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 목욕탕> 스기사키 하나 인터뷰
<행복 목욕탕>에서 혼신을 다해 엄마의 강인함을 좇는 아즈미를 연기한 스기사키 하나는 이 영화로 일본 아카데미에서 여우조연상 수상을 비롯해 일본 내에서 7개의 영화상을 수상했다. <행복 목욕탕>의 감독 나카노 료타는 아즈미 역에 스기사키 하나를 염두에 두고 시나리오를 썼다고 한다. 일본에서는 미래가 기대되는 신진 여배우에 거론되고, 지금은 기무라 다쿠야와 촬영한 <무한의 주인> 개봉을 앞두고 있다. 열아홉의 단단한 여배우, 스기사키 하나다.
극장에서 한국 관객과 만난 소감이 궁금하다.
출연한 영화가 다른 나라에서 개봉할 때 인사를 온 게 이번이 처음이다. 비행기를 타기 전부터 설렜는데 관객을 만나서 더 떨리고 감동이었다. 한국 관객이 영화가 끝나고 일제히 손을 들고 질문하는 모습에 놀랐다. 일본에서는 관객과의 대화 시간에 질문을 많이 하지 않는다. 나 역시 GV가 있는 영화를 관객으로 보러 가기도 하는데 말하고 싶은 게 있어도 수줍어서 손을 들지 못한다. 묻고 싶은 걸 자신 있게 물어보는 모습이 멋있게 느껴졌다.
<행복 목욕탕>으로 일본에서 수상을 많이 했다. 특히 제40회 일본 아카데미상에서 미야자와 리에는 우수 여우주연상을, 스기사키 하나는 우수 여우조연상을 나란히 수상했다. 더욱 특별한 영화로 기억될 것 같다.
일단 너무 기쁘다. 이 영화를 촬영할 때 현장이 무척 따뜻했다. 감독님이 너무 좋으신 분이라 스탭이나 출연자들이 이 영화를 다 같이 너무 사랑했다. 따뜻한 마음들이 넘치는 영화에 출연한 것만으로도 기뻤다. <행복 목욕탕>을 너무 사랑해서, 보답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는데 이런 수상으로 조금이나마 보답이 되지 않았을까 싶다. 모든 게 감독님 덕분이고 이런 멋진 작품의 일부분이 될 수 있다는 게 행복하다. (웃음)
영화에서 아즈미는 학교 폭력을 당한다. 처음에는 당하기만 하다가 엄마가 준 ‘승부 속옷’으로 용기를 낸다. 노출도 있고, 감정적으로 힘들었을 것 같다.
촬영 들어가기 전에 감독님이 여러 지시들을 하셔서 아즈미로 충분히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이야기가 전개된 이후에는 ‘내가 이 장면을 어떻게 연기할까’ 고민하기보다는 아즈미가 되어 ‘엄마를 위해 이걸 해내야 해’라는 마음으로 했던 것 같다. 물론 가슴이 두근두근하기도 했고, 평소의 나라면 그런 용기를 내지 못했겠지만 엄마를 생각하며 맞섰던 것 같다.
아즈미 입술을 하면 앙다물고 눈물을 참는 장면이 생각난다. 아즈미를 어떤 아이라고 생각하고 연기했나.
처음 대본을 받았을 때 감독님이 아즈미라는 인물을 그릴 때 나를 염두에 뒀었다는 얘기를 듣고 촬영에 들어갔다. ‘아즈미는 이런 식인가’라고 생각하면서 대본을 읽었는데 촬영하면서 감독님과 함께 다시 만들어간 장면들이 많았다. 예를 들어 학교에 가기 싫어하는 아즈미를 엄마가 억지로 일으켜서 몸싸움하는 장면이 있다. 내 나름대로 생각한 아즈미에 대해 그리면서 내 안에 있는 파워를 엄마에게 다 쏟아내는 식으로 엄마를 밀치면서 맞섰다. 그걸 본 감독님이 “아즈미는 그렇게 강한 아이가 아니다. 나약한 아이이고 그런 자신의 존재를 한심하게 생각하는 아이”라고 하셔서 아즈미의 나약함을 내가 어떻게 체현할 수 있을지 고민을 많이 했다.
오다기리 조와 드라마에 이어 오랜만에 만났다. 다시 부녀로 만나 연기하니 어땠나.
이전에 함께했던 드라마 <가족의 노래>에서도 부녀 사이였는데, 이번에 촬영장에서 다시 만나니 설레기도 하고 반갑기도 했다. 다시 만난 날 너무 기뻤는데 오랜만에 그를 다시 만나니 좋으면서도 수줍은 마음이 들어 “잘 부탁드립니다”라고밖에 인사하지 못했다. 현장에 오다기리 조가 있는 날에는 안심이 되었다.
감독님이 촬영 전에 미야자와 리에를 엄마라고 부르고 매일 연락을 주고받을 것을 주문했다고 들었다. 아직도 엄마라고 부르나.
아직도 엄마라고 부른다. (웃음) 아유코 역할을 한 이토 아오이와 함께 미야자와 리에의 연극도 보러 가고 함께 밥도 먹었다. 감독님이 촬영 전에 미야자와 리에와 관계를 미리 만들도록 정해주신 규칙들이 있었다. 리에를 엄마라고 부를 것, 존댓말을 쓰지 말 것, 매일 문자를 주고받을 것. 덕분에 촬영 전에 많이 친해졌고 역할에 편하게 다가갈 수 있었다. 감독님이 그런 환경을 만들어주는 영화는 많지 않다. 원래 나는 ‘온·오프’가 어려운 편이다. ‘나’와 ‘역할’ 사이에서 스위치를 잘 바꾸는 편이 아니라 역할에 들어갔다 나오는 것을 어려워한다. 촬영 기간에는 평소에도 그 역할의 감정으로 지내는 게 편한데 이번 영화에서는 그렇게 있을 수 있어서 편했다.
미야자와 리에가 연기하는 엄마 후타바와 아즈미의 관계가 영화에서 중요하다. 함께 촬영하는 시간이 길었을 것 같은데.
아무래도 연기하면서 미야자와 리에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았다. 영화 전체에서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게 하는 중요한 장면에는 두 사람이 마주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그런 장면을 촬영하는 날에는 긴장을 많이 했다. 리에가 배우로서 놀라운 부분은 상대를 위해서도 연기한다는 거다. 카메라가 나만 촬영하고 있는 장면에서는 본인의 얼굴이 나오지 않기 때문에 연기를 할 필요가 없는데, 맞은편에서 리에는 나를 위해서 본 촬영과 똑같은 에너지로 연기를 해주셨다. 그런 연기가 앞에 있으면 나 역시 감정이 충실하게 나와서 내 안에 있는 것을 다 꺼내놓을 수 있었다. 혹시 내 실수로 촬영이 반복되면 “좋은 영화를 만들기 위해 여러 번 찍는 것이니 어려워하지 말라”고 힘을 주셨다. 연기만이 아니라 사람들을 대하는 모습에서도 존경스러운 배우였다.
영화 속에서 감정 폭이 가장 크고, 또 영화 시작과 끝에서 가장 많이 성장하는 게 아즈미다.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은 무엇인가.
후타바 엄마에게 친엄마에 대한 고백을 받고 차에서 끌려 내려와 혼자 남는 장면이다. 그 사실을 대본에서 처음 읽었을 때에도 충격적이었는데, 그 장면을 촬영할 때에는 이미 엄마에 대한 사랑이 매우 깊어졌을 때였다. 그때에는 세상이 끝나버린 것처럼 괴롭고 무서웠다.
평소 어떤 영화를 좋아하나.
이와이 슌지 감독의 <스왈로우테일 버터플라이>(1996)와 야자기 히토시 감독의 <3월의 라이온>(1991)을 좋아한다. 한국영화는 김기덕 감독의 <사마리아>를 최초로 봤는데 충격적이었다. 김기덕 감독 작품은 다 찾아서 본 것 같다.
순수한 초등학생으로 시작해 어두운 성격으로 변하는 <야행관람차>의 연기로 호평을 받았다. 다양한 성격의 역할들을 맡아왔는데 앞으로는 어떤 연기를 하고 싶나.
아마 다른 영화에 들어간다 해도 내가 만나게 될 현장에는 온갖 다양한 것들이 기다리고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중에는 내가 너무 좋아하고, 즐겁게 생각하는 게 담겨 있을 수도 있고 때로는 이해가 안 되고 고민스러운 것도 있을 것이다. 배우로서 내가 하고 싶다거나 좋아하는 것, 쉬운 것만 골라서 일을 해나가는 건 옳지 않은 것 같다. 그보다는 거기서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 마음이 좋다. 고민이 되어도 맞서나가면서 미지의 부분에 대해서 애정을 가지고 임하는 배우가 되고 싶다.
<물을 데울 정도의 뜨거운 사랑>이 원제이지만 한국에서는 <행복 목욕탕>으로 개봉했으니 ‘행복’에 대한 질문을 해야겠다. 가장 최근의 행복은 무엇이었나.
음, 어제 한국에서 육회를 먹었다. 아, 굵직하고 늠름하게 누워 있는 육회를 먹는 순간 너무 행복했다. 일본에서는 육회를 일반 식당에서 쉽게 접할 수 없다. 아, 물론 그전에 한국 관객을 만나서 너무 행복해서 육회가 더 맛있었을 것이다. (웃음)
글 김송희 / 사진 오계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