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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캠퍼스씨네이십일 Sep 09. 2016

씩씩한 맛, <4월 이야기>의 카레

이와이 슌지 <4월 이야기>에 등장하는 맛

이와이 슌지 감독의 <4월 이야기>(1998)엔 첫사랑을 좇아 도쿄의 어느 대학에 입학한 소녀가 등장한다. 그녀의 이름은 우츠키(마쓰 다카코). 낯선 도쿄의 봄 한가운데에서 우츠키는 홀로 조용히 카레를 먹는다.


1인분의 카레는 이 땅에 존재하지 않는다고, 나는 생각했다. 배불리 먹어도 항상 남는 음식이었으니까. 우츠키는 용기를 내 아랫집에 살고 있는 이웃에게 다가간다. “저녁 식사 같이 하실래요? 제가 카레를 너무 많이 만들어서.” 돌아온 대답은 “죄송해요, 저 벌써 먹었거든요.” 그해 4월 우츠키의 카레는 외로움을 견딜 용기가 필요한 음식이었다.


나는 카레를 삼킬 때마다, ‘재료’가 가진 힘을 떠올린다. 카레의 재료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정사각형 모양으로 깍둑 썬 감자와 당근, 브로콜리, 토마토… 뭉근하게 끓여도 본연의 질감을 느낄 수 있다. 인생의 재료를 날것 그대로 느낄 수 있었던 때라면, 고민하지 않고 스물을 떠올릴 것이다. 당당하게 사랑을 좇을 수 있었고, 우산 없이 비를 맞을 수 있었다. 경험하는 모든 것이 온전히 내 것이 되는 시기이기도 했다. 딱딱한 대로, 부드러운 대로, 그 모든 감정이 우리의 목을 타고 넘어갔다. 그해 4월, 스물 우츠키의 카레는 아마도 씩씩한 맛이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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