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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나 Jul 09. 2024

어거스트 읽었는지 KBS PD한테 물어봄

(feat. 수신료의 가치)

2023년 8월 1일, 뉴스레터 '어거스트'에 발행한 글입니다. [뉴스레터 링크]



안녕하세요, 에디터 나나입니다.


저는 여러분에게 드라마대행사에 대한 레를 보내드리며 처음 인사드렸어요. 첫 레터에서도 언급한 내용이지만, 종사하고 있는 분야에 대한 콘텐츠를 발견하면 자연스레 더 많은 생각을 하게 되고 산업에 대해 고민도 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특히 TV와 밀접한 일을 하는 저로서는 다른 에디터들이 다룬 올드 미디어에 대한 콘텐츠들을 유심히 읽게 되더라고요. 뉴미디어와 디지털 콘텐츠의 시대이기에, 자주는 아니더라도 어거스트에서는 종종 TV와 뉴스, 보도에 대한 이야기들을 다룹니다. 기억을 되짚어 몇 가지 찾아보니 저희가 이런 레터를 보내드렸었네요.


어거스트의 TV와 뉴스 관련 레터들

KBS1TV를 사랑하는 사람의 홍보 by 구현모

지상파TV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을까 by 나나

CNN이 팩트체크는 좀 다릅니다 by 구현모

뉴스 생산자의 기쁨과 슬픔 by Friday

기자의 생존전략 : 인플루언서 by 장희수

BBC가 했던 그 실험은 어떻게 됐을까? by FRI


특히 최근에 보내드린 구현모 에디터의 ‘KBS 1TV를 사랑하는 사람의 홍보’ 레터는 구독자분들에게 감사하게도 많은 피드백을 받았습니다. 그렇다 보니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다른 미디어 업계 현직자들은 우리 뉴스레터를 어떻게 생각할까? 본인의 분야에 대해 다뤄질 때 어떤 느낌이 들었고, 또 이들은 자신이 종사하는 산업에 대해 어떤 시각을 가지고 있을까?



오늘의 에디터 : 나나

가을을 기다려요.


오늘의 이야기

1. 젊은 KBS PD에게 묻다

2. 수신료 분리 징수, 이거 괜찮아요?

3. 공영방송은 어떻게 될까

4. 각자의 자리에서 꾸준히




젊은 KBS PD에게 묻다


그래서! 직접 물어보기로 했습니다. 오늘 레터는 KBS1TV 정용재 PD와의 인터뷰를 담았어요. 용재 님은 현재 KBS 시사교양국에서《추적 60분》을 담당하는 5년 차 PD입니다. KBS에서 드라마 《회사 가기 싫어》,《다큐인사이트》, 시사 토크쇼 《더 라이브》 등 다양한 프로그램들을 거쳐 지난 6월까지《시사 직격》의 연출을 맡았습니다. 여의도 근처의 카페에서 만나 TV와 공영방송에 대한 많은 이야기들을 나누었어요.


이제는 5년차 PD네요. (출처 : KBS)


나나 : 최근까지 《시사 직격》을 하고 있던 걸로 아는데 소개가 바뀌었어요.

용재 : 원래 프로그램명이던 《추적 60분》으로 돌아온 거죠. 거의 40년간 있었던 시사 프로그램인데 다소 올드하다, 세련된 걸 해보자는 의견들이 많아서 4년 전에 개편한 게 《시사 직격》이에요. 개인적으로는 성공한 프로그램이라고 생각하는데, 역으로 회사에서 시청자에게 익숙한 IP의 중요성을 깨닫게 된 것은 아니었을까 싶어요. 저도 그 점에 동의하고요.


나나 : TV뿐만 아니라 KBS PD 이름을 걸고 하는 유튜브 채널이 있고, 구독자 수도 2만 4천 명으로 꽤 많더라고요. 혹시 이제 유튜브는 운영하지 않는 건가요?

용재 : 제 채널 ‘용튜브’는《다큐인사이트 - ‘시청률에 미친 PD들’》을 찍으면서 만들었던 프로젝트성 채널이에요. 지금은 이런 얘기를 하면 좀 올드한 감이 있지만, 5년 전만 해도 ‘유튜브가 지상파를 위협한다’는 소리가 나올 때죠. 그 다큐도 방송의 날 특집으로 준비했어요. 그러면서 유튜브란 무엇인가, 여기서 TV의 역할은 무엇인가 이런 고민들을 풀어내는 다큐멘터리였습니다. 진행하면서 대도서관, 양팡 같은 크리에이터 뿐만 아니라 백종원 님 같은 분들도 만나는 귀한 시간이었어요. 방영된 후에는 유튜브에 소홀해진 게 맞죠. 프로젝트가 끝났다고 접기엔 좀 아깝긴 해요.


나나 : 그런 면에서 나영석 PD처럼 디지털 전환에 성공한 스타 PD들이 달리 보이기도 하겠네요. 유튜브를 같이 찍고 싶다는 생각도 들 것 같고.

용재 : 아무래도 그렇죠. 남들이 생각만 하는 걸 실천한다는 점에서 추진력도 있으시고요. 제가 공채 46기고, 나PD님은 27기시니까 엄청난 선배님이시기도 해요. 요즘 채널 십오야에 올리는 영상들도 너무 재밌게 보고 있고. 유튜브 같이 나와 주시면 엄청난 영광이죠.


나나 : 뉴미디어에도 관심이 많아 보이는데, 그러면 구독하고 있는 뉴스레터가 있을까요?

용재 : 많지는 않고, 취재하다 만난 분이 본인 일상을 다루는 뉴스레터랑 PD 협회 뉴스레터 정도? 평소 이메일을 많이 체크하는 편이 아니라서요. 영상 쪽에 관심이 더 많아요. 평소 구독하는 유튜브 채널이 1천 개가 넘거든요. 조금만 관심 있거나 다음 영상이 궁금해지면 일단 다 구독하는 편이에요. 최신 기술 같은 것부터 시작해서,  코미디 채널도 많이 보고, 요즘은 양주에 빠져서 술 관련 채널도 보고. KBS 포함한 다른 방송사 뉴스들도 다 유튜브로 챙겨보는 편이고요.


나나 : 어거스트에서도 지상파TV와 뉴스, 보도에 대한 이야기들을 종종 하고 있는데요. KBS의 PD로서 어떤 생각이 들었어요?

용재 : 가장 먼저 드는 생각은, 어거스트 에디터분들이 오히려 이 일을 하는 저보다 더 시야가 넓다는 거에요. 산업에 대해 고민을 깊게 하시는 게 느껴지고요. 사실 우리 일은 (나무보다) 숲을 보기보다는, 그냥 이파리를 붙잡고 있기 쉬워요.


얼마 전엔 오송 지하차도에 취재를 다녀왔거든요. 그런 이슈가 생기면 정말 그 일 하나만 보게 돼요. 이걸 왜 못 막았을까, 다들 뭘 하고 있었을까, 유가족 인터뷰는 어떻게 해야 할까 이런 생각들만 하루종일 하는거죠. 그러다보니 전체 산업을 전망하고, 이 회사의 미래와 미디어 지형의 변화를 보고 대응하는 건 많이 부족해질 수밖에 없는 것 같아요. PD 일의 맹점이기도 하죠.


하지만 대부분의 PD들이 거기까지 생각하기엔 눈앞의 일에 많이 매몰이 되어 있는 것 같아요. 주말 밤낮없이 치열하게 고민하고, 또 프로젝트 하나 끝나면 다시 하는 일의 연속이니까. 산업이 어떻고, 법이 어떻고, 이런 것들까지 잘 알면 정말 좋은 PD가 될 수 있겠죠. 근데 현실적으로는 좀 어려워요.


나나 : 왜 PD라는 직업을 선택하게 되었는지 궁금한데요.

용재 : 중학교 때부터 꿈이 PD였어요. 사실 저희들 10대 때 MBC 《무한도전》이 엄청난 영향력을 미친 프로그램이잖아요. 김태호 PD의 굉장한 팬이었어요. 재미를 추구하면서도, 또 동시에 메시지를 준다는 점이 인상 깊었죠. 무엇보다도 그 전까지의 예능은 방송을 만드는 사람이 부각되지 않았죠. 그런데 《무한도전》은 카메라 바깥에서 어떤 사람들이 일하고 있는지 깨닫게 해준 프로그램이었어요. 그게 너무 재밌어보였고요.


그래서 영상 편집을 취미로 하기 시작했어요. 그러다 수업 시간에 수행평가 발표도 영상으로 하고요. 저희 때는 학교에서 발표를 주로 PPT로 했잖아요. 저는 그걸 영상으로 했어요. 발표도 직접 안했죠. 선생님이 엄청 충격을 받으셨어요. 요즘으로 치면 누가 고글 나눠주면서 수업 시간에 VR 영상을 만들어 온 거죠. 그렇게 UCC 같은 것들 만들면서, 내가 이걸 정말 좋아하는구나, PD가 되어야겠다고 생각해서 지금 이 자리까지 온 것 같습니다. 뭔가 첫사랑이랑 결혼한 느낌이 드네요.


나나 : 다른 선택지도 많았을 텐데, 그러면 왜 KBS에 들어온 거에요?

용재 : 진짜 솔직히 말하면 여기에 제일 빨리 붙었어요. 여러분이 다 아시는 방송국들 다 시험 쳐봤고, 최종 합숙에서 탈락하기도 했죠. 언론고시 해 보신 분들은 알겠지만 어떤 방송국을 가겠다, 무슨 프로그램 하겠다 이런 목표를 가지고 준비하기 어려워요.


《무한도전》 때문에 PD가 되고 싶다고 했죠. 시작은 저도 예능 PD였어요. 그런데 대학 가고, 군대 가고 이러다 보니 점점 TV 예능에 대한 관심이 떨어졌어요. 행정고시를 준비하면서 우울한 시간을 보내기도 했고요. 그러다 지금 회사 선배가 되신 분이 연락을 주셔서, PD 일에 관심 있으면 와보라고 하셨어요.


KBS 사옥에 오시면 엄청 큰 송신탑이 하나 있어요. 그걸 보는데 괜히 설레는 거예요. 그 순간부터 다시 불이 지펴진 것 같아요. 그때 시사교양 PD가 있다는 것에 대해서도 알게 되었죠. 그래서 제 마음 속 1등은 항상 KBS였습니다. 어거스트에서도 다루고 있어서 잘 알겠지만, 시사교양으로는 KBS가 가장 역사도 깊고, 잘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정통 시사 1등인 방송국이죠. 기왕 시사교양을 할 거면 KBS에 가고 싶다는 생각이 있었는데, 어떻게 합이 잘 맞아서 들어올 수 있게 되었네요.



수신료 분리 징수, 이거 괜찮아요?


나나 : 최근 여러 가지 이슈 때문에 회사 안팎으로 아주 시끄럽겠어요.

용재 : 아무래도 그렇죠. 회사를 둘러싸고 근조 화환을 두질 않나… 수신료 분리 징수가 정말 예외적으로 빨리 이루어졌어요. 저도 사실상 다 결정이 되고 나서 통보를 받은 거나 다름이 없었고요. 선배들, 동기들 할 것 없이 많이 얘기를 해봐도 뾰족한 대응 방법은 없어요. 저희가 법 전문가도 아니고. 후배들한테 미안하죠.


KBS 사옥 앞에 근조 화환들이 놓인 모습 (출처 : 연합뉴스)


나나 : 공영방송의 미래가 어두워질거라는 전망을 의식하고 있을텐데요.

용재 : 저는 그래도 공영방송이 쉽게 없어질 거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거기에 대해서는 많은 구성원이 공감하고 있고요. KBS가 하는 일이 사실 꽤 많거든요. KBS의 약자는 ‘Korea Broadcasting System’이에요. S가 스테이션이 아니고 시스템인 데는 이유가 있어요.


삼성전자가 갤럭시만 만드는 게 아니잖아요. 콘텐츠 제작은 KBS의 전체 역할에서 일부에요. 재난방송, 대북방송뿐만 아니라 해외에서 나오는 KBS 월드 같은 것들도 이곳에서 하죠. 전파가 닿지 않는 곳에 망을 까는 것도 여기 일이고요. 사기업이면 절대 하지 않을 일이죠. 만에 하나 국가적으로 전시 상황이 되었을 때 국민들에게 알리는 것도 여기 시스템으로 움직이는 거예요.


나나 : 국가기간방송이란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네요. 이런 상황에서 분리 징수 결정이 꽤 큰 타격이었겠어요.

용재 : 맞아요. 이런 사업들에 돈이 굉장히 많이 들기 때문에, 소중한 수신료를 한 달에 2,500원씩 걷어서 운영되는 겁니다. 사실 KBS의 수신료도 준조세 성격이 있다고 이미 인정받은 사례가 있어요. 한 달에 2,500원 더 낼 거냐, 덜 낼 거냐 라는 접근은 애초에 잘못됐어요. 이런 식이면 저라도 내기 싫죠. 그런데 이런 공영방송의 역할이 사라지고 또 하나의 사업으로 탈바꿈하는 움직임에 대한민국의 시민으로서 찬성하시냐고 묻는다면, 글쎄요. 거기에 옳소 라고 대답할 사람이 있을까요.


그래서 이런 논리들이 굉장히 안타깝게 느껴져요. 이런 결정들로 KBS의 수입이 줄어든다는 건 제작비가 줄어든다는 거잖아요. 그러면 여기도 살아남기 위해 돈이 안 되는 프로그램 제작을 먼저 없애기 시작하겠죠. 광고를 잘 받을 수 있는 것들을 하게 되는 거예요. 시청자분들이 다들 잘 모르고, 여기에 대해 알아볼 시간도 없기 때문에 이런 걸 많이 알리는 게 우리 PD들의 의무라고 생각하는데, 그 의무를 다하지 못한 것 같아 뼈아프게 느껴졌어요. 시간도 없었고, 대응할 방법도 없었다고 변명하게 되기도 하지만요.


나나 : 이런 상황에도 평소처럼 출근하고 일을 하는 게 대단하네요.

용재 : 이렇게 열악한 상황이라고 해도 어쩌겠어요. 그냥 PD들은 제한된 제작비 내에서라도 시청자들한테 외면받지 않을 프로그램들을 만드는 것밖에 할 수 있는 일이 없어요. 저뿐만 아니라 다른 PD들도 다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어서 얘기를 나눠보면 결론은 ‘우리 콘텐츠를 잘 만들자’로 끝나요. 


구현모 에디터님이 레터에서 쓰신 것처럼, 결국에는 시청자들이 찾아주는 프로그램 만드는 거. 그게 우리 일이니까요. 다른 직군에 계신 분들은 어떻게 생각하실지 모르지만, 만드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잘 만드는 수밖에 없는 것 같아요. 어거스트 분들처럼 또 알아봐 주시는 사람들이 있고. 대신 우리가 뭘 잘못했을까, 급변하는 미디어 환경에서 우리가 적응을 못 하고 있나 하는 반성을 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어요.


나나 : 다른 나라 공영방송이랑도 비교가 많이 되잖아요. 상황들은 비슷한가요?

용재 : 작년에 바르셀로나에서 INPUT(International Public Television Screening Conference)이라는 공영방송 관련 컨퍼런스에 참석했어요. 전 세계 30여 개국 공영방송사들에서 참가해서 서로 어떤 프로그램을 만들어왔는지 공유하는 자리인데요. 저는 거기서 다큐 ‘시청률에 미친 PD들’에 대한 프리젠팅을 했고요.


거기서 얘기를 들어보니, 공영방송과 TV의 위기가 단연 우리나라만의 일은 아니었어요. 전 세계적으로 비슷한 위기를 겪고 있죠. 유튜브가 한국에만 있는 건 아니니까요. 하지만 저는 넷플릭스와 유튜브의 등장 자체가 굉장히 고무적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시청자들의 선택권이 훨씬 늘어난 거고, 경쟁을 바탕으로 질 좋은 콘텐츠가 더 많아졌잖아요.


나나 : BBC 얘기도 계속 나오고 있는데 그쪽 상황도 참고가 많이 되겠네요.

용재 : BBC는 공영방송계의 롤모델이나 다름없으니까요. BBC의 수신료는 1년에 159파운드(약 25만원 수준)로 꽤 높은 수준이에요. 그래도 콘텐츠를 보기 위해서 시민들이 기꺼이 지불하죠. 다만 BBC의 경우에도 2028년 무렵에는 수신료 폐지를 할 계획이라고 해요. 현 영국 정부가 BBC를 좋아하지 않아서 이런 논의가 되고 있다는 시각이 많은데요. 언론이란 게 기본적으로 권력을 감시하는 역할을 하잖아요. 그걸 좋아할 권력은 없죠. 


나나 : 권력과 언론의 관계라고 하니 생각이 나는 게, 이번 분리 징수 관련한 논의도 기존 언론이 한쪽 정치 성향에 편항적이라 견제를 받고 있다는 분석도 있더라구요.

용재 : 잘 아시겠지만, KBS는 사주가 없어요. 그러니까 사주의 논조에 따라가는 회사가 아니죠. 우리 구성원들을 보면 굉장히 다양한 스펙트럼의 성향과 정치적인 지향이 있어요. 그러니 내가 어디에 서 있느냐에 따라서 다르게 느껴질 수 있다고 생각해요.


 ‘KBS가 편향되었다’는 지적들은 결국 관점 문제에요. 제가 1년 넘게 했던《더라이브》도 항상 그런 입방아에 오르는 프로그램인데요. 다들 조금도 한쪽에 치우치지 않으려고 엄청 노력을 하거든요. 모두가 싫어하는 기계적 중립이라도 지켜보려고요. 어떤 실체적 진실이 분명하게 있는 사건이 아닌 이상 양쪽 주장을 다 들어주는 게 맞다는 생각에서요. 그래서 생방송 시작 5분 전까지도 구성을 계속 손봐요. 어느 한 쪽에 유리하게 하지 않으려고요.


저를 포함한 우리 2030세대가 대체로 어떤 현실 정당을 극렬하게 지지하는 성향은 아니잖아요. 어떤 건 국민의 힘이 잘하기도 하고 또 어떤 건에 대해서는 더불어민주당이 잘하기도 하죠. 그래서 저도 상황마다 합리적인 판단을 하려고 노력했고요. 저 뿐만 아니라 PD 선배들이 이런 관점을 지키려고 얼마나 목숨걸고 노력하는지 알고 있어요. 그러니 지금 우리 회사가 정치적으로 편향되었다, 이런 말씀을 하시는 분들은 본인의 위치와 상대적이라고 생각을 해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공영방송은 어떻게 될까


나나 : 그런 고생들이 너무 잘 느껴지네요. 앞으로 회사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지에 대한 고민도 많이 해 온 것 같은데요.

용재 : 여기서 지상파는, 공영방송은, TV는 그냥 몰락할까요? 저는 그렇지 않다, 분명히 방법이 있다고 생각해요. 공영방송이 고품질의 프리미엄 콘텐츠를 만드는 거죠. 진짜로 제대로 만든 대기획, BBC의 Earth 같은 거 있잖아요. 신라면 블랙이 있듯이 KBS도 KBS만의 프리미엄 라인으로 리브랜딩을 시도하면 좋겠어요. 솔직히 여기서만 할 수 있는 거잖아요. 유튜버들이 다 하는 거 괜히 따라잡으려고 할 게 아니라. 아까 얘기한 BBC처럼, 인기 있는 시리즈 만들어서 2차 저작물도 만들어 보고, 스핀오프도 하고 굿즈도 만들고 팝업 전시도 해보고 싶고. 그런 욕심들이 있어요.


어느 시장에서나 성공하려면 나밖에 할 수 없는 것에 뛰어들어야 해요. 아니면 남들이 다 하는 데에서 내가 제일 잘해야 하거나. 그런데 일단 KBS가 후자는 아니에요. 선천적 한계가 있잖아요. 유튜브의 민첩함? 그걸 어떻게 따라잡겠어요. 똑똑한 선택이 아니죠. 이렇게 소중한 수신료를 받아서, 돈이 안 되어도 할 수 있는 것을 할 수 있는 이 영역을 우리가 갖고 있잖아요. 그게 엄청나게 의미가 크죠. 다른 방송사가 범접할 수 없는 어떤 걸 꼭 만들고 싶어요. 그리고 그런 걸 만드는 게 지상파 방송이 계속 살아남을 방법이라고 생각해요.


나나 : 진짜, 그걸 용재 PD가 만들 수 있으면 좋겠네요.

용재 : 그러게요. 다들 이거에 대한 공감대는 있는데 말이 쉽지, 현실적으로는 그렇지 않아요. 한 회에 10억을 태웠을 때 들려올 수많은 비난이 막 들리는 것 같고… 이젠 더 어려워졌네요. 시국이 이런 시국인데 생각이 있냐는 소리를 듣겠죠. 그래도 우리가 콘텐츠를 만드는 회사라는 걸 다들 잊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물론 언급한 것처럼 시스템으로서의 다른 역할도 많이 하지만, 시청자들이 보고 기억하는 건 콘텐츠니까요.


나나 : 앞으로의 PD 정용재는 어떤 일을 하며 살 것 같나요?

용재 : 저는 회사가 저를 자르지 않는 이상, 이 회사에서 정년퇴임을 하고 싶어요. 왜냐면 이런 콘텐츠를 이렇게 안정된 환경에서 지속해 뽑아낼 수 있는 곳이 없어요. 전 의외로 거기에 자부심을 가지고 있는 것 같고요. 같이 일하는 동기들도 다들 정말 훌륭한 사람들이에요. 그래서 종종 부끄러워질 때도 있고요.


 특히 요즘 같은 세상에는 언론이 많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법에는 공소시효가 있지만 방송에는 공소시효가 없다는 말을 선배 PD가 하더라고요. 법의 보호를 받지 못한 사람들이 제도 내에서 노력을 해볼 만큼 다 해보고, 그러고도 억울함이 풀리지 않는 사람들이 언론에 찾아오잖아요. 우리는 그런 사람들의 억울함을 풀어주고, 해결 방법을 모색해 나가는 게 언론, 특히 공영방송의 역할이라는 생각도 해요. 요즘 그걸 많이 느끼고 있고요.


 그래서 《추적 60분》을 하면서도 시청자분들의 신뢰를 의식하게 돼요. 많이 격려도 해주시고요. 요즘은 본의 아니게 공영방송의 위기를 맞으면서, 내가 꽤 자부심을 가지고 일하고 있었다는 걸 느끼고 있어요. 그래서 계속 이런 프로그램을 만들면서 살고 싶고요. 그런 걸 떠나서는 원래 하던 ‘용튜브’ 채널을 다시 이어가고 싶다는 생각도 가지고 있어요! 요즘 회사에서도 규제를 많이 풀어주고 있거든요. 저와 관련된 것들을 좀 더 펼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보고 싶어요. (끝)



각자의 자리에서 꾸준히


사실 정용재 PD는 저의 십년지기 친구이기도 하고, 저희 에디터들의 관심사와 맞닿은 부분이 있어서 섭외하게 되었는데요. KBS를 둘러싼 사안들이 심각한 시기이다 보니, 가볍게 시작한 인터뷰였음에도 불구하고 인터뷰를 마친 후 많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같은 미디어 산업에 종사하고 있다고 해도, 각자의 역할에 따라 다른 입장과 다른 생각을 가지고 일하고 있으니까요.


 방송은 어떻게 될까요? 그리고, 그 방송과 밀접한 일을 하는 저는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저와 같은 상황에 있는 구독자분들도 분명 많이 계시리라 생각합니다. 산업의 변화가 한 곳에만 영향을 주지 않으니까요. 100% 정답은 누구에게도 없을 거예요. 그렇지만 인터뷰를 갈무리하며 소소하게나마 다짐을 하게 되었습니다. 일단 내가 해야 할 일을 충실히 하자. 세상이 흔들려도 나의 중심을 지키자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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