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2말3초 스페인 바르셀로나 출장기
바르셀로나의 마지막날이 밝았다.
돌아가는 비행기는 여유롭게 저녁으로 잡아놨기에 체크아웃과 함께 호텔캐캐리어를 맡겼다. 자. 이제 어디를 가야할까.
딱히 갈 곳이 없기도 했거니와 평소에 가지 못한 곳을 가자는 마음에 이번 출장에서 의미가 컸던 소위 '관'이 붙은 곳을 가기로 했다. 출장이 늘 그렇지만 다시 오지 못할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에 남은 시간이 참 소중하다. 그렇게 정한 곳이 피카소 미술관(Museu Picasso de Barcelona). 매번 갔던 대로 부지런히 지하철을 타고 Jaume 역으로 향한다. 역에서 도보로 약 5~10분 거리다.
골목 골목을 지나자 피카소 미술관을 표시한 현수막이 보인다. 아차. 입구를 지나쳤다. 다시 돌아서 입구로 간다. 출구와 입구가 같은 방향에 있어 착각했다. 입구 좌측으로 들어가니 매표소가 있다. 오. 한국어 오디오를 지원한다. 비용 부담이 있지만 다시 못 올 것이라 생각하니 지갑이 열린다.
오디오 기기는 매표소를 나와 중앙 통로에서 좌측 블록에 위치해 있다. 표와 맞바꿔 오디오 기기를 얻었다. 그런데 딸랑 기기만 준다. 이상해서 직원에게 이어폰은 없냐고 물으니 그냥 귀에 대라고 한다. 처음엔 저게 무슨 말인가 했다. 다시 기기를 보니 이제서야 이해가 간다. 옛날 무선 전화기처럼 생긴 기기 상단에 스피커가 달려 있다. 전화를 받는 것처럼 귀에 가져다 대니 음성안내가 나온다. 오. 이렇게 신박한 물건이었다니.
미술관 입구에 들어서고 나서야 오디오 기기가 완벽하게 이해가 된다. 작품마다 번호가 매겨져 있는데, 이 번호를 오디오 기기에 입력하면 해당 설명이 나오는 방식이다. 자. 이제 사용법을 알았으니 제대로 관람해야 겠다.
피카소에 대해서야 뭐 많이 들어봤지만 그의 국적은 안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역시나 미술에 문외한. 파블로 피카소가 스페인 말라가 출생이었다니. 사실 바르셀로나의 피카소 미술관에 대해서도 아는 게 없었다. 무모한 용기로 도전한 미술관이었다. 딱 하나. '관'을 좋아하는 선배의 한마디만 들었을 뿐이다.
"난, 피카소가 정상적인 그림을 그릴 때, 딱 그 때만 좋아하는데, 바르셀로나에서는 그걸 볼 수 있지."
'정상적인? 그리고 비정상적인?' 알수 없는 말이긴 하지만 결과적으로 미술관을 다 돌아봤을 때 그 의미를 이해할 수 있었다. 이 미술관은 피카소의 유년기와 입체파에 들어선 후기 딱 그 언저리까지 잘 모아놓은 곳이다.
피카소가 어릴 때는 상당한 고전주의 경향의 작품을 그렸고, 청년기에는 친구의 죽음에 온통 우울함을 나타냈던 소위 '청색시대'가 있었으며, 잠시 마음의 여유가 있었을 때 그린 '장미빛 시대'에서 입체파까지 나아갔는데 미술관은 그곳까지만 관람객을 안내했다.
미술관 초입 유년기 그림들은 미술을 알지 못하는 사람에게도 피카소가 사진처럼 그림을 꽤 잘 그렸다는 점을 새삼 깨닫게 된다. 아버지가 식당 장식을 하던 화가였는데 아들은 그보다 더 뛰어난 재능을 보였다. 지금으로치면 아버지가 피카소의 재주를 눈여겨 보고 자신의 꿈을 대신할 아들에게 조기 교육을 시킨 셈이다. 중학교 나이 때 그린 유화를 보면 정말이지 놀라운 디테일을 보여 준다.
청색시대와 장미빛 시대의 작품들은 각각 '시대'라 표현할 정도로 서로 다른 분위기를 자아낸다. 몇 십분만에 기분이 왔다갔다하는 느낌을 받을 수 있다.
미술관을 절반 이상 지나가자 작품이 서서히 일그러지기 시작한다. 입체파가 정확히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작품을 계속해서 뜯어보며 말로 설명하지 못할 무엇을 알게 된다. 이걸 표현해낼 수 있다면 도슨트에 도전할 수도 있겠지만 먼 미래 일이다. 단지 하나의 커다란 그림을 이렇게 저렇게 요렇게 바꿔 표현하는 작품들을 보면서 그림을 그린다는게 실로 놀랍고 열정적인 작업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1시간반 가량을 돌다보니 관람이 끝났다. 피카소의 미술 세계를 이해하느라 안쓰던 머리를 쓰다보니 어서 나가고 싶다. 그래도 기념품 가게를 들려야지. 한국어 도록이 있길래 하나를 냅다 잡았다. 엽서 두세장을 사니 더 사고 싶은 마음이 없다. 정말 피카소 미술관을 떠나야겠다. 나홀로 도전한 첫 미술관 치고는 나름대로의 보람이 있었다. 그러고보니 정말 혼자 미술관에 온 것이 이번이 처음이었다. 새삼 놀람.
미술관은 나오니 점심시간이 꽤 지나 있었다. 남은 시간이 있었기 때문에 정처없이 걸어 카탈루냐 광장으로 복귀하는 동선을 머릿 속에 그렸다. 생각해보니 도보로 10분 정도께 개선문이 있었다. 우측길로 쭉 올라가다보면 Passeig de Lluís Companys 공원이 나오는데 북쪽 끝에 개선문이 큼지막하게 세워져 있다. 1888년 바르셀로나에서 세계박람회가 열리는 기념으로 세운 건축물이다. 공원답게 장사꾼들과 퍼포먼스꾼들이 모여 있다.
5분 정도 더 걸어 테투완 광장 앞 벤치에 앉아 쉬기로 했다. 잠시 귀에 울리는 포크송을 들으며 여유를 즐긴다. 목이 좀 타긴 한데 주변에 슈퍼가 없다. 귀찮음에 그냥 앉아 있기로 했다. 한 10곡 정도를 들으니 다시 걸어갈 힘이 난다. 이제 정말 뭘 좀 먹어야 겠다. 만만한 파이브 가이즈에 가기로 하고 부지런히 움직인다. 카탈루냐 광장 옆은 가봤지만 북쪽에 새로 오픈한 곳은 가보지 못했다. 그리로 가야 겠다.
공짜로 주는 볶음피땅콩까지 야무지게 먹고 다시 길을 나선다. 파이브 가이즈에서는 전시관에 만난 타 기업의 직원을 만나 반갑게 인사도 했다.
호텔에 짐을 찾으러 가기 전, 카사 밀라와 카사 바트요를 눈에 담는다. 모두 안토니 가우디의 작품이다. 둘 다 나름의 사정이 있는데, 카사 밀라는 밀라 부부와 소송전을 벌인 바 있고, 카사 바트요는 뼈를 착안해 디자인한 건물로 당시에는 이쁨을 받지 못했다. 지금은 누구나 찾는 명소가 된 곳이다. 일정 비용을 지불하면 둘 다 입장이 가능하다. 카사 밀라는 위에서 도시를 내려다볼 수 있고, 카사 바트요는 내부 실내 장식까지 살펴볼 수 있다. 물론 둘 다 내부까지 가본 적은 없다. 다음에 기회가 있다면 들어가봐야지 싶다.
마지막까지 아쉬움에 자리를 못 뜨겠다. 눈에 선하게 들어왔던 자켓을 사면 이 발이 떨어질까. 욕심을 좀 더 내 FC 바르셀로나 매장에서 본 후드 집업 하나를 손에 든다. 그렇게 왔는데 FC 바르셀로나 옷은 또 처음 사본다. 대체 그간 뭘 하고 여기 온 걸까.
호텔에 도착해 야무지게 다시 캐리어를 해집고 싸기를 반복한다. 모든 준비가 끝났다. 호텔 직원에 작별 인사를 하고 다시 지하철로 향한다. 약 1시간 가량을 부지런히 타고 가야 한다. 한 번의 환승이면 공항까지 어렵지 않게 갈 수 있다. 이제 정말 안녕. 바르셀로나.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