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현듯 그냥 쓸 뿐이다.는 문장 하나가 떠올랐다. 망설임없이 적었다. 그렇게 글쓰기 하나가 시작된다. 내 글쓰기는 늘 이런 방식이다. 어떤 것도 계획된 것 없이 흘러가는 대로. 되는 대로.
힘을 뺄 때, 모든 것이 더 잘 이뤄지지 않나. 모든 것이 자연스러워진달까. 무언가에 집착하면 할수록 달아나버리는 것과 같은 이치다.
이유는 없어 그냥해.펭수말도 떠오르는 것 무엇. 이럴 때 보면 생각이라는 거, 내 맘대로 되는 게 아니다. 생각이 내가 아니라는 것도 분명해진다. 절로 일으켜지는 것일 뿐.
이유는 없어 그냥해.처럼 글쓰기는 삶이 되었고 일상이 되었고 순간이 되었다. 그냥 쓸 뿐이다. 내 마음 가는대로 한 생각 일으켜지는대로 그렇게 묵묵히 쓸 뿐이다. 마치 한 생, 묵묵하게 살아내는 것처럼, 글쓰기도 그냥 쓸 뿐이다. 이 말이 삶도 그저 살아지는 것이다.로 들리는 건 무얼까.
글쓰지 않았더라면 나는 그 시절을, 그 세월을 어떻게 견딜 수 있었을까. 나는 아침에 일어나자마자서도, 잠이 오지 않을 때도, 기쁠 때도, 슬플 때도, 우울할 때도, 그저 쓸 뿐이었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내겐 글쓰기는 살기 위한 몸부림이었고 외침이었고 꼭 그래야만 하는 것이었다.
책이 꼭 내게 그랬던 것처럼, 자연이 꼭 내게 그랬던 것처럼, 글쓰기도 날 있는 그대로 바라봐주었다. 자연은말이 없지만 어쩌면 그래서 자연이 주는 그 경이로움과 아름다움이 날 그토록 위로했는지도 모르겠다.
오늘 아침, 녹색 스커트를 입고 나왔다. 말차를 푼 것에 우유를 넣기 직전의 색.이 딱 알맞다. 중간중간 나뭇잎 모양의 은색 반짝임이 있다. 펑퍼짐한 롱스커트를 즐겨입기도 하고 녹색이 딱 내 취향의 것이었다. 한 여름, 세일기간에 자라에서 사둔 것이다. 가격택이 89,000이었는데ㅡ 15,000원에 샀다. 이 얼마나 합리적인 것인가.하고선 덥석 샀다. 사이즈도 다행히 S.딱 하나 남은 것이었다.
오늘에서야 개시했다. 별다른 이유는 없었고 기분전환겸 새 옷이 입고 싶었던 것이다. 입고 나오니 덩달아 내 기분도 이토록 그린그린해질수가. "차분하게ㅡ 침착하게ㅡ 감사한 마음으로 이 순간을 맞이하자. 더는 우울해 하지 말자. 우울이 날 침범하게 하지 말자 알았지?ㅡ" 다행히 집밖을 나온 지금, 침착하고 차분한 상태로 있다.
요즘 들어 자주 인다. "나는 좋은 사람일까?", "나는 정말 좋은 사람일까." 무튼 나는 생각이 정말 많은 사람이라는 걸 인정해야만 했다. 무언가를 하기도 전에 생각이 많아서 망하는 케이스(?)(망한다,는 다소 극단적인 표현이지만 정말이지 어떨 땐 나의 많은 생각들이 날 행동하게 하지 못하고 망설이게 하고 머뭇거리게 한다는 걸ㅡ 내겐 큰 장애물이라는 인정할 수밖에 없다. 달리 표현할 방도가 없었다)
작년에도 8월부터 10월까지 유난히도 내겐 힘든 시간이었다. 분명 나 자신이 만들어낸 힘듦이고 고통이고 수레일텐데, 올해도 기어코 반복되고야 말았다. 이유는 사실 너무도 분명한 것이었다. 불안함과 두려움을 극복하기 보단 회피하는 것을 선택한 것. 그걸 뛰어넘지 못하고 눈앞의 것만 바라본 것. 일시적인 안정을 주는 것을 택한 것. 마치 해결된 것으로 보이나 실은 시간만 더욱 길게 늘어뜨린 셈인 것. 그 어떤 것도 해결된 것이 아니었다는 것. 변화하지 못하게 날 가두는 것이었다는 걸 외면하는 어리석음...
올해 또 다시 반복된 이 경험이 분명 내겐 변화의 기회라는 걸 알면서도 요 며칠 나는 또 다시 힘겨운 시간을 보내야했다. 알면서도 또 다시 날 무너뜨리는 이 감정의 소용돌이. 어쩌면 알아차린다면서 전혀 알아차리지 못하고 있음을 방증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더는 그러지 않겠다.는 내 단호한 의지는 어디갔는가? 오랜 낡은 습과 기억의 회로가 이토록 무서운 것이다.
다행히도 내 눈 앞에 흩날리는 나뭇잎들이 날 깨운다. "계절이 오고 있어. 헬로우? 가을이 오고 있다구? 뭐가 두려운거야? 네 안을 잘 들여다봐, 네가 정말 무얼 원하는지 알고는 있는거니? 정말이지 깊게 질문한 거 맞아?... 너 자신을 믿어? 너 자신을 사랑하긴 하는 거야?"
날 몰아세우는 나뭇잎 풍경이 전혀 섭섭하지가 않다. 고마울 수가 없다. 그 어떤 것도 잘못된 것이 없다.는 걸 다시금 알아차려야 한다.
피부톤은 아주 얆게, 그러나 눈매는 또렷하게 간만의 외국언니 느낌으로다가, 곱게 매만졌다. 제법 긴 머리도 땋아 내렸다. 보헤미안이나 히피스러운 느낌을 선호하기도 하고 그런 이야기를 종종 듣기도 하는데, 내 선호와 취향에 맞게 치장을 했다. 지난 번 사둔 녹색 스커트도 바람에 흩날리는 것이 이것 하나에도 자유로움을 느낀다.
아무리 물어도 물어도 답이 나올 기미가 보이지 않을 때, 어떤 직관적인 무언가가 나타나지 않을 때, 무언가 꽉 막힌 기분일 때, 도무지 실타래가 풀리지 않을 때, 곧장 거울 앞에 선다. 치장을 시작한다. 효과있다. 꺄악. 이렇게 해서라도 내가 보는 내 예쁜 모습을 거울앞에 데리고 와야 한다.
오늘 아주 성공적. 이젠 무슨 수를 써서라도 내 스스로를 무너지게 않게 한다. 잘하고 있다. 소중한 내 순간순간을 우울이라는 감정에 무릎꿇게 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