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캔디스 Oct 17. 2023

시어머니와 기막힌 7주 간의 동거(2)

말싸움 1: 남편의 구겨진 바지 사건 - 아내의 역할이 뭐길래

판사님 저는 무고합니다.

아니, 약간의 잘못은 있으나 전반적으로 제가 당한 것 같아요.


서로 감정을 다스리고 욕구를 표현하면 좋았을 텐데 마음을 못 받아주었네요.


남편이 회사 워크샵에 가야 해서 긴 바지를 찾던 아침, 구겨진 면바지만 보이자 어머니는 극대노 하셨습니다.

구겨진 옷을 입으면 자기 아들이 며느리에게 푸대접을 받는 것 같다고. 또, 다른 사람들이 얼마나 얕잡아 보겠냐면서요.


저는 구겨진 옷을 입은 사람은 얕잡아 보지도 않을뿐더러 남편 워크샵 갈 때 입을 옷을 챙기는 게 제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에 원망의 화살이 저에게 돌아오는 게 당황스러웠습니다. 


어머니가 그간 어떤 일들을 마음에 담아 오시다 그날 아침에 터트리셨는지 저는 모르겠습니다. 아들 며느리 부부 집에 올라와 2주간 지내며 몸과 마음이 불편하셨을 수 있습니다. 그래도 표면적으로 이 일 때문에 이렇게 성을 내시는 게 저는 이해가 가지 않았습니다. 



어머니가 차분하게 이야기하셨더라면 어땠을까요. 

그래도 남편 옷 좀 신경 써줘라. 구겨진 옷 입고 가니 속이 상한다.
긴 바지를 미리미리 준비해 둬라.


이 정도만 하셨더라면 저는 어머니의 마음을 받아들이고 수긍했을지 모릅니다. 


어머니가 감정을 가감 없이 표출하시니 듣는 저는 부담스럽고, 나를 비난하는 말투에 반발해 스스로 방어막을 세우고, 어머니에게 공감하기보다는 같이 심란해지는 내 감정을 다스리려고 반대 의견 ("오빠가 구겨진 옷을 입은 건 제 탓이 아니에요. 저희는 구겨진 옷 입는 거를 그리 신경 쓰지 않아요.")을 피력하게 됩니다. 저도 감정적으로 같이 동화되거나 반발심이 생기는 걸 막고 싶어서 오히려 제가 차분해지고 냉정하고 이성적이 되는 것 같아요.


어쨌든 속 상하신 어머니는 며느리가 반발하고 당신 생각에 동조를 안 하고 자기 생각만 말하니 더 화가 나셨습니다. 결국 저는 아이 등원 후 좋아하는 브런치 가게로 피신하여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남편과의 통화로 화를 삭이고, 집에 가서 어머니와 이마트로 옷 쇼핑을 가게 되었습니다. 그냥 옷 좋아하시고 외관 신경 많이 쓰시는 어머니를 이해했어야 할까요... 거기서도 당신 옷을 열심히 고르시더라고요. 새로 산 옷 거의 입을 일도 없으셨는데... 기분이 안 좋아서 홧김에 쇼핑을 하신 것 같았습니다.


다음번에는 저도 마음의 문을 열고 어머니께서 지금 어떤 감정이시고 뭘 원하시는지 현 상황에서 한 발자국 떨어져 바라봤으면 좋겠고, 어머니에게도 감정을 있는 그대로 표현하시면 그 감정의 에너지가 그대로 전해져 감당하기 힘들다, 조금 진정하신 후 말씀해 달라고 요청해야겠습니다. 


어머니에게는 직접 말씀드리지 못했지만 판사님께 이렇게 제 마음을 정리해서 말씀드립니다.


표지 사진 출처: Unsplash의 Creaslim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