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부. 스마트폰 시장 재편
불법 보조금을 뿌리 뽑겠다고 시작된 단통법 국회 논의가 주춤하는 동안 이동통신 시장은 여전히 불법이 판치고 있었다. 이통3사 마케팅 출혈경쟁이 극에 달했다. 삼성전자 갤럭시노트3와 LG전자 G2, 심지어 아이폰5S까지 저가 제품에 준하는 기기값이나 심하게는 '공짜폰'으로 둔갑했다. 언제 어디서 어떤 방식으로 보조금이 살포될지 연일 주시하는 상황이 발생했다.
결국 보다 못한 정부가 불법 보조금을 차단하기 위한 노력에 나섰다. 2014년 1월 27일 방송통신위원회가 휴대폰 불법 보조금 지급 여부에 대한 사실조사에 착수한 것. 불법 보조금 지급에 대한 제재를 발표했음에도 시장이 혼탁해지자 다시 칼집에 칼을 빼들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1) 그 수준이 어느 정도였는가 하면 2014년 1월에만 이통사를 전환한 가입자가 무려 106만명에 달했다.
결국 터질게 터졌다. 방통위가 칼을 빼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사상 최대 120만원의 보조금 과열경쟁이 벌어진 것. 혹자는 보조금이 살포된 이날을 고려해 '211 대란'이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공짜폰에 웃돈을 얹어주는 행위까지 번지자 정부의 분노도 끝간데 없이 치달았다. 처벌 수위도 과징금을 넘어 영업정지까지 고려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했다.2)
방통위는 사상 최대 과징금 처벌을 받고도 과잉 보조금 경쟁을 벌인 이통사에 대한 추가 제재 검토에 나섰다. 시정명령 이행 여부 조사도 완료했다. 지난 1월 불법 보조금 지급으로 인해 이통3사에 이미 1064억원이라는 사상 최대 과징금을 부과한 바 있는 방통위는 더 이상 쓸 수 있는 제재 카드가 많지 않았다.3)
방통위는 이통3사에 최소 한달 이상의 영업정지를 담은 추가 제재안을 미래창조과학부에 넘겼다. 미래부는 이 자료를 검토해 전기통신사업법에 따라 허가 취소나 영업정지, 과징금 등의 처분을 결정키로 했다. 미래부와 방통위는 이후 논의를 통해 이통사에게 최소 45일 영업정지를 부과할 것이라는데 가닥을 잡고 행정처분 제재안을 마련했다.
상황이 긴박하게 돌아가자 이통사보다 제조사가 좌불안석이었다. LG전자와 팬택 모두 신작 출시 시점을 고려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LG전자는 본래 출시 패턴보다 일찍인 2월 전략 모델 'G프로2'를 투입시키기로 했다. 팬택은 출시일을 정하지 못한채 하릴없는 시간만 보냈다. 이같은 사정은 삼성전자도 마찬가지였다. 공교롭게도 '갤럭시S5' 출시일이 영업정지일과 겹칠 확률이 높았다. 또한 삼성전자는 국내 판매량 대비 글로벌 판매량도 비교적 높았기 때문에 우리나라만 고려해 출시일을 수정하기도 어려운 처지였다.
영업정지가 3월에 내려질 것으로 알려지자 유통망도 들썩였다. 유통망의 경우 영세할수록 생사가 걸려 있는 절체절명의 시간이었다. 3월이 오기전에 재고를 최대한 털어내야 했다. 결과적으로 정부가 시장에 준 경고음은 다시 보조금 대란을 불러 일으키는 웃픈 신호탄이 되버렸다. 그리고 업계는 그 마지노선인 '228 대란'이 일어날 것이라 예견했다. 다만, 마지막에 이통3사의 자정능력이 효과를 발휘했는지 단순 헤프닝으로 종결됐다.
미래창조과학부(현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방송통신위원회는 3월 과도한 불법보조금을 지급 중단 명령을 어긴 이통 3사에 시정명령 불이행을 근거로 최소 45일 이상의 영업정지를 실시하겠다고 결단했다.
실제로 이행된다면 역대 가장 긴 영업정지였다. 그 규모로 인해 어떤 방식으로 영업정지를 내릴지 논의가 계속됐다. 만약 이통3사 모두가 동일하게 영업정지를 당하게 된다면 애꿋은 고객만 피해를 입을 수도 있었다. 이 때문에 방통위는 2개사 동시 영업정지를 제안했다. 신규가입과 기기변경도 어디까지 풀어줄지 옥신각신했다. 당장 영업정지에 따라 대리점과 판매점 피해는 불 보듯 뻔했다. 자칫 잘못하다간 고객과 유통망 모두가 전멸할 수도 있었다.
이에 앞서 최문기 미래부 장관이 하성민 SK텔레콤 사장과 황창규 KT 회장, 이상철 LG유플러스 부회장과 비공개 만남을 가졌다.4) 가계통신비 부담 경감 대책을 논의하는 동시에 제재 방안에 대한 공감대 형성을 위해서였다. 결과적으로 이 자리에서 이통3사 CEO는 최소 45일 영업정지 판단에 이견이 없으며, 통신시장 안정화를 위해 노력하겠다고 약속했다.
황창규 회장은 "보조금 근절없이 국내 IT산업은 미래가 없고, 우리나라 보조금 경쟁이 부끄럽다"고 말했으며, 이상철 부회장 역시 "보조금 경쟁 근본은 점유율 경쟁 문제로 이에 대한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하성민 사장은 "보조금을 국민 편익으로 돌리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혼란스러운 상황은 유통망 끝단인 대리점과 판매점도 마찬가지였다. 보조금 과열 경쟁의 주체가 이통사인데 그 피해는 고스란히 소상공인이 뒤집어 쓰게 됐다며 울분을 토했다. 이통사 유통 대리점과 판매점이 모인 전국이동통신협회는 간담회를 통해 정부의 영업정치 처분을 즉각 철회해달라고 울부짖었다.
이같은 호소에도 불구하고 미래부는 2014년 3월 7일 이통3사를 대상으로 각각 45일간의 순차 영업정지를 명령했다.5) 이동통신 시장의 암흑기이자 이후 단말 유통뿐만 아니라 단말 패러다임까지도 바꿀, 심지어는 유망 사업자가 무너지는 계기가 된 시점이다.
영업정지 기간 중에는 오직 하나의 이통사만이 영업에 나설 수 있었다. SK텔레콤은 3월 13일부터 4월 3일까지 정상영업을 진행하고 이후 5월 19일까지 45일간 영업이 중단됐다. KT는 3월 13일부터 4월 26일까지 45일간 영업을 중단하고, 4월 27일부터 영업을 속개했다. LG유플러스는 그 중간인 4월 5일부터 4월 26일까지 정상 영업을 실시하고 전후로 영업이 정지됐다.
영업정지가 끝이 아니었다. 미래부에 이어 방통위는 2014년 3월 13일 보조금 출혈경쟁을 야기한 주도사업자를 가려내 다시 철퇴를 내렸다. 2014년 1월 2일부터 13일까지 위반율과 위반평균 보조금, 정책 반영도 등 5가지 평가지표로 벌점을 부여했다. LG유플러스가 93점, SK텔레콤 90점, KT는 44점을 받았다. 이에 따라 방통위는 주도사업자로 LG유플러스와 SK텔레콤을 지목하고 영업정지 처분을 내렸다.6)
이에 따라 미래부가 제시한 45일간의 영업정지 이외에 LG유플러스는 14일의 영업정지를 더해 총 59일간, SK텔레콤은 7일을 부과받아 총 52일간 영업정지를 받아들여야 했다. 다만, 시장혼란을 이유로 영업정지 시점은 45일간의 영업정지 이후에 시점을 잡기로 했다.
2014년 3월 13일 순차 영업정지가 시작됐다. 대신 대리점과 판매점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서 신규 가입자 모집만을 금지됐다. 가입 신청서 접수 또는 예약모집 행위만 금한 것. 가개통 또는 기존 이용자의 해지신청을 신규 가입자에 대한 명의변경 방법으로 전환하는 행위도 막았다. 제3자를 통한 일체의 신규가입자 모집행위도 불허했다.
기기변경은 가능했으나 휴대폰이 24개월 이상인 경우에만 해당됐다. 이외 요금납부나 요금제 변경, 결합상품 가입, 부가서비스 신청 등의 일상적인 서비스는 변함없이 이용 가능했다.
영업정지는 이통3사에게는 재앙이었으나 한편으로는 기회가 됐다. 오직 한 이통사만 영업할 수 있었던 만큼 이 시기를 잘 이용해야 했다. 그 선봉은 삼성전자 '갤럭시S5'가 맡았다. 같은해 2월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열린 MWC 2014에서 첫 공개된 갤럭시S5는 글로벌 출시일이 4월 11일로 결정된 상태였다. 이날은 국내 출시일이기도 했다.
순차 영업정지가 이어졌기 때문에 갤럭시S5 출시일과 겹쳐 영업을 개시할 수 있는 곳은 LG유플러스뿐이었다. SK텔레콤과 KT는 손 놓고 바라봐야만 했다.
하지만 마냥 바라만 본 것은 아니었다. SK텔레콤의 느닷없는 기습작전에 시장이 일시에 술렁거렸다. 정상영업이 가능했던 SK텔레콤이 3월 27일 갤럭시S5를 조기 출시했다. 4월 3일부터 5월 19일까지 영업이 정지되는 SK텔레콤으로서는 악수를 둬서라도 가입자를 유치해야만 했다. 더군다나 갤럭시S 시리즈는 국내 가입자 절반 이상을 호령하는 제품이었기에 '하이리스크 하이리턴' 전략을 구사해야만 했다.
SK텔레콤의 갤럭시S5 조기 출시 전략에 따라 난감해진 곳은 삼성전자였다. 타의적이긴 하나 결과적으로 글로벌 출시일을 어긴 셈이 됐다. 게다가 조기 출시설이 기승을 부릴 때 당시 삼성전자 IM부문을 이끌고 있던 신종균 부회장이 "사실이 아니다"라고 손사래를 쳤던 게 오히려 화근이 됐다.7)
삼성전자는 27일 즉각 유감을 표했다. 삼성전자는 "국내 이통사들과 갤럭시S5 조기출시를 협의하지 않았으며, 조기출시 강행은 유감"이라고 입장을 밝혔다.8) 업계에 따르면 SK텔레콤은 초도물량으로 전달받은 갤럭시S5를 예정된 4월 11일이 아니라 자체적인 판단에 따라 독자적으로 조기 판매한 것으로 알려졌다.9)
이통사가 무리수를 둘 정도로 예민하게 반응하기는 했으나 영업정지에 따른 피해는 막심했다. 우선적으로 영업정지 기간 동안 번호이동 시장은 반토막 났다. 영업을 재개한 이통사는 다양한 프로모션을 통해 가입자 유치에 힘썼다. 영업정지 사업자는 기기변경에 대한 프로모션을 통해 가입자 방어에 공을 들였다. 즉, 그만큼의 마케팅 비용을 쏟아 부어야 했다. 불법보조금을 막고자 했으나 결과적으로는 또 다른 악순환을 불러 왔다.
2014년 5월 19일 총 68일간의 영업정지가 종료됐다. 불법보조금을 뿌리뽑기 위한 강도높은 조치였지만 효과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했다. 영업정지 기간에도 불법 사전예약이나 차별적인 보조금 지급 사례가 지적됐고, 후반기로 갈수록 효력이 떨어지는 양상도 있었다. 특히 이통사와 달리 유통점과 제조사, 소비자들의 피해가 컸다는 지적도 나왔다.
순차 영업정지를 겪은 이통 시장은 이를 만회하기 위해 또 다시 과열 경쟁에 돌입했다. 이미 철퇴를 맞은 이통3사는 오히려 맷집을 키웠다. 예전보다 더 대담하고 기민하게 움직였다. 실례로 이통3사 순차영업정지가 끝난 후 일주일도 안돼 LG전자 G3가 출시와 함께 소위 '공짜폰'으로 전락했다. 보조금만으로 무려 100만원 가량이 지급된 탓이다. 이를 두고 인터넷상에서는 '마이너스폰'이라는 단어까지 유행했다.
방통위는 이같은 사례를 파악하고, 이통3사 마케팅 임원들을 소집해 경고를 주는 등 시장 안정화에 노력했으나, 영업정지 기간을 보상 받으려는 이통사와 시장의 움직임을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그렇게 다시 악순환의 고리가 이어졌다.
1) 채수웅 기자, 방통위, 휴대폰 불법 보조금 조사 착수, 디지털데일리, 2014. 1.27.
2) 이호연 기자, 스마트폰 보조금 대란...LGU+ 나홀로 1만2691명 순증, 아이티투데이, 2014. 2.11.
3) 이호연 기자, 영업정지 3개월?...방통위, 211대란 등 추가 제재, 아이티투데이, 2014. 2.11.
4) 채수웅 기자, 이통3사 사업정지 45일 유력…기기변경은 오리무중, 디지털데일리, 2014. 3. 6.
5) 채수웅 기자, 이통3사 사업정지 45일…기기변경도 포함, 디지털데일리, 2014. 3. 7.
6) 박수형 기자, LGU+ 14일 SKT 7일 추가 영업정지 철퇴, ZDnet, 2014. 3.13.
7) 김태정 기자, 신종균 사장 “갤럭시S5 조기 출시 없다”, ZDnet, 2014. 3.26.
8) 김현주 기자, 삼성전자 "이통사의 갤럭시S5 출시 강행, 유감", 아이뉴스24, 2014. 3.27.
9) 양태훈 기자, 삼성 ‘갤럭시S5’ 조기출시 유감표명, 이유는?, 아이티투데이, 2014. 3.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