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한 만남이 특별함으로
기억에 남는 제자들의 유형을 보면 다음과 같다.
1. 담임인 경우
2. 말썽꾸러기들
3. 수업 태도가 특별했던 아이들
4. 나와 특정 에피소드가 있는 경우
가장 기억 속에 희미한 유형은 '평범'한 아이들이다. 교사들이 말하는'평범'이라는 함축된 단어는 근면 성실하며, 자신의 의견을 강하게 어필하지 않는 아이들을 의미한다. 나 역시 여고시절을 매우 평범하게 지냈다고 생각한다. 인상적이었던 드라마 '어쩌다 발견한 하루'에서의 주인공처럼 나 자신은 내 인생의 주인공이 분명하지만, 모두의 주인공이 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만약 모두의 주인공이 된다면, 그/그녀가 소위 '스타'가 되었다는 의미일 것이다. 동료들의 한마디를 추가하고자 한다. '모두의 주인공을 이르는 단어를 축약하면 무엇일까'라는 화두를 던지니, 모두 한 마디씩 한다. 우리 세대는 '찐'이라 하고, 젊은이는 '대세'라 하며, 검색하니 '인싸'가 나온다고 말한다. 이렇게 다양한 정보를 공유할 수 있는 세상이 좋다.
평범한 만남이 특별한 만남이 된, '동료가 된 제자'가 있다. 올 해, 같은 공간에서 근무를 하다 보니 사람 됨됨이에 대해서 더욱 잘 이해하게 되었다. 그녀 역시 마찬가지인 듯하다. 그에게 나 역시 '평범'한 선생님이었던 것 같으니 말이다. 이리 보면 꽤 공평하다.
동료인 그녀는 나를 미소 짓게 하는 두 아들의 엄마다. 이제 3살과 4살 연년생을 키우느라 힘들다. 나는 그녀를 통해 잊었던 나의 육아 시절을 떠 올린다. 여자들이 아이를 또 낳게 되는 이유 역시 발견한다. 육아는 힘들다. 그런데 자식은 사랑스럽다. 아이의 웃음은 엄마에게 명약이다.
오늘 나는 그녀에게 새로운 단어를 배웠다. '원더 윅스'라는 단어다. 아이가 잠만 들려고 하면 너무 보채고 힘들어했다. 잠투정이라고만 알았던 시기가 있었다. 도대체 왜 그러는지 아무도 알려주지 않았다. 나는 대체적으로 엄청나게 순했다고 엄마가 늘 말씀하셨다. 내 딸의 잠투정이 심할 때마다 '너를 닮지 않은 것 같다'라고 나의 엄마는 결론을 내리셨다. 그렇게 나의 아이는 예민한 아이로 치부된 것이다. 그런데 오늘 아침 잠투정에 대해 이야기를 하다 보니, 그녀가 "그건 바로 '원더 윅스'때문이에요. 아기들이 총 10번 정도 급 성장기를 겪는데, 그 기간을 말해요."라고 말하는 것이다. 나는 가끔 그녀가 엄청나게 대단하게 느껴진다. 모르는 것이 없는 척척박사 같다. 행동도 민첩하고 학교 생활에 부적응하는 학생에 대해 고민하면 적절한 조언을 나에게 해준다.
첫 아이가 둘째보다 '원더 윅스'를 매우 심하게 겪었다. 육아에 관한 아무런 지식과 정보가 없다 보니, 아이를 더욱 힘들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환기를 시키거나 업어주는 등 여러 시도를 하면 조금은 나아졌지만, 퇴근하고 힘든 순간마다 '대체 애는 왜 이렇게 잠을 못 자고 이럴까' 고민했다. 둘째는 미리 감지하여 조금 더 편안한 분위기를 만들어주었기 때문에 그리 심하지 않게 그 시기를 겪은 것 같다.
우리 세대를 칭하여 샌드위치 세대라고 한다. 양쪽 세대에 눌린 중간의 위치라는 의미다. 정보와 소통에 관해서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무엇보다 힘들었던 것은 한 밤중에 아이가 아팠을 때 비상대처 방법이었다. 어른들은 괜찮다고 하고, 정보도 없었으니 말이다. 나의 큰딸이 '원더 윅스'를 겪을 때, 나는 홀로 육아에 쩔쩔매고 있었으며 자가용도 없었고, 요즘 흔한 콜택시조차 없어서 새벽에 아이를 업고 응급실을 가야 하는 상황이 발생했을 때 가장 난감했다.
요즘, 동료 선생님인 그녀의 아이들이 하루하루 성장하는 모습을 사진으로 접하며, '슈퍼맨이 돌아왔다'의 건후 미소를 보는 것만큼 행복한 시간이 된다. "선생님은 다른 아이들 방송 볼 필요 없겠어요. 이렇게 귀여운 아들 둘을 매일 보니까요." 하면서 아침부터 소리 내어 웃는다.
그녀는 매우 현명하다. 1년 동안 부부 공동 휴직계를 내고 '제주에서 한 달 살기'를 경험했다고 한다. 육아문제가 발생하면 부부가 공동으로 책을 찾아보거나 인터넷을 검색하는 등 연구하며 상의하여 문제를 해결한다고 한다. 그녀의 아이들은 분명히 이 사회의 훌륭한 구성원으로 잘 자랄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