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원 동기
제자는 학창 시절에 무척 모범적이고 조용한 학생이었다. 말괄량이가 아닌 것은 분명하다. 잘 생각이 나지 않으니 더욱 편히 동기로 대할 수 있어서 좋았다.
우리 학년은 열여덟 명이 입학했는데, 문학수업을 받은 학생들은 그중 열명 가량 되었다. 우리 동기 중 대학원 석사논문으로 문학을 한 친구들은 9명이었고 모두 통과되었다. 나는 졸업하는 마지막 학기까지 영미 문학을 열심히 들었다. 문학이야 좋아하는 과목이기에 아무리 과제가 많아도 재밌게 했지만, 음운론은 기초가 없기에 힘들었다. 다음은 대학원 마지막 학기에 쓴 기록이다.
"이번에 장학금 타던데요." 교수님의 말씀은 나를 놀라게 했다. 내가 열심히 공부를 안 해서가 아니고 그럴만한 능력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놀라서 성적을 확인해 보니 글쎄 12명 중 1등을 한 것이다. 돌이켜보면 중학교 이후로 1등을 해 본적이 거의 없는 내 삶에 어마어마한 일이었다. 특히 지난 한 해 내 인생은 롤러코스터 같았다. 대학원 입학 때는 영어교육과 대학원 시험에 겨우 합격하여 전전긍긍하면서 다녔고, 졸업시험에서는 떨어지는 위기까지 겪은 내가 1등이라니, 떨리는 가슴이 진정이 안 되어 얼빠진 사람이 되었다. 새삼스럽게 지난 학기에 졸업시험에 떨어졌을 때가 떠올랐다.
시험공부를 안 한 것도 아니었고, 대학원 졸업시험이란 것은 적당히 하면 된다더니만 졸업시험 결과를 클릭해 보니 '전공시험 불합격'이란 글자가 선명하게 팝업 되었다. 영어 전공자가 아니다 보니 '언어학'은 내게 참으로 넘기 힘든 산이었다. 너무 창피하고 자존심 상했다. 운전을 하고 하염없이 이리저리 쏘다니다 집에 왔는데, 가족에게 더 염치없고 창피했다. 매일 밤 과제한다고 날 새고 주말이면 집안일은 뒷전으로 책만 보았기 때문에 그런 염치없음은 당연했다. 마지막 학기를 남겨 놓은 상황이었다. '에잇~ 대학원 때려치우자'는 생각만 머릿속에 가득했고 눈물만 났다. 그리고 지도교수님이 원망스러웠다.
더욱 아이러니한 것은 그때 이미 나는 논문 초고를 마친 상태였다. 졸업시험에 합격을 못하면 논문을 쓴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아예 논문 신청이 거부되기 때문이다. 나의 동기들은 내 덕분에 꽤나 심기가 불편했다. 우리들은 그만큼 서로 마음이 잘 통했기 때문에 나의 고통이 그들에게도 고통이었던 것 같다. 졸업 시험을 앞둔 시점에 동기 중 가장 나이가 많은 내가 졸업 시험을 출제하실 교수님들을 찾아뵙고 힌트 비슷한 것을 받은 것이 시험공부에 도움이 아주 컸다고 했다. 또한 문학은 내가 그나마 자신 있는 부분이었기에 내가 딱 짚어 준 것이 출제되었다.
우리가 졸업 시험공부할 때, "나 이러다 혼자 떨어지면 어떻게 해요?" 하고 말했다. 이때, 나의 제자이자 대학원 동기인 ‘ *진’ 양이 "샘, 그럼 제가 석고대죄할게요. 설마 그럴 일이 있겠어요?"라고 답변했다. 나도 설마 내가 떨어지기야 하겠냐는 심산이었다.
그러나 나의 말이 씨가 되어 나 혼자 떨어졌다. 결국 나는 교수님의 설득과 동기들의 격려로 휴학을 하지 않고 다니게 되었으며, 재시험을 치렀고 5학기째에 논문 심사를 받고 정규과정대로 졸업장을 받게 된다.
영어교육과 대학원을 지원하는 동기는 여러 가지가 있다. 교직이수를 할 수 있다는 가장 큰 장점이 있고, 영어교사들에게는 좀 더 깊이 있는 학문을 한다는 의의가 있으며 나와 같은 경우에는 부전공을 한다는 의미가 있다. 아주 지독하게 공부를 시키는 전북대 영어교육과 대학원을 진학하면 좋은 점이 있다. 첫째, 임용고시 합격률이 높다. 둘째, 대학원비가 아깝지가 않다. 그러나 그만큼의 대가가 따른다. 무엇보다도 열심히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야 졸업을 한다.
내가 좋아하는 영역은 ‘영미문학’이고, 나머지는 문외한인 데다가 흥미도 없었다. 그런데 그렇게 좋아했던 문학도 수업을 받는 순간부터 고통과 패닉의 연속이었다. 그러나 고통이 큰 만큼 희열감도 컸다. 다행이었던 점은 영어 전공자들도 모두 예습을 안 할 수 없었다는 것이다. 한 학기 문학 수업을 받은 후 놀란 우리들은 3학기를 앞둔 방학 때, 커피숍에 매주 모여서 다음 학기의 문학비평과 '위대한 게츠비'를 미리 공부했다. 교수님께서 다음 학기 계획서를 미리 올려주시는 친절을 베푸셨기 때문에 그런 예습이 가능했다. 오늘 학교 앞 바로 그 커피숍에서 차를 마시면서 사장님께 “저 이제 졸업해요. 논문 심사도 끝났어요.”라고 했더니, 사장님이 웃으시면서 “그럼 저기에 논문 하나 기증하세요.” 하셨다. 그래서 보니 몇몇의 논문들이 놓여있었다. 거기서 공부한 사람들이 기증한 것이란다.
졸업을 앞둔 지금 모든 순간은 과거가 되었다. 영원을 꿈꾸는 인간은 순간의 진정이란 표현조차도 거부한다. 순간에도 진정이 있지만 인간은 영원한 진정을 욕망한다. 대부분 사람들은 진정이라는 개념에 지속성, 영원의 의미를 부여하기 때문이다. 나의 대학원 시절은 진정 영원히 잊지 못할 것이다.
"긴 시간은 쉽게 잊히지만 오히려 짧은 순간은 오래도록 기억한다"는 "Snow"란 단편의 한 구절에서와 같이, 영속적이 아닌 순간의 영상에 대한 기억은 오히려 우리를 오래도록 과거로 이끈다. 커피숍 한쪽 구석에서 공부하던 우리들의 모습, 밤 바닷가에서 동기들을 물에 빠뜨렸던 때, 문학시간에 교수님의 한마디에 모든 의문이 풀리던 순간의 짜릿함, 동기 한 명의 웃기는 말 한마디에 모든 피로가 풀리던 순간, 동기들과 교수님과 함께 나의 통나무집에서 고기와 고구마를 구워 먹던 맛, 그리고 마지막 논문 심사에서 상기된 얼굴의 동기들과 나의 모습 등은 하나의 영상으로 남아 아름다운 추억이 된다.
대학원을 다녔던 매 순간 나는 진정 어린 마음으로 학업에 열중했다고 자부한다. 매 순간의 진정성은 긴 시간을 즐겁게 다니도록 하는 원동력이 되었다. 그리고 나의 사랑스러운 동기들, 그중에 나의 제자이자 동기인 ‘ *진’은 항상 마음속에 남아있다.
대학원 졸업 후 상당한 시간이 흘렀다. 지난해 이맘때쯤, 갑작스럽게 연락하여 만났다. 어느 사이 귀여운 아이들의 엄마가 되어 있었다. 선물을 내미는 데 글쎄 반짝이는 심플한 목걸이다. 내가 좋아하는 스타일로 예쁜 케이스에 담아 왔다. 고마운 이는 마음도 곱다. 세월이 지나 내가 선물을 해도 시원찮을 판에 되려 받아서 미안할 지경이었다. 이번 크리스마스 전에 케이크라도 톡으로 보내야겠다.
카*프사를 보니, 요렇게 귀여운 아이가 내복 바람으로 벽에 기대어 포즈를 취하고 있다.
나 어때요?
너무나 귀여워서 그림을 안 그리려야 안 그릴 수가 없다. ‘*진’이 오늘 나의 제자의 글감 대상으로 뽑힌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