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싸움 2: 아이는 어디서 밥을 먹어야 할까 - 맞는 말엔 귀를 기울이자
판사님.
이번 건은 제가 불리할 것 같습니다.
그래도 한번 안건을 시작해 보겠습니다.
시어머니가 오신 지 2주 동안 아이는 밥을 잘 안 먹었습니다.
밥을 주면 계속 식탁의자에서 일어나 어른 식탁에 있는 물건을 만지거나 식탁 위로 올라가려고 했습니다.
그걸 제지하며 밥을 먹이는 게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습니다.
저는 식탁의자에서 밥을 먹이고 싶었습니다. 옛날 우리나라 스타일은 앉은뱅이 상 앞에 앉아서 먹거나 범보의자에 앉혀 먹는 것인데 저는 어른 식탁 앞에 아이 식탁의자를 놓고 먹였습니다. 어른들이 먹는 환경에 익숙해져야 나중에 커서도 식탁에서 잘 먹을 거 같아서 그랬습니다. 그리고 솔직히 제 주변 아이 키우는 친구들, 유튜브나 블로그에서 본 엄마들은 하나같이 식탁의자에 앉혀 아이 밥을 먹였습니다. 저도 그게 자연스러웠구요.
그런데 어머니는 바닥에서 먹여도 문제없다고 하셨습니다. 당신도 그렇게 자녀들을 키우셨고, 최근 아이를 낳은 남편의 사촌동생 집에 갔을 때에도 아이를 범보의자에 앉혀 먹였다고 하셨습니다. 하지만 저는 바닥에서 먹이면 아이가 자꾸 돌아다녀 안 좋은 식습관이 들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비록 어머니 세대 때는 다 그렇게 키웠다 하셨지만요.
제 의견이 타당해 보였지만 문제는 의자 자체에 있었습니다. 보통 좋은 식탁의자는 단가가 비쌀 뿐더러 당근에서도 가격이 상당합니다. 저는 교회에서 나눔 받은 의자와 당근에서 나눔 받은 의자를 사용했는데 모두 안전벨트가 제대로 매여있지 않아 아이가 너무 쉽게 의자 위에서 움직일 수 있었습니다.
지나서 생각해 보니 아이는 스스로 밥을 먹고 싶었나 봅니다. 엄마가 떠먹여 주는 밥을 받아먹기가 재미없어 계속 딴짓을 하고 싶어 일어난 겁니다. 결국 밥 먹을 때마다 큰 소리를 내었고 아이를 울렸습니다. 그럴 때마다 어머니도 제발 식탁의자 말고 바닥에서 먹이라고 짜증을 냈습니다. 저는 결국 스트레스를 이기지 못하고 해결 방법을 알아봤습니다. 당근에서 튼튼하고 안전해 보이는 식탁의자를 찾았습니다. 가격은 7만 원. 정가 대비 1/5 정도로 싼 가격이었지만 제가 구매했던 육아용품 평균 가격보다는 비쌌습니다. 그래도 더는 지체할 수 없어 얼른 예약을 잡고 서툰 솜씨로 차를 끌고 가서 식탁의자를 당근해왔습니다.
잘 닦고 사용법을 숙지하고 개시했을 때 아이가 너무 좋아했습니다. 그리고 일어나서 먹지 못하니 어쩔 수 없이 밥을 먹었습니다. 어른도 아이도 모두 만족한 구매였습니다.
제 원래 성격은 변화를 싫어하고 기존에 해오던 방식을 유지하는 걸 선호하는 편입니다. 시어머니 말씀이 제가 고집이 세다고 하시네요. 반면에 시어머니는 새로운 것을 비교적 잘 받아들이는 것 같습니다.
이번 식탁의자 사건에서 보듯이 시어머니가 다그치지 않았다면 계속 힘들게 아이 밥을 먹였을 겁니다. 의자에서 자꾸 일어선다며 아이만 혼내며 계속 같은 굴레에 머물렀을 것입니다. 옆에서 뭐라고 하는 사람이 있으니 결국 더 나은 선택을 하네요. 식탁 의자는 몇 개월이 지난 지금도 잘 쓰고 있고, 둘째가 태어나면 둘째도 잘 쓸 예정입니다.
식탁의자를 볼 때마다 두고두고 시어머니가 생각 날 것 같네요.
표지 사진 출처 : Unsplash의 Harry Grou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