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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nnerplate Jun 27. 2024

나는 빛나고 있다   

그런 날이 있다. 버스 시간을 보고 나오지 않았는데, 버스 정류장에  도착하는 순간 기가막힌 타이밍으로 내가 탈 버스가 오고 있는 상황... 오늘 오전 그랬고 본래 일어날 일이 일어났다는 듯 활짝 미소 지어보였다. 뚜벅이인 내게 버스가 교통수단인데, 이런 방식의 일상의 펼쳐짐에, 스무스함을 그저 바라보고 체험한다.


버스를 타고 평소보다 일찍 집을 나선 건, 얼마 전 봐둔 그립톡을 사기 위해서였다. 고양이가 선글라스 끼고 있는 모양의 그립톡을 그냥 지나쳐 온 게 아쉬웠다. 그 모양새가 힙해서, 무심해보여서 샀는데 만족스럽다. 예쁘다고 덥석 사진 않는데, 내 취향의 것이면, 내 마음을 쏙 빼앗아간 물건이면 무장해제가 된다.


그러고선 일하러 가기 전, 1시간 정도 시간이 있어 조용하면서도 한적하고 고요한 공원에 머물렀다. 선선한 날씨여서 책읽기에 최적의 공기였고 내 앞에 펼쳐진 풍경도 아름다웠다. 벤치에 앉아 반쯤 읽은 책을 읽었다.아주 잠깐 인기척이 들릴 뿐이었다. 그러다 고요히 눈을 감고 잠시동안 지금. 여기. 순간. 자체를 온 몸으로 껴안았다.


그러다 자리에 일어나 걷고 있는데, 두 분이 내게 말을 걸었다. "책 다 읽었어요?" 알고보니 공원을 청소해주시는 분들이었는데, "아까 책 읽고 있더라고요. 우린  한 바퀴 돌고선..." 내가 책 읽고 있는 걸 지나가다 보신 모양이다. 처음 본 나에게 이토록 밝은 미소와 다정한 말투로 말을 건 그분들에게 나도 미소로 화답했다.


활짝 웃으며 돌아서는 순간, "와우, 정말 세상이 이렇구나. 이렇게 돌아가고 있구나. 모든 것은 상호작용하고 연기법으로 돌아가고 있다." 너와 내가 다르지 않다. 너와 나는 하나다. 아주 미세한 전율이 일었다.


이런 방식으로 세상을 바라보면 모든 것이 아름답고 평화롭고 평온하고 신비롭기만하다. 그러니 친절하지 않을 수 없고 상냥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수시로 시시로 크고 작은 경험들이 외려 내가 우주 그 자체라는 걸 보여준다. 이런 방식으로 나와 자연과 우주가 다르지 않다는 게 드러난다.


기분좋은 마음으로 로컬푸드 직매장에 들렀다. 집 앞 매장이 아니라 즉흥적으로 들른 것이었는데, 오늘은 블루베리가 날 불렀다. 마침 다 떨어진 차제에 그래서 너가 날 불렀구나.했다.


작은 알을 선호해서 작고 싱싱한 블루베리 상자 하나를 골랐다. 한 손엔 블루베리를 들었는데 어쩜 이토록 부자가 된 기분인지. 내게 부자된 기분이란, 충만함 그 자체다.  


하루도 빠짐 없이 글쓰지 않으면 안되는 상태가 됐다는 건, 내겐 매우 유리하다. 의도한 것은 아닌, 저절로.가 딱 맞다. 저절로 글이 써진다. 글을 쓰는 사람이 나인가. 글쓰고 있는 걸 알아차리는 나는 누구인가. 내가 생각하는 걸까. 생각하는 자는 누구인가. 글쓰기를 시작한 후부터 지금까지의 글을 보고 있자면, 내 안에 글쓰는 괴물^^ 혹은 거인이 있는 걸까.싶을 만큼 저절로, 그것도 쉬이 씌여진다.


직관적인 흐름이다. 그래서 다 씌여진 글을 읽고 나면, 이것이 진짜 나인가. 내가 이런 사색을 했단 말인가. 적어내려간 내가 쓴 단어 선택과 문장에 미세한 소름이 돋을 때가 있다. 그것은 자아도취적인 성격의 것이 전혀 아닌, 알아차림의 결과일지도 모르겠다.


그립톡 하나에도, 기가막힌 타이밍에 내가 탈 버스가 오는 작용에도, 블루베리를 사면서도, 공원에서 책을 읽으면서도, 지그시 눈을 감고 바라보면서도, 사색할 수 있다는 것. 질문할 수 있다는 것. 아름답다고 느낄 수 있다는 것. 평온함을 느낀다는 것. 그저 감사하다. 나는 모든 것이다. 나는 빛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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