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0604
다음 주면 력사의 1주기다.
벌써 1년이고, 어느새 1년이지만, 아직 1년밖에 안된 일.
나는 다행히(?) 기억력이 좀 떨어지는 편이라, 디테일을 하나하나 기억하지 못한다. 지난 1년간은 정말 안타깝지만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물론, 요즘엔 이 망할 핸드폰 사진씨와 페북씨가 "1년 전의 오늘" 어쩌고 저쩌고를 맨날 알려줘서 예전보단 좀 더 생생하게 기억할 수 있게 되긴 했.......
보통 지난해 무슨 일이 있었는가를 기억하기 위해서 스케쥴러를 보곤 하는데, 력사의 요양병원 퇴원 이후 장례식 사이에는 구체적 기록이 그다지 없다. 사실 그 사이에 나에게 있었던 일정들(강의, 회의, 마감) 뭐 이런 것들이 있고, 내 기억에 대부분의 회의는 불참했고, 약속은 어그러졌고, 유일하게 지킨 건 6/4 서퀴부스자료마감 이었을 것 같다. 으하하-_-; 아. 그리고 그 와중에 집을 보러 다녔고, 지금 사는 집 계약도 했다.
여튼, 벌써 1년이다.
1주기를 맞아서 처음엔 거창한 이벤트도 생각했고, 무슨 전시회도 생각해보고, 어마어마한 뭣도 생각해 보고 그랬는데, 현실을 직시(나는 바쁘다, 제사만 해도 일이 많다, 기획해서 행사 하나 더 진행하는 건 노동이다 등) 하며 걍 제사+ 단체 력사 방문만 하기로 했다.
제사는 6/10에 가까이 사는 친구 몇 명과.
력사 방문은 6/11에 원하는 사람 모두와 함께 할 예정이다. (원하는 분 연락 주시면 몇 시에 만날지 공유할 수 있음다)
생각해보면, 지난 1년간 력사와 만나온 시간보다 매일 력사를 생각하는 비중은 더 컸던 것 같고, 력사에 대해 이야기한 시간도 더 길었던 것 같다.
사랑이 무엇인가 생각했고, 동성 파트너십에 대해서도 다시 고민하게 되었고, 내가 력사에게 원했던 것이 무엇일까 생각하기도 했다.
력사가 떠나자마자부터 새 연애와 새 연인에 대해 낄낄대며 떠들었지만, 사실은 연애도연인도 적극적으로 원하지는 않았다. (필요하다고는 여전히 생각하고 있다)
1년이라는 시간이 지나면 뭔가 이 시간을 돌아보고, 정리(?) 할 수 있는 이야기가 많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여전히 모든 것은 혼돈이다. 앞으로 어떤 사람으로 어떤 정체성으로 어떤 마음으로 살아가야 할지도 혼돈이다.
(처음에도 력사가 떠나고 내 삶이 무너질 것이라 생각한 것은 아닌 것 같지만) 그럼에도 살아보니, 앞으로도 어떻게든 잘 살긴 하겠다는 것만은 여전히 확실한 듯하다. 신기하구로.
아. 그리고 누군가의 죽음 이후 처음으로, "그래도 삶은 흘러간다"는 말이 매우 더 진심으로 와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