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jolievibes Oct 02. 2024

생각이 많은 건 내겐 유죄

일본 여행을 좀 다녀올까? 지금쯤 평일 비행기값도 저렴할텐데... 일본을 여행지로 선호하는 건 휘황찬란함이 아닌 낮은 건물들과 골목골목 사이를 걷는 차분하고 침착한 바이브 때문이다. 정말 확 떠나버려? 시월 안엔 어떻게서든 이 쉼의 마무리를 짓자. 


지금 껏 봐 온 나는, 처음 시작하기가 어렵지 한 번 시작하면, 마음 먹으면 어떻게해서든 하고야 마는, 해내는 성미가 있다. 너무 많은 생각이 날 행동하지 못하게 하는 고약한 구석이 있다. 생각만 하다 시간만 흘려보냈던 순간들도 부지기수다. 


"촤! 자꾸 이러기? 이럴거야? 더는 그러고 싶지 않아. 경험적으로 많이, 자주 그랬어. 이젠 더는 일이야. 일단 무엇이든 당장 시작하고서 얘기해 그러자구! 당장 뭐라도 일단 해보라구" 이번엔 진짜일까? 


생각에 갇히면 꽉 막힌 기분이 든다. 게다가 행동까지 굼뜨면 총체적 난국이다. 요 며칠 완전히 갇힌 기분이었는데, 사방에서 날 꽉 옥죄고 있는, 타는 듯한 기분이었다. 확실한 건 이 답답함이 꽉 막힘이 어디에서 온 건지 너무 잘 알고 있다는 것. 알아차린다는 것. 


막힌 기분일 때, 어떤 해답도 도무지 찾아지지 않을 때, 이 상황이 계속될 것만 같은 망상이 일 때, 벌떡 일어난다. 자리를 우선 박차고 일어난다. 살랑이는 가을 바람도, 푸른 하늘도 그 순간 내게  그 어떤 위로도 되어주지 못한다. 


간밤에 잠을 설쳤다. 분명 집착해서겠지. 불안해서겠지. 두려워서겠지. 알면서도 알아차리면서도 진짜 행동하지 못하는 나 자신에 대한 못미더움, 나약함 때문이겠지. 지금을 살지 못하고 있어서가 확실하다. 


잠을 설친 차제에, 침대 밖을 나와 소파에 앉았다. 불도 켜지 않고 덩그러니 앉았다. 곰곰히 들여다봤다. 


"촤야, 잠이 안 오니? 언제부터인가 이맘 때면 늘 비슷한 상황이 반복되고 있잖아... 왜 그런 것 같아? 왜 그럴까? 집착때문이란 걸 너도 알고 있지? 계속 이러고만 있을 거야? 너도 잘 알고 있잖아. 생각만 하다 너무 많은 걸 놓치고 그러다 많이 안타까워하고 아쉬워했다는 걸. 딱 작년 이맘때, 정말 찰나지. 하고 싶은 무언갈 자꾸 내일.하고 미루기만 했더니 지금 어떻게 됐어? 그 어떤 변화도 일어나지 않았어! 한 살만 더 먹게 됐어. 이게 정말 네가 원하는 삶 아니잖아? 이젠 정말 변화할 때도 되지 않았어? 생각만 하고 있는 게 너무 똑땅해..." 


간 밤 나와의 대화는 시간가는 줄 몰랐다. 그러다 눈떠보니 소파 위 그리고 밝은 아침이었다. 정신이 또릿또릿했다. 간 밤 무슨 일이 있었던 건가. 간 밤의 대화가 신통방통했던 걸까. 새벽녘 나와의 대화는 너무도 잘한 일이었다. 번쩍든 정신이 행여 또 다시 어디론가 가버릴까 바짝 붙잡고 거울 앞으로 갔다. 부엌과 가까운 곳에 사각 거울을 걸어놨는데, 커피 물 먼저 올려놓고 거울 속 내 눈을 보았다. "올, 아주 잘 잔 모양이야. 피부가 맑네. 깨끗한 걸? 눈동자도 또릿한 게 굿굿." 


내 현재 기운, 운을 내 눈동자의 맑음, 빛으로 확인하는 편이다. 어김없다. 무슨 일이 있어도 눈동자의 맑음과 빛만큼은 잃지 않으려 한다. 눈동자의 맑음은 심상이다. 


살아보니 생각이 많은 건 단점도 장점도 아니었다. 생각이 많은 것 자체엔 문제가 없다. 그 생각을 내게 유리한 방식으로, 유익한 방식으로 사용하지 못한 나 자신의 태도와 대응방식이 문제였다. 


서른 후반이 된 지금, 마흔을 코 앞에 둔 지금, 생각이 많기만 한 건 유죄다. 직무유기다. 내 삶에 닥친 문제를 이렇게 해결하지 않고 내버려둘텐가? 방치할텐가? 그 누가 대신 해결해 줄 수 없다. 오직 나 자신과의 치열한 한 독대, 처절한 외로움과 고독 속에서 발견하는 빛이다. 


지나보니 나는 생각이 많은 사람이었지 생각이 깊은 사람이 아니었다. 생각이 많은 것과 생각이 깊은 건 분명 다른 것이다. 이젠 정말이지 생각이 깊은 사람으로 거듭나야할 때가 아닐까? 그러자. 이번엔 정말이지 이 생각의 늪에서, 머뭇거림에서 주저함이란 알에서 깨어나자. 알을 깨자. 


더는 내 인생에 생각만 하는 죄를 범하지 않을 것이다. 



 

 


이전 15화 책도 인연인 이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