을 꼭 마련하기를 권한다. 취업을 준비하는 나의 딸에게도 역시 '작은 힐링'을 마련하고 답답함과 우울을 이겨내라고 말한다. 따라서 내가 담임을 하면, 학생들에게 가능한 범위에서 지원을 해 주려고 노력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정신 건강'이기 때문이다. 알 수 없는 미래를 위해 오늘을 사는 내가 아니라, 오늘 하루를 어떻게 건강하고 진지하게 보낼 것인가 생각한다.
'포옹은 과학이다 HUGGING IS SCIENCE'라는 문장이 생각난다. 한 아이에게 집중할 수 없는 수업 구조 속에서도 한 아이까지 보듬어 줘야 한다. 경험에 비춘 교훈이 있다. " 내가 준 것들은 잊어야 한다. 내가 실수하고 잘못한 것들은 알면 빠른 시간 내에 소통으로 해결해야 한다. " 이때, 다행히도 같은 젠더이자 엄마가 된 나는 "악수하자", 또는 "자 이제 선생님이랑 허깅할까?라고 말한다. 싫다는 경우는 당연히 더 이상 가까이할 수 없지만, 대부분 쭈뼛거리며 다가온다. 그런데 정말 수업시간에 흐름을 끊어 수업을 계속 방해하고, 거울을 놓고 화장만 하고, 시간 내내 자는 아이들을 웃는 얼굴로만 대해야 할까. 항상 이것이 딜레마였다. 내가 가장 안타까워하는 유형이 자신의 꿈이 없는 아이다.
지인의 브런치에 '아이의 양육은 온 사회가 함께 해야 한다'는 제목이 끌렸는데, 나 역시 늘 해 온 말이다. 교육자로 살아왔기 때문이다. 자녀양육도 교육이고 나의 특별한 클라이언트들인 학생과의 교육 현장에 있기에 더욱 그런 생각이 든다. 이후로 매거진에 고민과 해결책을 함께 연재하기로 한다.
요즘에는 마스크 때문에 늘 아이들에게 "제발 마스크 잘 쓰자"를 여러 번 외치고 수업을 해야 한다. 수업 도중에도 무엇을 먹는다고 마스크를 벗고 먹고 있는 아이들이 있기도 하고, 종일 마스크 쓰고 있으니 답답하기도 한 것 같다. 교사들은 마스크를 쓰고 25명 이상 되는 교실에서 목소리를 높여 수업하다 보면 숨이 콱 막혀 질식할 것만 같다.
아직도 나는 정말 교사가 맞는가 보다. 나를 부르며 멀리서 달려와 허리를 끌어안으며 "쌤~, 00 쌤~!" 이라고 내 이름을 부르며 애교 있게 말하는 아이, 수업 중 최선을 다해 듣고 대답하는 아이, 때로는 진학 상담을 진지하게 하는 아이들을 보면, 힘이 난다.
'인권의 우산 밖에 있는 아이는 없습니다.'라는 현판이 눈에 들어온다.
'교권의 우산 밖에 있는 교사는 몇일까.' 자문한다. 교권이나 학생의 인권이나 같은 말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왜 거기에 '권'자를 붙이면서 나누게 되는지 모르겠다. 우리는 모두 인권을 지닌 동등한 인간인데 말이다. 이미 사라진 스승과 제자라는 단어가 다시 떠 올려진다.
오늘은 또 어떤 아이를, 아니 어떤 특별한 학생 '고객님'을 만나게 될까.
에세이를 쓸수록 자신의 직업을 밝힐 수밖에 없음에 조심스럽게 저의 직업을 밝혀봅니다. 우리 사회에서 교사는 타깃이 되기 십상이기에, 너무나 망설였고 떨려옵니다. 저의 글에 질책은 하지 않으셨으면 바라며, 교육에 관한 참신한 아이디어는 전폭적으로 환영합니다. 저는 이제 얼마 남지 않은 교사 생활을 잘 마무리하고자 하는 심정으로 하루하루 나의 특별한 클라이언트 학생들을 대하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제 글을 읽어주시는 모든 분의 마음에 교육에 대한 불신보다는 따뜻함이 남기를 간절히 바라는 크리에이터 교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