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제자가 결혼하던 날
나의 병아리 시절을 생각나게 하는 아이가 있다. 졸업한 후 오랜 시간이 지난 어느 날, 결혼한다고 청첩장을 보내왔다. 그렇게 다시 시작된 인연으로 오늘까지 서로 카톡을 주고받으며 지낸다.
내가 교사가 되고 첫 해에 만난 아이다. 내가 노란 병아리 같다고 별명을 붙이고, "노란 병아리 선생님"을 부르며 나의 옆에 붙어서 이야기하는 것을 좋아했다. 그때 나는 정말이지 아무것도 모르는 햇병아리였다. 아이들에게 다정하게 다가가고 1학년 열반 전체 학생들의 이름을 거의 외울 정도였다. 한 반에 50명이 넘는 숫자였다. 첫 해였기에 모든 것이 새롭고, 아이 한 명을 더 만나면 그만큼 마음이 설레었다. 실수 투성이 선생님이었지만 열정이 있었다.
'이런 햇병아리 같으니라고!'라고 하면 같은 병아리인데 불쾌하게 들린다. 주로 꼰대 선배가 나이 어린 후배에게 지적질을 할 때 쓰는 용어로 느껴지기 때문이다. 같은 단어 다른 느낌으로 "예쁜 병아리 선생님"이라는 별칭이 좋았다.
그 아이는 매우 마른 체형에 빈혈이 심해서 기절을 하는 경우가 몇 번이나 있었다.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 왜 그리 허약한지 알지 못했다. 나의 학급 학생이 아니었다. 볼 때마다 걱정스러웠다. 키는 나보다 커서 내가 그 아이의 가슴 높이였는데도, 나에게 붙임성 있게 다가오는 아이였다.
다시 만난 그 아이는 아주 멋진 숙녀가 되어 모 기업의 비서실에서 근무하던 중이었다. 허약하고 깡마른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날씬하고 탄력 있는 몸매가 되어 있었다.
심성이 따뜻하고 정이 많았던 여리디 여린 아이가 성장하여 결혼을 하는 감격이라니......
아중 마을 언덕 위 예쁜 나무가 있는 교회에서 결혼식을 했다. 그리고 미국으로 떠났다. 물리치료사가 되고, 아들을 낳았고, 이제 그 아들이 고등학생이 되어 카톡 프로필 사진에서 함께 웃고 있다.(물리치료사를 하다 그만 두고 지금은 한국에 사업체를 둔 제부의 일을 미국에서 돕고 있다고 한다.정말 멋진 커리어 우먼으로 성장했다) 그림 수업도 여가로 받는다고 한다. 수채화가 아름답다.
나의 병아리 시절에 만난 그 아이는 자라서 엄마가 되었지만, 내 마음에는 영원히 햇병아리 시절을 빛내주며 "병아리 선생님~!"을 외쳤던 키가 큰 귀여운 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