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2부. 재난안전통신망 구축
국가재난안전통신망 구축이 2015년을 기점으로 본격적인 궤도에 들어섰다. 세월호 참사 이후 정부와 국민 모두에게 재난 대응 체계의 전면 재편이 불가피하다는 공감대가 형성되었고, 그 중심에 LTE 기반의 단일 재난망이 자리 잡았다. 하지만 정작 사업이 가시화되는 순간부터 정부 부처 204간의 입장차와 이동통신사의 이해관계가 충돌하며, 사업은 예상보다 훨씬 복잡한 양상으로 전개되기 시작했다.
정부는 정보화전략계획(ISP) 사업자로 LG CNS를 선정하며 기본 설계를 맡겼고, 2015년 초부터는 본사업 설계를 위한 각종 회의와 실무 조정이 이어졌다. LTE 기반 PS-LTE 구축에 참여하려는 이통사와 통신장비 업체 간의 기싸움도 동시에 시작됐다. 정부가 일정과 설계를 공개할 때마다 시장은 “KT가 주도권을 잡느냐, SK텔레콤이 반전을 만들 것이냐”는 관전평으로 요동쳤다.
그리고 2015년 2월 24일, 국민안전처는 서울 광화문 세종문화회관에서 ‘재난안전통신망 구축 사업 공청회’를 열었다.1) 이 자리에서 정부는 2015년부터 2017년까지 3개년에 걸쳐 재난망을 단계적으로 구축하겠다는 방대한 계획을 발표했다. 평창동계올림픽 개최 지역인 강릉·평창·정선을 시발점으로 삼고, 2016년에는 9개 시도로, 2017년에는 서울·경기 및 6대 광역시로 확대해 전국 단일망을 완성한다는 구상이었다. 총 1조7천억 원 규모의 예산이 투입되는 대형 프로젝트였다.
그러나 정작 중요한 문제는 ‘누가 맡느냐’였다. 이통사들은 발주 방식부터 의견이 갈렸다.
KT는 국가 단일 재난망의 특성상 시범사업만큼은 일괄 발주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 사업자가 전체를 책임지는 방식이 안정성과 효율성을 담보한다는 논리였다. 반면 SK텔레콤과 LG유플러스는 분리 발주를 요구했다. 기술적 리스크와 시행착오를 고려한다면 다양한 사업자가 참여해야 한다는 것이다. 국가적 과제를 앞두고 이통 3사는 ‘안정적 통합 운영’과 ‘리스크 분산’이라는 상반된 명분을 들며 첨예한 대립각을 세웠다.
정부 내부의 의견도 하나로 모아지지 않았다.
국민안전처는 입찰경쟁을 통해 1·2위 사업자를 뽑아 지역을 배분하는 방식이 합리적이라고 강조한 반면, 조달청은 지역 단위로 복수 사업자를 선정하는 형태가 더 적절하다고 맞섰다. 재난망 구축이라는 국가적 목표를 향해 가는 과정에서 정부 부처 간의 조율마저 난항을 겪으면서, 본사업은 시작도 하기 전에 방향을 잡지 못한 채 표류하는 듯한 모습이었다.
설상가상으로 700MHz 주파수를 둘러싼 지상파 방송사와 이통사 간의 갈등도 격화됐다. 700MHz는 전파 도달거리가 길고 건물 투과율이 높아 ‘황금 주파수’로 불리며 모두의 탐욕이 집중된 영역이었다. 각 주체가 한 치의 양보도 하지 않으면서 재난망 대역폭 배정은 막판까지 잡음을 냈고, 결국 정부는 전체 108MHz 중 보호대역 18MHz를 포함한 20MHz 폭을 재난망에 우선 할당하기로 결론을 내렸다. 주파수 결정이 내려진 시점은 그만큼 절박했다.2)
긴 진통 끝에 국민안전처는 2015년 7월, 시범사업을 ‘제1사업(평창)’, ‘제2사업(강릉·정선)’, ‘감리 용역사업’ 등 세 개 영역으로 나누어 긴급입찰 형태로 사전공고했다. 평가 기준은 기술 90%, 가격 10%. 사실상 기술경쟁이었다. 재난망 사업에서 기술과 안정성이 최우선이라는 정부의 의지가 드러난 부분이었다.3)
시범사업자 선정은 애초 계획보다 크게 지연되어 2015년 10월 8일에서야 발표됐다. 결과는 극적으로 갈렸다.4)
KT 컨소시엄이 94.7134점을 받아 시범1사업의 승자가 되었고, SK텔레콤은 93.1655점으로 시범2사업을 담당하게 됐다. 점수 차이는 불과 1~2점이었지만, 올림픽 개최지인 평창 구간을 확보한 KT의 의미는 컸다. LG유플러스는 아쉬움 속에 탈락했다.
이통사들이 맡은 시범사업은 차질 없이 진행됐고, 보강사업까지 포함해 2018년 1월 시점에 모두 마무리되었다. 그러나 시범사업 결과를 분석한 행정안전부는 기존의 ‘2017년 완성’ 로드맵이 현실과 맞지 않음을 확인하고, 전국 구축 일정을 대대적으로 재조정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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