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 저는 아닌데요
2023년 10월 12일, 뉴스레터 '어거스트'에 발행한 글입니다. [뉴스레터 링크]
안녕하세요. 에디터 나나입니다.
대체공휴일로 길어진 추석 연휴도, 또 뒤이어 찾아온 한글날 연휴도 끝나고 이젠 정말 오롯이 평일만 남은 10월이에요. 여러분은 연휴 동안 극장에 다녀오셨나요? 혹시 자연스럽게 넷플릭스나 웨이브로 평소에 관심 있던 시리즈를 몰아봐야겠다는 계획을 세우지는 않으셨었나요. 이번 레터에서는 추석을 겨냥해 개봉했던 영화들의 성적과 국내 영화 산업의 현주소에 대해 다룹니다
오늘의 에디터 : 나나
싸늘해졌습니다. 영화 타짜가 생각나는 날씨가 되었네요.
오늘의 이야기
1. ‘추석 대작’은 이제 옛말일까
2. CJ 영업실적 : 힘들게
3. 극장 광고 실적 : 같이 힘들게
명절 영화관 나들이. 분명 익숙했던 표현인데 떠올려 보니 새삼스럽습니다. 추석 연휴에는 ‘대작’ 영화들이 극장에 걸리고, 가족들과 다 함께 보러 가는 것이 오랫동안 명절 문화로 자리 잡아 왔죠.
그렇기에 명절은 여름 성수기에 이어, 국내 영화계의 중요한 마케팅 시즌이었어요. 그러나 팬데믹을 지나면서 극장 분위기는 바뀌었습니다. 사회적 거리 두기 정책으로 극장 관람 패턴이 끊겼고, 그 영향으로 티켓값은 상승했으며, 그사이 부상한 OTT 서비스들로 인해 극장은 이제 특별한 이유가 없으면 찾지 않는 공간이 되었습니다.
극장가에서는 팬데믹이 지나면 실적이 회복되기를 간절히 기대했습니다. 하지만 현실은 그 기대치에 부응하지 못하고 있어요. 팬데믹이 시작된 2020년에 영화 관람객이 전년 대비 73% 수준으로 감소한 이후, 조금씩 회복하고는 있지만 기존만큼 회복되지는 못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2023년에는 10월 현재 관람객 수가 2022년 전체 관람객 수를 따라잡으면서, 남은 연말까지는 최소한 작년보다 조금 나은 수준의 실적이 예상됩니다. 하지만 추석 연휴가 끝난 이후에는 극장 비수기 시즌이라 높은 성장세를 보여주기는 어려워요. 게다가 할리우드 파업의 여파로 여러 해외 작품이 개봉을 미루거나 제작이 중단된 상황이다 보니, 매력적인 콘텐츠로 관객을 끌어모아야 하는 극장가의 고민은 당분간 지속될 것 같습니다.
에디터 찬비님의 지난 레터에서 다뤄졌던 할리우드 작가 파업은, 9월 27부로 미국 작가조합(WGA)과 영화-TV제작자연합(AMPTP)과의 잠정 합의를 통해 종료되었습니다. 하지만 미국 배우-방송인 노동조합(SAG-AFTRA) 파업은 여전히 진행 중이에요. 작가 파업이 끝나 시나리오가 준비된다고 하더라도, 배우들이 촬영과 홍보 활동을 진행하지 않기 때문에 사실상 내년 상반기까지 신작 소식은 동결 상태라고 봐야 하겠습니다.
이렇게 할리우드가 주춤한 지금이 한국 영화의 기회는 아닐까 하는 기대 섞인 전망도 있었는데요. 극장 관람이 줄어든 지금 상황에서도 추석은 변수가 되었는지, 추석 연휴를 겨냥해 개봉했던 한국 영화들의 실적을 잠시 살펴볼게요.
영화진흥위원회 통합전산망 통계에 따르면, 9월 24일부터 10월 8일까지 약 2주간의 추석-한글날 연휴 시즌 동안 가장 많은 관객 수를 동원한 영화는 강동원 주연의 ⟪천박사 퇴마 연구소(이하 ‘천박사’)⟫입니다. 현재까지 누적 관객 수 약 170만 명 수준으로, 손익분기점 달성 기준인 240만 명에는 미치지 못한 숫자지만 다른 경쟁작들에 비해서는 그나마 나은 상황입니다.
‘천박사’가 1위 자리를 얻어내기는 했지만, 전반적인 평가가 경쟁작들에 비해 좋지는 못합니다. 평점이 영화를 판단하는 전부는 아니지만 네이버와 왓챠 모두에서 임시완 주연의 ⟪1947 보스톤⟫, 송강호 주연의 ⟪거미집⟫에 비해 가장 낮은 평점을 받았거든요. 개봉 전 사전 평가가 다른 작품 대비 우세하지 않았는데, 뚜껑을 열어봐도 크게 반전을 가져오지는 못했던 모양입니다.
오히려 주간 박스오피스 순위에서 제 눈길을 끌었던 것은 9월 초에 개봉했던 이선균, 정유미 주연의 ⟪잠⟫과 강하늘, 정소민 주연의 ⟪30일⟫ 인데요. ⟪잠⟫은 공포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칸 영화제 비평가 주간에 초청되었을 뿐만 아니라 개봉 후 손익분기점을 빠르게 넘기는 등, 신인 감독의 입봉작이지만 좋은 성적을 보여주었습니다. 한편 ⟪30일⟫은 추석 연휴가 끝나가는 10월 3일에 개봉과 함께 일일 박스오피스 1위를 거의 1주일 동안 유지하며 호평을 받고 있고요.
반면에 ‘추석 특수’를 노리고 다급하게 제작된 ⟪가문의 영광 : 리턴즈⟫는 엄청난 혹평을 받고 있습니다. 9월 21일에 개봉했지만, 10월 9일 기준 관객 수 16만 명인 것으로 미루어 보아 100만 명의 손익분기점은 당연히 넘지 못할 것으로 보이는데요. 20년이 넘은 시리즈의 리부트 개념으로 기획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촬영 기간이 20일 남짓 되었다는 점이 이 영화에 이어지는 날 선 비판들을 납득하게 해줍니다. 명절 코미디 영화를 현재 시점에 맞게 재해석하기 위해서는 더욱 깊은 고민이 필요하지는 않았을까 싶어요.
각 작품들의 성적이 어떻게 되었든, 영화 마케팅 전략은 아직 전통적인 방식에 머물러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9월 27일 하루에만 3편의 ‘대작’ 영화들이 다 같이 개봉하면서 경쟁 구도를 보여줬습니다. 기존에는 극장을 많이 찾는 성수기, 비성수기가 명확했고 배급사들은 이 시기에 맞추어 영화를 개봉하며 시너지를 꾀하는 방식이 일반적이었습니다.
그러나 팬데믹 이후 관객들은 극장에 가려고 영화를 고르지 않아요. 전문가들은 특정 영화를 큰 스크린으로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 극장에 방문하는 경향이 늘었다고 분석합니다. 게다가 멀티플렉스의 티켓값 인상으로 극장을 자주 방문하기도 부담스러워졌고요. 그러니 배급사들이 추석 연휴에 오랫동안 준비해 오던 야심작을 내더라도, 관객들은 취사선택을 할 뿐 여러 영화를 보려고 하지 않는 것은 당연합니다.
⟪천박사 퇴마 연구소⟫는 CJ ENM이 배급한 작품입니다. 추석 연휴 경쟁작 삼파전에서는 그나마 좋은 성적을 거두었다고는 하지만, CJ로서는 안심할 만한 상황이 아닙니다. 우선 연휴가 끝나면서 해당 작품이 손익분기점을 넘어설 가능성이 점점 낮아지고 있고요. 지난해 CJ의 추석 라인업이었던 ⟪공조 2⟫의 흥행에 비하면 올해의 어두운 상황을 반전시킬 만한 성적이라고 보기 어렵습니다. 작년에 비해 연휴가 길어져서 경쟁작도 많아졌습니다.
특히 올해 CJ ENM은 ⟪더 문⟫의 흥행 실패가 뼈아픕니다. 280억 원 수준의 엄청난 제작비를 들인 이 영화는 손익분기점 600만 명은커녕 60만 명도 들지 못하며 안타까운 성적을 받았습니다. 작년부터 이어진 영업 적자가 개선되기엔 요원한 상황이죠. 작년 여름에도 ⟪외계+인 1부⟫와 ⟪비상선언⟫이 처참하게 실패했고 결국은 올해 초 실적 부진으로 인한 대규모 구조조정이 이루어졌습니다. 그렇기에 영화 부문에서는 올 한해 흥행작으로 분위기 반전이 꼭 필요했을 거에요.
상황이 이렇게 암울하다 보니 일각에서는 CJ가 영화 투자를 그만둔다는 예측도 있었지만, 일단은 CJ ENM 구창근 대표가 나서서 부인하고 있습니다. 오히려 부산국제영화제 기간 주최한 기자 대상 간담회에서 글로벌 진출에 대한 의지를 드러냈죠. 이러한 계획의 일환으로 CJ ENM은 이미 2022년 초 미국의 제작사 피프스시즌(구 엔데버콘텐츠)을 인수했었습니다.
하지만 피프스시즌은 할리우드 파업의 여파로 콘텐츠 제작을 하지 못하고 있어요. 게다가 미국 법인은 전년 대비 73% 수준의 역성장을 하게 되며 인수 효과는 요원하게 되었고요. 남은 4분기에는 ⟪외계+인 2부⟫ 등이 계획되어 있지만, 전작의 상황을 고려했을 때 흥행을 점치기는 어려워 보여요. 영화 배급사 중에서는 가장 많은 흥행작을 가진 CJ지만, 이제는 ‘CJ 대작’의 흥행 방정식도 적용이 되지 않는 시대가 되었나 봅니다.
CJ CGV 또한 실적이 불투명한 상황입니다. 팬데믹 이후 암울했던 극장가에서 CGV는 멀티플렉스 3사(CJ CGV, 롯데컬처웍스, 메가박스) 중 유일하게 2분기 흑자를 달성했습니다. 2016년부터 시작된 튀르키예발 악재(리라화 가치하락과 지진)의 여파가 아직 남아있지만, 동기 대비 매출이 상승했고 중국에서의 실적도 올해 7월 역대 최고였기에 하반기 전망은 잠시 밝았어요. 하지만 CGV가 신사업을 빌미로 추진하고 있던 유상증자 확보 계획이 지난 9월 말 법원의 결정으로 제동이 걸리면서, 주가도 최저가로 하락하고 말았습니다.
CGV가 8월 말에 밝힌 앞으로의 계획은 이랬습니다. 관객들에게 수요가 높은 ‘용아맥(CGV 용산 IMAX관)’과 같은 기술 특별관이나 골드 클래스관 같은 프리미엄관을 늘려 수요를 잡고, 공연 실황 등 콘텐츠 확대와 클라이밍, 골프 체험 공간으로 확장해 ‘체험형 라이프스타일 공간’으로 극장을 바꿔나가겠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전술한 수치와 같이, 극장 관객 수는 팬데믹 이전으로 회복되지 않고 있고 극장의 전체 매출 또한 비슷한 상황입니다. 제일 나빴던 시기에 비하면 상태는 호전되었을지 몰라도, 가장 호황이었던 2019년 무렵과 같은 매출 증가는 이뤄낼 수 없다는 것이 현재 시장의 판단일 거예요.
모두가 체감하고 있는 사실이겠지만, 현재 극장의 상황 개선에 가장 큰 걸림돌은 팬데믹 동안 올라버린 티켓값입니다. 일반관 기준 2019년 1만 원 수준이던 영화 가격이 현재 1만 4천 원 수준으로, 관객 기준에서는 3년 전에 비해 티켓 가격이 40%나 상승한 것입니다. 영화진흥위원회의 2022년 '영화관람가격 적정성 점검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의 영화 티켓값은 평균적으로 미국, 프랑스, 일본 등 주요 국가에 비하면 저렴한 편일지 몰라도, GDP 상위 20개국 중 평균 관람 가격 증가율은 높은 편이라고 합니다.
팬데믹으로 인해 극장에 영업 적자가 발생했고, 이를 타개하기 위해 티켓값을 올려 멀티플렉스의 단기적인 실적은 개선되었습니다. 하지만 관객들이 체감하는 티켓 가격은 너무 높아져 버렸고, 영화 한 편과 OTT 한 달 구독료가 맞먹는 상황에서 관객들은 극장에서 볼 영화와 OTT로 볼 영화를 구분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니 팬데믹이 끝났다고 하더라도 관객들이 쉽게 극장을 찾게 되지는 않는 상황이 된 것이죠. 극장이 가격을 다시 내리게 되는 상황은 오지 않을 거고요. 티켓값은 올랐지만, 극장의 인력 감축 등으로 관객들의 극장 소비 경험은 체감할 만큼 나아지지 않은 것도 중요한 요소일 겁니다.
영화 관람 패턴의 변화는 최초의 영상광고 매체로 알려진 극장의 ‘매체력’에도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비록 관객들의 거부감이 있을지라도, 광고주들이 극장에 광고를 집행하는 이유는 명확했습니다. 대형 스크린에 광고가 송출되기 때문에 시청각적으로 집중도가 높고, 영화 시작 10분 전부터 송출되기에 관객들의 주목도 또한 높아서 광고 효과가 어느 정도 보장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극장 광고는 오랜 시간 동안 멀티플렉스의 주 수입원이었습니다. 전체 매출액 중 스크린 광고 매출 비중은 10% 수준으로 알려져 있다고 하고요. 하지만 팬데믹의 영향으로 극장 광고 또한 주요한 타격을 받았습니다. 언론진흥재단의 ‘2022 한국언론연감’에서는 극장 광고비 규모는 2020년에 팬데믹 이전 대비 72% 수준 감소했고, 2021년에는 전년 대비 41% 감소하며 계속 축소하는 경향을 분석하고 있어요.
2022년 상반기부터는 극장들이 기존에 비해 회복세를 보이고는 있다고 하지만, 기존과 같은 스크린 광고 매출도 회복이 될지는 미지수입니다. 아무리 성수기라고 해도 관객 수는 예전 같지 않고, OTT로 영화를 소비하는 패턴이 당연해지면서 광고주의 입장에서 극장은 타겟이 반드시 온다고 보장할 수 없는 곳이 되어버렸으니까요.
저는 모바일보다는 극장에서 영화를 보는 걸 훨씬 선호하는 사람입니다. 팬데믹 이전에는 관심 있는 작품이 생기면 엄청난 수작이라고 생각하지 않더라도 챙겨보며 거의 매주 영화관에 갔어요. 마음에 드는 영화는 몇 번이고 재관람을 하고, 상영관이 적은 작품은 대중교통을 타고 1시간을 이동해서라도 보러 다녔어요. 하지만 저 또한 팬데믹을 겪으면서 극장 방문에 심리적인 장벽이 생기고, 예매를 하려다가도 티켓값에 새삼 부담감이 느껴질 때가 많아졌습니다.
영화를 저와 같은 마음으로 좋아하는 사람이든, 그렇지 않은 사람이든 영화 관람에 대한 태도는 비슷하게 변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극장만이 줄 수 있는 가치가 있지만, 또 굳이 극장에 가지 않아도 되는 편안함에 익숙해졌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만약 ‘천박사’가 2023년이 아닌 2019년 추석에 개봉되었다면, 이 영화는 몇백만 관객까지 기록을 세울 수 있었을까요. 2019년이었다면 저도 강동원 씨의 활극을 보러 이미 극장에 다녀왔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생활 습관만큼 바꾸기 어려운 게 소비패턴입니다. 이미 많은 관객들에게 극장에서의 영화 관람은 여가의 일부보다는 돈을 좀 들여야 하는 문화생활로 인식이 바뀌었습니다. 자꾸만 관객들이 극장에 돌아올 거라는 ‘청신호’에 기대기보다는, 극장과 영화의 의미 있는 변화가 함께 이루어지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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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나나>의 코멘트
저는 영화 ⟪존 윅⟫ 시리즈를 아주 좋아합니다. 올해 남은 연차로 유럽 여행을 앞두고 있는데, ⟪존 윅 4⟫의 배경이 되었던 파리에 가서 영화 로케이션 장소들을 방문할 계획이에요. 가기 전에 재상영 안 해주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