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기억은 눈부시다-1

지극히 평범한 사람의 특별한 느낌

by 진정성의 숲

'징~~'


가을바람에 낙엽이

몸을 싣고 부산히 움직이던 날


칼퇴.

빠른 걸음으로 회사에서 나와

지하철역으로 향했다.


지하철역에 가까워질 때쯤

정장 속주머니에서 작은 떨림이 느껴졌다.

이상하게 여느 때와는 다르게 핸드폰의 떨림이

온몸으로 느껴지는 듯했다.


'부고. 본인상. OO병원 OO장례식장 O호'


'응? 이건 뭐지?'


핸드폰 화면에 뜬 메시지 창을 보는 둥 마는 둥

코트 주머니 속에 핸드폰을 다시 넣었다.


하루 일과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고단한 시간.

인산인해인 지하철역 구간이 지나고 자리에 앉을 수 있었다.


이제야 핸드폰을 꺼내

아까 보지 못했던 문자를 천천히 읽어 보았다.


'본인상?'


단어의 의미가 눈에서 머리로 가는 시간 동안

내 몸은 굳어있었다.


신입사원 시절부터

나의 사회생활 첫 멘토이자

이직 후에도 늘 여러 가지 일로 연락하고

깊은 밤까지 내 얘기를 들어주던 선배


그분의 '본인상'...


"야~ 얘는 진짜 잘해~! 인정! 인정!"


2008년.

선배는 자신이 가는 거의 모든 술자리에 날 데려가

내 칭찬을 해주었다. 회사에서 누구보다 일을 잘했고 마당발이었던 선배였기에, 자연스럽게 나의 평판도 과분하게 좋아졌다.

선배는 나의 멘토이자 목표였다.


선배와 같이 일할 수 있고 배울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아무것도 모르고 헤매고 있는 나에게 무엇보다 큰 힘이 되었다.


선배의 칭찬은 나에게 없던 힘도 생기는 '부스터'였고

선배의 따끔한 조언은 나 자신을 객관적으로 볼 수 있었던

'거울'과 같았다.


일주일에 두 번은 마음 맞는 사람들과 만나 얼큰하게 취해 선배의 집 거실에서 같이 뻗어서 잤다.

아침에 일어나 부랴부랴 출근 준비를 하면서 형수님을 마주칠까 선배와 같이 조심스레 집을 빠져나오곤 했다.


그렇게 선배와 나는 2년에 시간을 함께 보냈고

2년 후 선배는 여러 가지 이유로 다른 회사로 이직을 했다.


사실 이곳에서 누구보다 인정받았던 선배였기에

이해하지 못했다. 아니 솔직히 말해서 선배와 헤어져야 한다는 서운함에 이해하기 싫었다. 누구보다 아쉬웠고 서운했다.


그런데 역시나 선배는 그곳에서도 잘해나갔다.

승진을 하고 원하는 파트로 이동도 하고

사람과의 관계도 좋아서

날 가끔 불러서 그곳에 동료를 소개해주곤 했다.


자주 보지는 못했지만 항상 마음으로 의지했고

그 선배가 잘 되어가는 모습에 내가 더 뿌듯하고 자랑스러웠다.


고민이 있을 때마다 선배의 전화번호를 찾았고

자주 보지는 못했지만 늘 의지했고 그리워했다.


한 달 전 선배에게 메시지가 왔다.


'야! 나 이번에 회사에서 MBA 시켜준단다ㅎㅎㅎ'


'와우! 축하드려요. 역시 멋지십니다!^^'

'다음 달에 한번 뵈요. 할 얘기가 많아요~!'


'그럼~ㅎ 날 잡아보자고~!'


이게 선배와의 마지막 메시지였다.


정신없이 장례식장에 들어섰다.

입구 앞에 선배의 사진이 보였다.

영정사진 선배의 눈빛은 촉촉했고

무언가 할 말이 많아 보였다.


눈물이 쏟아졌다...


흐르는 눈물 사이로 형수와

초등학교 6학년인 아들이 보였고

그 순간 가득 찬 눈물로 앞이 보이지 않았다.


3일 동안 장례식장에서 난 선배와 함께했다.


예전에 같이 일했던 회사 사람들과

현재 직장 사람들이 섞여 선배의 마지막 가는 시간을 함께했다.


장례식 안은 시끌벅적했다. 그가 평소에 남긴 사람들로

가득 찼다. 그중 어떤 사람의 말이 내 귀에 들어왔다.


"정말 사람일은 모르는 거야.

지금 아등바등 살아봤자.. 다 필요 없다니깐."


갑자기 화가 났다.


선배는 분명 아등바등 살았다.

정말 과하다 싶을 정도로 사람을 만났고 일을 했다.

그렇지만 이 모든 게 다 필요 없었던 건 아니었다.


선배는 자신의 인생에 책임감이 있었다.

아등바등 살아간 게 아니라 악착같이 살아간 것이다.


언제 멈출지 모를 인생의 시계를 보며

초단위까지 꾹꾹 눌러 자신의 시간을 쓰고 있었던 것이다.


언젠가 자신의 마지막 순간이 올 때

자신의 삶에 대해 조금이라도 덜 후회하기 위해...


어쩌면 우리는

죽지 않을 것처럼 생각하며, 죽을 것 같이 살아가고

있는지 모르겠다.


선배가 떠나가는 마지막 날.


평소 하지 못했던 말을 전한다.


'당신은 누구보다 눈부시게 빛나는 사람 었습니다!'



작가의 이전글삶의 태도-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