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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캠퍼스씨네이십일 Dec 23. 2016

세상 쓸데 없는 도전_나만의 기네스북 만들기

'은시기북'에 도전해보자

부평역은 우리 집에서 걸어서 15분이면 도착하는 거리에 있다. 동네 친구들끼리는 “부평역 분수대 앞에서 보자”고 하면 누구나 알아듣는 랜드마크다. 이곳 지하상가는 ‘단일 면적 세계 최대 점포 수’ 부문에 1408개로 기네스북에 등재되어 있는데, 나는 평소 이 사실에 왠지 모를 자부심을 느끼고 있었다. 서울 사는 여자친구와 어느 날 지하상가를 지나다가 “여기가 기네스북에 올라 있어”라고 자랑했더니 여자친구는 “네가 기네스북에 오른 것도 아닌데 왜 자랑스러워하냐”며 통박을 주었다. 평소에도 꼬투리를 잡으려고 안간힘을 쓰는 사람이기에 그러려니 했는데, 문득 의문이 들었다. 여자친구 말이 맞지 않나? 내가 지하상가를 지은 것도 아닌데…. 나 스스로 기네스북에 도전해보자! 싶었다. 만화 <괴짜가족>의 고테츠도 기네스북에 도전하곤 했다. 기네스북이 진기한 세계 기록들을 모은 것이라면 나는 우주의 기록을 모은 ‘은시기북’을 만들기로 결심했다.


가장 인기 많은 사나이

아직까진 공백인 은시기북이기에 뭐라도 채워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잠깐 동안 온갖 도전거리를 상상해보았는데, 기네스북의 경우 새로운 기록을 세워 책에 등재되기 위해 어떤 위험도 마다지 않는 사람들이 많으나 평소 윤리와 상식을 중시하는 나로선 괴상한 도전은 시도하지 말자고 다짐했다.

첫 기록은 특별해야 한다는 강박에 사로잡혔다. 그래서 과거에 있었던 일이지만, “2학년 6반에서 제일 인기 많은 사나이” 부문에 오른 수상자로 조은식을 선택했다. 2004년 여름방학이 지났을 무렵 대정 초등학교 2학년 6반에서는 대대적인 짝꿍 바꾸기가 이루어졌다. 박금자 담임 선생님께서는 남자 학우들이 교실 뒤에 일렬로 서 있으면 반대편에 서있던 여자 학우들이 달려가서 짝을 정하는 방식을 취하셨다. 거짓말 하나 보태지 않고 그때 모든 여자 학우들이 조은식 앞에 줄을 섰다. 짝은 가위바위보를 통해 공평하게 정해졌지만 조은식이 2학년 6반에서 가장 인기 많은 사나이라는 사실은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등교 준비 ‘요이~ 땅’

두 번째는 ‘아침에 일어나서 학교 갈 준비 빨리 하기’ 도전이다. 아침 8시30분에 일어나서 샤워-머리 감기, 양치질, 머리 말리기, 옷 입기까지 전부 17분42초에 해냈다. 평소 게으르고, 새벽 늦게까지 깨어 있거나 과학적으로 아침 시간은 두 배로 빨리 흐른다고 믿는 사람이 이 기록으로 이 부문에 올랐다는 건 정말 놀라운 사실이 아닐 수 없다.



맥주 빨리 마시기

다음으로는 한국에서 기네스북에 오를 기록 측정을 대행하고 있는 한국기록원의 기록들을 살펴보았다. 그중에서도 맥주 1000cc를 가장 빠르게 마신 사람의 기록이 32.50초였다. 기네스 관련 글을 쓰다보니 갑자기 기네스가 마시고 싶어졌다. 평소 맥주를 아주 잘 마시는 조은식은 자신만만하게 기네스 맥주 1000cc 빨리 마시기에 도전했다. 4분04초로 아깝게도 한국 기록원 기록에는 미치지 못했으나 은시기북에는 오를 수 있었다.


눈 가리고 귤 까먹기

눈 가린 상태에서 오렌지 껍질을 벗기고 먹는 걸 17.14초 만에 해낸 사람은 기네스북에 그 이름을 올렸다. 오렌지보다 귤이 맛있고, 때마침 집에 귤이 있기에 오렌지 1개 크기와 비슷한 귤 3개로 도전했다. 1분24초 기록으로 기네스북에는 못 미쳤지만 앞이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도 조은식은 귤 껍질을 한번도 끊지 않고 까는 진기한 광경을 연출해냈다.



코로 타이핑 치기

다섯 번째로 ‘코로 타자 쳐서 문장 빨리 만들기 세계 신기록에 도전합니다’ 라는 문장을 46.40초 만에 완성한 기네스북 기록에 도전하였다. ‘은시기북에, 나의 코를 이용하여, 최대한 빠르게 이 문장을 씀으로써 기록에 도전합니다’ 라는 문장을 코로 썼는데 5분02초가 걸렸다. 코피가 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지만 모든 도전은 여동생 조주연의 감독 아래 안전하게 이루어졌다. 



소변 참기

만화 <괴짜가족>의 주인공 고테츠는 일부러 극한 상황까지 오줌을 참았다가 배출한다. 그러면 기분 좋은 상태가 극한에 이른다는 이유에서였다. 7살 때 이미 꽉꽉 막힌 고속도로 위에서 4시간15분 동안 오줌을 참은 경험이 있는 조은식은 가벼운 마음으로 도전하였다고 한다. 그런데 엄마가 아침으로 해주신 당근주스를 마시고 나서야 소변 참기에 도전 중이라는 사실이 떠올라 아차 싶었다. 그날 아침 9시20분에 당근주스 사건이 발생하였고, 몇분 지나지 않아 맥주 1000cc사건이 터졌다. 오전 11시07분부터 신호가 왔으며 결국 오전 11시47분에 조은식은 도전을 종료하였다.


모르는 사람에게 ‘감사하다’ 듣기

여행을 다녀보니 타지에서의 도움은, 정말 피부로 느낄 수 있는 고마움이었다. 그래서 ‘하루 동안 모르는 사람에게 감사하다는 말을 듣는 수’에 도전해보기로 했다. 외국인이 어디에 많을까, 후보지는 여럿 있었다. 결국엔 우리 집에서 제일 가까운 곳의 이화여대 주변으로 갔다. 역시나 중국인 관광객들을 기수로 다양한 국적의 사람들이 거리 곳곳을 누비고 있었다. 사진 찍는 사람들에게 가서 “사진 찍어드릴까요?” 라고 먼저 말을 걸었다. 중국인들도 사진 찍을 때 “이, 얼, 싼”을 말한다는 걸 알았다. 그러다가 친해져서 이대 앞 ‘퀸즈 베이글’이나 ‘타코앤라이스’ 같은 맛있는 맛집을 추천해주기도 했다. 좀 더 같이 있고 싶은 그룹도 있었지만 기록을 쌓기 위해서 성급한 안녕을 말하기도 했다. 그들 중 몇명에겐 서울에서 지하철을 이용해 갈 수 있는 한국의 명소들을 알려주기도 했다. 지하철, 이대 안, 이대 주변 거리를 걸으면서 3시간 동안 ‘Thank you’라는 말을 37번 들었고 ‘감사합니다’라는 말을 1번 들었다. 기록을 위해서가 아니더라도 종종 이런 활동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영화 오래 보기

해질녘부터 도전을 시작한 부문은 ‘영화 오래 보기’ 부문이었다. 한국 기록원에는 70시간51분의 기록 보유자가 있었다. 때마침 <신비한 동물사전>이 개봉한다고 해서, <해리 포터> 시리즈를 몰아보기로 결심했다. 분명 4편까지 보는 것까지는 기억이 나는데 눈을 떠보니 아침이었다. 그래서 기록 측정도 하지 못했다. 영화제에서도 하루에 4편 보면 체력이 고갈되는 걸 느낀다. 제일 자신 있는 부문이었는데, 살도 빼고 운동도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은시기북에 실릴 도전은 앞으로도 계속된다. 자기 이름을 단 ‘OOO북’에 관심이 있으신 분은 캠씨네리로 연락주시길 바란다. 다 같이 팀을 짜서 도전할 부문도 많으니 말이다. 땅에 떨어진 국격을 우리의 위대한 도전으로 되살려보자.


글 사진 조은식 대학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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