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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nnerplate Jun 30. 2024

미소는 최고의 메이크업

서른 중반이 되면서부터 약속을 줄였다. 가장 큰 변화는 사람들과의 관계가 좁아졌다. 좁아졌다는 건 상대적으로 그마만큼 깊어졌다는 것과 같다. 대학생이던 때, 대학교를 갓 졸업해 막 사회생활을 시작한 사회초년생 때, 스물 중반을 넘어 스물 후반, 서른까지만 해도 서울 시내 이곳저곳 다녔다. 


무엇보다 내 취향의 동네를 발견하는 일, 그런 것들에 관심이 있었다. 나는 광화문, 경복궁역, 서촌일대를 가장 좋아했다. 대학 졸업후 광화문 직장인이 되었으니, 얼마나 좋아했던지. 


스물 초반, 열정적이던 그 시절의 초아. 스터디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광화문 사거리 일민미술관 건물 위 전광판을 바라보며 횡단보도를 걷던 일, 버스 정류장에서선 곧 광화문 어딘가에서 일하고 있을 내 모습을 상상했던 일, 파노라마처럼 오버랩된다. 그땐 참 꿈많은 소녀였는데^^ 


삶이 이렇게 절로 펼쳐지는 거란 걸, 그러니까 쫄지 말고 아파하지 말고 두려워하지 말고 불안해하지 말고 우울해하지말고 실패를 두려워하지 말고 좀 더 용기내 볼 걸 좀 더 씩씩하게 살 걸. 다시 돌아간다면 스무살의 초아에게. 잘 될 거니까 걱정말라고. 그렇게 꼬옥 말해주고 싶다. 안아주고 싶다. 


광화문 일대 동네를 가장 편안해하고 좋아했는데 광화문 직장인이 되었으니. 얼마나 좋았던지. 퇴근 후 친구들과 동기들과 저녁 약속은 누구에게나 힘든 삶 혹은 직장에서의 스트레스를 확 날려줄 단비와도 같았다. 여전히 내 약속은 웬만하면 광화문, 서촌 일대다. 그런 바이브 지극히 개인적인 나의 취향이겠다. 무튼 과거의 나도 다 사라지고 존재하지 않는, 기억의 잔상이겠다. 

 

일요일 저녁, 저녁을 맛있게 먹고 난 후 소파에 앉아 삼십 여분 책을 읽다 노트북을 켰다. 좋아하는 음악과 함께 양손가락은 이미 키보드를 두드리고 있다. 투다다다닥. 평온하다. 이런게 행복 아니고 무엇이겠는가.싶은 딱 그 마음이다. 깨끗히 씻고 나온 뒤 보드라운 발과 발사이를 부비고 발가락을 꼼지락꼼지락하는 순간도 행복이다.   


새 옷을 사지 않는데, 오늘은 예외가 됐다. 마음에 쏙 든 여름옷 두 벌을 샀다. 오랜만이었는데. 만족스런 쇼핑이었다. 보세 가게에서 산 것인데, 올 여름 아주 잘 입을 것 같다. 


오랜만에 옷을 산 이유는, 필요해서이기도 하고 7월을 앞두고 무언가를 새로이 하고 싶다는 내 나름의 의지와 다짐이었다. 이런 방식으로 내 취향의 옷을 사는 것. 내게 내 취향의 옷이란, 기준이 지극히 나에게 있는데, 내가 봤을때 내 스스로가 예뻐 보이는 옷이다. 기분좋아짐도 있고 무엇보다 개운의 효과가 있다. 하나를 채우면 하나를 비우는 편인데, 입고 좋지 않은 일이 있었던 옷.이 있었는데 아쉬움 없이 버렸다.


외면과 내면은 하나다. 외면이 아름답지 않은데 내면이 아름다울 수 있을까. 내면이 아름답지 않은데 외면이 아름다울 수 있을까. 내가 말하는 외면이란, 흔히 생각하는 화려하거나 부티 있어보이는 류가 아니다. 분위기와 아우라와 매력에서 나오는 아름다움과 기운이다. 


내게 잘 어울리는 옷, 잘 정돈된 피부결과 머리결, 미소, 언어, 말투, 목소리, 태도... 모든 것의 총합은 외면이라는 상으로 드러난다. 외면이 내면과 하나라는 것, 얼굴은 심상의 반영이기 때문이다. 


오늘 산 2벌에 나는 굉장히 행복해했는데, 어맛 우연히 들어가 고른 것이었는데, 여름 세일로 가격도 절반이 아닌가. 꺄악. 너무 잘됐다.며 신나했다. 내 얼굴과 체형과도 딱 맞았다. 망설임 없었는데, 이토록 날 기분좋게, 예뻐보이게 하는 옷인데. 나와 인연이 분명했다. 


꽤 큰 매장의 보세가게였는데, 한 직원이 밝은 미소로, 옷을 고르는 내게 도움을 줬다. 나도 분명 환하게 미소 짓고 있었음이 분명이다. 상대적이기 때문이다. 계산을 하고 있는데, 직원이 내게 말했다. "화장 안하셨는데 너무 예쁘세요." 아이쿠. 감사합니다.라고 화답했는데 덧붙여 그녀는 "말하실 때랑 움직임이 우아하세요. 연예인 같아요."라고 하는게 아닌가. 그녀에게 환하게 미소짓고 인사하며 가게를 나왔다. 


다행이다. 어떤 이유에서인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나를 볼 수 없으니, 거울에 비친 내 모습만을 바라볼 수 있으니, 타인이 나를 보는 모습이 어떨지는 퀘스천이다. 그치만 이런 이야기를 곧잘 듣는 나로서는, 내 외면과 내면이 분리되지 않고 하나로 잘 확장되고 있는 것 같아서 감사하다. 


대학시절부터도 초아답다. 혹은 나만의 독특한 바이브, 톡톡 튀는 그 무언가가. 있다는 이야기를 듣곤 했는데, 그래서 어딜가도 튄다고 했다. 그땐 깊이 생각해보진 않았지만, 나이 들어가며 고찰 된다. 


광화문 직장인 시절, 길을 걷다 동기 언니가 내게 물었다. "초아야, 너 그거 알아? 너랑 같이 횡단보도를 걷거나 길을 지나가면 사람들이 다 너를 한 번씩 보는거?"(나는 결코 요즘 한국 미인과는 거리가 먼 외모를 가졌다. 까무잡잡하고 고양이상이다). 


솔직하게 그런 시선을 지금도 느끼는 편이다. 나는 안다. 예쁜 외모여서가 아니라, 내가 가진 바이브 때문이란 걸. 그 바이브가 매력적인 사람으로 보이게 한다는 걸. 그 매력은 내가 매력있다고 직접적으로 말하는 방식이 아닌 타인이 절로 느끼는 것이다. 그 바이브가. 그 매력이 날 예뻐 보이게 한다는 걸. 때론 사람들의 시선을 붙잡는 걸. 


그래서 그 어떤 외형적인 조건도 날 가두지 않게 된 것이다. 화장하지 않는 지금의 내 얼굴을 사랑하게 된 것도 내가 가꾸어야 할 것은 내면이란 걸, 내면의 빛을 알아차리게 되면서다. 


미소를 가진 사람들이 정말 아름다워보인다. 어떤 조건을 갖춰서가 아니라, 그 사람의 따뜻한 미소, 순수한 미소, 맑은 미소가 내 마음을 울리기도 하고 감동을 준다. 미소는 내가 할 수 있는 최고의 얼굴 관리법이다. 미소를 장착한 사람은 최고의 메이크업 기술을 가진, 아티스트다.


내면과의 소통, 의식의 전환과 확장, 독서, 글쓰기, 명상, 몸의 움직임, 잘 먹고 잘자기. 미소. 사색하고 사유하고 질문하는 삶은 책임이자 의무다. 날 위한 길이 곧 타인을 위한 길이라는 것. 나를 이롭게 하면 타인에게도 이롭다는 것. 타인에게 이로우면 나에게도 이롭다는 것. 서른 후반의 나의 농밀한 사색과 사유는 필연이었다. 


Always smile!  미소 하나면 올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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