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자 출신인 홍길동은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고, 형을 형이라 부르지 못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다. 같은 이름의 대학이지만, 대학 이름을 말하지 못하는 서자들이 수두룩하다. 적자와 서자의 갈등은 현대판 본·분교 학생간의 갈등으로 변모됐다.
연세대 원주캠퍼스(원주시 흥업면 소재) 새내기인 한 학생은 SKY 대학에 입학했다는 자부심을 갖고 핑크빛에 부푼 대학 생활을 하려 했다. 하지만 SKY라 믿었던 대학은 엄연히 다른 학교였다. 본교, 분교 대학 카페와 커뮤니티가 따로 있을뿐더러 분교 캠퍼스를 조롱하는 조어가 심심치 않게 회자되곤 했다. 원세충, 조려대충 등 해당 대학 캠퍼스를 비하하는 공격적인 말투는 기본이며, 요즘에는 인증하기 문화도 확산된 상태다. 또 서열을 나누기 위해 캠퍼스 합격 인증은 필수가 됐다.
현대판 적자와 서자의 갈등
최근 본·분교 문제가 재점화된 단적인 사건도 있었다. 고려대 본·분교 통합 해프닝 경우를 보자. 이러한 이야기가 새어나오기 시작하자 고려대 안암캠 학생들은 반발했다. “다른 학교인데 굳이 하나로 편입해야 하냐”는 의견이었던 것. 안암캠쪽에선 논란을 잠재우려 했지만 때는 이미 늦은 상태였다. 학내 커뮤니티에선 이미 치열한 공방전이 오고 갔다. 이에 세종캠 총학생회쪽은 “지나친 험담을 할 경우 법적조치를 강행하겠다”는 초강수까지 두기에 이르렀다.
더불어 에리카 똥군기 사건도 살펴볼 지점이 있다. 에리카의 모 학과 새터에서 발발한 문제를 들어보자. 해당 학과에선 새벽임에도 불구하고 군기를 잡기 위해 소란을 벌인 적이 있다. 이로 인해 같은 숙소에 묵는 사람들에게 피해를 줬고, 피해자들은 한양대 과잠을 보고 본캠 학생들이라 오해했다. 추후 피해자들은 SNS에 똥군기 사건을 한양대 본캠이라 폭로했고, 본캠 학생들은 분개했다. 이로 인해 과잠에 캠퍼스 이름을 적는 사태마저 부추기는 상황이다.
애당초 분교는 수도권 분산 정책의 일환으로 만들어졌다. 하지만 좋은 취지는 상실한 지 오래다. 적자와 서자라 편을 가르듯 많은 문제를 야기했다. 본·분교를 둘러싸고 ‘등록금을 똑같이 내고도 혜택 면에서 받는 차별’이나 ‘같은 학교냐 아니냐’ 식의 설전은 도돌이표처럼 회자될 수밖에 없고, 쉽게 결론이 나지 않고 있다. 어디에서 갈등이 시작된 것일까. 두 캠퍼스 사이엔 여전히 좁혀지지 않은 문제가 있다. 이에 대해 본·분교 대학생들은 어떻게 생각할까. 진솔한 생각들을 나눠봤다.
본교의 이야기
Y대 H씨
특별하게 교류가 있지 않은 이상 형제 학교 등 친근한 느낌을 받지는 않는 것 같다. 몇몇 사건들이 발생한다든가 하는 일이 없다면 단순히 ‘다른 학교’라는 느낌이 강하다. Y대학교의 경우 학교끼리 무언가를 같이 활동하는 경우가 없기 때문에 본·분교에 대해 차별을 느낄 일이 없고 ‘타 학교’라 느낄 정도로 신경 쓰지 않는 것 같다.
H대 P씨
근처에 위치한 학교에는 반가움이 들지만, 오히려 분캠은 애초에 먼 위치에 있어 다른 학교라는 느낌이 강하다. 과잠에 캠퍼스 이름을 적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본·분교에 대한 재단 차원의 차별은 없는 것 같다. 본교여서 그럴 수도 있지만 직접적으로 느낀 적은 없다. 본교의 학생들은 대부분 분캠에 좋은 인식을 가지고 있지는 않다. 큰 사건이 터진 적은 없었지만 학교 관련 커뮤니티에서 크고 작은 문제들이 발생하는 중이다.
C대 L씨
평소엔 아무런 생각이 없었는데 커뮤니티에서 본캠 보고 본인들이 학비 횡령해서 새 건물 지은 것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을 보고 타 학교라는 생각이 드는 중이다. 그리고 전과를 목적으로 분캠 가서 전과제도 악용하는 사람이 많아서 불쾌할 때도 많다. 과잠 등에서도 캠퍼스 이름을 적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솔직히 같은 학교라고 하기엔 입결 차이가 정말 크다.
H대 L씨
학교가 졸업장에 본교와 분교를 구분하지 않는다면 분교인들은 별 말 없겠지만 본교인들은 손해를 본다 생각할 것 같다. 분교 구분을 한다고 해도 분교인들은 크게 반발할 것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재단이 어떻게 두 학교의 예산을 나누는진 모르겠지만 축제의 규모나 편의시설 수준으로 봤을 때 본교에 돌아오는 예산이 분교에 비해 부족해 보인다. 분교를 세운 것 자체엔 문제가 없다고 보지만 교육의 장이라는 점에서 봤을 때 분교가 필요한가 싶다. 차라리 본교에 더 투자하여 교수 한명당 가르치는 학생 수를 줄여 교육의 질을 높이는 것이 더 낫다고 여긴다. 아니면 연세대처럼 본교와 분교 구분을 없애고 입결 커트라인을 본교에 맞춰 모집하는 게 나은 것 같다.
분교의 이야기
Y대 K씨
형제 학교라 하지만 엄연히 다른 학교다. 과잠에도 굳이 캠퍼스 이름을 적어야 할지 의문이 든다. 본·분교 같이 다니는 학생의 경우도 있어 애매하다는 생각이 든다. 대신 분교 같은 경우 장학금 혜택이 적은 것 같다. 본교는 셔틀버스 운행이 잘돼 있는데 분캠은 잘되어 있지 않은 편이다.
H대 L씨
학교 신문사에서 부편집장을 하고 있는지라 형제 학교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그런 생각 속에서 기생이나 공생이 아닌 쌍생을 도모할 수 있다는 생각도 있다. 대신 분교에선 본교에 타격이 가지 않도록 자체적으로 문제 해결을 알아야 잘해야 하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본다. 과잠에 캠퍼스 이름을 적는 것은 개인의 자유라고 생각한다. 대신 과잠을 입고 있다면 조금은 평소보다 몸과 마음을 조심해야 한다고 본다. 혹여 잘못을 저지른다면 학교 구성원 전체에 피해를 끼치게 되기 때문이다. 본·분교간에 큰 차별은 없다고 생각한다. 학교만큼은 재정적으로 명징하게 분리되어 있기에 혹여 차별이 있다 한들 충분히 합리적인 선에서 처리된다. 솔직히 말하자면 대부분의 분야에서 본교보다 잘 지원되는 편이다.
K대 P씨
형제 학교라고 생각한다. 사실 본교와 동질감을 많이 느끼는 편이다. 학교 축제도 같이 진행하고, 통폐합에 대한 이야기도 나와서 긍정적으로 바라보고 있다. 타 분교에 비해서 본교 수업 듣는 것도 용이해서 3, 4학년 때는 본교에서 주로 수업을 듣는다. 그러나 타 대학이나 본캠에서 욕을 많이 먹기도 해서 위축감이 느끼고 있다.
H대 Y씨
본교 학생들을 대부분 분교를 다른 학교라고 생각한다. 현실적으로 입결 차이가 나기도 하고 학생들도 같은 수준의 학교라곤 생각하지 않는다. 서울캠퍼스로 전과하거나 이중전공 합격하면 기분 좋게 축하해준다. 학벌 세탁한다고 꼬인 시선으로 보는 학생들도 몇몇 있지만 그건 서울캠퍼스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졸업장 문제에 있어선 졸업장에 분교 명시가 없어도 학과명이 다르기에 분교와 본교 구분은 그닥 필요 없을 것이다. 현재 분교엔 자연대, 공대가 있어서 서울캠퍼스에서 진행할 수 없는 수업을 많이 진행하고 있다. 학교가 분교를 만든 이유는 욕심이라기보단 필요에 의해서 만든 게 아닐까 하고 생각한다.
타 대생의 이야기
E대 B씨
다른 학교로 느껴지는 것이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수능성적이 높고 내신이 높은 학생들이 본교에 가는 것이 일반적이기 때문이다. 과잠에 캠퍼스를 적고 적지 않는 것은 개개인의 자유니 본인의 선택에 대해 뭐라 할 수는 없다. 실질적으로는 본교와 분교는 나뉘어져 있을 뿐이지 각각 다른 학교가 아니기 때문이다. 분교와 본교를 차별해서는 안 되지만 분교에 다니는 학생들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이 현저하게 다른 것은 현실이다. 본교로부터 멀리 사는 학생들에게도 같은 질의 교육을 제공해주기 위해 만들어진 게 분교인데, 그러한 분교가 오히려 학생들에게 스트레스를 떠안겨주고 있다는 게 참 모순적인 것 같다.
S대 L씨
각자 다른 학교라고 생각한다. 분위기도 다르고 입결도 다르고 학교 돌아가는 것도 전혀 다르다고 생각한다. 유일하게 같은 거라고는 학사일정 정도가 전부라고 생각한다. 형제 학교라 말하며 동일선상에 놓지 않았으면 한다. 차라리 부자학교라 하는 게 이해가 쉬울 듯하다. 대체로 본캠이 키워놓은 걸로 분캠 만드는 경향이 크기 때문이다. 과잠에 대해서도 캠퍼스를 명시했으면 한다. 대학 서열화의 문제가 있어서 좀 그렇긴 하지만 어쨌거나 수준 차이가 있기 때문에 더더욱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과외를 구할 때도 연고대 분캠보다 중경외시라인(중앙대, 경희대, 한국외대, 서울시립대)의 학교가 더 잘할 확률이 높은데, 분캠을 생략했을 경우 누굴 택할지 알 수 없는 일이다. 본캠 네임밸류를 악용하며 타인에게 피해를 줄 수 있는 사태를 방지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본·분교 정책에 대하여
타 대생 J씨
분교와 본교는 엄연히 다른 학교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만약 두 학교에 곂치는 과가 없으면 학생들끼리 구분을 할 수 있기에 졸업장에 분교를 굳이 표기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그러나 겹치는 과가 있다면 본·분교 구분 표기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분교를 만든 것에 대해선 부정적인 입장이다. 두 학교가 나눠지고 각 학교의 학생들을 남보다 못한 껄끄러운 사이가 된 것 같다. 이렇게 학생들에게 피해를 입힐 바엔 만들지 말아야 했다고 본다.
타 대생 A씨
안 만드는 게 최고지만 대학도 하나의 사업체니까 만들지 말라고는 못하겠다. 다만 만들 거면 관리와 처신을 제대로 했으면 좋겠다. 아예 나눌 거면 명확한 기준하에 나누어서 동등하게, 혹은 서울과 지방에 있는 경우 지방에 더 많은 혜택을 줘서라도 어느 정도 맞춰주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 명확한 기준하에 분캠하는 건 캠퍼스 교육의 질을 높일 수 있다고 생각해서 찬성한다.
H대에서 이뤄진 본·분교 이야기
본교 B씨
분교와 본교를 나누는 목적 자체에 대해 생각해보아야 할 것 같다. 지역경제를 살리는 목적 등을 포함한 정부의 지시가 그 원인이라면 적어도 교육 분야만큼은 그러한 요소들이 개입되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또한 분교가 대학 서열화에 이바지한다면 그 또한 반대근거가 되는 것 같다. 그러나 교육·경제학적으로 바라본다면 분교 시행이 올바르고 신중한 절차를 통해 더 많은 학생들에게 양질의 교육을 제공할 수 있다면 긍정적으로 평가될 점이 일부 존재할 것 같다.
분교 C씨
애초에 만들지 않는 게 좋은 것 같다. 서러운 경험들도 많이 했다. 특히 우리나라 본·분교 정책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것 같아서, 과연 현재 이 제도에 이점이 있는가라는 생각이 든다. 프라이드가 있는 몇몇 과라면 상관없지만 대체적으론 소외감을 많이 느끼는 것 같다.
조사를 통해 알 수 있듯, 대다수의 대학생들은 본·분교 문제에 대해 다른 캠퍼스란 인식을 가지고 있다. 동일한 이름만 가졌지 입결이 다르고, 교류 부족 등 많은 이유를 들 수 있다. 이러한 문제점은 여전히 진행 중이지만, 대학본부쪽은 해결하려는 적극적 입장을 취하고 있진 않다. 하나의 학교를 주장하며 학벌 세탁이 가능하다는 달콤한 말로 학생들을 꾀기 바쁘다. “소속 변경제도”와 “복수전공” “이중전공” 등의 제도를 매번 강조하면서 학생 유치에만 급급해 보인다. 이쯤 되면 학교는 학생을 상대로 장사하는 곳이 아닌가.
결국 본·분교 문제의 첫 단추를 대학본부가 시작한 만큼 수습도 해야 하는 게 맞다고 본다. 대학본부에서 처음부터 비슷한 학과를 많이 만들지만 않았더라면 분교의 폐해도 나타날 일이 없었을지 모른다. 무엇보다 본·분교 통합 어려움을 겪지 않았을 것이다. 이 때문에 본교와 분교는 남보다 못한 사이가 되어 서로를 물고 헐뜯는 상황이 됐다. 또 같은 학교라고 말할 수 없는 불편한 상황마저 만들었다. 이 문제는 대학본부쪽에서 책임을 지고 해결하는 게 당연하다. 대학은 학문을 닦는 곳이지 학생들을 상대로 장사하는 곳이 아니다. 학생들을 위해 지속적인 관심을 갖되 본·분교 문제는 꾸준히 중재해줬으면 하는 바람이다.
글·사진 김선화 박예담 박형준 대학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