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을 나는 아이

인생에 차선책이 있다면

by 루씨

인생에 차선책이 있다면 무엇이 되고 싶은가.

<프루스트의 가지 않은 길>이라는 시를 암송하던 여고시절, 나는 참으로 꿈이 많았다. 늘 친구들과 꺄르륵거려서, 선생님들께서는 너희는 무슨 웃음이 그리 많냐면서 어이없는 미소를 지으셨다. 내가 교사가 되어 아이들을 보니, 뭐가 그렇게 우스운지 수업시간에 친구와 이름이 비슷한 단어만 나와도 깔깔대는 것이다. 교사 입장에서는 어떤 순간 집중해서 진지하게 수업하기를 원하는데 몇몇 아이들이 흐름을 깨면 힘들어진다. 특히, 시험을 앞두고 적정 진도를 나가야 하는 경우는 더욱 그렇다. 그래도 웃는 아이들이 때로는 귀엽게 느껴지기도 한다.


오늘 주인공인 아이는 이런 류에 전혀 속하지 않았다. 늘 한결같이 성실하고 바른 태도로 임했다. 한 번도 수업 중 졸거나 엎드려 있는 경우도 없었다. 그런 어느 날, 졸더니 내내 엎드려 있는 것이었다. 내가 담임을 맡은 옆 반의 아이였다. 고등학교 2학년 때였다. 후에 알게 된 내용은 방과 후 학원에 가서 새벽 1시 가까이 끝난다는 것이었다.


나의 딸들은 중학교 이후로 학원에 정규적으로 보내지 않았다. 공부라는 것은 자기가 하고 싶어야 하는 것이다. 그래도 조금의 가이드는 부모님들이 해야 하는 것이므로 국어, 영어, 수학에 대해서 지원을 했다. 생각해 보면 그리 나쁘지 않은 가이드였다고 생각한다. 나의 딸들의 국, 영, 수 그리고 사탐 과탐 및 예술과목 교육법은 다음과 같았다. 두 아이는 터울이 5살이고, 모두 서울의 사립 대학에 들어갔다.


1. 국어 교육: 큰아이는 유치원 시절에 공공도서관이 활성화되지 않았기에 서점에 데리고 다녔다. 나와 딸은 서점 귀퉁이에 앉아서 몇 시간이고 책을 읽었다. 큰딸 4살에서 6살 사이의 일이다. 창의적 사고를 하는 아이로 자랐다. 둘째 아이는 공공도서관이 생겨서 많이 이용할 수 있었다. 둘째 아이는 나의 브런치 북 <은행잎이 노랗게 물들 때면>에서도 일기를 익히 선보인 바와 같이,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일기를 꼬박꼬박 썼다. 초등 2학년 때, NIE 일기장을 알게 되었다. 그 일기장 형식을 빌어 신문의 단어 찾기와 마인드 맵을 그린 후 일기를 쓰는 방식에 습관이 들었다. 논리적 글쓰기가 생활화되었다고 생각한다. 후에 논술로 대학에 들어갔다.

2. 영어교육: 두 딸 모두 초등학교 때 집 앞에 있는 원어민이 있는 영어학원에 다녔다. 먼 거리에 좋은 학원이 있었는데, 그곳들은 교육비도 가까운 곳보다 두배 가까이 되었다. 교육열이 많은 분들은 멀리까지 보냈다. 나는 무조건 가까운 곳이 최고라는 생각으로 가까운 곳의 학원 중 나와 소신이 맞는 곳을 선택했다. 영어는 외국 경험이 없어, 원어민과 자주 대면하는 곳이 필요했다. 원어민 선생님들이 많이 계신 곳으로 선택했다. 가서 놀고 와도 좋았다. 공부를 했든 안 했든 영어에 관심을 많이 가지게 되었다. 둘 다 외국어 고등학교에 진학했다.

3. 수학: 초등학교 6학년 때부터 중학교까지 집 바로 앞의 수학학원에 다녔다. 수학은 전문가에 맡길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초등학교 때는 항상 방학 때 집에서 다음 학기 수학 총정리 한 권을 통해 개념을 익히게 했다. 물론 스스로 해야 했고, 모르는 부분은 가르쳐 주었다. 개념을 익히는 것이 문제를 푸는 것보다 중요함을 강조했다. 그러나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니, 바쁜 아빠는 물론이거니와 내가 알려 줄 수가 없었다. 선행은 한 학기 이상은 절대 하지 않기로 했다. 지난 학기의 것을 모른다면 다음 학기의 것을 배우는 것이 무의미하다. 또한 일 년씩 앞당겨 공부하면 다 잊어버린다. 두 아이 모두 수학에 흥미가 있었다. 문과 학생들도 수학이 중요한 대입제도다. 고등학교 때부터는 둘 다 학원을 다니지 않았다. 큰아이가 고등학생일 때, 방학 때면 중학생 동생의 수학 공부를 맡아서 해 줬다. 가르칠 때 지켜보면, 왜 이것을 배워야 하는가를 잘 이끌면서 지적해 줬다. 그 방식이 나는 무척 마음에 들었다.

4. 사회, 과학: 학교 수업 이외에 보충이 필요할 경우 주로 EBS 듣기를 반복해서 들었다. 큰 아이는 과학에 흥미가 있어 스스로 과학잡지를 사서 읽는 등 관심이 많았다. 큰 딸이 외국어 고등학교로 진학한 것을 후회한 적은 단 한 번인데, 학교에 가니 물리과목이 없었다고 한다. 사실 둘째는 외고로 진학하는 것에 반대했다. 이미 문과가 정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종국에는 자신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손을 들어줬다.

5. 실과 및 예술교육: 아이들이 유치원 시절에는 무조건 자연에서 놀게 했다. 나처럼 말이다. 미술과 기타는 학원을 조금 다녔다. 피아노와 바이올린은 선생님이 집에 오셔서 하는 것을 택했다. 비싼 과외 선생님을 구한 것이 아니고, 오셔서 아이와 놀다 가실 인성이 훌륭한 분을 구했다. 나는 아이들이 피아노를 어떤 부분까지 쳤는지 알려고 하지 않았다. 오늘 선생님 오셔서 재밌었는지를 물었다. 큰아이는 바이올린 진도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아서 그만두게 했다. 그런데 바이올린을 배운 덕분인지 음악과 미술에 관심이 정말 많다. 예술가 타입인 아이가 지금 회사에서 전체적인 것을 관장하는 일을 할 때면, 신이 나 보인다. 그러나 꼼꼼히 처리해야 하는 문제에 힘들어하기도 한다. 어떤 일이든 하다 보면 나아질 것이라 생각한다. 둘째 딸은 바이올린은 아예 관심이 없었다. 그래서 우리 식구 중 집에서 가장 많이 지냈다. 그러다 보니 생각이 깊어진 점이 있는 것 같다. 삶과 죽음에 관심이 많다. 후에 기타를 배웠고, 대학에서 밴드의 일원이 되었다고 한다. 나의 딸이지만 어느 쪽으로 갈지 알다가도 모를 아이다. 그래도 언니가 같이 기거하면서 따뜻하게 챙겨주고 있다. 취준생이지만 기죽지 않고 지내고 있다니 다행이다. 언젠가 자신의 일을 당당히 할 것이라 기대한다. 지금 잠시 쉬면 어떠한가. 맘 편히 취업 준비를 하라고 말했다. 나중에 일을 하게 되면 평생 해야 하니 말이다.


나의 제자 이야기 중에 나의 딸들의 교육에 대해 장황하게 글을 쓰게 된 연유가 있다. 고등학교에 있으면서 항상 느끼는 교육에 대한 문제점 때문이다. 학교교육 이외에 학원이나 과외에 주로 의존해서 낭패를 보는 경우를 많이 봐 왔다. 심지어 선행 학습을 위한 기숙사가 있다는 것을 안다. 어떤 해의 전교 1등 학생은 방학 때마다 전과목 선행학습을 위한 기숙사 학교에 있다가 온다. 방학을 꼭 그리 멀리서 지내야 하는가 말이다. 이런 학생들 대부분은 처음에는 성공적으로 보인다. 그러나 추후 학교 수업을 방관하게 되고 수업 태도가 나빠진다. 결국 내신 성적에서 좋은 점수를 맞기도 어려울 뿐 아니라 공부 습관이 잘못되는 경우가 많았다.


그렇다면, 원점으로 돌아가 보기로 한다. 항시 열심히 하던 그 아이가 수업시간에 졸고 엎드린 시점으로 말이다.


결국 그때 그 아이의 성적은 오른 것이 아니라 떨어지게 되었다. 그래서 관심이 많으셨던 담임 선생님과 상담 후 학원을 조절하게 되었고, 그 아이의 학교생활 표정도 조금 나아졌다. 부모님께서 엄격하셨던 아이였던 것으로 기억된다. 큰딸이었는데 원래 큰아이가 항상 힘들다. 심리학에서 보면 둘째는 쿠션 효과가 있다고 한다. 외동인 경우는 특히 자녀양육에 신경을 써야 할 것 같다.


그 아이는 우리나라의 손꼽히는 A항공의 승무원이 되어 하늘을 날고 있다. 인성도 바르고, 예쁘고 공부도 잘했으니 당연한 결과였다. 졸업 후 학교에 찾아왔을 때 그 아이가 말했다.


여고시절 선생님을 보면 답답한 마음이 조금 풀렸어요.


위에서 언급했듯이 담임은 아니었다. 교과목 교사로 만났을 뿐이었다. 그런데 나의 교육적 가치관이나 옷 입는 방식이 아이에게 자유로운 느낌을 주었다고 한다. 어떤 동료는 내가 학생부 선도계를 맡았을 때 무척 염려하면서 말했다. "선생님, 참 걱정이네요. 자유로운 영혼이 어떻게 할지." 그 동료의 말처럼 고역스러운 한 해였다. 소크라테스처럼 '악법도 법이다'라는 생각으로 지도했을 뿐이다.


요즈음 코로나 19로 온 세계가 들썩이고, 유럽은 다시 국경을 봉쇄하는 등 강력 조치를 취하고 있다. 한국은 발 빠른 정부 대응으로 지금까지 무난하게 지내왔다. 전주는 사실 청정지역에 가깝다. 그럼에도 이스타항공은 대량 정리해고에 들어갔고, 타 항공사도 힘든 시기라고 한다. 안타까운 소식들이다. 그 아이가 어떻게 이 난국에서 살아남고 있는지 궁금하다.

(하늘을 나는 아이)

우리 학생들에게 항상 이런 이야기를 한다. 대입에서도 마찬가지다. 여러 케이스를 생각하고 준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한 마리 토끼를 잡으려 그것에만 몰두하지 말고, 전체를 보면 좋겠다. 인생의 차선책을 항상 염두에 두고 살기 바란다.

나 역시 마찬가지다. 지난 세월에서 그 길을 택했다면 어찌 되었을지 생각해 보기도 한다. 그렇지만 현재와 미래를 더욱 중요하게 생각한다. 추억은 주로 좋은 기억만 꺼내서 맛있게 먹기로 한다. 잘못된 과거를 반성하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이다. "지나간 것은 지나간 대로 그런 의미가 있죠~"라는 들국화의 노래 가사처럼 지난 일은 그런대로 의미를 두고 현재와 미래를 생각하면 좋겠다.


오늘 지금 즐기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본다. 그러나 미래를 잊으면 안 될 것이다. 내가 당장 그만둔다면 무엇을 할까? 남은 인생은 어떻게 살아야 할까? 항상 '인생의 차선책'을 생각해보고, 꾸준히 준비하는 자세가 필요한 것 같다. '하늘을 나는 나의 제자'도 어려운 상황을 잘 극복하고, 더욱 멋진 디딤을 하기를 소망한다.





지금 옆에 있는 사람의 손을 따뜻하게 잡아주면 좋겠다. 삶의 긍정을 계속 속삭이고 싶다. 밝음의 에너지를 나누고 싶다.


나는 들국화의 노래를 듣고 눈물을 주르륵 흘린 날들이 있다. 지난 세월 열정을 쏟았던 것들이여, 그냥 그렇게 나는 최선을 다했노라. 다만, 아름다운 추억과 더불어 희망찬 미래를 이야기하고 싶을 뿐이다.


https://www.youtube.com/watch?v=zZOCgNXU9eY

들국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