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로운 영혼
졸업 후 자주 소식을 접하던 아이다. 매년 스승의 날이면 전화를 해서 스승의 노래를 완창 한다. 우리는 신사동 가로수길로 향했다.
서울 신사동 가로수 길에는 자그맣고 예쁜 와인 카페나 레스토랑들이 즐비했다. 맛있는 저녁과 와인을 나눈 후, 그 아이가 예약한 호텔에서 함께 밤을 지새웠다. 나는 매우 말하는 것을 좋아하는데, 그 아이를 만나면 주로 듣는 입장이 된다. 그 아이의 사랑이야기를 듣노라면 시간이 훌러덩 지나버렸다. 이성이 강하다면 어찌 사랑에 빠지게 되겠는가.
그날 이런저런 이야기 끝에, 아무리 바빠도 일 년에 한 번은 서로 통화하자 했다. '스승의 노래'를 부르기 시작한 연유다. 올 해부터 스승의 날 노래는 이제 그만 하라고 했다. 우리 서로 너무 나이를 많이 먹었다. “그만하면 우리 애정은 식지 않은 것으로 하자” 하고 말했다. 그 아이는 벌써 졸업한 지 20년이 넘었다. 고등학교 졸업 후 대학을 다닐 때도, 그 후에 직장에 다닐 때도 가장 연락을 많이 하고 지냈다. 나는 그 아이의 담임도 아니었다. 둘 다 ‘영어’를 좋아하는 공통점 이외에 우리가 왜 그리 오랜 세월을 가까이 지내게 되었는지 이유는 정확히 모르겠다. 우리 둘 다 정이 많다고 생각한다.
프리랜서로 활동하다가 서울에서 자신의 회사를 경영하는 오너가 되었다. 꽤 유능해서 일이 많고, 프로젝트를 하다 보면 밤샘도 하는 등 삶이 바쁘다.
한국사회에서 결혼은 이제 선택사항이다. 나 역시 동의한다.
25살인 미국인 친구는 나에게 자기가 결혼을 한다면 세금을 줄이기 위해서라고 했다. 우리나라도 결혼을 하는 이유 중에 경제적 부담을 줄이기 위함도 있을 것이다. 나의 엄마가 아프셔서 병원에 계시면, 다섯 형제자매들이 자주 엄마를 돌아보게 된다. 그때 나의 큰딸이 “엄마, 내가 나이 들면 나는 자식 없으면 어떻게 해?” 하고 걱정을 하는 것이다. 이때다 싶어서 “그럼 결혼해서 아이 낳아.” 하고 말하자, “싫어, 나는 엄마같이 아이 못 키워.”라고 대답하는 것이다. 내가 잘 키워줘서 고맙다는 말인지, 엄마 보면 도저히 아이를 못 키울 것 같다는 말인지 알 수가 없다.
나의 딸이나 나의 제자나 어떤 미래를 선택하든 자유의지이기 때문에 존중한다. 그래도 둘 다 멋진 남자 만나서 짝을 이루면 참 좋겠다는 바람을 여전히 가지고 있다. 나이 60에도 사랑에 빠져 결혼할 수 있으니, 이들에게 기회는 아직 많이 남아 있다고 생각한다. 어떤 선택을 하든 그들 곁에 온기를 나눌 친구나 동반자 혹은 반려동물이 함께 하기를 희망한다.
자주 안부를 물으면서도 늘 다른 이야기에 정신이 팔려 정작 그 아이가 현재 어떤 일을 하는지 정확히 알지 못했다. 브런치에 글을 쓰지 않았다면 계속 프리랜서로 일한다는 잘못된 정보를 내 머리에 입력한 채 지냈을 것 같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를 글로 돌이켜 보는 시간이 소중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