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적추적 가을비가 내리던 30년 전 가을 어느 날이었습니다.
“오늘 회의 끝나고 모두 직원이 출장 나가서 다시 조사해”
과장님의 호통과 함께 우리 6명의 직원들은 출장을 나가서 병충해 피해조사를 하라고 합니다.
조사한 서류가 엉망이라며 재조사를 하라고 호통치는 바람에 6명은 부리나케 각자의 담당지로 출장을 나갑니다.
“지은 씨는 차가 없으니 제차 타고 가세요”
“어머, 그래도 되나요? 저 정말 오토바이 타고 가야 하는가 고민 중이었거든요 “
”언제든 말씀하세요. 제가 태워다 드릴게요 “
그 사람과 그녀는 직장에서 한 시간 정도 걸리는 시내에 살고 있었기에 출퇴근 카풀을 하고 있었고 운 좋게도 같은 지역에서 출퇴근하는 6명 중 4명이었습니다.
”우리 4명이니 카풀하기 딱이네. 기름값 모아 드릴 테니 우리 카풀해요 “
선배 동료 한분이 말씀을 하니 차가 있는 한분이 좋다고 하셨습니다.
”네. 저도 같이 다니면 외롭지 않고, 또 기름값 아끼고 좋죠 뭐 하하하“
”이번 새로 들어오신 지은 씨도 카풀하실 거죠?‘
“네... 네... 물론 해야죠. 감사합니다. “
그렇게 4명은 출근길, 퇴근길이 행복했습니다. 가장 먼저 타고 마지막에 내리는 그녀는 둘만 있는 시간이 좀 어색했지만 편하게 출퇴근하게 되었기에 그 정도는 감수할 수 있었습니다.
”여러분~~ 오늘 월급날인데 그냥 집에 가기 섭섭하죠? “ 퇴근길에 카풀하시는 분 중에 한 분이 저녁 먹자고 말을 했습니다.
”그럼요, 오늘은 한 달 동안 무사고 운전해 주신 우리 기사님을 위해 우리가 한턱 쏘죠~~ 기사님 뭐 드시고 싶으세요? “
”쑥스럽네요. 그럼 오늘 제가 좋아하는 곰장어 드시러 갈까요? “
”네 “ 모두 다 네라고 외쳤는데 그녀는 사실 곰장어가 뭔지도 몰랐습니다. 그리고 신입이라 발언권도 없었기에 그냥 따라가기로 했습니다.
그렇게 4명은 퇴근 후 운전기사님의 집 근처 시장 안 곰장어집으로 갔습니다.
”어머 움직인다. 어떡해? “ 그녀는 지글지글 익어가는 곰장어를 보며 말을 했는데
”지은씨는 곰장어 못 먹어요? 제가 좋아해서 오자고 한 건데... 미안해요.. 이거라도 드시고 다른 거 먹고 싶은 거 있으면 말해요 그건 제가 사드릴게요 “
그 남자가 미안하다며 부추전을 제 앞에 가져다줬습니다.
”아.. 아니에요, 저 먹어요, 한 번도 안 먹어봐서 그렇지 뭐든 잘 먹어요 헤헤헤 “
그녀에게 소주와 곰장어의 조합은 참으로 신기했습니다.
곰장어 한 조각에 소주 한잔...
이거로 저녁이 되는 걸까? 배고픈데... 식감도 그녀에게는 맞지 않아서 곰장어 하나 간신히 입에 넣고는 종일 먹는 척을 했습니다.
”짠해요. 지은 씨 얼른 마셔, 아직도 그대로야? “
”저 소주를 처음 마셔서요. 너무 쓰네요 “
”정말? 학교 다닐 때 뭐 했어? 하하하하 “
동료들은 소주를 처음 마시는 그녀를 이상하다며 웃었습니다. 하지만 그 사람은 그녀의 술잔에 사이다를 따라 주었습니다.
그렇게 4명은 퇴근길에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직장생활에 대한 이야기와 상사에 대한 불평불만을 쏟아내며 스트레스를 날려버렸습니다.
”오늘도 깨지겠어, 과장님 화나있어 조심들 해“
”그래요? 어쩌지? 나 오늘 결재 맡아야 하는데 큰일이네 “
동료들끼리 화가 난 과장님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도중에 과장님이 위층에서 내려와서는 소릴 질렀습니다.
”얼른 출장들 나가지 아직도 뺀질거리는 거야? “
”지금 나가려고 합니다. 지은 씨 제차 타세요 “
그 사람은 그녀에게 차를 타라며 손짓을 했습니다. 그녀는 얼떨떨한 상황 속에 수첩과 볼펜을 집어 들고 급히 그 남자의 차에 올라탔습니다.
”과장님은 성질이 급하신가 봐요 “
”하하하하 오늘 집에서 사모님과 싸우셨나 보죠 뭐 하하하“
”네?.......... “
그녀는 그 사람의 농담과 웃는 모습을 처음 봤습니다. 늘 과묵하게 일만 하던 그 사람이 그날은 먼저 차에 타라고 말하고 농담도 하고 웃기도 했습니다.
”오늘 마을에 행사가 있다고 하는데... 잠시만요 “ 그 사람은 갑자기 양조장 앞에서 내리더니 막걸리 한말을 사 오셨습니다.
그리고 행사가 있는 마을에 도착해서는 그녀를 소개해주었고 막걸리를 선물하며 점심도 먹었습니다.
”이장님 우리 신입 잘 부탁드리라고 막걸리 사 왔어요 “
”그려? 이쁘시구먼요, 지도 잘 부탁드려요 “
갑작스러운 인사와 절차에 당황했지만 그녀는 그 사람 덕분에 앞으로 좀 편하게 직장생활이 될 것 같은 기분이 들었습니다.
20대 젊었던 4명 카풀팀은 종종 퇴근 후 저녁도 먹고 영화도 보았습니다. 젊음은 새벽까지 술을 마신 다음날에도 4명 모두 정시각에 출근을 했습니다. 4명만이 가진 동질감과 행복함이었습니다.
그러다 가끔씩 3명이 일이 있어서 다 내리고 난 후 남은 두 사람, 그 사람과 그녀는 그냥 집에 가려니 뭔지 모를 아쉬움에 누가먼저랄 것 없이 ”밥 먹고 갈래요? “라고 묻습니다.
사는 얘기 하다 보면 어느새 친구가 된 듯 서로 위로해 주며 토닥여주고 있었습니다.
”지은씨? 오늘도? “
”네~~“
그 사람과 그녀는 어느새 서로 간 비밀이 생겼습니다.
”가을이라 산도 예쁘고 지은 씨도 예쁘고 하하하하 “
”어머 정말요? 하하하하. 오늘 그럼 제가 저녁 쏠게요 “
”당근이지... 그 말 안 나오면 다시는 차 안태워주려 했는데 하하하“
그렇게 둘이는 그 가을 행복한 데이트를 했습니다.
다음날도 그들은 시골길 출장을 갔습니다. 그 사람 차를 타고서.... 덜컹덜컹 흙 자갈길을 달려갔습니다.
”오늘 차비 안 줘? “ 저의 담당 마을에 데려다주는 그 사람이 차비를 달라고 합니다.
"뭐로 드릴까요?"
"..." 손가락으로 볼을 가리키는 그 남자. 그렇지만 그것도 바로 알아채버린 그녀.
”쪽.... “ 순식간에 일어난 행복호르몬의 분출이었습니다.
그 순간 흐뭇해하는 그 남자. 차비는 바로 볼에 뽀뽀해 주는 거였습니다.
그들은 너무도 행복했습니다.
그녀에게 직장생활이 이렇게 행복한 것인지 알게 해 준 그 남자....
”오늘은 내 생일이니까 퇴근 후 나하고만 한잔하기다 “
”호호호호 알겠어요 “
그날 그들은 카풀동료 3명이 차에서 내려준 후 그 사람이 좋아하는 소주와 곰장어를 먹으러 갔고 뜨거운 연낱물위 곰장어를 뒤적이며 소주잔을 부딪혔습니다.
그들은 취한 상태에서 서로가 원했습니다.
"우리 공원에 앉아서 찬바람 쐬고 정신 차리고 가자"
"그래요"
서로가 바라던 상황이었든 그들은 공원 벤치에 앉아서 밤하늘 달을 보며 이야기했습니다.
”달이 무지 밝다. 별도 보이네... “
”네,,, 너무 밝아서 선배님 얼굴도 다 보여요 “
”하하하하, 내 얼굴 더 잘생겨 보인다는 거지?... 근데 춥다 더 가까이와 “
”네 너무 춥네요... 근데, 선배님 심장소리가 쿵쿵쿵 너무 크게 들려요 호호호,,,,,“ 그녀는 그 남자의 코트 속에 얼굴을 들이밀고 술기운에 잠시 잠이 들었는지 그 남자의 말이 자꾸만 끊겨서 들려왔습니다.
”나, 사실.... 미안해..... 그런데..... 용기가..... 나지 않아 “
그리고 얼마 후 다른 동료의 말을 듣고 난 후 그녀는 알게 되었습니다.
”지은씨? 저 선배랑 너무 친하게 지내지 마 “
”왜요? “
”저 선배 짝 있어, 넘보면 안 돼 “
”짝? 무슨? “
짝이란 말에 그녀는 우리 사이 소문이 벌써 난 것인가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이어지는 말에 더욱더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대학 CC였던 여자랑 결혼할 거리잖어 “
”네? “
믿을 수 없는 얘기였습니다. 하지만 사실을 확인하고 싶은 마음에 종일 고민하며 그녀는 퇴근시간만 기다렸습니다.
”저 오늘 할 말이 있어요 이따 퇴근 후 시간 되세요? “
”그럼, 되지... 근데 무슨 말? 무섭게 왜 그래? “
퇴근 후 다른 3분이 내린 후 잠시 그들은 침묵이 이어졌습니다.
”우리 어디 갈까? 뭐 먹고 싶어? “
”소주“
”하하하하 소주? 왜 그래? 무섭게? “
그 집 그 곰장어집에서 그녀는 빈속에 소주를 연거푸 3잔을 마셨습니다.
그리고 용기를 내어 말을 했습니다.
”소문, 그 소문의 여자가 누구? “
”........ 소문? “
그 사람은 당황을 하면서 말을 이어갔습니다.
”지난번 말했듯이,,, 나 사실 오래 만나던 여자 있어,,, 근데,,,, 자신이 없어서,,,, 말할 자신이.... “
”아, 결혼할 사람이 있다는 거죠? “
”..... 그건 아닌데,,, 다들 그렇게 알고 있어서... 조금만 기다려줄 수 없어? “
”알겠어요. 무슨 말인지.... 그래서 주말에는 저를 안 만나고 그분을 만나고 있었던 거네요? “
”미안해.... 주변사람들이... 두려워서... “
그 후 그는 인사이동을 결정한 후 다른 곳으로 이직을 했고 그녀는 그 사람의 연락도 차단했습니다.
하지만 그녀의 몸과 마음은 다른가 봅니다.
그녀는 매일밤 눈물로 지새우다 보니 아침에는 퉁퉁 부은 눈으로 출근을 했습니다.
처음으로 사랑했던 사람이 사랑할 수 없는 사람이라니,,, 아니 사랑할 수 있지만 그러기에는 용기가 나지 않았기에 그녀는 그 사람을 가질 수 없었습니다.
기다려달라 했지만 그럴 수 없었기에 가슴이 아파서 그녀가 먼저 떠났습니다.
그 후 그 사람은 결혼을 했습니다.
보이지 않게 축복을 빌어주면서 결혼식을 보았습니다.
”그래 나보다 더 나은사람 만나서 결혼하는 게 맞지... 잘했어요. 행복하세요 “
그렇게 뒤에서 몰래 그녀는 그를 보냈습니다.
매년 꽃이 필 때나 비가 올 때 눈이 올 때면 생각나는 그녀의 첫사랑입니다.
하지만, 그저 추억만 남긴 채 그저 추억 속에 간직한 채 미소 지으며
그래 잘했어
잘했다고 스스로를 칭찬해 주고~ 위로해 주고~ 그렇게 현실이란 이곳에서 그녀는 오늘도 내일도 열심히 살아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