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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캠퍼스씨네이십일 Sep 09. 2016

[내 인생의 영화] 이병헌 감독이 만난 <아비정전>

<아비정전>


내 청춘의 방황은 일찌감치 시작됐다. 여기서 말하는 방황의 기준은 지극히 개인적인 것이나, 대다수가 수긍할 만큼 일반적이지 않은 시간을 보냈다고 (자랑할 일은 아니지만) 자부한다. 16살 때 자전거를 훔치다 발각되어 그대로 학교를 빠져나가 가출을 했고, 고등학교 시절엔 체벌을 당하면 일주일 정도 등교하지 않았다. 올바른 부모님 밑에서 자란 내 방황의 명분 중 절반은 당시 교권의 폭력성이라고 봐도 무방했다. 정말이지 당연시되는 그 폭력이 싫었다. 거, 애가 숙제 좀 안 할 수도 있는 거지, 왜 때려? 어쨌든 그런 일이 반복되니 결석일수가 연간 50일에 육박했었다. 학교에 가지 않는 낮 시간은 그래도 꽤 건전하게 보냈다. 영화관에서 혹은 집에서 비디오를 빌려 영화를 봤다. 조금 유치하지만 나만의 영화 평점 노트도 있었다. 비디오 가게 누나 등 누군가에게 추천받아 보는 재미도 있었는데 그 무렵 추천받아 보고 싶은 사람이 하나 생겼다.

가끔(?) 학교에 나가면 수업 시간이 그렇게 무료하게 느껴질 수 없었다. 그저 창밖을 내다보다 이어폰을 귀에 꽂고 음악을 듣는 게 전부였는데 그 엄숙한 수업 시간 중 복도쪽 중간 자리쯤에서부터 아이들이 술렁이기 시작했다. 몇몇 녀석들이 코를 막기 시작하며 소란이 확산됐고 수학 선생님의 몽둥이가 교탁을 몇번 내리치자 잠잠해졌지만 녀석들의 탄식은 그칠 줄 몰랐다. 누군가 방귀를 뀐 것이었다. 그 지독한 냄새는 선생님의 후각마저 자극했고 말이 없던 선생님은 창문을 열고 잠시 운동장을 바라보고 서계셨다. 그때 한 아이가 손을 들고 일어섰다. 저런 애가 우리 반에 있었나 싶을 만큼 눈에 띄지 않던 아이였다. 그 녀석은 정말이지 무색한 얼굴로 한마디 하곤 다시 자리에 앉았다. “미안.”

아주 잠깐의 정적 후 교실은 대폭소로 이어졌고 선생님마저 고개를 떨어뜨렸다. 그 녀석은 끝까지 진지했고 흔들림 없이 자신의 의사를 전달했으며, 난 호기심이 생겼다. 쉬는 시간. 한 학기가 다 지나도록 말 한마디 안 걸었던 녀석에게 다가가 말을 붙였다.

“야, 나 이따 담임한테 맞을 계획이거든? 그럼 또 며칠 동안 학교에 안 나올 것 같아. 영화 한편 추천해봐. 딱 한편이어야 돼.”

“<아비정전>.”

대화는 그것으로 끝이었다. 단 한마디를 주고받았는데 그 느낌이 참 편안했던 것 같다. 그날 난 예상대로 담임에게 맞았고, 다음날 학교에 나가지 않았으며, 비디오 대여점에서 <아비정전>을 찾았다. 중학생 때 봤던 영화지만 보다가 잠들었던 것 같다. 근데 왜 중학생 땐 몰랐을까? 젊은 녀석들의 저 지독한 고독. 우울한 색감. 관조하는 카메라. 처연한 부감들. 그 와중에 멋까지. 아무리 영화를 많이 봐도 겉핥기일 뿐 내게 영화적 지식이 있을 리 만무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짓말처럼 이 영화의 숏 하나하나가 무엇을 얘기하고자 하는지 그냥 본능처럼 느껴졌다. 아마도 영화 초반 아비(장국영)에게 깊이 매혹된 탓도 없지 않았을 것이다. “당신은 오늘밤 내 꿈을 꾸게 될 거요.” 다시 다음날 꿈을 꾸지 않았다는 수리진(장만옥)에게 무심히 던지는 한마디. “그렇겠지, 잠을 자지 못했을 테니까.” 이럴 수가. 뭐지? 나 왜 무너지지? 나 남잔데? 난 엄마한테 버림받은 일도 없는데 왜 동지의식까지 느껴지는 거지? 얼추 예상되는 답이 맞는 것인가를 확인하기 위해 다음날 학교에 나갔다. 영화를 추천해준 그 이상한 녀석에게 물었다. “야. <아비정전> 왜 좋아?” 참 오타쿠 같은 녀석답게 영화의 대사로 대답을 대신했다.

“발 없는 새가 있다더군. 늘 날아다니다가 지치면 바람 속에서 쉰대. 평생에 꼭 한번 땅에 내려앉는데 그건 바로 죽을 때지….”

녀석과 나는 긴 대화를 나누지 않았지만 왠지 그 녀석도 얼마 전에 알게 된 것 같았다. 내가 어제 알게 됐듯이. 방황이 시작된 현재, 그리고 인생의 남은 시간, 아마도 우리가 쉴 수 있는 공간은 바람 속. 고작 그 위태로운 자리 하나뿐임을. 정말이지 잔인하고 매정한 세상이라고 느낀 그 나이가 19살이었다. 녀석은 이후 미술학원에 들어가 그림을 시작했고, 녀석보다 그림을 잘 그리던 나도 따라가려고 했으나 고교 시절 내내 문제만 일으키던 내 의지는 부모님에 의해 묵살됐고(충분히 부모님을 이해한다), 홧김에 군대에 자원입대했으며, 제대 후에도 방황은 이어졌다. 그저 가끔 바람 속에서 쉰다, 라고 생각했을 뿐. 그리고 아주 가까이에 있던 영화라는 꿈을 발견하고 시작한 것이 26살. 자전거를 훔치며 시작됐던 지독한 방황은 10여년이나 이어진 것이다. 그렇게나 가까이 있던 꿈인데 왜 옆에 두고 찾지 못했던 것일까? 누가 옆에서 “거기 옆에 꿈 있네”라고 말해줬더라면 좋았을걸. 꿈이 생기고 나니 방황이란 단어가 더이상 어울리지 않게 됐다. 가난, 현실, 생활, 뭐 이런 고단한 단어들이 따라오게 됐지만 이젠 방황이 아닌 분투. 쉴 곳은 고작 바람 속일지언정 이 삶이 얼마나 생산적으로 느껴지는가. 그 기분을 처음 알게 되었을 때의 느낌은 형언할 수 없이 벅찬 그 무엇이었다. 지금도 가끔 그때를 생각하며 영화를 꺼내 본다. <아비정전>.

아비는 꿈을 찾고 방황을 끝냈을까? 그 오타쿠 같은 녀석은 자신이 꿈꾸었던 대로 그림을 그리며 살고 있을까? 같은 바람 속에서 한번쯤 만나게 된다면 이번엔 긴 대화를 나눠보고 싶다.

“야, 영화 하나 추천해봐.” 뭐 이렇게 시작되겠지.


글 이병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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