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나도 반갑고 즐거운 날
오늘을 기억하고 싶은 마음에 적는 글.
나의 마음 한편에 커다란 추억으로 자리 잡던 시절이 있다. 엄마의 학교 근무지를 따라 강원도 화천에서도 30분을 더 들어간 곳에서 보낸 나의 초등학교 4, 5학년 시절이다. 한 학년당 한 학급의 작은 학교였던 곳이었는데, 지금은 더 작아졌다. 추억 여행할 겸 얼마 전에 엄마 아빠와 함께 다녀왔는데, 모습이 아주 그대로였다. 아무튼 오늘을 기억하고 싶은 이유는 2004년, 나의 초등학교 5학년 담임선생님과의 반가운 전화통화 때문이다. 내 어린 시절에 큰 영향을 준 담임선생님이기에 전화통화에 눈물까지 흘릴뻔했다.
2004년, 초등학교 5학년이던 나는 한학급에 20명 남짓한 작은 학교에 다니고 있었다. 개학 첫날. 나름 학교를 일찍 가고 싶은 마음에 교실에 1등으로 도착했는데 선생님이 나보다도 먼저 와계셨다. 처음 보는 선생님과 어색하게 인사했던 기억이 난다. 아직도 선명하게 기억나는데, 난 매우 어색하게 인사했고 선생님은 패기 넘치게 씩씩한 인사를 하셨다. 아마 첫 발령지, 첫 담임의 넘치는 에너지였을까? 그렇다. 우리 선생님은 이제 갓 대학교를 졸업하고 임용고시를 붙어 첫 발령받은 분이었다. 우리가 선생님의 첫 제자인 것이다. 젊고 키 크고 잘생긴(?) 선생님과의 하루하루는 매우 즐거웠다. 특히 나는 학교 관사에 살고 있었기 때문에 선생님과 더 가깝게 지냈던 것 같다. 수업시간엔 누구보다 열심히 하려고 노력했고, 반장으로 선생님을 더 돕고 싶은 마음이 가득했던 학창 시절이었다.
사실 초등학교 5학년 이후로 선생님을 처음 본 것은 아니다. 대학생 시절, 우연히 지인의 소개로 초등학교 방과 후 학교에서 합창단 반주를 맡았던 적이 있는데 정말 우연하게 갔던 그 학교에 선생님이 계셨다. 그때도 선생님은 나를 데리고 여기저기 다니시며 "제 첫 제자입니다."라고 자랑스러워하시던 모습이 기억난다. 너무 갑작스러운 만남이라 제대로 이야기도 나누지 못한 채 연락이 끊겼었다. 그게 벌써 7-8년 전 이야기다. 시간이 참 빠른 것 같다. 시간은 흐르고 흘러 어느덧 나는 28살이 되었다. 선생님을 처음 만났던 2004년도에 선생님 나이가 24? 25?이었던 것을 생각하면 그 당시 너무나도 어른 같았던 선생님 나이를 훌쩍 넘어버렸다. 난 아직도 어린아이 같은데 말이다.
최근 들어 유독 선생님 생각이 많이 났다. 이유는 잘 모르겠다. 추억여행으로 엄마 아빠와 그때 다녔던 초등학교를 다녀와서일까? 아니면 유튜브에서 초등학교 선생님들의 브이로그를 보게 되서일까? 알고리즘에 의해 보게 된 유튜브에 초등학교 선생님이 첫 제자와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브이로그가 있었다. 그래서 나도 더 그리워졌나? 며칠 전에는 선생님과 만나는 꿈도 꾸었다. 매년 스승의 날이 되어도 연락할 방법이 없어 마음으로만 그리워했는데. 꿈에서까지 선생님을 만날 정도가 되고 나니 용기가 생겼다. 사실, 그동안 긴가민가한 마음에 시도하지 못했던 일이었다. 내 핸드폰에 선생님 핸드폰 번호가 저장되어 있었지만 선생님 번호와 연동된 카카오톡에서 선생님의 흔적? 예를 들면 프로필 사진이라던가, 배경 사진과 같은 흔적을 찾을 수 없었다. 그러다 보니 16년이나 지난 지금, 이 번호가 선생님의 번호가 맞을 것이라는 확신을 할 수 없었다. 내가 가진 선생님의 번호와 연동된 카카오톡에는 아무것도 저장하지 않았을 때 나타나는 하늘색 프로필 사진과 함께 한자로 된 상태 메시지가 적혀있을 뿐이었다. 그래서 더더욱 자신이 없었나 보다. 그래도 오늘은 용기를 내고 싶었다. 벌써 며칠째 그리운 마음이 더 커져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조심스레 핸드폰을 들어 문자를 쓰기 시작했다. "안녕하세요. 혹시 000 선생님 핸드폰 번호가 맞을까요...?" 문자에서도 굉장히 조심스러운 티를 냈다. 이렇게라도 안 하면 안 될 것 같은 날이었기에.. 에라 모르겠다 나에게 있던 선생님 번호로 문자를 보냈다. 한 시간이 지나고 두 시간이 지나도 답장은 오지 않았다. '그래.. 16년 전 선생님 번호인데... 번호가 바뀌셨어도 두세 번은 더 바뀌셨겠다." 아쉬운 마음을 달래 보았다.
저녁을 먹으려고 이것저것 준비할 때 핸드폰이 울렸다. 핸드폰에 뜬 이름을 본 순간 눈물이 핑 돌았다. [000 선생님]. 선생님의 이름이었다. 짧은 순간에 오만가지 생각이 다 들었다. 내 문자를 보시고 전화하신 건가, 그럼 선생님이 맞는 건가. 바로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네, 여보세요?" 선생님의 목소리였다. 16년 만에 들어도 확신할 수 있는 선생님의 목소리였다. 진짜 눈물이 흐르기 일보직전이었다. 조심스레 다시 물었다. "선생님이세요..?"떨리는 목소리로 물은 내 질문에 선생님은 "네, 000입니다. 누구시죠?"라고 대답하셨다. 내가 누구인지 예측을 할 수가 없을 거라고 생각은 했지만 선생님의 목소리로 선생님의 이름을 들으니 웃음이 절로 나왔다. "선생님, 저 윤솔이에요." 내 대답을 들은 선생님의 반응은 놀람 그 자체였다. 와, 와후, 와!!! 온갖 감탄사와 함께 선생님은 무척이나 반가워하셨다. 잘 지내셨어요부터 시작해서 어느 지역에 계시는지, 나는 어디에 살고 있고, 무엇을 하며 지내고 있고. 결혼을 했고, 어쩌고저쩌고 이러쿵저러쿵. 20분이 넘도록 통화가 이어졌다. 그때의 추억을 이야기하기도 하고 지금의 삶을 나누기도 하고. 무엇보다 나를 그때 모습 그대로 기억해주고 그리워해 주시는 선생님의 모습에 너무나도 감사했다. 목소리가 그대로라고, 표현하는 말투 자체가 그때 그대로라고. 첫 제자의 기억, 첫 발령지의 기억은 잊을 수 없다고 하시는 선생님의 이야기를 들으니 정말 그 어느 때보다 행복한 순간이었다.
초등학교 5학년이던 쪼꼬미들이 결혼을 하고, 누군가는 아이를 낳고. 시간이 참 많이도 흘렀다. 그럼에도 추억은 무서운 법이다. 16년 전의 일을 마치 어제일 처럼 기억해 내는 선생님과 나의 모습을 보며 용기 내서 연락드리기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꿈에서까지 그리워할 정도로 너무 그리웠던 나의 담임선생님. 16년 만에 연락드리는 나쁜 학생이지만 그때도 그러셨듯이 나를 걱정해주시고 나를 챙겨주시고 나를 위해 주시는 선생님의 모습은 그대로였다. 20분이 넘도록 이어진 통화는 꼭 한번 찾아뵙고 만나 뵐 것을 약속하고 마무리되었다. 오늘은 너무 기뻐서 또 꿈에 나올지도 모르겠다. 누구에게는 특별하지 않은 일상 같아 보일지라도 내게는 너무나도 꿈만 같은, 특별하다 못해 소중한 하루가 되었다. 코로나가 잠잠해지고 선생님을 만나 뵙게 되는 날을 기대하며 살아가게 될 것 같다. 전화를 마무리하며 선생님이 이야기하셨다. "언제든 연락해. 좋은 일이 있을 때도, 기쁜 일이 있을 때도, 슬픈 일이 있을 때도, 안 좋은 일이 있을 때도 언제든 연락해. 꼭 만나자." 16년 전, 지금의 나보다도 어렸던 선생님은 여전히 내게 큰 어른 같은 사람이다. 나도 누군가에게 이런 사람일 수 있을까? 선생님 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날이다. 잊지 못할 날, 16년 전 어린 꼬꼬마의 담임선생님께 첫 제자가 용기를 낸 날. 평생 기억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