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 후자에 가까운 사람이라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당첨되면 너무너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렇다고 실제로 뭔가를 꿈꾸진 않았다. 속으로 '로또 당첨되면 패가망신이라던데' 하며. 그런 일은 나한테 일어나지 않을 거라. 그렇게 생각했기 때문에 로또에 당첨된 적이 없는지도 모르겠다. 시크릿 법칙을 따르면.
그러던 어느 날. 신랑이 소위 대박 꿈을 꾸자 (나는 꿈을 거의 기억하지 못한다) 나는 돌변했다. 꿈이 너무 그럴싸했기 때문이다. 일주일 동안은 온갖 상상의 나래를 펼쳤다. 파워 J답게 둘이 머리를 맞대고 구체적인 계획도 세워봤다. 성냥팔이 소녀의 촛불이 세 개였던 것처럼 우리에게는 일주일이 채 안 되는 시간이 주어졌을 뿐이었지만.
그 일을 계기로 더 이상 로또를 사지 않기로 결심했다. 십시일반 푼돈을 모아서. 일주일에 한 명씩 몰아주는 시스템에 헛된 희망을 품지 않기로 했기 때문이다.
그런 내가. 무려 캐나다에서 로또를 사게 되었다. 정확히 말하면 로또를 사지 않을 수 없었다.
굳이 핑계를 대자면 (왜 핑계를 대는지 모르겠지만). 회사에서 매주 다 같이 로또를 샀기 때문이다.
캐나다에서 회사를 다니면서 '캐나다는 참 특이하다'라고 생각한 점이 꽤 있었는데 그중 하나가 팀에서 단체로 로또를 구입하는 문화다. 한 사람이 각자의 티켓을 사는 것이 아니라, 십시일반으로 돈을 모아 로또를 사고, 1등 당첨금이 나오면 다 같이 나눠 갖는 방식이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한국에서는 팀 사람들과 같이 계모임 하듯이 로또를 산 적이 없다. 단 한 번도.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라는 표현이 한국에만 있다던데. 그래서인가? 나 혼자 로또를 맞는 건 괜찮아도, 다 같이 당첨되면 나누기가 싫어져서 인가. 이유는 모르겠다. 아마 1등 당첨금이 작아서일 수도 있겠다.
캐나다의 국민 로또인 로또 맥스의 최대 당첨금은 무려 7천만 불. 한국돈으로 치면 약 700억에 달하기 때문이다. 7천만 불이 모였는데도 1등 당첨자가 없으면, 맥스 밀리언이라고 불리는 10억짜리 당첨금이 계속 늘어나게 된다. 그래서인지 캐나다 뉴스에서는 직장 동료가 단체로 로또 맥스에 당첨되었다는 뉴스를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2023년 10억 당첨 기사 (CTV News)
여기서 제일 중요한 사실. 세금이 없다. 그렇다. 캐나다 로또 당첨금에는 세금이 없다! 700억에 당첨되면, 700억이 고스란히 나한테 온다. 연금식으로 받아도 되고, 일시불도 가능하다. 이런 점 때문에 회사에서도 다 같이 모여서 로또를 사는지도 모르겠다. 한 명씩 나눠가질 금액이 충분하니까.
삭막한 하루. 골치 아픈 프로젝트. 다 같이 모인 팀 미팅시간. 그런 날의 마지막 멘트는 정해져 있다.
"우리 이번에 산 로또 당첨되면, 다 같이 그만두는 거야. 자자, 오늘이 마지막 일 수도 있으니까, 조금만 힘내자고!"
박장대소와 함께. 하루를 기분 좋게 마무리하게 만드는 마법을 불러온다.
로또는 일장춘몽인가, 헛된 희망인가, 시크릿인가. 결국 다 내 마음에 달린 문제인가.
일확천금을 노리는 인생을 누군가는 한심하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또 누군가는 이런 삭막한 세상에 그런 희망도 없으면 어떻게 살아가냐고 반문할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캐나다 로또 협회는 이런 명언을 남긴다.
꿈에는 세금을 매길 수 없다
당첨금이 5천만 불만 모이면 로또를 사는 신랑을. 속으로 거세게 응원해 본다. 파이팅 여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