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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문기 May 01. 2024

['24 바르셀로나] 3.FIVE GUYS,역사 박물관

2024년 2말3초 스페인 바르셀로나 출장기

바르셀로나에 도착한 이튿날. 떠지지 않는 눈을 부여잡고 시름하다 보니 정신이 든다. 어제 카탈루냐 광장에 삼성전자 팝업 스토어를 스치며 지나갔기에 오늘은 그 곳에서 이것저것 알아봐야 겠다는 직업 정신이 새록 고개를 든다. 오후에는 특별한 일정이 없기는 했지만 내일부터는 정식으로 출장으로서의 일을 시작해야 했기에 시간이 닿는대로 부지런히 돌아다녀야 겠다고 다짐했다. 물론 계획은 없었다.


숙소를 나와 지하철을 타고 카탈루냐 광장역에 내렸다. 토요일의 점심시간. 예상을 깨고 삼성 팝업스토어는 발 디딜틈이 없는 게 아니라 아예 진입이 불가할 정도로 많은 인파가 몰려 있었다. 심지어 관람객 행렬이 카탈루냐 광장을 한 바퀴 돌만큼 너무나 길었다. 삼성전자가 MWC 때 여는 단골 팝업 장소긴 하지만 이렇게까지 몰린 적이 없었다. 한국 사람으로서 다른 건 몰라도 외국인들이 알아주는 '쌤쏭'이었기에 그러려니 하기에도 놀라운 관경이었다. 


이리저리 사진을 찍어가며 주변에 물으니 그날 아주아주 유명한 게임 인플루언서가 섭외됐고, 그 때문에 아이들과 부모들이 싸인을 받기 위해 찾았다는 정보를 입수했다. 삼성전자 스페인 지부의 마케팅 역량에 엄지 한번 들어줄만 하다. 

좌측 삼성전자 팝업 스토어를 시작으로 길게 늘어선 줄이 카탈루냐 광장을 감쌀 정도로 길었다.

이날 오전에 막 엘프라트 공항에 도착한 선배를 카탈루냐 광장에서 만났다. 점심 때기도 해 맥도날드에 가자는 걸 말리고, 버거를 먹을꺼면 광장 옆에 '파이브 가이즈'를 가자 했다. 분명 맛있을 것이라고 호언장담을 했긴 하나 맛없으면 어쩌지 약간 쫄린다. 하지만 내 입에는 너무나 맛있는 치즈버거라 바르셀로나에 들리면 꼭 가보는 곳이기도 하다. 

반나절 동안의 동선. 카탈루냐 광장에서 대성당까지는 10분이면 충분히 걸어갈 수 있다.

파이브 가이즈는 카탈루냐 광장에서 지중해를 바라보며 오른편에 위치해 있다. 또 북쪽에도 파이브 가이즈가 생겨서, 총 2곳에서 운영 중이다. 지난해 파이브 가이즈가 한국에도 오픈하기는 했으나 바르셀로나 지점에 더 맛난 듯 하다. 물론 여행길에 먹는게 안 맛있을 순 없지만 말이다.

카탈루냐 광장 옆에 위치한 파이브 가이즈. 10년 전에도 있었지만 지금도 자리를 유지하고 있다. 

광장 옆 파이브 가이즈는 완전 오픈형 주방이기 때문에 패티를 굽고 버거를 쌓고, 감자를 튀기를 모습을 바로 옆에서 즐길 수 있다. 코로나19가 끝나서인지 야외에도 자리를 마련해놨다. 버거와 감자튀김, 음료를 주문하면 순서에 맞게 버거와 감자튀김을 종이봉투에 우루루 쏟아준다. 음료는 셀프코너에서 원하는 대로 먹으면 된다. 오리지날 코크만 있는게 아니라 엄청나게 많은 맛의 음료들이 있으니 골라먹는 재미도 있다. 

개인적으로 너무나 맛있는 파이브 가이즈 치즈버거. 사진은 왜 역 앞에 파는 햄버거처럼 나왔니 ㅠㅠ

배를 두드리다 보니 만사가 귀찮다. 서로가 오늘의 일정을 공유한다. 당연히 계획이 없었기 때문에 "없다"고 답한 것과 달리 선배는 박물관을 가겠다 한다. 박물관이나 예술관, 미술관 등 '관'이 들어가는 곳에 특별한 관심도 없었고, 굳이 그런 곳을 갈 바에는 자연 경관이나 보는게 낫다고 생각하기에 따로 돌아다닐까 싶다가도, 따로 계획도 없는데 호기롭게 혼자 돌아다니는 것도 별로인 거 같아 기생을 택했다. 선배는 아는게 많은 만물박사지만 길치였고, 난 아는게 없지만 길은 잘 찾기 때문에 또 조합이 꽤 잘 맞았다. 


박물관이 바르셀로나 대성당 근처라는 말을 듣고 바삐 발을 움직였다. 광장에서 걸어서 5분 거리의 지척이기 때문에 서둘러 이동했다. 대성당 앞에는 널따란 광장이 있어서 많은 관람객이 사진 찍기 바쁜 곳이기도 하다. 

바르셀로나 대성당 앞 광장에서 한 컷. 이 사진을 개인적으로 너무나 좋아한다. 아이들의 행복한 모습이 눈에 선하다. 사실 이것도 돈을 벌기 위한 퍼포먼스이긴 하다.

여기서도 주의할 사항이 있다. 화려한 코스프레를 한 사람의 친절에 속지 않기를 바란다. 사진을 찍고 있다보면 갑자기 나타나 옆에서 찍히는 경우가 있는데, 이 때 서비스 비용을 원한다. 또는 사진을 찍어주겠다며 다가오는 사람 역시 조심해야 한다. 각박하다 생각할 수 있으나 이 것 역시 서비스 비용을 내라고 한다. 막무가내가 아니기도 하고 그들의 서비스 상품이긴하지만 원치 않는 비용 지불에 기분이 나쁠 수 있다. 


바르셀로나 대성당 우측의 좁다란 길을 걸어 좌측으로 한 바퀴 휙 하고 돌아보니 바르셀로나 역사 박물관(MUHBA)이 보인다. 입구가 화려하지 않기 때문에 지나칠 수 있다. 게다가 관광객이 많지 않아서 더 헷갈린다. 이 곳을 가보지 못했다는 선배의 말에 터벅터벅 입구로 향한다. 입장료는 현지에서 7유로. 어라. 꽤나 저렴하다. 아쉽다면 한국어 지원 가이드가 없다. 번역 앱을 믿고 입장.

바르셀로나 역사 박물관은 비용 대비 만족감이 높다. 큐레이션도 훌륭하고 볼 것도 풍성하다. 

일단 계획한 곳도 아니고, 또 관심도 없기에 바르셀로나 역사 박물관이 어떤 것들을 전시했는지 알 턱이 없었다. 데스크 직원의 안내 대로 위층부터 살펴보고 지하로 내려가라고 했으니 일단 위층으로 올라갔다. 중간중간 벽면에는 바르셀로나의 역사를 고증할 수 있는 골동품(?) 기증을 받고 있다는 설명과 함께 MUHBA 재단(?)에 대한 설명이 곁들여 있다. 


나중에서야 바르셀로나 역사 박물관에 대해 찾아보니 정보가 그렇게 많지는 않았다. '아! 한국 관광객도 그리 많이 찾는 곳은 아니구나' 싶다. 일단 여기 말고도 바르셀로나에 너무 볼게 많다. 시간을 내서 여기까지 찾아오기는 쉽지 않을 듯 하다. 


이 곳은 고대 로마 도시의 유적지로 바르셀로나의 시대를 4구간으로 나눠 설명한 박물관이라고 한다. 안토니 가우디와 스페인 남북전쟁과 관련된 오래된 산업과 건물 유적지도 섞여 있다. 기원전 유물부터 중세, 근대에 이르는 여러 모습을 살펴볼 수 있게 구성했다. 

위층이라고 해서 2층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3층, 4층까지 계속해서 올라갈 때마다 미로처럼 엮여 있는 전시부스들을 돌아야 했다. 생각보다 큐레이션에 신경을 많이 썼다. 내용 역시 풍부하다. 하나하나 알지 못하는게 아쉬울 정도로 꼼꼼하게 배치해놨다. 

전시품목에 대한 설명이 있는 곳이면 어김없이 번역 앱을 돌려가며 해당 내용을 이해하려고 했는데, 때 아닌 배틀이 붙었다. 아이폰의 파파고와 갤럭시의 갤럭시 AI 중 누가 더 좋은 품질로 빠르게 번역할 수 있는가로 승패를 갈랐다. 결과적으로 둘 다 놀라운 경험을 했는데, 갤럭시가 2배 가량 더 빠른 속도로 품질 좋은 번역 결과를 도출해냈다. '아! 이게 바로 온 디바이스 AI의 승리란 말인가.' 믿거나 말거나 이후 이 선배는 갤럭시 AI 전도사가 됐다. 의문의 애플 패배.


이 박물관에서의 가장 큰 깨달음은 가장 상층에 위치한 발코니에서 얻었다. 외부 테라스로 나갈 수도 있었는데, 외벽에 대한 설명도 쉽게 찾을 수 있었다. 그 전까지는 역사적 건물에 외벽만 놓고 본 적이 없었는데, 이 박물관 견학 후에는 한번씩 살펴보게 됐다. 

3층에서 테라스로 나오니 역사가 깃든 외벽을 마주할 수 있었다.

대표적으로 바르셀로나 대성당과 그 주변의 건물들은 꽤 오래 전 로마 시대의 잔재가 남아 있는 지역인데, 기존 건물을 초기화시키고 다시 짓는게 아니라 기존 건물에 증축하는 형태로 계속해서 쌓아 올린 형태로 건설됐다. 또한 자재가 얻기 위해서 주변 돌이나 석상 등을 가져왔는데 이 자재들 하나하나가 역사적 유물이나 진배 없는 것들이다. 때문에 외벽의 양식이 아래서 위로 올라갈때마다 다르고, 또 중간중간 다른 양식이 섞여 들어가는 경우가 자주 보인다. 게다가 고대어가 음각된 비석이 떡 하니 벽에 박혀 있는 사례도 있다. 


즉, 외벽 하나가 수천년의 역사를 고스란히 지니고 있는 셈이다. 가령 제일 하단이 기원전 건축됐다면 그 위는 중세시대, 그 위는 근대에 쌓아올리면서 현재의 거대한 건물로 진화했다. 알고 보니 그 재미가 쏠쏠하다. 

파고 들어갈 수록 시대가 바뀐다.

지하로 내려가자 고대 로마 시대의 건축물들이 그대로 남겨져 있다. 이 위에 교회를 세운 것 역시 신기할 따름이다. 소금창고부터 포도주 보관창고, 생선을 팔던 곳과 생선 창고, 유물과 집 등 그 당시 삶을 영위하던 사람들의 흔적들이 남아 있다. 4세기 바르셀로나 시민들은 이 위에 교회를 짓고 건물을 올렸다. 중세 때는 백작과 군주가 머물던 궁전으로, 18세기부터는 수녀원으로 용도가 계속해서 변경되면서 건물도 더 높고 넓어졌다. 

지하 유적지를 그대로 남겨 놓은 상태로 지상에 건물을 구축해놨다. 정말 상상 이상으로 넓다.

지상은 수녀원 사이의 넓은 광장일뿐인데, 그 아래는 고대 로마시대의 마을이 그대로 남아 있는 셈이다. 땅을 파고 또 팔 때마다 그 곳은 더 과거를 드러냈다. 지하의 한쪽 벽면은 시대를 의미하는 눈금들이 남아 있다. 과거는 계속해서 쌓이고 덮히면서 아래로 내려가고 현재는 그 쌓인 지면을 이용한다. 

바르셀로나 역사 박물관 브로셔에서 볼 수 있는 수녀원 광장의 유적 발굴 모습이다. 아래 사진은 현재 모습이다.
위 사진의 좌측 하단의 계단이, 현재 보고 있는 사진의 중앙 하단의 그 계단이다. 박물관에서는 지하에 계단과 연결된 광장의 로마 예전 모습을 그대로 보존하고 있다.

박물관에 들어선지 2시간 가량이 지났음에도 도무지 끝날 기미가 없다. 생각보다 방대하다. 그 때문인지 지하 곳곳에는 쉬어갈 수 있는 벤치도 있고, 심지어 화장실까지 배치해놨다. 


더 눈에 띄는 부분은 중간중간 밖을 내다볼 수 있는 통유리 시설들이었다. 외부에서도 아래를 내려다볼 수 있도록 반지하 형태로 통유리가 배치돼 있는데, 안에서도 밖을 볼 수 있다. 과거에서 현재를 바라보는 창인 셈이다. 정말 구성도 잘해놨다 싶다. 계속해서 이어지는 전시관에서는 문 대신 통유리를 달아 놓은 곳도 있다. 이 것도 일종의 콘셉트 아닐까 한다. 

문처럼 보이지만 사실 통유리 창문이다. 바깥에서도 내부를, 내부에서도 바깥을 볼 수 있다.

거의 막바지에 다다르자 4대에 이르는 시간동안 변모한 현재 지역의 모습을 한번에 볼 수 있는 설계 영상이 보인다. 이제 정말 끝이겠거니 했는데 또 아치형의 알 수 없는 방들이 맞이한다. 3시간이 훌쩍 넘자 이제 좀 나가고 싶어진다. 


아쉬운 점이 있다면 우리는 찾지 못한 '기념품 코너'다. 출구가 생각보다 출구같지 않은 느낌으로 있다. 우리가 지하에서 헤맸던 그 수녀원 광장으로 나오는데, 정말 아무것도 없다. 지금 생각해보면 혹시 제대로 나오지 않은거 아닐까 싶기도 하다. 

여백의 미를 제대로 보여주는 방인데, 사실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모르겠다. 한국어 가이드가 없으니 아쉬울 따름...

거의 4시간 가까이 박물관을 관람하고 나니 다리가 아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배가 계속 어디를 찾는다. 무슨 신전의 기둥을 찾아야 한다는데, 대체 무얼 말하는지 알 수가 없다. 같은 자리를 뱅뱅 돌고 있다보니 유적지면 분명 눈에 확 들어올텐데 하는 의문이 든다. 


결국 찾아낸 곳이 바로 기원전 1세기 로마시대에 구축한 아우구스투스 신전의 기둥이었다. 찾고 나니 찾기 어려울만하다. 전혀 그런게 있지 않을 것 같은 어떤 집 같은 곳 안으로 들어가야 볼 수 있다. 기둥 반대편에는 벤치가 마련돼 있어 쉬어 갈 수도 있다. 신전 기둥을 철거하지 않고 그대로 보존한 상태로 구축한 주변 집이 경이롭기까지 하다. 우리나라였으면 어땠을까. 이 기둥을 철거하거나 이전시키고 집을 짓지 않았을까. 

기원전 1세기 아구구스투스 신전의 기둥. 이 기둥을 피해서 집을 지었다.

해가 질 무렵이 되자 하나 둘 바르셀로나 출장 인원들이 모이기 시작한다. 무사히 도착했음을 자축(?)하는 저녁 자리 이후 내일부터는 본게임에 들어갈 터다. 마지막으로 일정을 조율하고 지옥같은 전시회 출장이 잘 마무리되기를 바랄 수밖에.


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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