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을 그려나가는 아이

의사는 극한 직업

by 루씨


내가 생각했던 의사들의 모습이 '슬기로운 의사생활'과 같다면 좋겠다. 그들은 힘든 가운데, 삶의 활력을 주는 것을 일찍 찾았다.


나는 가족보다 다른 이를 먼저 챙기게 되는 경우가 종종 발생한다. 가까운 이는 늘 내 옆에 있으니 ‘나중에 잘해주면 되지’, 또는 ‘내가 사랑하는 줄 잘 알 거야’ 라고 생각하게 된다. 이런 나의 성격으로 인해 내 주변에 있다 보면 마음에 상처를 받기도 한다.


큰딸이 대학교 1학년 때였다. 졸업한 제자와 통화를 했다.


그 아이는 재수 시절 서울에서 지내면서 너무 힘들어했다. 전화를 주고받으며 격려를 하다가 "그래, 너는 내 딸이나 마찬가지지. 신경 쓰지 말고 아무 때나 전화해."라고 말했다. 그런데 하필 서울의 대학을 다니던 나의 큰딸이 진로 문제로 고민하던 시기였고, 집에 와 있었다.


그때 나는 대학원을 다녔다. 나의 본래 전공이 아닌 영어교육과 석사과정이었다. 과제가 엄청나서 매일 잠을 세 시간 정도밖에 못 잤다. 악명 높으신, 그러나 내가 제일 존경하는 교수님께서 과제를 많이 주셨기 때문이다. 일주일에 영어 소설을 100페이지 정도 읽고 에세이를 제출하는 식의 과제였다. 매 학기가 시작될 때마다 학비를 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을 하고 있었다. 중도 포기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딸들에게는 "엄마 지금 바쁘니까 급한 일 아니면 나중에 전화해." 하고 끊으라고 했다. 그런 점에서 나는 다른 엄마들과 많이 달랐다. 다른 엄마들은 아이들이 전화하면 좋아한다는데, 나는 그 반대였으니 말이다. 그런 상황에서 이 아이의 전화는 다정하게 오래도록 들어주고 답변하고 그랬으니, 나의 딸이 상처를 받을만했다.


오늘, 그날의 사건을 일으키게 한 장본인인 제자와 통화를 했다. 본인은 그 사건을 잘 모르지만 말이다. 오후 4시 30분경이었다.


늘 한 톤이 올라가서 "선생님~."이라고 외치던 아이가 오늘은 풀이 죽어서 겨우겨우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오늘 수술을 몇 시간이나 돌아서 점심을 못 먹었는데요. 지치고 배고파서 편의점 삼각김밥이라도 먹으려고 했더니 너무 맛이 없어서 못 먹었어요. 또 회진 돌아야 하는데요."

"그래? 그래서 어떻게 하니, 내가 먹을 거 가지고 갈 수도 없고, 너 정말 안쓰럽다. 의사도 극한 직업 같구나."

오늘은 몇 마디 하고 끊었다. 해마다 안부전화를 하던 아이가 지난해부터 정말 바쁜지 소식이 없어 궁금하던 차였다. 명랑하고 활기찬 목소리로 생생하게 자신의 삶을 전하던 아이가 의대 편입학 한 후로 참으로 힘들어한다.


고등학교 1학년 담임으로 만났다. 매사 열심이었고 공부도 당연히 잘했다. 전과목 1등급을 받았다. 과목 중, 바느질 수업을 할 때면 '손에 땀이 아주 많이 나는' 특이체질이라서 바늘이 한 시간 만에 녹이 슬었다. 바늘이 이상한 것은 아니었다. 다른 아이들 것은 멀쩡했으니 말이다. 땀이 그냥 나는 것이 아니라 뚝뚝 흘릴 정도라서 정말 놀랐다. 그렇게 힘든 상황에서도 열심히 하는 그 모습이 감동적인 아이였다. 고2와 고 3 때 고민이 많아서 조금 방황했다. 내가 보기엔 사람들은 인생에 언젠가는 자기 시간을 내어 방황을 하는 것 같다. 그때가 하필 수험생 시절이 되면 진학의 어려움이 생기는 것이다.


"선생님, 저는 누군가 잘한다 잘한다 하면 더 잘하는 체질이더라고요. 선생님이 계속 담임하셨다면, 아마 잘했을 것 같아요."라는 제자의 말을 들으니, 안타깝지만 한편으로는 나를 믿고 따랐다는 점에서 고마웠다.


"사람은 누구나 잘한다는 격려를 하면 더 잘하게 되는 거지, 그런데 네가 잘했으니까 격려한 거였어. 지금도 너에게 남은 과정들을 잘 이겨낼 거야. 그리고 네가 고등학교 때 얼마나 매사에 열심히 했는 줄 알아? 나는 네가 고2와 고3 때 공부 안 했다고 생각하지 않아. 미리 인생 고민 다 했으니, 이제 고민 끝이지. 도시락이나 김밥이라도 가지고 다녀. 집에 가서 샤워하고, 밥 먹고, 우선 푹 자. 힘내~."라고 대답했다.

수험생 시절 잠시 인생 고민을 했던 아이는 1등급을 놓쳤고, 그 해 시험에서 원하는 바를 이루지 못했다. 결국 재수해서 수의대에 들어갔다. 내가 보기에는 귀여운 강아지조차 무서워할 정도로 동물을 만지기 힘들어하는 아이였다. 그러니 나는 또 걱정이 되었다.


하필이면 구제역 등이 발생해서 보고서뿐 아니라 현장 검증 등을 했으니 더욱 견디기 힘들어했다. 그런데도 잘 참고 지내다가 강아지 주사를 놓아야 할 상황인데, 강아지를 붙들고 있다가 기절을 했다고 한다. 그 과정을 이야기하는데, 슬픈 이야기를 재밌게 묘사해서 나는 큰 소리로 웃으면서 들었다.


동물을 다루기 힘들어하니, 수의대를 그만두게 되었다. 다시 의대에 편입학한 것이다. 장차 무엇을 전공할지 고민이 또 많은 상태이다. 그리보면, 항상 도전을 하고 그 도전 가운데 언제나 걸림돌이 있었다. 이번에는 무엇보다 손에 땀이 심하게 나는 특이체질이 걸림돌이 되고 있다고 한다. 장갑을 끼면 남들은 모르지만 본인은 그 안에 땀이 흥건하니 얼마나 힘들겠는가. 그러다가 습진이 생길 것 같다. 그럼에도 잘해 나가고 있다. 내가 보기엔 인간 승리라고 말할 수 있다. 그 모든 과정을 잘 극복하고 있으니 말이다.


나의 막둥이 동생도 의사다. 대학생 시절 결혼한 나의 집에 오면 늘 쓰러져서 잠만 자기에, "너는 공부 안 하고 왜 그리 잠만 자냐"하고 큰누나로서 나무랐다. 의과대학이 얼마나 힘든지 몰랐기 때문에 한 소리였다. 의과대학의 과정을 모두 무사히 마치기 위해서는 잠을 첫째로 줄이고, 밥도 제대로 못 먹으며, 그 와중에도 집중력과 친절을 지녀야 하는 것 같다.


나의 사촌은 우리나라의 유명한 병원의 정형외과 과장이시다. 그분은 '명의'가 되셨다. 그냥 하는 말이 아니라 우리나라 명의에 나와 있으시다. 나와 나이 차이가 엄청나서 외삼촌 아들인데 외삼촌을 뵙는 것처럼 어렵다. 그분에게 수술을 받기 위해 대기하는 환자들이 많아서, 수술이 많은 날은 20시간 넘게 하셨다고 한다. 하루가 24시간인데 말이다. 정말이지 존경과 더불어 박수를 보낼 수밖에 없다. 엄청난 집중력과 체력이 없다면 견디기 힘들 것이다.


나의 제자가 지금 이 과정을 또다시 잘 이겨내기를 빌어본다. 화이팅!



나의 큰딸과 동갑내기 아이다. 그 해의 아이들은 내가 특별히 마음이 많이 갔다. 그 아이들을 지켜보노라면 나의 딸이 생각났다. 나의 딸의 대학 원서를 고민할 때, 이 아이는 나에게 추천서를 부탁했었다. 고3 담임도 아니어서, 그 반 담임선생님에게 눈치가 보이기도 했고, 나 역시 딸아이의 진로로 고민을 나누던 중이었다. 무엇보다 수능 한 달 전에 큰딸이 병원에 입원하는 일이 벌어져서 이 아이에게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이런 일, 저런 일로 항상 마음이 쓰이는 아이였지만, 내가 보기에는 늘 씩씩하게 자신의 일을 잘 해결해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