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이 정점일지도
2023년 7월 27일, 뉴스레터 '어거스트'에 발행한 글입니다. [뉴스레터 링크]
안녕하세요, 에디터 나나입니다.
요즘 제 인스타그램에 프로모션으로 매일 한 번씩은 꼭 뜨는 콘텐츠들이 있어요. 바로 팝업스토어에 대한 홍보 게시물들인데요. 세상에 이렇게 다양한 브랜드들이 존재하고 팝업을 열고 있다는 사실이 신기했어요.
그런데 한편으로는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떻게 이렇게 매일매일 다른 팝업스토어들이 열릴 수 있을까? 이걸 다들 가기는 할까? 팝업스토어는 새로운 개념도 아니고, 경험 마케팅의 수단으로 자리 잡은 지 이미 시간이 꽤 흘렀죠. 그런데도 왜 팝업스토어는 꾸준히 열리고 있고 또 꾸준히 사람들을 끌어모으고 있는 건지 궁금해졌습니다.
오늘의 에디터 : 나나
마음 아픈 뉴스가 유독 많은 7월이었어요.
남은 한 해는 모두가 각자의 자리에서, 안전하길 바랍니다.
오늘의 이야기
1. 월간 팝업 지도가 나오는 세상
2. 기획의 배경에 있는 것들
3. 이 또한 마케팅의 도구인 것을
4. 중요한 것은 팝업이 끝난 후
포털에 ‘7월 팝업스토어’로 검색을 해보면 7월에 운영하는 팝업스토어들을 정리한 게시물들이 가득합니다. 인스타그램에 해시태그 검색을 해봐도 마찬가지죠. 브랜드들은 팝업스토어를 준비하고, 고객들은 팝업스토어를 찾아갑니다. 팝업을 찾는 고객들은 예약이나 대기를 해야 하는 것에 시간 쓰는 것을 아까워하지 않아요. 오히려 주변의 식당이나 카페에서 시간을 보내는 것이 방문 ‘팁’으로 전파됩니다.
이제는 ‘팝업 성지’가 된 더현대 서울은 지난 3월 개점 2주년 기념 리포트를 통해, 2년간 321개의 팝업스토어가 열렸고 약 460만 명이 방문했다는 데이터를 공개했습니다. 중앙일보 취재에 따르면 또 다른 팝업 성지인 성수동에서는 6월 주말 단 이틀간, 40여 개의 팝업스토어가 운영되었고요. 홍대와 잠실, 서촌 등 방문객이 많은 지역까지 생각하면 서울 곳곳에서 오늘 하루만도 얼마나 많은 ‘팝업’들이 열리고 있을지 가늠조차 되지 않습니다.
브랜드는 왜 팝업스토어를 열까요? 마케팅 이론을 바탕으로 한 많은 연구에서 현대의 소비자는 기능보다는 감성을 중시하게 되었다고 분석합니다. 그래서 단순히 잘 만들어진 제품을 찾기보다는 감성적인 면에서 브랜드의 가치를 공감할 수 있는 제품을 선호한다고 해요. 이런 변화는 자연스럽게 제품을 경험해 봐야 공감이 되고, 구매 욕구가 생기는 ‘경험 소비’의 시대를 가져왔습니다. 그래서 기업들은 이런 소비자의 특성을 좇아 브랜드를 체험할 수 있는 장을 만들고, 소비자에게 긍정적인 브랜드 경험을 제공해서 가치를 형성한다고 보고 있어요.
그런데, 체험과 경험을 중시하는 소비자의 성향을 충족하는 방식이 반드시 팝업스토어여야 할 이유는 없습니다. 팝업스토어는 웹사이트의 ‘팝업창’과 같이 잠깐 떴다가 사라진다는 의미에 어울리게 단기간 한정적인 경험을 제공하는 것이 특징입니다. 소비자는 한정된 시간 동안, 이 공간에 방문해야만 브랜드가 제공하는 경험을 얻을 수 있고요. 그런데 이런 브랜드 경험이 장기적이고 지속적으로 제공될 수는 없을까요?
어떤 현상이 만들어진 데에는 배경이 있기 마련입니다. 지금은 ‘불확실성’이 지배하고 있는 시대에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고, 경기 침체가 계속 진단되고 있지만 투자와 소비는 계속 이어지고 있습니다. 언젠가 불황은 온다고 하는데, 이상하게 세상은 그냥 굴러가고 있습니다. 코로나 시국을 지나면서 장기 투자는 더욱 리스크가 큰 선택지가 된 것 같아요. 언제 또 팬데믹과 같은 상황이 다시 닥치지 않으리라고 장담할 수 없게 되었죠. 이런 배경에서, 브랜드가 오프라인 매장을 만드는 것은 이제 당연하지 않은 선택이 되었습니다.
지난 3월, 신세계백화점은 내부에 팝업스토어 입점 전담 조직을 신설했다고 합니다. 빠르게 변하는 소비자 취향에 대응하기 위함이 명분이라고는 하지만 비용 문제도 무시할 수 없습니다. 인기 브랜드를 고려하여 1개 층을 리뉴얼하는 것보다 공간을 그대로 두고 브랜드를 바꿔가며 팝업스토어로 운영하는 것이 훨씬 적은 비용이 들기 때문입니다. 이미 ‘팝업스토어 전문 운영’으로 크게 입지를 다진 더현대서울과 같이 팝업스토어 방문객을 통한 반사적인 매출 상승도 염두에 둔 변화일 것입니다.
성수동에서 진행되는 팝업스토어들도 비슷합니다. 강남보다 저렴한 임대료로 짧게 투자할 수 있고, 유동 인구가 많아 즉각적으로 소비자 반응을 알 수 있어 기업들 입장에서는 매력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팝업스토어의 반응이 좋으면 향후 오프라인 매장 도입 여부를 검토해 볼 실험대가 되기도 하고요. 건물주 입장에서도 공실을 두는 것보다 팝업스토어로 단기 임대료를 받는 것이 좋기 때문에 서로 윈윈입니다. 최근에는 이런 니즈를 고려해 전문 대여 공간을 제공하는 공간 컨설팅 업체들도 주목 받고 있어요.
공간의 가변성과 더불어 기업들이 팝업스토어를 기획하는 또 다른 이유는 '굿즈'입니다. 지난번 에디터 Zoe의 ⟪더 퍼스트 슬램덩크⟫에 대한 레터를 기억하시나요? 레터에서 짧게 소개되었던 해당 작품의 더현대 서울 및 대구 팝업은 한정된 굿즈 판매로 굉장히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었습니다. 기업들은 이런 ‘희소성’에 집중해 팝업스토어에서 캐릭터나 콜라보레이션 등을 활용한 한정판 굿즈를 선보이고, 단기간의 폭발적인 매출을 기대하죠.
최근에 이슈가 되었던 팝업 스토어들 중에서는 완판행진을 기록하며 성황리에 종료되는 굿즈 중심 팝업들이 많았죠. 세계관 마케팅, 캐릭터 콜라보레이션이 마케팅 씬에서 대세가 되면서 확실히 팝업스토어에서 굿즈는 중요한 방문 요인이 되었습니다. 현장에 방문해야만 구매하거나 받을 수 있는 것들은 저를 포함한 소비자들을 끌어들입니다. 저걸 누가 기다리나 싶은 대기줄도, 나에게 간절한 무언가가 되면 기꺼이 4시간, 6시간의 대기를 하게 만드는 것이 한정판이니까요.
그러니 기업들은 위험 부담에 대한 회피와 단기간 매출을 염두에 두고 팝업스토어 대열에 합류하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어떤 팝업에서는 사흘간 몇억을 벌었는데 비용이 얼마밖에 안 들었다더라, 굿즈가 다 팔려서 대박이 났다더라, 이런 입소문들이 팝업스토어를 더욱 경쟁적으로 만들어내고 있는 것으로 보여요. 물론 어떤 기업에게나 이벤트의 명분은 브랜딩이고 경험 제공일 것입니다. 하지만 어느 팝업에서든 한정판 굿즈를 팔고 있는 모습을 보면 이 브랜드가 진행하고 있는 팝업의 목적을 조금은 의심하게 됩니다.
팝업스토어는 '오프라인'에서의 '경험을 제공'하는 공간입니다. 그러니 본질은 소비자에게 브랜드의 가치를 전달하는 것이 되어야 하죠. 얼마나 많은 방문객이 들었고 굿즈가 얼마나 많이 팔렸는지는 부수적인 목표입니다.
하지만 성공한 팝업스토어들을 소개하는 사례로는 흔히 방문객 몇만 명, 매출 전년 동기 대비 몇 퍼센트 달성과 같은 수치들이 제시되고는 합니다. 얼마나 많은 고객들에게 메시지가 전파되었는지는 SNS 언급량, 바이럴 게시물 숫자로 표현되죠. (정량화가 어려운 요소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지만요) 그렇기에 오프라인 프로모션을 기획하다 보면 무엇이 원래의 목표였는지 방향성을 잃기 쉽습니다.
그래서인지, 요즘의 ‘팝업’ 열풍을 보면 저는 한동안 마케팅 이슈를 지배했던 메타버스 붐이 떠오릅니다. 온갖 기업들이 앞다투어 MZ세대를 공략하기 위해서는 메타버스에 합류해야 한다며 마케팅 활동을 펼쳤었죠. 제페토에서 시승 이벤트를 하고, 브랜드 아이템을 입점시키는 등 메타버스는 온라인 속의 프로모션 무대였습니다. 하지만 메타버스로 마케팅 활동을 전개한 브랜드들이 색다른 모습은 보여주었을지언정, 브랜드의 철학과 가치를 느끼게 해주었는지는 의문이 들었습니다.
이처럼 일부 브랜드들이 팝업스토어를 운영하는 것 자체가 목표가 되어서, 급히 컨셉을 만들고 공간 컨설팅을 받아 억지 경험을 제공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팝업스토어도 결국은 비용을 투자해야 하는 프로모션 활동입니다. 공간 확보에 비용이 들어가듯이, 굿즈를 생산하고 판매하는 데에도 비용이 들고요. 아무리 좋은 자리에 화려한 팝업을 열어도 메시지가 명확하지 않으면 의미가 없겠죠. 굿즈를 열심히 기획해 만들더라도 고객의 반응이 없으면 그저 재고가 될 뿐입니다.
지금은 ‘팝업스토어를 즐기는 것이 유행’이기 때문에 소비자들이 팝업스토어들을 방문하며 재미있는 경험으로 인식할 수 있지만, 언젠가는 피로감을 느끼게 될 거예요. 경기는 계속 적신호를 보내고 있고, 소비자는 점점 돈을 쓰는 데 신중해지고 있으니까요. 결국 팝업스토어를 하기 위해서는 ‘고객에게 어떤 경험을 제공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합니다. 그 경험은 브랜드의 정체성과도 직결이 된 문제일 것이고요.
다가오는 8월 1일, 일본의 생활용품 브랜드 무인양품(MUJI)이 치바현의 민가를 개조해 에어비앤비로 ‘무지 베이스 카모가와’를 오픈한다고 합니다. 모든 어매니티와 소품들은 무인양품의 상품들로 구성이 되어있어, 브랜드의 팬들에게는 설레는 소식이 될 것 같습니다. 무인양품은 제가 느끼기에 ‘경험 마케팅’을 가장 잘 해내는 브랜드인데요. 무인양품 매장에서 느껴지는 브랜드의 감성은 이 물건들이 가득한 공간에서 지내고 싶다는 마음을 들게 해요.
이런 감상은 저만의 것이 아니었는지, 2018년에 중국 선전을 시작으로 베이징과 도쿄 긴자에 무인양품의 호텔 ‘무지 호텔’이 생겼습니다. 무지 호텔에서는 무인양품의 제품들을 쓰며 숙박하고, 이들이 큐레이션한 매거진을 읽으며 식사를 즐길 수 있죠.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무인양품은 ‘무지 베이스’를 통해 더 구체적인 라이프스타일을 제안하려는 것 같습니다. 저는 이 모든 것이 방향성이 확고한 브랜딩이고, 정교하게 짜인 경험 마케팅이라고 생각합니다.
브랜딩디렉터 전우성 님의 책 ⟪그래서 브랜딩이 필요합니다⟫에서는 브랜드 경험에 대해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 브랜드 경험이란 무엇일까? 브랜드가 전달하고자 하는 자신만의 고유한 톤 앤 매너나 지향점을 고객들에게 어떤 ‘매개체(medium)’를 통해 오감으로 전달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결국 브랜드 아이덴티티가 명확한 브랜드만이 가능한 부분인 것이다. (p.100, ‘브랜드 경험이란 무엇일까’)
즉, 경험은 결국 브랜딩의 수단이고 팝업스토어 또한 그런 경험을 제공하기 위한 매개체로서 접근해야 합니다. 팝업스토어가 유행이라서, 또는 경쟁 브랜드의 팝업에 대응하기 위해 컨셉을 잡고 공간을 기획하는 것은 그저 소모적인 활동이 될 뿐이니까요.
앞으로도 팝업스토어의 열기는 쉽사리 사그라들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소비자의 관심이 또 어디로 이동할지는 한 사람의 고객인 저도 아직 알 수 없어요. 팝업이 새로운 무언가를 만나 더욱 진화하는 형태가 될지도 모르고요.
하지만 항상 새로운 것을 갈구하는 것이 요즘 소비자의 특성이라면 언젠가 팝업스토어도 ‘옛날 것’이 되지 않을까요. 모든 것이 변할 때, 변하지 않는 브랜드의 가치가 무엇인지에 대한 고민이 먼저가 되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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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나나>의 코멘트
지난주 개봉한 영화 《바비》, 혹시 보고 오셨나요? 재능 있는 뮤지션이면서, 베르사체와의 협업을 통해 패션 아이콘으로도 거듭나고 있는 두아 리파가 이번 영화의 OST를 맡았습니다.
짧은 분량이지만 ‘인어 바비’로도 출연한다고 해서 더욱 관심이 가는데요. 이렇게 왕성한 활동을 하면서 팟캐스트도 진행하고 (얼마 전 제니도 게스트로 다녀갔죠), 뉴스레터도 쓰고 있다니 그저 대단할 따름입니다. 두아 리파가 뉴스레터 동지라니, 어쩐지 친숙하게 느껴지네요. 노래는 말할 것도 없이 좋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