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캠퍼스씨네이십일 Jun 19. 2017

북한 옥류관 냉면 맛본 자의 평양냉면 도장 깨기

 

글·사진 김민기 대학생 기자     

내가 평양냉면을 처음 맛본 것은 엄연히 따지자면 북한에서였다. 중학생 때였는데 가족 여행으로 금강산에 갔다. 그때는 내가 냉면을 먹었던 곳이 옥류관이라는 사실을 몰랐다. 가이드의 설명 중 가장 인상에 남았던 것은 주방장이 평양의 옥류관과 같은 기계가 아니면 면을 뽑지 않겠다고 해서 같은 기계를 공수하느라 개업이 늦어졌다는 이야기였다. 평양냉면은 그 정도로 섬세한 음식이구나 생각했다. 나는 그날 평양냉면을 아주 맛있게 먹었다. 요즘 미디어에 의해 평양냉면이 마치 미식가의 음식처럼 되어버려서 평양냉면을 좋아한다고 하면 속된 말로 ‘꼴값’으로 보는 사람들이 많지만 나는 그날 이후 평양냉면의 맛을 잊지 못했다. 나는 올해도 어김없이 무더워지는 여름을 맞아 평양냉면 맛집 기행을 떠나기로 했다. 이름하야 ‘평양냉면 도장 깨기’. 5일 동안 10곳의 평양냉면을 먹어보자. 조금 걱정되기는 하지만 사실 나는 하나에 꽂히면 그것만 하는 스타일인데, 가령 신발 하나를 5개월 내내 신다가 더이상 못 신게 되었다든지 한곡을 한달 동안 듣는다든지 하는 식이었다. 왠지 충분히 가능할 것만 같았다.     

우래옥

첫날 오후 가장 먼저 우래옥으로 향했다. 평양냉면 집은 대부분 점심시간에 오픈을 하기 때문에 아침에 먹는 건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우래옥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평양냉면집이다. 우래옥을 가보면 정말 인상적인 모습이 있다. 우래옥에서 수십년을 일하신 할아버지가 항상 홀 중앙에 앉아 계시는데 지긋하게 나이 드신 할아버지들이 가게에 오셔서 서로 “오랜만에 오셨다”며 인사를 나눈다. 아! 저 정도는 돼야 단골이라 할 만하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우래옥의 냉면은 첫입이 가장 맛있다. 미친 듯이 쏟아지는 육향을 감당하기란 쉽지 않다. 단점이라면 단점일 수 있겠지만 면을 먹을 때도 육향이 난다. 우래옥의 육수는 천천히 마셔야 한다. 우래옥의 장점이라면 냉면을 먹기 전 가장 먼저 걷어내는 계란이 없다. 겉절이는 살짝 신맛이 있지만 아주 달고 맛있다. 면수도 적당한 메밀향과 농도를 가지고 있다. 원조답게 면수까지 신경 쓰는 듯한 인상이다. 값이 비싸서 그런지 고기 고명도 여러 점 올라간다. 다만 김치랑 배가 고명으로 상당히 많이 올라가는데 면을 먹을 때나 육수를 마실 때 조금 방해가 된다. 하지만 역시 명가라는 느낌을 강하게 받는다. 우래옥은 을지로4가역에서 가까운 곳에 위치해 있다.     

주소 서울 중구 창경궁로 62-29

운영시간 매일 11:30~21:30, 월요일 휴무

전화번호 02-2265-0151     


능라도

오후에는 친구와 약속이 잡혀 있어 강남으로 향했다. 강남에는 대부분 유명한 평양냉면집들  분점이 위치하고 있어 강남에서 회사를 다니는 선배들에게 조언을 구했다. 여러 곳 중에서도 선배들은 유독 능라도를 손꼽았다. 한 선배는 개인적으로 우래옥보다 능라도를 좋아한다고 말했다. 능라도의 본점은 판교에 있다. 능라도 강남점은 분점이라고는 하나 <미슐랭 가이드 2017>에 소개될 만큼 그 실력을 자랑하는 곳이었다. 저녁시간 직장인들이 쏟아져 나올 것만 같아 길을 조금 서둘렀다. 그런데 의외로 자리가 많았다. 아마 언주역 근처에 위치하고 있어 거리감이 조금 있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맛은 전체적으로 평범하고 조화로운 것 같았다. 마치 정석 같은 느낌이었다. 특징이라면 파가 들어가 국물을 마실 때 파가 강하게 씹힌다는 것이다. 독특한 것은 면수가 매우 진해 메밀차 같다. 색은 거의 팥색을 띤다. 하루에 냉면을 두번 먹어본 적은 없어 조금 걱정했는데 역시 맛있게 한 그릇 비워냈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도 만족하는 모습이었다. 5년 만에 만나는 친구였는데 둘이서 꽤 괜찮은 저녁을 먹었다.     

주소 서울 강남구 언주로107길 7

운영시간 매일 11:30~21:30

전화번호 02-569-8939       

   

유진식당

다음날 아침, 일요일이어서 늦잠을 자고 싶은 마음을 억누르고 일찌감치 을지면옥으로 향했다. 이럴 수가! 을지면옥은 일요일에는 문을 열지 않았다. 정해놓은 냉면집 리스트를 급하게 뒤지기 시작했다. 근처에서 갈 수 있는 곳은 2곳이었다. 이날은 나만큼 평양냉면을 좋아하는 친구와 함께했다. 우리는 유진식당으로 향했다. 유진식당은 저렴한 가격으로 유명한 곳이었다. 대학생들 입장에서 냉면 값은 꽤 비싼데 유진식당은 우래옥의 거의 절반에 가까운 가격이었다. 점심시간이어서 그런지 사람들이 길게 줄을 서고 있었다. 이전에 갔던 냉면집들과는 다르게 고등학생 때 가던 허름한 분식집 같은 모습이었는데 그 모습이 좋았다. 이렇게도 평양냉면을 먹을 수 있구나. 매우 저렴한 냉면 값 덕분에 우리는 수육 한 접시와 소주 한병도 시켰다. 수육 역시 가격이 저렴했다. 냉면은 전체적으로 시고 집간장 맛이 강하게 났다. 면은 매우 쫄깃하고 메밀향이 거칠게 났다. 가장 만족스러운 것은 수육이었는데, 단돈 1만원으로 이런 수육을 먹어도 되나 싶었다. 아쉽게도 점심시간에는 소주를 테이블당 한병밖에 팔지 않는다. 손님이 많으니 당연히 이해해야 할 부분이다. 유진식당은 탑골공원 옆에 있다. 종로3가역과도 가까우나 종로3가역이 매우 크다는 것을 유의해야 한다.     

주소 서울 종로구 종로17길 40(지번 낙원동 221 지도보기)

운영시간 매일 10:30~22:00, 월요일 휴무

전화번호 02-764-2835        

  

평양면옥

먹은 것을 소화시키기 위해 근처 명동으로 향했다. 친구와 함께 쇼핑을 할 생각이었다. 다음 행선지가 동대문역사공원역 근처의 평양면옥이었기 때문에 괜찮은 선택이었다. 명동에서 기분 좋게 셔츠 하나를 사들고 평양면옥으로 향했다. 역시 줄이 길게 늘어져 있었다. 줄을 서고 있는데 한분이 앞으로 가라며 우리를 가리켰다. 알고 보니 우리가 서 있던 줄은 발레파킹을 기다리는 줄이었다. 줄을 유심히 볼 필요가 있다. 평양면옥은 만두에 관한 추천의 말이 많아 만두도 한 접시 시켰다. 무려 4끼 연속 냉면을 먹고 있었던지라 걱정은 됐지만 막상 마주한 냉면을 보니 육수부터 들이켜지 않을 수 없었다. 첫맛은 간이 세다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먹을수록 맛있는 육수였다. 코를 박고 먹으니 육향이 은은하게 올라왔다. 아주 기분 좋은 느낌이었다. 메밀향 역시 매우 은은했다. 다만 놀랐던 것은 종업원 아주머니께서 면을 자를지 물어보셨는데 면이 질긴 편에 속하기는 했지만 가위가 필요한 정도는 아니었다. 독특하게 고기 고명은 소고기 2개, 돼지고기 2개가 올라왔다. 만두는 피가 두꺼운 편이었고 두부 위주였다. 집에서 만든 맛이었다. 역시 맛있게 한 그릇 비워냈다. 평양냉면이 과연 물리게 될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주소 서울 중구 장충단로 207(지번 장충동1가 26-14 지도보기)

운영시간 매일 11:00~21:30

전화번호 02-2267-7784     


을밀대

다음날 아침 목적지는 을밀대였다. 며칠 동안 상암에 볼 일이 있어 마포쪽에 있는 냉면집들을 집중 공략할 생각이었다. 주변에서 생각보다 강남점에 대한 평이 엇갈려 본점으로 향했다. 오픈 시간인 11시에 맞춰 정확하게 도착했는데 곧 긴 줄이 만들어졌다. 혼자 간 탓에 냉면 하나를 시켰다. 독특한 것은 면수 대신 뜨거운 육수를 줬다. 냉면은 가본 곳 중 가장 독특한 맛이었다. 그래서 육수가 100% 닭 육수라고 해도 믿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실제로는 소의 다양한 부위를 쓴다고 한다. 불만이었던 것은 육수에 살얼음이 떠 있어서 너무 차가웠다는 것이다. 이가 시릴 정도였는데 맛을 정확하게 느끼기 어려웠다. 선배들이 조언하기로 을밀대는 이른바 ‘거냉’으로 시키라는 말이 있었는데 을밀대는 처음 가는지라 차마 그럴 용기를 내지 못했다. 거냉은 냉면 육수를 미지근하게 조금 데운 것을 말한다. 그래도 육수는 육향이 지배적이었다. 면에서 메밀향을 강하게 느끼기는 어려웠다. 사실 불만이 가장 많았던 곳은 을밀대였는데 이상하게 을밀대는 그 이후에 가장 많이 생각났다. 아무래도 그 독특한 맛 때문이었을 것이다. 다음에 방문했을 때도 이런 맛일지 다시 찾아봐야 할 것 같다. 을밀대는 대흥역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다.     

주소 서울 마포구 숭문길 24

운영시간 평일 11:00~22:00

전화번호 02-717-1922     


동무 밥상

상암에서 일을 마치고 합정에 위치한 동무 밥상으로 향했다. 정말 이러다 입에서 면이 나오는 것은 아닐까? 메밀은 몸을 차게 한다던데 아무리 몸에 열이 많다지만 건강에 무리가 가는 것은 아닐까? 별별 생각이 다 들었다. 동무 밥상은 공간이 매우 협소했다. 이전에 가던 큰 규모의 냉면집이 아니었다. 이미 퇴근을 하고 회식을 하는 직장인들로 가득했다. 대기 명단에도 이미 5팀이 대기 중이었다. 고민 끝에 나는 한끼 정도는 쉬기로 결정했다. 다음날 오전 다시 동무 밥상을 찾았다. 동무 밥상은 옥류관 출신의 요리사가 하는 이북 요리 전문점이다. 나는 혼자 간 것을, 그리고 아침에 간 것을 정말 후회했다. 냉면 말고도 맛있어 보이는 다른 음식들을 많이 팔았다. 다음에는 반드시 친구들과 우르르 몰려가리라! 우선 밑반찬이 아주 맛있었다. 간은 전체적으로 심심했다. 깍두기에서는 알 수 없는 구릿한 맛이 났는데 참 좋았다. 냉면은 면이 굵고 양이 아주 많았다. 특이하게 들깨가 고명으로 올라가고 간장 맛이 강하게 났다. 얼핏 듣기로는 실제 옥류관의 냉면과 가장 닮아 있는 냉면이라고 했다. 메밀향이 매우 은은하게 났고 육향은 솔직히 잘 모르겠다. 특이하게 고기 고명에 다른 간을 한 것 같았다. 신맛과 단만이 강하게 났다. 파와 고추는 아주 소량으로 들어가 육수의 맛을 방해하지 않았다. 동무 밥상은 합정역에서 지근거리에 자리해 있다.     

주소 서울 마포구 양화진길 10(지번 합정동 381-64 지도보기)

운영시간 매일 11:30 - 20:30(브레이크타임 14시30분~17시30분)

전화번호 02-322-6632     


을지면옥

이제는 정말 물릴 법도 한데 내가 그날 저녁 찾은 곳은 을지면옥이었다. 먹고 나면 도저히 이제는 못 먹겠다 싶다가도 막상 식사시간이 가까워오면 생각이 났다. 내가 정말 냉면을 좋아하는구나 싶었다. 을지면옥은 그야말로 아재들 천국이었다. 퇴근 후 저녁시간의 풍경이 좋았다. 일하시는 이모님들의 분위기도 정말 좋아 보였는데 “4시에 온 2층 아저씨 둘이 아직까지도 술을 먹고 있다”라며 “추태도 안 부리고 앉아서 술도 잘 먹는다”라고 이야기하는 식이었다. 혼자 간 덕분에 이모님들의 배려로 1분도 되지 않아 냉면 한 그릇을 받아들었다. 육수가 정말 맑았다. 육수를 마실 때 깨가 씹히는데 마치 소금 알갱이를 씹는 듯 고소하고 짠맛이 돌았다. 한편으로 기분이 좋으면서도 맛을 방해하는 것 같아 아쉬웠다. 고춧가루도 꽤 많이 들어가 있어 칼칼한 맛까지 났다. 육향이나 메밀향은 약하고 간은 적당하다. 이 냉면이 기준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의 맛이었다. 이곳은 그 유명한 의정부 계열의 냉면집인데 돼지를 아주 잘한다고 한다. 물론 혼자라 먹지는 못했지만 말이다. 을지면옥은 을지로4가 출구 바로 앞에 있다. 간판이 없어 지나칠 수 있으니 주의해야 한다. 좁은 통로로 들어가면 넓은 홀이 펼쳐진다.     

주소 서울 중구 충무로14길 2-1

운영시간 매일 11:00~21:00, 일요일 휴무

전화번호 02-2266-7052      

    

서북면옥

다음날 갈 두곳은 동서울쪽이었다. 봉피양 본점을 가기로 마음먹었다. 그런데 상암까지 매일 일을 보러 다니느라 피곤했던 탓인지 냉면을 너무 먹은 탓에 한끼 정도 거르고 싶었던 것인지 늦잠을 자버렸고 나는 곧장 상암으로 가야 했다. 뭔가 잘됐다 싶은 마음도 조금 들었던 것 같다. 내가 이 기행의 마지막에 둔 집은 서북면옥이었다. 이곳은 나의 단골집으로 그날 저녁 친구들을 불러모았다. 기행의 대미를 장식하기 위해서 말이다. 내가 서북면옥을 즐겨 찾는 것은 집에서 가까운 이유도 있지만 냉면이 아주 수수하기 때문이다. 면은 조금 질긴 편이고 메밀향이 강하게 난다. 육수는 동치미가 가볍게 섞인 듯하고 무엇보다 고명이 무 하나라서 참 좋다. 육수나 면의 맛을 방해하지 않기 때문이다. 감칠맛 또한 뛰어나다. 이곳의 벽에는 대미필담이라는 글귀가 적혀 있는데 ‘맛있는 맛은 반드시 담백하다’는 뜻이다. 이곳을 자주 찾는 이유 중 하나는 만두 때문인데 만두 맛이 아주 담백하다. 서북면옥 역시 두부 위주의 만두이다. 하지만 호불호가 갈리는 메뉴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대학생 주머니 사정을 생각하면 냉면이 아주 저렴하다. 만두부터 수육까지 시키고 소주를 마시며 얼큰하게 취해 이 기행을 마무리했다.     

주소 서울 광진구 자양로 199-1

영업시간 매일(??) 11:30~21:30

전화번호 02-457-8319     


아니, 왜 여기가 빠졌어!라며 분개할 분들이 있을 것 같은데 그 유명한 필동면옥과 봉피양은 선정만 해놓고 가지 못했다. 필동면옥은 <미슐랭 가이드 2017>에 소개되었고, 봉피양은 만화 <식객>에도 소개되었고 <미슐랭 가이드 2017>에 소개된 바 있다. 10끼 연속 냉면을 먹는 게 고역일 줄 알았는데 냉면이란 것은 역시 먹어도 먹어도 질리지 않았다. 이번 냉면 맛 기행은 나에게 고역이라기보단 아주 즐거운 여행이었다. 평소 좋아하던 냉면을 이렇게 몰아 먹으니 어떤 맛인지, 맛이 어떻게 다른지 정확하게 알게 되었다. 띄엄띄엄 이 집 저 집을 다녔더라면 그 맛의 차이를 구분하기 어려웠을 것 같다. 이 여행을 마치며 “한동안 냉면을 못 먹을 것 같다”라는 말을 친구에게 했는데 친구가 “너는 3일만 지나면 또 냉면 먹으러 가자고 할 거다”라는 말을 했다. 그리고 그것은 정말이었다. 

작가의 이전글 시현하다, 너의 색깔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