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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문기 May 09. 2024

['24 피가레스] 살바도르 달리 극장 박물관 가다

2024년 2말3초 스페인 바르셀로나 출장기

스페인 바르셀로나 MWC 2024가 막을 내렸다. 

4일간의 폭풍같은 MWC가 끝났다. ICT를 주름잡는 거대 공룡 기업들부터 생태계를 구성하는 서드파티까지 다양한 사람들과 제품, 솔루션을 만났다. 개인적인 목표가 있었고, 나름의 성과도 얻었다. 대략 모든 업무를 끝마치고 잠시 눕자고 침대에 엎어졌는데, 아침이다. 이런. 


한국에 있었다면 '만세'를 외치는 날이었다. 3월 1일 삼일절. 타지에 있지만 잠시 태극기 한번 띄워 바라보고 주섬주섬 아침식사를 위해 방을 나섰다. 호텔은 고맙게도 MWC 기간 동안 조식을 30분 더 앞당겨 제공했다. 기간이 끝나니 원래대로 시간이 돌아왔다. 


시간이 없기 때문에 조식의 경우 때려 넣는 식으로 구성한다. 기본적으로 커피는 2잔을 부어 먹고, 샌드위치를 만들어 먹는다. 식빵 두개를 굽는 동안 커피를 내린다. 다 구워진 식빵 하나를 접시에 내려 놓은 후 속을 채운다. 치즈, 토마토, 계란, 있다면 샐러드나 야채, 과일 등 넣을 수 있는 건 다 넣는다. 다른 쪽에 버터를 발라 닫으면 샌드위치가 완성된다. 크기가 너무 크면, 넵킨으로 싸서 먹는다. 짧은 시간만에 여러가지를 우겨 넣을 수 있다. 전시회 출장이 점심을 먹을 수 있을지 알 수 없을 정도로 바쁘기 때문에 아침은 꼭 되도록 많이 먹어야 든든하다. 


하지만 오늘은 휴일. 나름의 여유를 부리며 찬을 챙긴다. 얼마만에 누려보는 호기로움인가. 물론 속을 타들어가고 있었다. 이 하루를 소중히 여겨야 뭐라도 더 눈에 담아갈 수 있으니 말이다. 오늘은 꼭 바르셀로나 근교로 나가보겠다고 다짐했는데, 반가운 소식이 들린다. 바르셀로나 역사 박물관을 함께 한 선배가 드디어 결심이 섰다보다. 다시 듀오 결정. '오늘은 제가 가고 싶은 곳으로 모시겠습니다.'


뒤늦게 오른 바르셀로나 근교 관광


바르셀로나 근교로 떠나겠다고 다짐했을 때부터 알아본 지로나와 피가레스. '관'을 좋아하는 선배의 합류로 자연스럽게 첫 행선지는 피가레스로 정해졌다. 피가레스는 살바도르 달리가 태어난 곳으로 자신이 직접 꾸린 미술'관'을 볼 수 있는 시골동네다. 기차를 타야 하기 때문에 약속장소를 정했다. 걸어서 5분만에 갈 수 있는 El Clot 기차역이 있었지만 선배는 서쪽에 있었기에 바르셀로나 산츠역에서 만나기로 했다. 좀 서둘러야 겠다.

바르셀로나 산츠역에서 지로나까지는 일반열차 기준 약 1시간 30분 가량. 지로나에서 피가레스까지는 약 30분 가량 걸리는 듯 하다. 이 열차를 계속 타고 가면 프랑스로 넘어간다.

산츠역은 우리나라로 따지면 서울역 같은 곳 이다. 서울역에서 공항철도와 1호선, 4호선이 어지럽게 꼬여 있는 것처럼, 산츠역도 전철역과 기차역이 미로처럼 엮여 있다. 지하철로 도착한 산츠역에서 지하 통로를 요리조리 돌아다니며 드디어 기차역을 찾았다. 바르셀로나에서 항상 느끼는 거지만 예상 외의 곳에서 예상 외의 풍경을 보여준다. '여기가 기차역이라고?' 하는 놀라움.

바르셀로나 산츠역 대합실 전경

일단 발권기에서 기차표를 끊어야 한다. 갑자기 예전 기억이 새록새록하다. '올라 바르셀로나 교통패스 카드'가 기차까지도 되는지 알았던 과거. 그 교통패스로 몬세라트까지 간 기억이 있다. 사실 그러면 안된다. 몬세라트로 가기 위해서는 기차표를 끊어야 했는데, 별 생각없이 교통패스로 거기까지 간 셈이다. 심지어 몬세라트로 올라가는 트램까지 탔더랬다. 지금 생각하면 창피한 일이 아닐 수 없지만, 어떻게 거기까지 갔는지 놀랍다. 


간단하게 말하면 엘 에스파냐 역이 좀 복잡한데, 그 곳에서 몬세라트로 출발하는 기차가 지하 어느 곳에 마련돼 있다. 간혹 MWC 이동인원이 많아서 여는 경우가 있는데, 그러다보니 아무생각없이 그쪽까지 내려간 셈이다. 역이야 교통패스로 들어갈 수 있으니 그 기차역 진입구간의 허술함으로 인해서 너무나 자연스럽게 몬세라트까지 가게 됐다. 암튼. 나중에 몬세라트를 다룰 일이 있겠지. 다시 본론으로 넘어가야 겠다. 


발권기에서 선배와 함께 남은 동전을 탈탈 털어 넣는다. 급행과 일반열차가 있었으나 시간 관계상 일반열차를 끊었다. 12유로. 대충 우리나라와 크게 차이나지 않는 가격이다. 피가레스까지 도착시간은 약 2시간이 소요된다고 나온다. 자 표를 끊었으니 다음은 어떻게 들어가는가였다. 입구를 못찾아 역무원에게 물어 들어가는 것까지는 성공했는데 이번엔 플랫폼을 못찾겠다. 


플랫폼은 또 어찌나 많은지. 꾸역꾸역 맞는 플랫폼을 찾았다. 기차에 바로 올라 자리에 앉는다. 좌석은 따로 정해지지 않는다. 먼저 앉는 사람이 장땡이다. 타지에서 대중교통을 타면 나도 모르게 주변 사람들을 관찰한다. 노인분들부터 학생으로 보이는 사람들도 있다. 옆에 앉은 사람은 학생처럼 보였는데 식사를 하지 못한건지 샌드위치를 연신 먹고 있었다. 그것도 기침을 섞어서. 코로나19가 끝난지 얼마 되지 않아서인지 약간 무서운 생각도 든다. 이것도 나중에 할 얘기가 산더미인데.


여유로운 시골 전경, 2시간만에 피가레스 도착


한창 창밖의 풍경과 내부 사람들을 구경하다보니, 도착지에 얼추 다 온 듯 하다. 선배는 화장실을 찾겠다고 일어나서 아직 돌아오지 않고 있다. 각자 열차 문을 열고 나온다. 영화에서 나오는 간이역, 또는 시골역처럼 작은 피가레스역이 우릴 반긴다. 정말 정겨운 작은 시골역이다. 

피가레스역 대합실. 사진에 보이는 것만큼이 딱 피가레스역 크기다.
간이역 느낌의 피가레스역 정면 모습.

살바도르 달리의 박물관은 도보로 그리 멀지 않다고 알고 있었기 때문에 호기롭게 구글맵을 켰다. 15분 정도면 가뿐하다는 소리에 느긋하게 발을 놀린다. 높은 데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아기자기한 건물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다. 우리나라 같으면 한 건물에서 다음 건물로 넘어갈 때 일정 간격이 벌어져 있는데, 이 곳은 각 블록마다 건물 자체가 아예 붙어 있다. 왜 그렇게 짓는지도 궁금한데, 알 길이 없다. 

피가레스역에서 달리 극장 박물관까지는 걸어서 약 15분 정도 걸린다. 대중교통을 이용해도 되지만 되도록 걷는 것을 권한다. 유럽 시골의 정취를 느낄 수 있다.

가는 길에 '달리의 얼굴'이라는 조형물을 만날 수 있다. 바닥이 비치는 원기둥 아래 양쪽으로 쭉 늘린 듯한 달리의 얼굴이 바닥에 그려져 있다. 이 얼굴이 비치는 원기둥을 바라보면 정상적인 달리 얼굴을 볼 수 있다. 간단한 소감을 말하자면 '달리 답다'로 요약될 만하다. 

작은 공원 앞에 그려진 달리의 얼굴. 바닥의 달리 얼굴이 원기둥에 본래 모습으로 비췬다. 

달리 극장 박물관에 거의 다다랐을 무렵, 허기진 배를 채우기로 했다. 시청 앞 작은 광장 야외에 테이블이 빼곡하게 채워져 있다. 따뜻한 햇살을 맞으며 점심 메뉴를 고른다. 오징어튀김과 작은 샌드위치, 맥주 한 잔을 먹자 했지만, 직원이 왔을 때 피자를 추가 주문했다. 선배는 피자 사이즈가 의외로 커서 다 먹을 수 없을 것이라 장담했다. 하지만 마르가리타 피자가 커봤자겠지 하며 코웃음을 쳤는데. 그런데, 선배 말이 맞았다. 이런. 꾸역꾸역. 퍽퍽.


후회 없는 달리 극장 박물관

입구는 안쪽에 있지만 외관을 한번 둘러보기로 했다.

달리 극장 박물관에 들어가기 전에 주변을 둘러봤다. 박물관의 전매 특허인 똥(?) 모양 장식의 빨간 외벽을 타고 올라가자 '피가레스' 글자의 조형물이 보인다. 이 곳이 바로 유명 포토존이다. 둘이 또 신나게 자취를 남긴다. 드디어 머나먼 길을 돌아 달리 극장 박물관 매표소로 향한다. 그 길에서도 꽤 많은 예술품(?)을 볼 수 있다. 

기념사진을 찍을 수밖에 없는 구도를 가진 피가레스 조형물과 달리 극장 박물관의 모습

달리 극장 박물관의 관람가격은 38유로다. 생각보다 비싼 비용이지만 사설 박물관이니 그러려니 한다. 관람 시간대가 정해져 있다. 우리가 끊은 시간은 오후 3시였는데, 혹시 싶어 들어가니 시간대와 상관없이 입장이 가능했다. 아니었으면 저녁 때까지 있었겠다 싶다. 팜플렛 하나를 챙기긴 했는데, QR로도 확인이 가능했기 때문에 굳이 챙길 필요는 없다. 물론 기념품으로서의 가치는 있다. 

붉은 외관과 달리 박물관 입구는 평범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입구부터 범상치 않은 조형물이 보인다. 
처음에는 섬뜩했던 작품. 저 눈을 뚫고 아기 인형들이 바깥구경을 하는 모습.

본격적으로 박물관에 들어서기 전 달리의 흉상 사진이 먼저 반긴다. 좌측 얼굴을 꽃으로 장식한 사진이다. 우리나라로 치면 동네 XX를 연상케 하는데, 이 역시도 초현실주의라고 하면 수용 가능하다. 달리는 화장실에 들어갈 때마다 향수나 꽃을 달고 들어갔다고 하는데, 냄새 때문에 그렇다고 한다. 거참.

달리 극장 박물관 입장. 시작부터 '꽃보다 달리'다.

달리가 태어난 곳이 바로 피가레스다. 이 박물관은 소위 망한 극장을 달리가 사들여 살아생전 꾸며 놓은 곳이다. 즉, 박물관 자체가 달리의 작품이라고 볼 수 있다. 후대에 이르러 박물관이나 미술관이 생긴 곳도 있겠으나 이 곳은 달리가 직접 만든 자신의 박물관이라는 점만으로도 희귀성을 획득했다.


박물관에 오기 전 기차 안에서 빠르게 예습한 달리는 여러 키워드를 가지고 있다. 우선 생애에 대해서 요약하자면 이렇다. 


우선 달리가 태어나기 전 형이 있었지만 이른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부모는 이 형의 환생이 달리라고 믿어 같은 이름을 지어줬다. 그리고 어머니는 달리가 17세때 유방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아버지는 어머니의 여동생과 재혼했다. 어? 뭐라고? 엄마의 동생? 이 문장만으로 해석하기는 어려우나 아버지는 꽤나 바람둥이였다고 한다. 달리가 어머니를 꽤 많이 사랑했기에 아버지와의 마찰은 수순으로 보인다. 다행히 여동생과는 꽤 친분이 있는 듯 하다. 게다가 부모는 공교육과 어울리지 않고 판단해 달리를 프랑스어 학교로 보냈다.


범상치 않은 유년기를 보낸 달리는 마드리드에서 대학을 다녔고, 굉장히 잘 꾸미고 다닌 듯 하다. 퇴학인지 자퇴인지 모르겠으나 학교를 떠났다. 스페인의 국민시인으로 불리는 페데리코 가르시아 로르카와 친구 이상(?)의 관계였으나 로르카가 요절하자 꽤 많은 충격을 받았다. 이후 파블로 피카소, 후안 미로 등을 만나 영향을 받았다. 결정적으로 달리는 별장이 있는 스페인 해안도시 카다케스에서 유부녀인 10살 연상 러시아계 갈라를 만나게 되고, 동반도주를 통해 평생의 뮤즈와 함께 하게 된다. 당연히 아버지는 상속권도 박탈하는 수준으로 꽤나 극렬하게 반대했으나 어쩌겠나. 자식 이기는 부모가 없는데. 당시 갈라는 40세. 달리는 30세였다.  


갈라 역시 평범한 인물은 아니었는데, 특히 미에 대한 집착이 강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 때 당시 성형수술을 감행할 정도였다. 갈라는 이후 외도 등 달리를 멀리하게 되는데, 달리는 그 영향으로 인해 노년이 좋지 못했다. 결국 84세 나이로 달리는 세상을 떠났다. 이 시신이 안장돼 있는 곳 역시 이 곳 달리 극장 박물관이다. 

이 분이 달리의 평생 뮤즈인 갈라다. 갈라를 대상으로 한 작품은 수도 없이 많다.

요약했지만 장황한 달리의 생애를 언급한 이유는, 생각보다 예습이 박물관을 둘러보는데 꽤나 유용했기 때문이다. 그의 정신세계에 동화되고 그의 사랑의 행적을 따라가다보면 이해되는 구간이 상당하다. 


입구에 들어서면 좌우 원형으로 뻗은 통로에 수많은 그림이 걸려 있다. 중앙으로 나가면 하늘이 뻥 뚫려 있는 작은 광장이 있는데, 이 곳에서는 멋진 차량 위로 솟아 있는 배 모형의 작품과 여인을 만날 수 있다. 그 뒤로 큰 통유리 속 대형 그림이 눈에 들어 온다. 이 통유리 중앙 하단은 문이다. 광장을 가로질러 이 문을 통해 반대쪽으로 들어갈 수도 있다. 

박물관에 들어서자마자 바로 보이는 중앙 광장 모습
중앙 광장을 뒤로 큰 창문이 보이는데 하단 중앙은 실제 열고 들어갈 수 있는 문이다. 
하늘을 향해 뻥 뚫려 있는 조형물

대형 그림이 걸려 있는 곳은 앉아 쉴 수 있는 의자도 배치해놨다. 잠시 앉아서 주변을 둘러보길 권한다. 정말 상하좌우 그 어디든 고개만 살짝만 돌려도 다 작품들이 걸려 있다. 계속 보고 있으면 정말 병적으로 걸어 놨다. 이 곳을 통해 좌우측 위아래로 통로들이 마련돼 있어 각각의 전시부스로 들어갈 수 있다. 

전시 투어의 중앙 기점. 앉아 쉴 수 있다. 360도 어디를 둘러봐도 다 작품이다. 이 사진 속에서도 꽤 많은 작품을 찾아볼 수 있다. 
천장을 바라보면, 이런 장면을 볼 수 있다. 내 수준에는 '롯데월드인가' 하는 생각이. 역시 예술과 거리가 먼 듯 하다. 반성.

전문 큐레이터도 아니고 특히나 미술에 통 관심이 없는 나로서는 이 모든 걸 설명하는데 한계가 너무나 명확하다. 나머지는 사진으로 남겨 놨다. 하나씩 꺼내보며 그 때 그 감정을 불러 오는게 전부다. 혹시나 아시는 분이 있다면 댓글로 저에게 가르침을 주시길. (속으로 울고 있다.) 다음에 더 좋은 곳을 가게 된다면 더 많이 공부해야겠다는 깨달음을 얻는다. 역시 '관'은 내 스타일이 아닌건가. 

멀리서 봤을 때는 자화상인줄 알았으나 가까이서 보니 여인의 뒷모습이 보인다.
살바도르 달리의 대표작이라고 하지만. 모르는 나는 울 뿐이다.
한장의 사진 같아 보이지만?
눈은 벽에 걸린 그림이고, 코와 입은 바닥에 붙어 있다. 이를 턱 쪽의 계단에 올라 쳐다보면 이러한 여인의 모습이 나온다. 요 밑에서 많은 관람객들이 사진을 찍는다. 
달리의 유명작을 프린트한 장식물 아래 침대가 놓여 있다. 여기서 잠을 청했을까?
수많은 이들이 십자가의 수난을 당한 그리스도를 그렸는데, 이 작품은 살바도르 달리가 그 만의 해석으로 그려낸 작품이다. 마지막 전시가 바로 이 그림인데, 영상으로도 만날 수 있다

2시간 넘게 살펴보다 기념품 가게로 넘어 온다. 기념할 수 있는 상품을 사는 건 나름의 재미가 있는데, 아무리봐도 질 좋은 기념품이 잡히질 않는다. 아쉬울 따름. 플레이모빌이라도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책갈피 몇개로 아쉬움을 달랬다. 


마지막 밤은 언제나 아쉽다


돌아오는 길에 대형 슈퍼마켓에 들려 음료수를 샀다. 물 하나 들고 가지 못한 게으름으로 목이 너무나 탔다. 본래 계획은 피가레스에서 지로나로 넘어가 석양을 보는 거였는데, 시간상 지로나는 패스해야 하는 상황. 역시나 오전에 좀 부지런을 떨었어야 했다. 


다시 바르셀로나로 넘어가는 기차를 타야 하는데 기차 대기열이 또 특이하다. 하나의 노선에 두개의 기차가 놓여 있다. 우리가 타는 기차는 뒷열에 있어 뛰어야만 했다. 하나의 플랫폼에 두 개 기차를 놓다니. 신박하다. 돌아가는 길에 창밖으로 비치는 지로나의 석양만 눈에 담는다. 너무나 아쉬운 마지막날 밤이다. 

El Clot 역에서 내렸다.

속을 끓이고 있으니 선배가 또 그 마음을 부추긴다. 그렇게 원래 내리고자 했던 산츠역이 아니라 El Clot역에 내렸다. 이 곳에서 15분 정도를 걸으면 사그리다 파밀리아 성당을 볼 수 있어서다. 그렇게 마지막 밤을 성당을 바라보는 노천식당에서 보냈다. 내일이면 다시 비행기에 올라 한국으로 돌아가야 한다. 비행기가 저녁시간이었기 때문에 머릿 속에 스케쥴표를 다시 그려본다. 짐을 맡기고 갈 수 있는 곳이 또 어디가 있을까.

밤에 보는 사그리다 파밀리아 성당

-다음은 마지막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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