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에 관심없다. 행복은 내 인생의 목적이 아니다. 살면서 깨닫게 된 것 중 하나는, 행복은 불행의 반대가 아니라는 것. 불행의 반대가 행복이 아니라는 것이다. 행복해지기 위해 노력하는 것보다 불행해지지 않는 편이 내게 더 유리하다는 걸, 내 정신건강에 더 이롭다는 걸 깨닫게 됐다. 위너가 되는 것보다 서바이버가 되고 싶다는 내 바람과 정확히 일치하는 것이다.
오늘 따라 유난히 내 양손가락의 주름이 짙다. 손가락도 갈수록 아주 조금씩 두꺼워지는 것 같은 건, 기분탓일까. 손가락의 주름은 확실히 짙어지고 촘촘해졌다. 신체적 노화는 정말이지 너무도 자연스러운 것이다. 되돌릴수도 회복될 수도 없는 자연의 이치다. 누구에게나 젊은 당연한 것이며 누구에게나 나이듦은 당연한 것이며 누구에게나 죽음은 당연한 것이다. 알면서도, 잘 알겠으면서도 허걱. 혹은 꺄악.할 때가 있다.
40.이 가까워오니 자주 인생을, 살아온 지난 날들이 곱씹어진다. 서른에서 마흔이라는 구간은 정말이지 그 어느 시절보다도 쏜살같다. 화살이 훅 당겨져 순식간에 과녁을 맞춘듯한 기분이랄까.
내 우울의 근원은 집착이었다. 지금도 우울이 훅 강펀치를 날릴 때면 알아차린다. "가만있어보자, 지금 나는 는 무엇에 집착하고 있는가?" 아주 냉정하게 질문한다. 주말 내, "왜 집착하는가? 무엇이 너를 가두는가?" 또 다시 찾아온 우울로 몸서리쳤다. 그 우울의 감정은 아주 짧은 시간이라 할지라도 엄청난 자극을 준다. 내 몸과 정신에 치명상을 입히곤 한다. 그 감정을 다신 경험하고 싶지 않을만큼 그 순간엔 이토록 미울수가 없다.
나이 들어가며 단호해진 것 중 하나는, 내 마음이 불편한 것들은 하지 않기. 이런 면에 있어선 직감을 따르는 편이다. 나를 불편하게 하는 것들을 하지 않기. 만나면 날 불편하게 하거나 불편한 감정을 느끼게 하는 사람은 만나지 않기. 선택할 때, 단호해졌다. 가령, 사람을 만나보면 알게 된다.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꼭 행동 하나하나 관찰해서라기보다 기운적으로 느껴지는 것도 있고 말이나 어투, 눈빛, 목소리, 태도에서 곧장 느껴지기도 한다.
나를 생각하는 것 같지만 실은 그렇지 않다는 것. 나이 들어감에 따른 경험의 축적덕분인지. 켭켭이 쌓여진 덕분에 얻게된 나름의 노하우 덕분인지. 무튼 이젠 어느 정도 알아차릴 수 있게 됐달까. 혼란스러운 사람도 있다. 상냥하고 친절할 수가 없는데 때론 감동할만큼 따뜻한 마음이 느껴질때가 있는데, 어떨 땐 이해하기 어려울 만큼 무례할 때가 있어서 퀘스천 마크가 이는 사람이 있었다.
내 기준은 단호했다. 결국 그 사람이 하는 행동은 평소 나를 대하는, 나를 생각하는 무의식적인 반응일 것이라는 것. 그런 관계에 구태여 노력하지 않는다. 차츰, 내게 알맞은 방식으로, 내 마음이 최대한 불편하지 않는 방식으로, 내 삶이 어떤 것에도 휘둘리지 않는 방식으로 삶을 정열해 나가고 있다.
내게 행복이란 정말이지 거창한 것이 아니다. 좋아하는 사람들과, 좋은 사람들과 만나 대화하고 맛있는 식사를 함께 하는 것. 이것이 실은 전부다. 무엇이 날 더 기쁘게 할까. 행복하게 할 수 있을까. 이보다 더 한 것이 무엇이 있을까. 나를 위한 아주 작고 사소한 소비도 날 행복하게 한다. 내 취향의 파우치 하나 사는 일, 텀블러 하나 사는 일, 쿠션 커버 하나 사는 일, 쓰레기 비우는 일(낡은 기운까지 버려지는 기분에 내가 좋아하는 소일거리 중 하나다), 자연을 만끽 하는 일... 아주 작은 것이 날 살게 한다. 용기를 준다.
내 눈 앞에 펼쳐진 울창한 나무들 사이 가을바람에 흩날리는 나뭇잎들 사이, 날아다니는 호랑나비, 하얀 나비, 잠자리... 모든 것이 평화롭다. 내가 자연을 이토록 사랑하는 이유는, 자연은 말이 없다. 말이 없어서 내게 이토록 위안을 준다. 자연은 내게 그저 묵묵히 있는 그대로 바라보라.라고 말해주는 것 같다.
그러면서, 너와 나는 하나.라고 내게 용기를 준다. 스스로를 불행의 미로에 가두면 오랜 시간 어쩌면 영영 빠져나오지 못한다. 내게도 불행의 미로에 스스로를 가둔 시간이 있었으므로 자신있게 말할 수 있다. 그 누구도 나 자신을 일으킬 수 없다. 그 누구도 불행의 미로속에서 날 구해줄 수 없다. 빠져나오는 법도 알려주는 이 하나 없다. 그 속에서 어떤 방식으로든 처절하게 몸부림 칠 때, 몸서리 칠때로 쳐서 도저히 일어설 힘이 없어 그 자리에 주저 앉고 말았을 때, 얼굴을 땅바닥에 묻히고 나서야 비로소 일어설 생각이 든다.
그 시간이 꼭 필요했다. 누구에게나 삶은 고통이다. 나에게만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길 바라는 것도 욕심이고 집착이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란, 행복해지기 위해 노력하는 것보다, 불행해지지 않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나는 더 유리했다.
여전히 나는 서바이버다. 세상을 살아가는 생존자. 행복하기 위해 사는 게 아니라, 살기 위해 행복해지는 것이다. 살기 위해 불행해 지지 않는 것이다.
오늘 이토록 밑도 끝도 없이 글쓰고 싶어진 걸 보니, 이토록 써내려가는 걸 보니, 꽤나 지금 이 순간을 불행하게 보내고 싶지 않은 가보다. 실체없는, 가망없는 우울로 지금 이 순간을 보내고 싶지 않다는 의지다. 글쓰고 나면 이토록 개운할 수가 없다. 차분해지고 침착해진다. 평일 오후 글쓰기가 내게 주는 선물이다.
불행해지지 않는 법은 이토록 단순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