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 밖으로 소리 내었을 때, 좋아하는 단어 중 하나가 만트라(Mantra)다. 만트라, 만트라... 일부러 반복해서 소리내어 말할 때가 있다. 혼잣말도 잘하는데, 즉흥적이거나 직관적인, 직감적인 단어나 문장들이 불현듯 내 입밖으로 나도 모르게 나올 때면, "이것이 진정 내면의 소리인 건가?'할 때가 있다.
내게 만트라란 거창한 것이 아니다. 내 안에서 뿜어져 나오는 소리, 내면에서 절로 드러나는 소리, 이토록 직관적 소리, 말, 울림이다. 만트라는 나의 세계의 통로이자 전부이기도 하다.
만트라는 내가 나에게 끊임없이 하는 질문이다.
열렬한 자기 주문이다.
살면서 무너질 때, 우울할 때, 허우적 댈 때, 무언가 막막할 때, 도저히 답이 찾아지지 않을 때, 슬플 때, 미치도록 외로움에 사무칠 때, 상처로 아파할 때... 누구에게나 삶은 고통이고 저마다의 사연이 있다. 괴롭기만 한 시간이 생각보다 길어질 때, 나의 만트라는 이토록 강력한 것이다.
살아갈 길을 열어준달까. 살아갈 에너지로 되돌아 온다. 말과 글은 하나다. 말과 글엔 기가 있다. 에너지가 있다. 현재 내 기운의 반영이 곧 말과 글인데, 이런 방식으로 나를 알아차린다. 만트라와 명상은 내게 어떤 거창하거나 고상하거나 화려하거나 정적인 것만이 아니다.
이토록 사소하고 소소하고 시시하고 단출하고 소박할 수 없는 것이다. 언제나 나와 함께 있다. 터벅터벅 무거운 몸을 이끌고 애써 힘을 내보려 하는 날엔 길을 걷다가도 "촤야, 왜 이러는 거니... 또 이러기야?... 이젠 제법 잘 알지 않나? 그 어떤 것도 널 파괴할 수 없다구. 무너뜨릴 수 없어. 언젠간 죽어. 내일 죽을지도 몰라. 무얼 망설인다니?... 안타까워..." 다독이는 말들도 있고 정신이 번뜩이게 하는 팩폭의 말들도 있다.
자연과 함께 있을 때면, 이 세상이 이 우주가 한 없이 아름다워보이기만 할 때도 있는데 그럴 때면 생과 사는 하나란 걸 더욱 명징하게 깨닫게 된다. 나는 죽어가고 있다.는 생각은 어떤 염세주의나 허무주의와는 다른 그러니까 살아!. 그러니까 화끈하게 신나게 놀다 가야지. 여행하다 가야지!한다.
내 만트라는 철저히 나답다. 촤 만트라.라고 해야겠다싶은 것이 어쩜 이토록 진지했다가도 무심했다가도 재밌다가도 엉뚱했다가도 세상 소녀같다가도 세상 다정하고 달콤했다가도 세상 무뚝뚝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내가 하는 말과 글을 보면, 내 세계의 언어가 이렇구나. 이토록 나스럽구나.싶다. 말과 글이라는 내 언어와 사유와 사색과 시선의 세계가 결합돼 드러나는 나.라는 세계. 내가 생각하는 만트라의 정의다.
만트라엔 기가 있다. 에너지가 담긴다. 힘이 있다. 즉각적이고도 확실하다. 그러니 내게 하는 말들, 마음이 하는 말들 투성이엔 긍정적인 말들로 채우는 것이 어떤 이유에서건 유리하다. 그리고 꼭 그렇게 해야 된다는 생각이 있다. 어떨 땐 소름돋을 만큼 내가 말하는 대로 이뤄진 경험이 누구에게나 있지 않나. 이 우주와 기의 작용이란 건 정말이지 그런 것.이다.
글쓰기는 순전히 내 안이 시켜서 하는 것이다. 내 안에 정말이지 글쓰기 요정이 살고 있지 않은 이상, 이토록 가뿐한 마음으로 쓸 수가 없는 것이다. 내 안의 글쓰기 요정이 살아 숨쉬고 있다면, 글쓰기 요정이 하는 말들 또한 내면의 소리, 내 안의 소리와 하나다.
만트라는 순간순간 내 안의 소리다. 직관적인 소리다. 아무리 방황해도, 아무리 우울해해도, 마치 이 세상 다 산 사람처럼 서 있어도, 불현듯 들려오는 나의 만트라는 날 살게 한다. 초연하게 다가와 초연하게 사라진다.
지구별 여행자에게 "삶이 살아지도록 그냥 내버려둬. 좀 가만 둬. 내 맡겨."라고 말한다.
나의 만트라는 매일이 새롭다.
나의 만트라에 감사하다.
나의 만트라를 통해 나 자신을 사랑하게 되었다. 용서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