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우개 소녀

대학에 진학하다

by 루씨

지우개로 무엇인가를 늘 만드는 아이가 있었다. 모두들 공부하는 시간에 말이다.


수업 시간에 이리저리 아이들을 돌아보다가 그 아이가 만든 미니어처 김밥 도시락을 발견했다. 초미니 김밥. 도시락의 전체 크기가 10mm*7mm 정도였다. 그 안에 더 작은 크기의 김밥이 예쁘게 담겨 있는 것이었다. 너무 잘 만들었고, 하도 작아서 신기했다. 그냥 심심해서 지우개를 자르고 만지작 거리다가 만들게 되었다고 했다.


방법은 다음과 같다.


먼저 지우개를 자른다.
색 볼펜으로 콕콕 찍어 색을 낸다.
그것을 만지작 거리면 클레이같이 된다.
여러 색의 작은 덩어리를 만든다.
다양한 형태를 만든다.
중요 팁: 자르기를 할 때는 머리카락을 이용한다.

나중에 내가 도자기를 배웠는데, 흙을 소분할 때면 강한 실로 자른다. 어쩌면 그 아이는 아무것도 모르던 시절에, 가는 머리카락으로 잘랐을 때 깔끔하게 잘린다는 이치를 알았을까.


나는 미술 쪽과 전혀 관련이 없는 대학의 과에 진학을 한 후에야, 그림을 그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문학을 좋아한 이과 학생이었다. 대학에 진학하니 전과나 부전공 또는 복수전공과 같은 시스템이 없었다. 학교를 자퇴하고 다시 수능을 치러야 원하는 과 쪽으로 진학이 가능했다. 나는 그러한 것들을 감당할 만큼 엄청난 열정도, 용기도 없었다. '그림 그리기'는 동아리 활동에서 조금 허기를 채웠다. 내가 이루지 못한 꿈이 있기에, 나는 그림 그리는 학생들에게 항상 관심이 아주 많다.


나는 그래비티를 지지하는 사람이다. 그래비티는 단순한 낙서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장 미셸 바스키아라는 유명한 화가를 떠올려 본다. 바스키아는 거리의 그림, 그래비티로 시작했다. 후에 엔디 워홀과 인연이 닿게 되었다.


그래비티에 대해 부정적 견해를 지닌 사회가 많다. 그래서 논쟁을 하자면 길어진다. 학교라는 작은 사회도 마찬가지다. 규정을 어기고 체육복에 그림을 그린 아이 문제로 동료 교사와 말타툼을 벌인 일이 있었다. 체육복이나 교복에 낙서를 하면 학교 규정에 어긋나는 상황이었다. 어떤 학생이 등에 그림을 커다랗게 그렸다. 규정에는 교복이나 체육복에 낙서를 하면 안 된다는 사항이 있었다. 벌점을 줘야 한다는 선생님과 그림을 잘 그렸다고 칭찬한 나는 결국 의견이 달라서 불편한 심기가 된 경험이 있다.


여하튼 이런저런 일로 인해, 담임이 아닌 경우 가급적 진로 상담을 삼가는 편이었다.


미니어처 도시락을 발견한 후로 그 아이에게 강한 호기심이 일었다. 담임이 아니었지만 교사로서 그 아이의 인생에 조금은 관여하고 싶었다. 대체 왜 모두가 진학을 염두에 두고 공부에 집중하는 고3 수험생 시절에 자신은 진학과 무관한 듯 행동하는 것일까.


알고 보니 그림을 따로 배우지도 않은 아이가 상당히 잘 그렸다. 주 관심사가 그림이었는데, 그즈음 집안 형편이 어려워져서 진학을 포기하려고 했다. 당시 미술학원 비용이 만만치 않았다. 입시 미술은 아마 25만 원 정도 했던 것 같다. 등록금 마련도 어려운 상황에 미술 학원은 무리였다. 지금같이 매체가 발달되었다면, 독학이라도 할 수 있었을 것 같다. 혼자서 입시 미술을 준비하기는 어려웠다.


나는 그 아이를 설득했다. 대학을 가면 실력을 분명히 알아주는 교수님이 계실 것이고, 형편이 어려운 경우 장학금 제도가 많다고 말했다. 또한, 지금 원하는 대학에 진학을 못 한다고 해도 인생의 커다란 꿈을 그려보라고 권했다. 무엇보다 너는 아주 재능이 있다는 것을 강조했다. 고민은 진학을 한 후에 다시 해도 늦지 않다고 조언했다.


그리고 그 친구는 나의 조언을 따라 주었다. 대학에 진학했다. 대학 졸업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연락이 왔다.


저 지우개 소녀예요. 내내 장학금으로 학교를 다녔고 졸업 후에 바로 취업했어요.


교사 생활을 하면서 보람을 느끼는 것은 바로 이런 순간이 아닐까. 그 아이가 즐거운 모습으로 꿈을 펼치며 살아간다는 것을 생각하면, 마치 내 삶이 행복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졸업 후 우리나라에서 꽤 유명한 **랜드에 들어가서 생활하다 나와서 강아지와 살면서 프리랜서를 하고 있다. 결혼은 안 할 것 같던 그 아이는 멋진 남자를 만나 결혼했다.


내가 아는 그 아이의 스토리는 여기까지다.


졸업 후, 아이들은 몇 번 연락을 해 오다가 자신의 삶이 바쁘니 소식이 끊기게 된다. 어떤 아이는 나이 30이 넘어서 이메일을 보내오기도 한다. 요즈음 나의 이메일 함은 연락처를 모르는 이가 보내면 스팸으로 넘어간다.


소식을 주고받지 않아도 괜찮다. 어디서든 그들이 타인을 배려하는 마음을 가지되, 기죽지 않고 당당하게 웃으며 살기를 바랄 뿐이다.


그 아이의 그림 한 점을 교무실 책상 유리 밑에 넣고, 가끔은 그녀가 잘 사는지 궁금하게 여기며 그 옛날 교실에서 지우개를 조몰락거리던 모습을 생각한다.

(지우개 소녀가 나에게 준 그림)


'지우개 소녀'야! 행복하게 멋진 삶을 이어가렴. 네가 나에게 준 이 그림을 여태 간직한다면 놀랄지 모르겠다. 공개하는 것을 부끄럽게 생각할지도 모르지. 지금은 훨씬 더 좋은 작품을 하고 있을지 모르니까. 어떤 이의 브런치를 읽고 나도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렇게 많은 사람이 내 글을 읽는 것도 아니겠지'
선생님의 브런치를 그리 많이 구독하는 것도 아니란다. 그래서 그냥 네 그림 공개한다. 이해하려무나.
- 언제나 너를 응원하는 선생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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