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헷갈리는 김영란법 대처법
부정청탁 및 금품수수 금지 법안이 시행된 지 한달이 넘었지만 이에 대한 논의가 끊이지 않고 있다. 이른바 ‘김영란법’이라 불리는 이 법안은 공직과 언론직, 그리고 학교법인 종사자들을 대상으로 하며, 직무관련성이 있는 경우에는 모든 청탁 및 수수가 금지되고 직무관련성이 없는 경우에는 3/5/10원칙에 의해 금전적 한도가 허용된다는 것을 핵심내용으로 한다. 학교법인도 제재 대상에 포함되는 만큼 김영란법은 대학가에도 크고 작은 변화의 바람을 몰고 왔다. 그리고 그 바람의 중심에는 평가자와 피평가자로 대변되는 스숭과 제자가 있다. 법안 시행 이후 처음 신고된 내용이 ‘교수에게 캔커피를 준 학생’이었기 때문에 대학가에서의 논란은 더욱 크게 불거졌는데, 이러한 신고가 가능했던 이유는 3/5/10의 제외 대상이 되는 ‘직무연관성’이 사제지간에 적용되기 때문이다.
변화된 ‘미풍양속’
‘캔커피 사건’이 접수만 되었고 실질적 수사 및 처벌이 이루어지지 않았음에도 대학 내의 풍경은 순식간에 바뀌었다. 교수들은 강의 때마다 ‘작은 음식조차 사오지 말라’고 당부하며 학생들 또한 교수실에 찾아갈 때 어색하더라도 ‘빈손’으로 가곤 한다. “예의상 사가는 커피나 쿠키 등을 교수님이 불편해할 수 있다는 생각에 쉽게 행동하지 못한다”는 김수지(삼육대 생명과학과) 학생의 말처럼 의도치 않게 서로에게 피해를 줄 수 있기 때문이다. 교수실을 방문하지 않더라도 상황은 별반 다르지 않다. 현재 학교 도서관에서 근로장학생으로 일하고 있는 김진(한국외대 행정학과) 학생은 “도서관에 가끔 친분 있는 교수님들이 찾아오시곤 하는데, 작은 거 하나라도 드리기가 조심스러워졌다”라며 기존의 인사 관행이 음식을 주고받는 것에서 가벼운 눈인사나 목례로 바뀌었다고 말한다. 또한 최다빈(명지대 문예창작학과) 학생은 “실습이 많아 문의메일을 종종 보내는데, 되도록 공적인 언어를 쓰려고 노력하게 되었다”며 기존의 언어 관행에도 변화가 있음을 강조했다.
교수들의 반응도 학생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이화여대 교양학부의 김수현 교수는 “상담할 때 주스 하나씩 사오던 학생들이 모두 맨손으로 찾아오는 걸 보고 김영란법을 실감했다. 한 대학원생은 ‘교수님 식사 한번 대접하고 싶은데 안 되겠죠?’라고 전화가 온다”며 학생들의 행동에서 김영란법을 체감하고 있다고 답했다. 이어 그외에도 “김영란법 관련 강의도 들어야 하고, 뭔가를 받으면 조건 따져서 신고도 해야 한다. 식사자리 한번 가지려고 해도 자기가 먹은 건 자기가 내자는 분위기다”며 사제지간 외에도 큰 변화가 있음을 덧붙였다.
하지만 이러한 변화된 모습들을 교수나 학생들은 반기는 분위기다. 명지대학교 교양학부의 조은주 교수는 “지나치다는 지적이 있지만 ‘혀용될 수 있는 수준’이라는 게 사실 자의적이고 기존에 지나치게 관대한 기준이 있었던 건 사실이다. 소소한 문제들을 가지고 법 취지 자체를 폄하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존경과 배려의 관계는 물질로 이뤄지는 것이 아니다”며 법이 가진 목적을 직시해야 한다고 말했다. 다른 교수들과 학생들도 대체로 당장은 이러한 변화가 어색할 수 있으나 장기적으로는 긍정적인 ‘새로운 미풍양속’으로 자리 잡을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전면 금지된 대학 내 관행들
이러한 풍경 가운데 학생들에게 실질적으로 타격을 줄 수 있는 변화도 있다. 졸업반 학생들의 ‘취업계’가 금지되어버린 것이다. 취업계란 졸업을 앞두고 조기취업을 한 학생들의 출석을 임의로 인정해 졸업에 지장이 없도록 배려해주는 대학 내 관행이었는데, 이제는 이것이 ‘청탁’으로 분류되어 위법이다. 현재 졸업반인 박상철(서울시립대 전기전자공학부) 학생은 “졸업반 학생들에게는 출석을 하지 않아도 D학점 정도 주는 것이 관례였는데 이제는 그렇게 할 수 없다”라며 향후 조기 취업이 될 경우에 불이익을 받지 않을까 걱정하는 모습을 보였다. 비단 학생들뿐 아니라 교수들도 난감하기는 마찬가지다. 신수정 교수(명지대 문예창작학과)는 이러한 문제에 대해 “아무래도 4학년 졸업생들에게 미치는 영향이 큰 것 같다”며 “취업계를 인정해줄 수 없어 곤란한 상황이 올 것 같기도 하다”고 답했다.
이러한 혼란들이 계속되는 가운데, 취업계라는 급한 불을 끄기 위해 교욱부는 각 학교에 공문을 내려 김영란법에 맞춰 교칙을 개정할 것을 요구했다. 이에 많은 학교들이 조기 취업 시 졸업을 위한 학점을 ‘부과’하는 형식으로 학칙을 개정하기 위해 나섰고, 취업계를 어떤 방식으로 인정해줄 것인가에 대한 논의가 따르고 있다. 하지만 학칙을 개정한 학교가 전체 대학의 21%에 불과하며, 조기 취업이 인정되는 직업군이 ‘4대보험 적용 직종’에 한한다는 점은 기존의 문제를 완벽하게 해결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어 취업계뿐 아니라 기존의 ‘행사 협조문’이나 ‘재수강을 위한 F학점 요구’등 또한 전면적으로 금지되었다.
교육부의 학칙 개정 요구에 대한 의견은 학생들 사이에서 엇갈리는 편이었다. 정우선(고려대 사회학과) 학생은 “대학이 취업학원도 아니고 취업했다고 특별대우까지 해주는 것은 본래 대학의 의미와 맞지 않는 것 같다”고 말했다. 또한 김예영(경희대 시각디자인과) 학생은 “기업 차원에서 조기취업자를 위한 제도를 마련해야 할 일이지 대학이 팔 걷고 나설 일은 아닌 것 같다”며 취업계를 위한 새로운 학칙 개정이 김영란법의 취지를 저해하고 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이에 반박하여 “취업이 급한 대학생들, 정말 많다. 취업계를 인정하는 것이 위법이 아니어야 마음 편히 취업할 수 있을 것이다”는 황인하(인하대 건축학과) 학생의 말처럼 현실적으로 취업을 위해 대학이 적극적으로 협조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었다.
당장의 논란은 불가피, 장기적으로 자리 잡아야
많은 논란이 있지만 대학가에서는 대체로 김영란법을 반기는 분위기다. “현재 과도기를 거치면서 여러 폐단이 생겨날 수 있다. 하지만 장기적으로 안정되어 가는 과정 중 일부라고 생각한다. 사회 분위기가 많이 바뀌길 기대하고 있다”라며 신수정 교수는 장기적인 측면에서 김영란법을 바라보아야 하나고 주장한다. 또한 조은주 교수는 “김영란법은 그냥 공정한 사회를 만들자는 법이다. 대단히 급진적인 법도 아니고, 심각하게 비현실적인 법도 아니다. 이상하고 기이한 일들이 오히려 당연하게 여겨져왔던 지금까지의 관행이 정말 문제였다고 생각한다”며 그 실효성보다는 상징적인 의미가 크다고 답했다. 학생들 또한 “시행 초기 단계이므로 허점이 있고 지속적인 개선이 필요하다”며 “하지만 그러한 사소한 문제로 법의 의미와 목적 자체가 퇴색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고 입을 모았다. 김영란법에 반응하여 대학의 학칙이 개정되고 사제지간 및 동료간 모임과 관계에서 실질적인 변화가 나타나는 등 시행 초기부터 큰 바람이 분 김영란법은 앞으로의 행보에 더욱 귀추가 쏠리고 있다.
아직도 헷갈려요
김영란법의 주무부처, 국민권익위원회에 묻다
Q. 교수가 학생에게 과자를 주는 것은 괜찮나요?
-김영란법 적용은 ‘평가자’와 ‘피평가자’를 대상으로 한다. 평가자가 피평가자에게 선물 및 음식을 대접하는 것은 문제가 없다. 하지만 ‘강의 평가’가 실시되고 있는 대학교에서는 교수 또한 ‘피평가자’로 분류될 수 있다는 논란이 있기도 하다.
Q. 교수님의 배우자에게 선물을 하는 것은 괜찮나요?
-위법이다. 다른 사람을 시켜 선물하는 것 또한 직접 전달자보다 청탁자를 처벌하도록 되어 있고, 배우자에게 선물이 들어왔을 시 교수는 반드시 신고하여야 한다.
Q. 이젠 취업을 해도 학교에 출석을 해야 졸업이 가능한가요?
A. 조기 취업에 따라 출석 없이 학점 인정을 요구하거나 이를 수용(일명 취업계)하면 청탁금지법 위반에 해당된다. 이와 관련하여 교육부에서 각 학교에 공문을 보내 학칙 개정을 요구하였다. 이에 일부 대학교에서 조기 취업에 대한 학점을 부여하여 졸업이 가능하게끔 하는 방향으로 학칙이 개정되고 있지만, 조기 취업 시 각 학교의 행정부서에 문의를 하는 것이 가장 정확하다.
Q. 학칙에는 어긋나지 않지만 김영란법에는 위반되는 행위가 있을 수 있을 것 같다. 이 경우 처벌은 어떻게 되나요?
A. 김영란법이 상위법이므로 김영란법에 의해 처벌이 이루어질 것이다. 학칙은 내부 기준이고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법률이 우선 적용된다.
Q. 김영란법이 대학가에 미칠 영향을 어떻게 보나요?
A. 그동안 논문 심사 시 부정적 관행이 많이 있어왔다. 법이 제정됨에 따라 논문 심사 관련한 거마비, 식사 제공 등의 부패 관행이 근절될 것으로 기대된다.
*김영란법 적용 사례에 대한 궁금한 점은 국민권익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글 김승연 황경선 대학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