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면 그저 디플의 넷플화일까
2023년 11월 9일, 뉴스레터 '어거스트'에 발행한 글입니다. [뉴스레터 링크]
안녕하세요, 에디터 나나입니다.
지난 11월 1일부로, 디즈니플러스가 국내에서 월 기준 약 4천원 수준의 구독료 인상과 계정 공유 금지 정책을 시행한다는 소식이 알려졌습니다. 넷플릭스가 불을 붙인 OTT 구독료 인상 시도에, 아마존 프라임과 디즈니플러스가 화답을 하며 최근 미국에서는 ‘스트림플레이션(Stream+Inflation)’이라는 신조어마저 생겼어요. 같은 집에서 살지 않으면 계정 공유를 막겠다는 공유 금지 정책은 아직 구체적인 실행 방안이 나오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이용자들의 원성을 사고 있습니다.
오늘 레터에서는 디즈니플러스의 한국 런칭 이후 현황을 되짚어보고, 11월부터 적용되는 신규 정책들이 앞으로 어떤 영향을 미칠 지 이야기합니다.
오늘의 에디터 : 나나
감기 조심하세요~
오늘의 이야기
1. 무대를 뒤집어 놓으러 왔습니다만
2. 그저 넷플을 따라가는 중?
3. 디플의 훌루 인수, 그 이후
디즈니플러스는 2019년 11월 12일에 미국에서 첫선을 보였습니다. 그리고 정확히 2년 후인 2021년의 11월 12일에, 한국에도 서비스를 런칭했습니다. 이번 주말이면 벌써 국내 런칭 2주년이 되는 시기이기도 해요. 런칭 당시 에디터 Zoe님의 영업글도 있으니, 혹시 새로 구독을 계획 중인 분이 계시다면 참고해보세요.
이 서비스의 런칭을 모두가 기대한 이유는 당연하게도 디즈니가 가지고 있는 여러 콘텐츠 IP를 무제한으로 시청할 수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OTT 서비스의 핵심은 콘텐츠인 만큼, 점점 ‘볼 게 없다’고 느끼며 넷플릭스에 흥미를 잃어가던 이용자들의 기대를 단숨에 모았습니다.
기존부터 많은 사랑을 받아왔던 월트 디즈니 스튜디오의 애니메이션과 영화, 드라마들뿐만 아니라, 마블 스튜디오의 MCU 제작물, 거기에 더해 루카스필름의 스타워즈 시리즈까지 모두 볼 수 있기에 동영상 스트리밍 서비스 시장에 지각변동이 일어날 것이라는 예측이 많았습니다.
저 또한 디즈니플러스의 서비스 런칭 때부터 구독을 해왔는데요. ⟪어벤져스 : 엔드게임⟫ 이후의 MCU 세계관을 오리지널 콘텐츠로 접할 수 있고, 워낙 작품의 수가 방대해 하나하나 찾아서 보기 어려웠던 스타워즈 시리즈와 신작 드라마 콘텐츠도 기대가 많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저는 스타워즈 ⟪만달로리안⟫ 시리즈를 정말 재미있게 봤고, 또 이번 주에 마지막 화가 공개되는 마블 ⟪로키⟫ 시즌2도 열심히 보고 있어요. 하지만 직장 동료들에게 디즈니플러스를 구독하고 있다고 하면 ‘아직도 구독 하고 있어?’ 라는 반응이 많습니다. 대부분 ⟪무빙⟫ 종영 후에는 구독을 끊은 모양이더라구요.
이쯤 되어서 잠시 국내 OTT 구독자 순위를 살펴볼까요. 모바일인덱스의 2023년 9월 통계에 따르면 국내 OTT 월간 활성 이용자 수(MAU)는 넷플릭스 > 쿠팡플레이 > 티빙 > 웨이브 > 디즈니플러스 순입니다. 분명 394만 명이 적은 숫자는 아닌데, 1위인 넷플릭스와의 격차가 너무나도 큽니다. 토종 OTT들도 오리지널 콘텐츠를 포함한 여러 가지 전략을 펼치며 서로 각축을 벌이고 있고요.
2022년 말에 공개한 ⟪카지노⟫가 입소문을 타며 ‘디플’에게도 잠시 희망이 보이는듯했습니다. 공개 당시 다른 OTT 서비스들 대비 가장 높은 앱 유입률을 기록했고, MAU 또한 뚜렷이 성장하며 긍정적인 신호를 보였습니다. 하지만 그런 기쁨도 잠시, 후속 콘텐츠들의 흥행 부진으로 지난 2분기에는 디즈니플러스의 한국 철수설마저 제기되었습니다.
우선 서비스 자체의 이용자 수가 감소하고 있었고, 전 세계 가입자 수 또한 작년 말부터 계속 감소하고 있었거든요. 게다가 디즈니 본사의 실적 악화가 온라인 동영상 스트리밍의 영향이 크다는 사실은 이러한 소문들에 더 힘을 실었습니다. 물론 디즈니플러스 측에서는 극구 부인을 했지만요.
이렇게 암울한 상황에서, 다행히도 지난 8월 공개된 오리지널 시리즈 ⟪무빙⟫이 엄청난 화제 몰이를 하며 다시 한번 디즈니플러스의 소생을 도왔습니다. 같은 시기의 OTT 콘텐츠 중 가장 높은 화제성을 보여줬을 뿐만 아니라, 아시아 태평양 지역에서 최다 시청시간을 기록할 정도로 큰 인기를 끌었습니다. 국내 MAU는 ⟪무빙⟫ 공개 이후 46%가량 증가했고요. OTT 서비스의 가입자 수 확보에는 오리지널 콘텐츠가 큰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증명하는 사례가 되기도 했습니다.
⟪무빙⟫의 성공은 단연 고무적입니다. 하지만 ‘먹히는 콘텐츠’를 꾸준히 보여주지 않으면 서비스 이용자들은 금방 다시 떠난다는 것을 ⟪카지노⟫의 성공 이후 실적 부진으로 겪은 것도 사실입니다. 그렇기에 ⟪무빙⟫ 이후의 라인업들에도 관심이 쏠립니다. 우선 이번 주 남주혁 주연의 ⟪비질란테⟫가 첫선을 보이고, 올해 말부터 내년 초까지 한국 제작 오리지널 콘텐츠들이 공개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4분기는 전반적으로 외부활동이 줄어들면서 OTT 이용이 늘어나는 시기이기에, 상황이 더 나빠질 가능성이 적긴 합니다. 하지만 이런 계절성 이점은 다른 서비스들에게도 비슷하기 때문에 얼마나 차별성을 보여줄 수 있을지는 차기작들의 역할이 중요할 것으로 보입니다.
디즈니플러스는 런칭 이후, 한국 오리지널 콘텐츠 투자, 구독료 인상, 계정 공유 금지까지 다양한 정책들을 펼치며 가입자를 끌어모으기 위해 갖은 노력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모든 방식이 굉장히 익숙하게 느껴지실 텐데요. 이것들은 모두 시장 점유율 1위인 넷플릭스가 이미 활용하고 있는 전략입니다.
우선 오리지널 콘텐츠 활용에 대해서 볼까요. 오리지널 콘텐츠에 대한 투자는 넷플릭스가 그 유행을 만들어냈고, 이제 거의 모든 OTT 서비스에서 가입자 확대와 앱 신규 설치 유도를 위해 많이 활용되고 있는 방식입니다. ⟪카지노⟫가 디즈니플러스의 체면을 많이 살려놓았다고는 하지만 1주일 차이로 공개된 넷플릭스의 ⟪더 글로리⟫의 화제성과 파급력은 엄청났어요.
디즈니 플러스가 2022년 12월 ⟪카지노⟫를 공개하고 MAU가 12월 195만 명에서 1월 216만 명으로 늘었습니다. 한편, ⟪더 글로리⟫는 12월 1160만 명에서 1월 1257만 명으로 부동의 1위를 유지했죠. 이미 시장에서 너무 크게 점유를 하고 있기에 다른 서비스들은 콘텐츠가 흥행하더라도 넷플릭스를 뛰어넘기는 거의 불가능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요금제와 정책 측면에서도 넷플릭스의 방식을 거의 그대로 따라가는 모습이 보입니다. 오늘 레터 서론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미국에서는 스트림플레이션으로 인한 서비스 이용자들의 부담감이 화두가 되고 있습니다. 넷플릭스가 2021년 11월 요금제를 인상한 이후로, 올해 들어서는 미국 금리 인상으로 말미암은 적자와 할리우드 배우 파업 여파가 겹쳐 대부분의 미국 OTT 서비스들이 요금 인상을 단행하고 있거든요. 넷플릭스는 파업 종료 후 추가 인상을 검토하고 있다는 보도도 있었고요.
처음 디즈니플러스가 2019년에 런칭을 할 당시만 하더라도 넷플릭스보다 상대적으로 저렴한 가격을 내세웠었습니다. 기존부터 베이식, 스탠다드 등 차등 요금제가 존재하던 넷플릭스와 달리, 월 9,900원의 단일 멤버십만으로 제한 없는 시청이 가능했다는 점이 매력적이었어요.
하지만 11월 1일부터는 디즈니플러스에도 스탠다드 멤버십과 프리미엄 멤버십으로 차등이 생깁니다. 기존과 같은 환경으로 시청하려면 인상된 요금인 프리미엄 멤버십 결제를 해야 하고요. (다만, 11월 1일 이전 가입 고객은 그대로 프리미엄 멤버십 적용이 된다고 합니다)
넷플릭스가 광고요금제 도입과 계정 공유 금지 정책을 도입한 후 크게 실적이 개선된 것도 중요한 선례가 된 것으로 보입니다. 현재 스트리밍 서비스 부문이 가장 큰 고민인 디즈니로서는 업계 1위의 방식을 벤치마킹하는 것이 당연한 선택일 수 있어요. 디즈니의 CEO 밥 아이거 또한 미국 시장에서의 광고요금제 도입에 대한 성과가 나쁘지 않았음을 인정했다고 알려졌거든요.
이에 더해, 넷플릭스가 단행한 계정 공유 제한 정책 또한 동기 대비 영업이익 15.8% 증가라는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그동안 고지만 되었다가, 2023년을 들어서며 적극적으로 단속이 시작되었는데요. 이는 디즈니플러스가 계정 공유 제한을 망설이지 않을 근거를 추가로 만들어줬습니다.
이렇게 요즘을 인상해서 실적 악화를 해결하려는 방식은 사실 모든 OTT 서비스가 고려해왔을 겁니다. 구독자의 반발을 고려해 쉽게 시도하기 어렵기도 하고요. 이를 두고 한국콘텐츠진흥원에서는 작금의 요금 인상과 광고 요금제 도입 시도가 가입자가 더 싼 요금만을 고려해서 이동할지, 아니면 요금을 더 내더라도 콘텐츠와 광고가 없는 환경을 선택할지, 수익모델의 재편을 시도하는 상황이라고 분석하고 있습니다.
이제 OTT 서비스 구독을 하지 않는 사람을 찾기 더 어려울 정도로 사람들에게 구독경제가 당연하게 자리 잡은 환경이 되었기에 이런 실험도 가능한 것으로 보이는데요. 구독 모델 변화를 통한 수익 강화에 대해 더 알아보고 싶으신 분들은 후니님의 지난 7일 발행 레터를 참고해주세요!
많은 것들이 변화하고 있는 와중에, 디즈니는 또 새로운 소식을 내놓았습니다. 바로 스트리밍 자회사인 훌루(Hulu)의 지분을 100% 보유하게 된 것인데요. 훌루는 디즈니가 21세기폭스, 컴캐스트, 워너 미디어(AT&T)가 함께 합작해 만든 서비스지만, 디즈니의 폭스 인수와 워너로부터의 지분 매입으로 디즈니의 자회사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2019년에 디즈니와 컴캐스트의 계약에 따라 컴캐스트가 가지고 있던 지분 약 30%를 디즈니가 사들이며, 훌루의 지분을 100% 소유하게 되었어요.
그래서 이번 디즈니의 실적 발표에는 훌루의 지분 인수 이후에 디즈니가 어떤 행보를 보일지도 관심이 쏠리고 있는 상황입니다. 사실 디즈니는 2022년 무렵부터 훌루를 디즈니플러스에 통합할 계획을 하고 있었거든요. 컴캐스트의 지분을 매입하는 계약도 2024년까지로 체결이 되어있었지만, 2023년 12월에 지급 절차를 마무리할 정도로 상당히 서두르고 있는 모습을 보이고 있어요.
이렇게 훌루 인수 작업에 속도를 낸 것은, 전세계 구독자 수 4800만 명 수준의 훌루를 디즈니플러스로 흡수해 시장에서의 몸집을 더 크게 만들기 위한 것으로 추측되는데요. 저는 특히 국내 시장에서는 디즈니플러스에서 볼 수 없는 작품들을 국내 OTT를 통해 배급하고 있는 부분이 신경쓰입니다.
기존에 디즈니플러스가 서비스를 시작하기 전 넷플릭스와의 콘텐츠 공급을 종료했던 것처럼, 웨이브나 티빙 등 디즈니에서 제작하지 않은 훌루 콘텐츠가 제공되고 있는 국내 서비스들로부터도 콘텐츠 공급을 중단하고 디즈니플러스 내에서 독점적으로 서비스하려는 계획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닌지 조심스럽게 예상이 되어요.
훌루의 오리지널 콘텐츠 또한 디즈니플러스에 통합되었을 때 기대되는 요소 중 하나입니다. 현재 디즈니플러스는 다른 OTT 서비스들과 같이 비용 절감 문제로 콘텐츠를 더는 제공하지 않는 등, 제공 작품 수를 조절해나가고 있다보니 마블 위주의 스트리밍 서비스가 되고 있다는 불만도 제기되고 있어요.
만약 훌루 오리지널인 ⟪핸드메이즈테일⟫, ⟪노멀피플⟫ 등 다른 스트리밍 서비스에서 배급되고 있는 콘텐츠들까지 이식된다면 기존 사용자들의 만족도도 올릴 수 있겠죠. 디즈니 측에서는 그동안 가지고 있었던 가족, 어린이 위주의 서비스라는 이미지를 탈피해 더욱 대중적인 콘텐츠를 가진 서비스로의 확장을 꾀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거든요. 물론 지금도 훌루 오리지널 콘텐츠 중 많은 비중이 디즈니플러스에서 서비스되고 있기 때문에 단순히 콘텐츠만의 문제는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은 듭니다.
글로벌 OTT 서비스의 동향을 제공하는 Parrot Analytics의 2023년 1분기 자료에 따르면, 디즈니플러스는 현재 아마존 프라임 비디오를 이어 점유율 3위를 기록하고 있어는데요. 추후 훌루와의 서비스 통합 이후에는 2위로 자리매김할 수 있을 것으로 보여요. 또 앞으로 디즈니플러스 산하에서 ‘훌루 오리지널’이 내놓는 새로운 콘텐츠들이 눈길을 끌게 될 수도 있고요. (훌루라는 이름을 계속 쓰게 될 지도 아직은 알 수 없지만요)
이번 레터의 주인공은 디즈니플러스였습니다. 하지만 넷플릭스의 독주가 언제까지 지속될지, 앞으로의 스트리밍 시장에서 게임 체인저는 과연 누가 될지 파면 팔수록 저 스스로 궁금한 점이 많아졌습니다. 디즈니플러스가 그동안에는 MCU 콘텐츠로 가까스로 연명을 해왔지만, MCU의 파워도 예전과 같지는 않은 상황이니까요. 과연 구독료 인상과 계정 공유 금지 조치가 (좋은 방향으로) 드라마틱한 효과를 보여줄 수 있을까요? 그리고, 훌루 인수가 새로운 돌파구가 될 수 있을지도 조금은 더 지켜봐야 할 것 같습니다.
오늘의 콘텐츠 추천
에디터 <나나>의 코멘트
최근 이 일본 밴드의 음악을 자주 듣고 있어요. 익숙한 듯 독특한 사운드가 자꾸 맴도는 곡입니다. 이들을 어느 날 갑자기 유명 밴드로 만들어버린 뮤직비디오를 소개해 드려요. 모쪼록 추워진 날씨에 모두 건강하시길 바랍니다! ♀️