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캠퍼스씨네이십일 Oct 31. 2016

<쇼코의 미소> 최은영 소설가

이해하고, 이해받고 싶은



소설리스트의 강윤정 편집자는 최은영 작가에 대해 이렇게 평했다. ‘지금 이 시대에 최은영의 소설 속 화자들이 갖고 있는 포지션이 정말 소중하다는 생각을 한다.’ 최은영 첫 소설집 <쇼코의 미소>에는 7편의 단편이 실려 있다. 신기하게도 화자들은 모두 여성이고, 이들은 마음속에 일종의 후회를 지니고 산다. 과거 그 사람의 손을 내가 더 강하게 잡아주지 못했다는 마음의 가책. 아무도 서로의 마음을 살피지 않는 폭력의 시대에서, 심지어 실질적 가해자조차 사건을 다 잊고 죄책감따위 가지지 않는 세상에서 타인의 마음을 헤아려보려 애쓰는 포근한 성정의 화자들. 아마도 '지금 이 시대에 최은영의 소설 속 화자들의 포지션이 정말 소중하다'는 강윤정 편집자의 평은 그런 의미일 것이다. 이타적으로 주변을 살피는 순하고 내성적인 사람들이 얼마나 귀한가. 글자를 만지면 온기가 느껴지는 따뜻한 문장, 이것을 써내려간 소설가는 어떤 표정을 하고 무슨 말을 할까. 만나고 싶어졌고, 묻고 싶어졌다. 


소설집이 6쇄를 찍었다고 들었습니다. 독자반응도 찾아서 보시나요?
네, 신기해요. 그동안 썼던 소설들은 계간지에 발표되고 평론가분들이 읽고 반응을 주셨는데.  평론가분들은 안 좋은 이야기도 많이 하셨거든요(웃음). 근데 독자분들은 너무 너그럽게 봐주시는 거예요. 블로그에 서평 써주신 것들 다 찾아서 보는데 너무 좋은 한편 이해할 수 없는 현상 같다는 생각도 들고.(웃음) 


이해할 수 없는 현상이요?
네, 세상에 이렇게 책이 많은데 제 책을 어떻게 아시고 읽어주시고 또 사랑해주시니까 감사한데 꿈같고 이상해요. 제가 독자 분들에게 이렇게 다가가고 싶다고 계획하고 쓴 것도 아닌데 어떻게 마음이 서로 통할까. 저는 그 분들을 상상하고 쓴 게 아닌데, 자기 이야기 같다고 하시고 그 분들과 마음으로 통한 게 신기한 것 같아요. 


등단 준비를 오래 하셨다고 들었습니다. 등단 소식 들을 때 뭐하고 계셨어요?
남편이랑 카레를 먹고 집에 들어왔는데, <작가세계>에서 저녁 8시쯤에 전화를 주셨어요. 저희가 그때 이사를 막 해서 하루 종일 책 정리를 하고 있었거든요. 너무 이상한 기분이 들었어요. 사람이 계속 떨어지다 보니 자신감이 없었어졌고, 이 작품(쇼코의 미소)에 대해 좋은 감정이 없어졌어요. 이걸로 다른 곳에선 탈락했으니까요. 근데 <쇼코의 미소>로 당선이 됐다고 하시니까, ‘운빨로 됐구나’ 했어요.(웃음) 그날은 심장이 너무 뛰어서 잠을 못 잤던 기억이 나요.  


작가의 글에 ‘서점에서 많은 책에 둘러 싸여 계속 글을 써야 하는가 고민했다’고 쓰셨어요. 공모전에 탈락하고 꿈에서 멀어져가는 걸 느끼고 계셨다고요. 
2년 동안 공모전에서 탈락을 했어요. 서른이 되던 여름에 종로에 있던 반디앤루니스 한국소설 코너에서 멍하니 서있었던 생각이 났어요. 사실 작가의 글은 급하게 써야 하는 상황이었는데 문득 그때의 제 모습이 생각이 났어요. 제가 너무 재능이 없나, 고민이 많았거든요. 



<쇼코의 미소>의 주인공도 영화 시나리오를 계속 쓰면서 ‘꿈이라는 허울이 천천히 삶을 좀 먹어간다’고 했습니다. 작가님의 모습이 투영된 문장인가요. 
꿈에 대해서 저는 두 가지 고민이 있었어요. 첫 번째는 해도 너무 안 되니까 내가 재능이 없는 걸까 하는 고민. 그리고 두 번째가 이게 꿈이라고 생각하고 계속 붙잡고 있었는데 내가 나를 속이고 있는 건 아닐까. 더 불안하고 괴로운 건 두 번째 의심이 들 때였어요. 내가 나를 속이면서 계속 한다면 어렵게 등단해 책을 낸다고 해도 과연 행복할 수 있을까. 여태 꿈이라고 믿어왔던 내 욕망이 가짜라면 인생을 낭비하는 게 되겠다 싶었어요. 제가 <쇼코의 미소>를 서른 살에 썼는데, 그렇다고 그제 와서 뭘 할 수 있겠어요. <쇼코의 미소>를 쓰고 공모전에 떨어졌는데, 그때 다 그만둘 때가 왔다고 생각했죠. 사실은 당시 등단이 안 됐으면 그만뒀을 거예요. <쇼코의 미소>를 겨울에 쓰고 봄에 공모전에 떨어지고 바로 수도원에 갔거든요. 


수도원이요? <한지와 영주>에 나오는 그 수도원이군요?
네, 프랑스에 있는 수도원이었어요.(웃음) 수도원에서는 소설을 한 글자도 안 썼으니까 2013년에는 <쇼코의 미소> 외에는 써 놓은 게 없었거든요. 돌아와서 대학원 신문사에서 일하고 있었는데 최종으로 신문을 인쇄하려고 충무로에서 기사를 보는데 친구에게 전화가 왔어요. 9월 29일이었어요. 친구가 “어제 네 꿈을 꿨는데 네가 죽었다. 근데 이게 길몽인 것 같다. 그러니 가장 가까운 시일에 있는 공모전에 무조건 소설을 내라”는 거예요. 봄에 떨어진 후로는 공모전에 안 내고 있었거든요. 그 친구가 단호하게 이건 분명 좋은 꿈이고 해서, 꿈을 100원 주고 샀어요. 그러고 찾아봤더니 <작가세계> 공모전이 9월 30일까지 인거예요. 거기에 냈는데 당선이 됐어요. 


국문과를 다니셨는데, 학교 때에는 소설을 안 쓰셨나요?
네, 학부 때에는 소설 써본 적이 없어요. 제가 학교 다니면서 내내 교지편집부를 했어요. <석순>이라는 고대 교지편집부였는데 그걸 2년 동안 정말 열심히 했어요. 대학 때 온갖 걸 많이 했어요. 학과나 동아리 활동을 많이 해서 힘들고 바빠서 글은 거의 못 썼던 것 같아요. 졸업하고 대학원을 갔는데, 너무 행복하지 않고 감정적으로 힘들었어요. 대학원도 좁은 사회인데 여러 관계들에 치이고 공부도 어렵고. 그러고 석사논문을 쓰는데 고통스러웠어요. 석사논문 형식에 맞춰 글을 쓰는 게 너무 힘든 거예요. 나 원래 글을 쓰고 싶었는데, 이 정도 노력이라면 차라리 진짜 내가 쓰고 싶었던 소설을 쓰는 게 낫겠다 싶었어요. 그때 처음 ‘소설 써봐야겠다’는 용기가 난 것 같아요. 대학원 이후에 1년 반 쉬면서 몰타라는 국가에 갔어요. 어학연수로 갔는데 그냥 밥 해 먹고 바다 보고 많이 쉬면서 스스로를 풀어준 것 같아요. 그때 외국 친구들이랑 같이 살면서 겪은 일이 소설에 반영된 것 같아요 돌아와서는 다시 쉬다가 소설을 쓰는데 제가 쓰고자하는 마음은 큰데 소설 쓰기 공부를 해본 적이 없어서 테크닉이 부족하더라고요. 그래서 다시 소설 강의 듣고 다른 일도 하면서 계속 썼어요. 문예창작과 수업 청강을 하면서 합평 때 지적도 많이 받았고요. 


지적을 받으셨어요?
작법 수업에 소설을 처음 써갔는데, 선생님이 제가 쓴 10장 분량 중에 6장까지는 다 없어도 된다고 하시는 거예요. 일기는 써봤어도 허구의 이야기를 써본 적이 없어서 몰랐던 거예요. 저는 문장을 잘 못 쓰는 게 지금도 고민인데, 같이 수업 듣던 분들도 제 소설 보면서 “최은영 씨는 안 되겠다”고 하시고.(웃음) 저한테는 합평이 글쓰기에 도움이 안 된 것 같아요. 믿을 만한 분에게 초고를 보여주고 의견을 받는 건 좋지만, 사람마다 글을 보고 다 다른 이야기를 하는 합평은 상처만 남기는 것 같기도 해요.


김연수 작가님이 <쇼코의 미소>를 여러 곳에서 추천을 하셨어요. 원래 아시던 사이세요?
아니요. 김연수 작가님과는 사적인 친분은 전혀 없었어요. 선생님이 마음이 너그러우신 분이라서 좋게 보시고 추천도 해주신 것 같아요. 제가 어설프고 아직 숙련이 덜 된 부분도 있는데 너그럽게 소설의 좋은 부분만 봐주신 것 같아요. 


아직 2G폰을 쓰시네요? SNS나 인터넷은 안 하세요?
원래 아이폰을 썼었는데, 제가 너무 이것만 들여다보는 거예요. 제가 스스로 욕망을 잘 못 참는 사람인 건지(웃음). 너무 게을러지는 것 같고 자꾸 ‘카톡’이나 ‘페북’만 보게 되고 인터넷 뉴스 보다가 글을 못 쓰겠어서 스마트폰을 없앴어요. 지금은 그 아이폰은 음악듣는 용도로만 써요. 소설 쓰려고 앉았는데 자꾸 다른 뉴스만 보게 되는 것도 버릇이라. 고쳐야죠.


화자들이 여자이고, 또 그녀가 관계를 맺고 마음을 주고 받는 것도 여성들입니다. 여성의 서사를 쓰게 된 이유가 있으세요?
제가 자라면서 ‘여자들 사이에는 진정한 친구 사이가 없다’는 소리를 자주 들었어요. 왜 남자들의 우정은 ‘의리’가 있지만 여자들 우정은 얕은 관계인 것처럼 말하잖아요. 그런데 그것은 개인의 문제이고, 개인이 어떻게 관계를 맺느냐의 차이이지 성별의 차이는 아니라고 생각했어요. 글을 쓰다 보니 그런 여성들의 우정 이야기가 나온 것 같아요. 그리고 영화나 드라마나 다 남자들 이야기이니까, 제가 그냥 여자들 이야기 읽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쇼코의 미소>나 <씬짜오 씬짜오> <한지와 영주> <먼 곳에서 온 노래>에 공통으로 나오는 소재가 언어가 다른 외국 친구들과의 소통입니다. 
제가 몰타에 있을 때 해외 친구들이랑 같이 산 경험이 있어요. 성인이 되면 어릴 때처럼 친구들이랑 매일 만나고 밤새 놀고 그러지 않잖아요. 특히 제가 대학원에서 고립된 생활을 하다 외국 친구들이랑 같이 살면서 대화 나누고 밥 먹는 경험들이 특히 좋았어요. 한국에서 인간 관계 때문에 상처 받은 것들을 거기서 많이 치유 받았어요. 몰타에서 다른 지역을 여행 다닐 때에도 외국 친구들이 자기 집에서 재워주곤 했거든요. 분명 민폐인데, 그 집에서 오래 있고 사람들 만나면서 마음이 많이 부드러워졌어요. 제가 몰타에 다녀와서 스스로나 친구들에게 더 관대한 사람이 된 것 같았어요. 이전에 제가 뾰족한 부분이 있었다면, 그 경험들 덕분에 달라지고 성장했다는 느낌. 아,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특별히 많은 것을 주지 않아도 충분히 마음으로 위로를 줄 수 있구나. 누군가에게 잘해주는 것만으로도 그 사람의 마음에 이렇게 영향을 줄 수 있구나. 그런 게 저에게 크게 남아서 소설로도 쓰게 되는 것 같아요. 


<미카엘라>에는 세월호 농성장이, <언니, 나의 작은, 순애 언니>에는 고문으로 인해 삶이 망가진 인물이, <씬짜오 씬짜오>에는 베트남 전쟁에서 한국이 가해자이기도 했다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작가로서 꼭 써야겠다는 다짐이 있으셨나요?
<미카엘라>는 제목부터 구성을 했어요. 쓰면서 자연스럽게 세월호로 확대가 된 것 같아요. <씬짜오 씬짜오>는 저희 집이 <한겨레21>을 오래 구독했는데, 거기서 베트남 전쟁 피해자 인터뷰를 읽고 충격을 받았어요. 어릴 때 였는데, 저는 학교에서 ‘한국이 절대 다른 나라를 침략한 적 없다’고 배웠고, 가해 국가였던 적이 없다는 게 자부심이었는데 그게 아니란 걸 알았어요. 이후에 어른이 되어서 베트남에서 친구 집에 갔다가 어린아이들의 사당을 봤고 그때 봤던 이미지들이 소설이 됐어요. <언니, 나의 작은, 순애 언니>는 인혁당 사건을 생각하면서 구상을 했어요. 고문을 당하는 것은 그 상처가 평생 남는 거잖아요. 저는 작가니까  ‘내가 이렇게 써서 뭔가를 남기겠어’하는 마음보다는 원래 마음이 갔던 사건이나 역사에 대해 자연스럽게 글로 나오는 것 같아요. 


20대 때에는 자신을 좋아해주지 못했다고 ‘작가의 글’에 쓰셨던데요. 지금은 어떠세요?
옛날에 비하면 저를 좋아하게 됐어요. 10대, 20대 때에는 많이 힘들었어요. 자랄 때 아빠가 저를 칭찬해주신 적이 없어요. 부모님 세대는 그런 게 서투시잖아요. 어릴 때부터 저에 대한 자긍심이 크지 않고 소심했어요. 자기 자신을 사랑하지 못하면 다른 사람도 미워하게 되는 데, 20대에는 제가 자존감이 떨어지니까 괜히 다른 사람들도 미울 때가 있었어요. 잠시 대학원을 쉬면서 게으르게 살았던 경험이 저한텐 좋았던 것 같아요. 대학 때에는 하루에 4시간 자면서 저를 몰아붙였는데, 쉬면서 잠도 충분히 자고 바람도 쐬고 바다도 보고 그때 ‘내가 할 수 없는 건 포기해도 괜찮다’는 걸 깨달았어요. 이십대 중반 넘어서야 저 자신이 쉬는 걸 용납해준 것 같아요. 조금 게을러도 자신을 탓하지 않고 많이 자고 다시 일어나서 맑은 정신으로 생각하고. 이런 시간들이 중요한 것 같아요.


장편 계획은 있으세요?
아직 계획은 없는데, 언젠가는 써야죠. 구상은 슬슬 시작하려고요. 장편 소설도 많이 읽어보고 감을 잡아보려고 해요. 우리 엄마나 할머니, 아주 옛날에 이 땅에 살았던 여성들의 이야기를 써보고 싶다는 바람은 있어요. 


이제 첫 소설집이 나왔으니, 이제 시작이잖아요. 앞으로 어떤 소설을 쓰고 싶으세요?
성실한 작가가 되고 싶어요. 인터넷 뉴스는 그만 보고 성실하게 글 쓰고 싶다?(웃음) 박완서 선생님도 그러셨대요. 어떤 기술을 30년 정도 배우면 잘 하게 되는데, 소설 쓰기는 그렇지가 않다고. 편혜영 선생님 수업을 들었는데 선생님도 그러시더라고요. 소설 쓰기는 숙련이 안 된다고. 저는 쓴지 얼마 안 되었지만, 숙련되거나 발전하는 게 없더라고요. 쓸 때마다 다 다르고 다 힘들어요. ‘나는 앞으로 지금 내가 쓰는 것보다 더 좋은 작품 쓸 거야.’라는 다짐은 의미가 없는 것 같아요. 지금 상태 정도 쓰는 것도 힘들다고 생각해요. 소설이 더 발전하는 건 헛된 기대라고 생각하지만 지금보다 노력은 더 많이 하고 싶어요. 노력을 많이 하고 매일 쓰고, 매일 그렇게 나가보자. 오래 쓰는 작가가 되고 싶어요. 


작가의 이전글 내가 설렐 수 있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