굴착기 옆에서 다시 걷기 시작한 작업자를 보며

혼자 들 수 없는 마음이 있습니다

by 빛영

우리는 혼자 살아가는 존재가 아니다.

주변에는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고, 때로는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도움의 손길이 다가오기도 한다.


현실은 생각보다 관대하다.

그래서 앞이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너무 낙담할 필요는 없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또 다른 가능성이 움직이고 있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언젠가 그 가능성과 마주 서게 되는 사람도 결국 나일 테니까.






주차를 해놓고 운전석에 앉아 시간을 보내고 있을 때의 일이다.

정면의 4차선 도로에서 작업자 한 사람이 바퀴 하나 달린 콘크리트 리어카를 끌고 가는 것이 보였다. 근처에는 아파트 공사 현장이 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중심을 잃고 비틀거리더니 리어카에 실려 있던 포대자루를 도로에 떨어뜨렸다. 작업자는 자루를 다시 수레에 실으려고 몇 번이고 들어보았지만 너무 무거운지 꿈쩍도 하지 않았다.


'둘이서 하면 실을 수 있을 텐데. 가서 도와드리고 싶다.'


그 생각이 스치자 상상이 이어졌다.

차에서 내려 골목을 빠져나가 4차선 도로 끝까지 걸어가 자루를 함께 들어 올리는 장면이었다.






나는 차 안에서 온라인 세미나에 접속해 있었다. 작업자를 바라보다가 잠깐 상상에 빠졌던 것이다. 어느새 다시 세미나 화면을 바라보고 있었다.


몇십 초, 아니 몇 분쯤 지났을까.


고개를 다시 들었을 때 예상치 못한 장면이 눈앞에 펼쳐져 있었다.

굴착기의 버킷 발톱에 포대자루가 대롱대롱 매달린 채 옮겨지고 있었다. 마침 굴착기가 그곳을 지나던 중이었던 모양이다.


그리고 그 옆에는 조금 전까지 애를 쓰던 작업자가 나란히 함께 서서 걸아가고 있었다.

아까 무거운 자루를 들기 위해 허리를 굽히고 애쓰던 모습과 달리, 이제는 몸을 반듯하게 세운 채 굴착기와 같은 방향으로 천천히 걸어가고 있었다.


조금 전까지 왠지 모르게 무거웠던 마음이 가벼워졌다.

나는 미소를 지으며 그 장면을 바라보았다.


상황은 우리의 예상보다 훨씬 넓게 펼쳐진다.

혼자서는 도저히 해결할 수 없을 것 같던 일도 의외로 쉽게 풀리는 순간이 있다.


그래서 혼자 해결할 수 없는 일에 부딪혔다고 해서 그 상황을 너무 절망적으로 받아들일 필요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심리상담 역시 이 장면과 닮아 있다.


난처한 상황 속에서 구부러진 작업자의 허리를 펴 주었던 굴착기처럼, 상담은 마음이 감당하기 어려울 만큼 무거워졌을 때 그것을 함께 들어 올려 주는 역할을 한다.


상담실에서는 상담사와 내담자가 마주 앉아 이야기를 나눈다.

하지만 이야기의 주도권은 언제나 내담자에게 있다.


상담사는 그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며

그가 자신의 마음을 조금 더 명확히 바라볼 수 있도록

훈련된 몇 마디로 거들뿐이다.


상담을 받으러 간다는 것은 결국 누군가를 만나다는 뜻이다.

그 누군가는 상담사이고, 상담사마다 저마다의 상담 기법과 특성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어느 상담사를 만나든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구부러진 마음을 조금은 펴 볼 수 있도록 돕는 힘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만약 지금 힘든 상황 속에 있다면 전문 상담사를 찾아가 마음을 꺼내 보기를 권한다.

그곳에서 우리는 누군가의 도움을 만나게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사실 우리를 구원하는 것은 상담사가 아니다.


힘든 마음을 꺼내 보겠다고 결심한

그 용기 자체가 이미

스스로를 구원하는 첫걸음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